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아침
다자이 오사무
노는 게 무엇보다도 좋아서, 집에서 일을 하면서도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라 했던가, 멀리서 벗이 찾아오기를 늘 은근히 기다리는 처지인지라, 현관문이 덜컹 열리면 눈살을 찌푸리고 입꼬리를 구기면서도, 실은 가슴이 두근거려 쓰다 만 원고지를 얼른 치워두고 손님을 맞는다.
“아, 일하고 계셨군요.”
“아니, 뭘.”
그러고는 그 손님과 함께 놀러 나간다.
그러다가는 언제까지고 아무 일도 못 하게 되므로, 어느 곳에 비밀 작업실을 따로 두기로 했다. 어디에 있는지는 집 식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매일 아침 아홉 시쯤, 나는 식구에게 도시락을 싸게 해서 그것을 들고 작업실로 출근한다. 아무래도 그 비밀 작업실까지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으므로, 일도 대개 예정대로 진행된다. 오후 세 시쯤 되면 피곤하고 사람이 그리워지고 놀고 싶어서, 적당한 데서 일을 끊고 집으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에 오뎅집 같은 데 걸려들어 한밤중에 귀가하는 일도 있다.
작업실.
그런데 그 방은, 한 젊은 여자의 방이다. 그 여자가 이른 아침 니혼바시의 어느 은행으로 출근한다. 그 뒤에 내가 들어가서 네다섯 시간 일을 하고, 그 여자가 은행에서 돌아오기 전에 빠져나온다.
애인이라거나 뭐라거나, 그런 게 아니다. 내가 그 사람 어머니를 알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어떤 사정으로 딸과 따로 살게 되어 지금은 도호쿠 쪽에 있다. 가끔 내게 편지를 보내 딸의 혼담에 대해 내 의견을 구하기도 하고, 나도 혼담 상대 청년을 만나보고서 그 사람이라면 좋은 신랑감이 되겠지요, 찬성합니다, 하는 따위의 노련한 인생 선배나 할 법한 소리를 써서 보내준 일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어머니보다 딸 쪽이 나를 더 믿고 있는 것 같다고, 어쩐지 그런 느낌이 든다.
“기쿠 씨, 요전에 당신 미래 신랑 만났어.”
“그래요? 어떻던가요? 좀 젠체하던가요. 그렇죠?”
“뭐, 그 정도지. 나랑 비교하면 어떤 남자든 어처구니없어 보이거든. 참아.”
“그야, 그렇겠지요.”
기쿠 씨는 그 청년과 순순히 결혼할 생각인 것 같았다.
지난밤, 나는 술을 잔뜩 마셨다. 아니, 잔뜩 마시는 것은 매일 밤 있는 일이라 별로 드문 일도 아니지만, 그날 작업실에서 돌아오는 길에 역 앞에서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곧장 단골 오뎅집으로 안내해 실컷 마셨고, 슬슬 술이 괴롭기 시작할 즈음에 잡지사 편집자가 여기인가 싶었다며 위스키 한 병 들고 나타나, 그 편집자 상대로 또 그 위스키를 한 병 다 비우고, 이거 토하는 것 아닐까, 어떻게 되는 거지, 하고 나 자신도 아찔해져서 이쯤에서 그만둬야지 싶어도, 이번엔 친구가 자리를 바꿔 내가 한턱낼게 하고 나서는 바람에 전차에 올라타 그 친구의 단골 작은 요릿집으로 끌려가 거기서 또 청주를 마시고, 겨우 친구와 편집자 두 사람과 헤어졌을 때는 나 혼자 걷지도 못할 만큼 취해 있었다.
“붙잡아 줘. 집까지 걸어갈 수가 없을 것 같아. 이대로 그냥 자버릴 테니까. 부탁이야.”
나는 고타쓰에 발을 들이밀고, 외투를 입은 채로 잠들었다.
한밤중에 문득 눈이 뜨였다. 칠흑같이 어두웠다. 몇 초 동안, 나는 내 집에서 자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발을 조금 움직여보니 버선을 신은 채로 자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오싹했다. 이런! 큰일 났다!
아아, 이런 경험을 나는 지금까지 몇 백 번, 몇 천 번이나 되풀이해왔던가.
나는 끙 신음했다.
“춥지 않으세요?”
