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가을이 되어 거두어들인 채소들은 모두 잘 자랐는데, 그 가운데서도 무는 유난히 잘 여물었답니다.
농부는 뼈빠지게 일한 보람이 있다며 새삼 기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만큼 여물기까지 지나온 날들의 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밭에 나가 씨를 뿌렸습니다. 그것이 작은 나비의 날개 같은 싹을 틔운 뒤로 얼마나 손이 갔는지요. 여린 잎에 벌레가 붙었을 때 그것을 떼어 주었습니다. 또 한낮 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두 낮잠을 자고 있을 무렵에도, 밭에 나가 거름을 주었습니다. 또 가뭄이 며칠이고 이어져 밭의 흙이 허옇게 마를 때면 물 주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거듭된 노고 끝에 무는 이토록 훌륭하게 여물었던 것입니다. 농부는 생각만 해도 기뻐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치 제 자식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무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농부는 자기의 땀과 눈물이 배어 있고 또 혼이 깃들어 있는 그 채소들을, 그대로 곧장 수레에 싣고 읍내에 팔러 가기에는 어쩐지 차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하다못해 이 가운데 좋은 것을 지주께 가져다드리자고 생각했습니다.
농부는 많은 무 중에서 가장 잘 여문 것을 열 개쯤 골라 그것을 마을 지주의 댁으로 가지고 갔습니다.
“나리, 올해는 무가 보기 드물게 잘 자랐기에 가져왔습니다. 부디 살펴봐 주십시오.” 하며 머리를 숙였습니다.
지주는 부엌 쪽으로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그러고는 농부가 가져온 무를 흘끗 바라보았습니다.
“과연, 올해는 무가 잘되었군. 날씨가 좋았던 덕분이겠지.” 하고 말했습니다.
“나리, 올해는 어찌나 벌레가 많이 끼었는지요. 비가 내리 이어지고, 또 가뭄이 잇따라서 말입니다…….” 하고 농부는 말했는데, 이렇게 잘된 것은 자기가 한결같이 정성을 들였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비가 올해 줄곧 왔던가.” 하고 지주는, 여름 무렵의 날씨 같은 것은 이미 잊고 있었습니다.
“이건 담뱃값이다.” 하고는, 지주는 얼마간의 돈을 종이에 싸서 농부 앞에 내던지듯 건넸습니다.
“나리, 저는 이런 것을 받자고 온 게 아닙니다…….” 하며 농부는 자기 마음속을 미처 다 털어놓지 못한 채, 부엌 문턱에 머리를 비비고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끝내 그 종이에 싼 것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부엌문을 나섰던 것입니다.
농부가 떠난 뒤에 지주는 발치의 무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저자가 자랑하더라만, 이런 무가 얼마나 한단 말이냐. 읍내에 가서 사도 뻔할 텐데.” 하고 지주는 중얼거렸습니다.
마침 그때, 읍내에서 평소 살갑게 굴던 정원사가 산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선물이라며 만병초를 가지고 왔습니다.
“나리, 살지 죽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이걸 저 석등롱 아래 바위 그늘에 심어 두십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지주는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정원사는 뜰 앞에 나가서 가져온 만병초를 심었습니다. 그러고는 툇마루에 걸터앉아 차를 마시면서 지주와 척척 죽이 맞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나리, 신기한 일도 다 있습죠. 그건 도저히 사람이 갈 만한 곳이 아닙니다. 험준한 산, 또 산속 깊이, 게다가 골짜기 건너편이지요. 큰 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 머리가 햇빛이 비치면 오색 불처럼 빛나는 겁니다. 저게 뭘까, 하고 안내인까지 혀를 내둘렀지요.” 하고 정원사가 이야기했습니다.
“다이아몬드 아닐까.” 하고 지주가 말했습니다.
“다이아몬드라는 걸 아직 본 적은 없습니다만, 그런 데 그런 것이 있겠습니까?”
“아무튼 바위 속에 박혀 있다고 들은 적이 있다. 유리병 조각 같은 건 아니겠지.” 하고 지주는 말했습니다.
“나리, 농담 마십시오. 원숭이도 곰도 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하고 정원사는 대답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자, 지주는 만일 그게 다이아몬드라면 엄청난 돈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원사가 돌아간 뒤에도, 지주는 한가하다 보니 그 일만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항해하는 배가 바다 한복판에서 바위 모서리에 빛나는 것을 발견하고, 가까스로 노 저어 다가가 보니 그것이 다이아몬드였더라는 이야기를 떠올리자, 지주는 한번 모험을 해 보고 싶어졌습니다.
“뭐, 주식이라도 산 셈 치면 별것도 아니다. 모르는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손해는 아니지. 게다가 올해는 여행도 못 했으니…….” 하고 지주는 생각했습니다.
그는 읍내의 정원사를 불렀습니다. 그러고는 빛나는 것의 정체를 알아보러 가자고 말을 꺼냈습니다.
