제1조 칙궁(자기 몸을 닦음) — 둘째 단: 관용·엄숙·중후의 도(道)
제1조 칙궁(자기 몸을 닦음) — 둘째 단: 관용·엄숙·중후의 도(道)
아랫사람을 다스리되 너그러움으로써 하면 백성이 따르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위에 있어 너그럽지 못하고 예를 행하되 공경하지 못하면 내 무엇으로 그를 보겠는가」 하셨고, 또 「너그러우면 무리를 얻는다」 하셨다.
사람들이 늘 말하기를 「관에 있을 때는 사나움을 숭상함만 한 것이 없다」 하니, 이는 속된 말이다. 먼저 「맹(猛)」 한 글자를 가슴속에 두면 그 마음에 간직한 바가 이미 좋지 못한 것이니 어떻게 다스림을 이루겠는가. 죄가 있으면 죄로 다스리고 내가 형(刑)을 씀이 각기 그 죄에 합당하면 그뿐이다. 어찌 사나움을 숭상할 까닭이 있는가. 《시경》에 이르기를 「너의 위의를 공경하라. 부드럽고 아름답지 않음이 없으라」 하였다. 「유가(柔嘉)」 두 글자는 그 기상이 가장 좋다. 내가 옛날 조정에 있을 때 공경과 대신들의 말과 안색을 보매 대체로 유가하였다. 후세 사람이 옛사람만 같지 못하다. 한위공(韓魏公)이 재상이 되어서 비록 큰일이라도 그것을 의논할 때 결코 빠른 말과 갑작스러운 안색을 짓지 않았다. 살피건대 유가(柔嘉)함은 인(仁)이 발현된 것이다. 대저 어진 자는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자는 반드시 유가하다. 사납고 모진 자는 본디 어질지 못한 데서 말미암는다. 어질지 못한 자는 비록 아비와 자식, 형제 사이라도 또한 부드러운 기운이 없다. 하물며 그 아래 백성에게랴. 이 장(章)은 「갑작스레 노여워하지 말라(毋暴怒)」 장과 합하여 보아야 한다.
관부(官府)의 체모(體貌, 격식과 위엄)는 엄숙함에 힘써야 한다. 앉아 있는 자리 곁에 다른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
수령의 자리는 존엄(尊嚴)하다. 뭇 아전이 머리를 조아리고, 뭇 백성이 뜰에 서 있는데 감히 다른 사람이 그 곁에 끼어들 수 있겠는가. 비록 자제나 친한 빈객이라도 다 마땅히 물리쳐 홀로 우뚝 앉아 있는 것이 예(禮)에 맞는다. 더러 한낮에 공무를 마치고 물러앉아 있거나 고요한 밤에 일이 없을 때라야 비로소 그들을 맞아들일 수 있다. 어버이를 봉양하는 자는 새벽에 일어나 어버이 계신 곳에 나아가 문안하고, 그 뒤에야 나와 참알(參謁)을 받는다. 더러 부형(父兄)과 존장(尊長)이 안채에 계셔서 식사할 때라면 공무가 끝난 뒤 잠시 들어가 뵐 것이지, 부형이나 존장으로 하여금 정당(政堂)에 빙 둘러 앉게 해서는 안 된다. 채번(蔡樊)은 회안(淮安) 사람으로 성품이 엄숙하였다. 식사를 마치는 즉시 나가서 일을 보았고 자제와 빈객이 감히 청하는 바를 두지 못하였다. 정명도(程明道)가 부구현(扶溝縣)을 다스릴 때 정사를 함에 덕(德)으로 교화함을 힘쓰고 늘 얼굴빛을 거두고 단정하게 앉으니, 자제들이 모두 숙연(肅然)하였다.
군자(君子)가 무겁지 않으면 위엄이 없다. 백성 위에 선 자는 중후함을 지니지 않을 수 없다.
사안(謝安)은 위급한 소식 가운데서도 바둑을 멈추지 않았고, 유관(劉寬)은 국그릇이 엎질러져 무릎을 적셔도 놀라지 않았다. 모두 평일에 익히 헤아려 두었던 까닭에 일을 당하여 황망함을 면한 것이다. 관부 안에 더러 호랑이나 도적이 들거나, 수재(水災)나 화환(火患)이 나거나, 담이 무너지고 집이 무너지는 변고가 있거나, 더러 지네와 뱀이 깔개에 떨어지거나, 시중드는 아이가 어수룩하여 물을 엎지르고 화로를 뒤엎는 일이 있어도 모두 모름지기 의연(凝然)히 움직이지 말고 천천히 그 이치를 살펴야 한다. 더러 어사(御史)가 출도(出道, 암행감찰)를 하거나 폄(貶)하는 보고가 갑자기 이르더라도 더욱이 안색과 말투를 바꾸지 않아야 비웃음과 모욕을 면할 수 있다. 주박(朱博)이 상서(尙書)가 되어 큰 손님을 만날 때마다 반드시 의관을 정제하고 두 손을 모아 단정하게 앉았으며, 손님이 하직할 때에도 천천히 일어났다. 살피건대 사람 위에 있는 자의 위망(威望)은 「지중(持重, 무겁게 지님)」 두 글자에 있다. 경박하고 조급한 것이 가장 큰 병통이다. 비록 작은 일이라도 또한 경솔하지 말고, 비록 큰일이라도 또한 황망하지 말아야 비로소 사람을 복종시킬 수 있다. 무릇 일이 갑자기 닥쳤을 때 가장 꺼리는 것은 놀라고 두려워 안색을 잃는 것이다. 안색을 한 번 잃는 것이 보이면 위의(威儀)가 땅에 떨어진다. 그러므로 이른바 「변(變)을 만나도 놀라지 않는다」는 것은 군자(君子)의 큰 단서이다. 주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거친 자는 일마다 거칠고, 마음이 세밀한 자는 일마다 세밀하다」 하시고, 또 「마음이 정해진 자라야 일을 잘 처리한다 말할 수 있다」 하셨다. 조청헌공(趙淸獻公)은 평소 일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하여 앞뒤로 일흔여 차례 상소를 올렸다. 그러나 일에 임해서는 의연하여 어지럽지 않았고, 비록 놀라운 변고가 갑자기 닥쳐도 안색을 잃지 않았다. 한위공(韓魏公)은 급한 보고를 받을 때마다 반드시 먼저 눈을 잠시 감았다가 천천히 보았다. 이것이 곧 자신을 기르는 공부요, 곧 성문(聖門)의 「주경(主敬, 공경함을 주로 함)」 공부이다. 정이천(程伊川)은 「공경을 주로 하면 기(氣)가 절로 안정된다」 하였고, 또 「하나에 주(主)하여 옮겨 가지 않음을 일러 경(敬)이라 한다」 하였다. 공경을 주로 하면 모든 일이 다 다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