하고, 기쿠 씨가 어둠 속에서 말했다.
나와 직각으로, 고타쓰에 발을 들이밀고 자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안 춥네.”
나는 상체를 일으키며,
“창문으로 볼일 봐도 되겠나?”
하고 말했다.
“상관없어요. 그쪽이 간단하고 좋죠.”
“기쿠 씨도 가끔 그러는 거 아닌가.”
나는 일어나 전등 스위치를 돌렸다. 켜지지 않는다.
“정전이에요.”
하고 기쿠 씨가 나지막이 말했다.
나는 손을 더듬어 조심조심 창문 쪽으로 가다가 기쿠 씨의 몸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기쿠 씨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거, 안 되겠는걸.”
하고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겨우 창문 커튼에 손이 닿아 그것을 젖히고 창문을 조금 열어, 물 흐르는 소리를 냈다.
“기쿠 씨 책상 위에 클레브 공작부인이라는 책이 있었지요.”
나는 다시 아까처럼 몸을 눕히며 말한다.
“그 시대 귀부인들은 말이야, 궁전 정원이나 복도 계단 아래 어두컴컴한 곳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볼일을 봤거든. 창문으로 볼일을 보는 것도, 그래서 원래는 귀족적인 행위야.”
“술 드실 거라면 있어요. 귀족은 누워서 마시는 거죠?”
마시고 싶었다. 하지만 마시면 위험하다 싶었다.
“아니, 귀족은 원래 어둠을 싫어하거든, 본디가 겁쟁이니까. 어두우면 무서워서 안 돼. 양초 없나? 양초를 켜주면 마셔도 좋아.”
기쿠 씨는 말없이 일어났다.
그리고 양초에 불이 붙여졌다. 나는 안도했다. 이제 오늘 밤은 아무 일도 저지르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다.
“어디에 놓을까요.”
“성경에 ‘등불은 높은 곳에 두라’ 했으니, 높은 데가 좋겠어. 저 책장 위에 어떨까.”
“술은요? 컵으로요?”
“성경에 ‘한밤의 술은 컵에 따르라’ 했거든.”
나는 거짓말을 했다.
기쿠 씨는 씩 웃으며, 큰 컵에 술을 가득 따라 가져왔다.
“아직 한 잔 분량쯤은 더 있어요.”
“아니, 이것만으로 됐어.”
나는 컵을 받아 꿀꺽꿀꺽 마시고, 다 비우고, 천장을 보며 누웠다.
“자, 한숨 더 자자. 기쿠 씨도 잘 자요.”
기쿠 씨도 위를 보고, 나와 직각으로 누워서, 속눈썹이 긴 커다란 눈을 연신 깜빡이며 좀처럼 잠들 기색이 없다.
나는 말없이 책장 위의 촛불을 바라보았다. 불꽃은 살아있는 것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며 흔들리고 있었다.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어떤 것이 떠올라 등골이 오싹했다.
“이 양초 짧다. 곧 없어질 것 같은데. 더 긴 양초 없나?”
“그것뿐이에요.”
나는 입을 다물었다. 하늘에 빌고 싶은 심정이었다. 저 양초가 다하기 전에 내가 잠이 드든지, 아니면 컵 한 잔분의 술기운이 깨어버리든지, 둘 중 하나가 아니면 기쿠 씨가 위험했다.
불꽃은 잔잔히 깜빡이며 조금씩 조금씩 짧아져 갔지만, 나는 조금도 졸리지 않았고, 컵 한 잔 술기운이 깰 기미도 없이, 오히려 온몸을 뜨겁게 달구며 자꾸만 나를 대담하게 만들 뿐이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버선 벗으시지 그러세요?”
“왜?”
“그쪽이 더 따뜻해요.”
나는 말대로 버선을 벗었다.
이제 정말 안 되겠다. 양초가 꺼지면 그때는 끝이다.
나는 각오를 굳히려 했다.
불꽃이 어두워지더니, 몸부림치듯 좌우로 흔들리다가, 한순간 크고 밝게 타올랐다가, 이윽고 지지직 소리를 내며 눈 깜짝할 사이에 작고 초라하게 쪼그라들었다, 꺼졌다.
날이 희붓하게 밝아 있었던 것이다.
방은 어스름하게 밝아, 이미 어둠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일어나 돌아갈 채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