정원사는 그 길의 험준함을 떠올렸습니다. 또 가을의 변덕스러운 날씨도 떠올렸습니다.
“나리, 그만두시는 게 어떠시겠습니까.”
그러나 일단 마음먹은 일을 그만둘 지주가 아니었습니다. 지주는 가진 돈을 마음껏 쓰며,
“넉넉한 일당을 줄 테니, 좀 가 주게.” 하고 말했습니다.
정원사는 일당을 받을 수 있겠고, 가면 또 무언가 진귀한 고산식물을 캐어 올 수도 있겠다 싶어, 결국 가기로 했습니다.
농부는 일 년 내내 쉬는 날이라는 게 좀처럼 없습니다. 늘 밭이나 논에 나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잇따라 일이 끊임없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를 지주의 댁으로 가져다드린 바로 그 농부가, 어느 날 아침 산에 가는 지주와 마주쳤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어디로 행차하시는지요.” 하고 농부는 정중하게 인사하고 물었습니다.
“이제부터 산에 다녀오는 길이다. 좋은 일이 있느니라. 잘만 풀리면, 엄청난 선물거리를 가지고 올 게다.” 하고 지주는 저편 산자락 쪽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농부는, 지주가 좋은 일이 있다고 한 것은 무엇일까, 분명 무언가 한몫 잡을 거리가 생긴 게 틀림없다, 우리는 일 년 내내 이렇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해도 돈이 모이는 것도 아니고, 흥겨운 일을 보는 것도 아니다, 참으로 시시한 노릇이로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농부는 또, 사람이라는 것은 정직하게 일해야 하는 법이라고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그러고는 정성껏 자기가 할 일에 매달렸습니다.
“날씨는 어떻겠는가.” 하고 지주는 걸으면서 정원사에게 물었습니다.
“나리, 보시다시피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날씨입니다. 이대로라면 좋은 날씨가 이어지리라 봅니다.” 하고 빈틈없는 정원사는 대답했습니다.
그 이튿날은 드디어 그 산속으로 들어가는 날이었습니다. 힘이 센 안내인을 둘이나 불러 세우고, 산속 깊이 길을 헤치며 들어갔습니다.
평소에 다녀 본 적 없는 험한 길을 오를 때에도 지주는 눈에 다이아몬드의 빛을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고됨도 잊었습니다. 변덕스러운 가을 하늘은 금세 비를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더구나 산속은 벌써 추웠습니다. 이런 때에도 지주는 다이아몬드의 빛을 눈에 그리며 고통을 잊었던 것입니다.
간신히 정원사가 저편 바위 모서리에서 빛나는 것을 보았다는 곳까지 다다랐습니다. 마침 하늘은 활짝 개어 햇빛이 사방에 흘러넘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한여름 무렵과는 달라 다소 옅고, 또 더위도 그리 심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으나, 깊은 골짜기 강을 사이에 두고 저편 바위까지도 햇빛은 비추고 있었던 것입니다.
정원사는, 혹시 저 빛나는 것이 어느새 사라져 버리지나 않을까 걱정스러워 견딜 수 없었으므로, 곧장 그쪽을 보았는데, 반짝반짝 눈부시게 빛나는 것이 있었던 것입니다.
“과연, 저게 뭘까?”
“신기하군.”
“뭘까.”
모두는 그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지주는 이를 보자, 비싼 돈을 들여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다며 기뻐했습니다. 그건 그렇고, 저쪽으로는 어떻게 가야 좋을까?
여태껏 잠자코 있던 안내인 가운데 한 사람이, 비로소 입을 열어,
“뭐 별거 아니여, 빛나고 있는 저거여, 저건, 바위 틈새에서 물이 솟고 있는 거구먼.” 하고 느릿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에, 물?”
“물이라고.”
“물이란 말인가?”
모두는 저 빛나는 것이 다른 무엇도 아닌 물이었다는 걸 알고는, 어이가 없어 멍해지고 말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지주와 정원사는 빛나는 것이 유리든 다이아몬드든, 그 두 가지밖에 떠올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물임에 틀림없군.” 하고 모두는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바위 끝에서 물이 솟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지주는 돌아오는 길 내내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정원사를 향해,
“너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이면서, 바위 모서리에서 물이 솟아나는 것도 모르다니, 어찌 된 일이냐.” 하고 말했습니다. 과연 빈틈없던 정원사도 사소한 이야기가 이런 일로 번지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런 말을 들어도 대꾸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마을로 돌아오니, 그사이 농부는 게으름 부리지 않고 일하고 있었습니다. 지주는 그제야 비로소 진지하게 일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정성을 들였기에 그 훌륭한 무가 여물었던 것이리라. 지주는 문득 농부가 가져다준 무를 떠올렸습니다. 그러고는 정원사에게 그 무를 줘 버린 것을 아까워했습니다. 왜냐하면 정원사가 가져다준 만병초는 얼마 못 가 시들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도서 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