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 도입 — 김서방의 귀가와 인력거 출문
제1장 · 도입 · 김서방의 귀가와 인력거 출문
해는 거의 서산에 넘어가고 겨울바람은 냉랭하여 남의 집 행랑채에 세로 들어,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노동자의 여편네가 쌀은 없고 나무 없어 구구한 살림살이 애만 부둥부둥 쓰는 이때에, 새문 밖 냉동 좁은 골목 막다른 집 행랑채 한 간 방에 턱을 고이고 수심 중에 앉아서 혼잣말로 한탄하는 여편네가 있으니, 그 남편은 병문 친구들이 부르기를 김서방이라 하고, 김 서방은 본시 양반의 자식으로 가세가 타락하여 할 수 없이 남의 집 행랑채를 얻어 들고 병문에 나가서 지게벌이도 하며, 남의 심부름도 하여, 하루 벌어다가 겨우 연명하는 터인데, 김서방의 위인이 술을 좋아하여 하루라도 술을 못 먹으면 병이 되는 듯하다. 술만 먹으면 한두 잔은 평생 먹어본 일이 없고 소불하 수십 잔이나 먹어야 겨우 갈증이나 면하는 모양이랴. 그러하므로 매일 장취 술만 먹고 살림은 돌아보지 아니하는도다. 사나이가 살림을 돌보아 주지 아니하면 그 여편네는 물을 것 없이 고생하는 법이라. 김서방의 아내는 일구월심 속이 타고 마음이 상하여 하루 몇 번 죽을 마음도 먹어 보았으며, 도망하여 다른 서방을 얻어 살 생각도 하여 보았지마는, 오늘 이때까지 있는 것은 그 본심이 상스럽지 아니하고 얼마쯤 장래의 희망을 가지고 있는 터이라. 이날도 김서방의 아내는 씁쓸한 방안에 혼자 앉아서 배가 고파도 밥 지을 양식이 없고, 방이 추워도 불 땐 나무가 없이 바느질만 종일 하다가 이따금 두 손을 입에 대고 호호 불며 발가락을 꼼작꼼작 꼼작이며 한숨만 쉬고 들창에 비치는 햇빛만 바라보더니 혼잣말로,
"애고, 벌써 해가 다 갔네. 저녁밥을 어떻게 하나……. 오늘은 얼마나 술을 자시기에 이때껏 아니 들어 오시노……."
이때에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사람은 김서방이라. 날마다 보는 모양이라, 대단히 취한 술 냄새와 방 문턱을 못 넘어서고 드러눕는 그 거동을 그 여편네는 별로 이상히도 생각지 아니하고 하는 말이,
"그런데 쌀도 조금 아니 팔아 가지고 들어왔으니 저녁은 어떻게 하라오."
"아, 쌀이 조금도 없나, 응. 나는 밥 생각이 없어."
그 여편네는 아무 말 없이 돌아앉아서 눈물이 그렁그렁. 김서방의 아내는 얼굴이 동그스름하고 이목이 청수한 중에 과히 어여쁘지는 못하나, 성품이 순직하고 태도가 안존하여 아무가 보아도 밉지 아니하다. 스물두 살이나 세 살쯤 되었는데, 모양은 조금도 내지 아니하고 생긴 본바탕대로 그대로 있어 어디인지 귀인(貴人) 성스러운 자태가 드러난다.
김서방은 술기운에 걱정 없이 드러누워 씩― 씩― 잠을 자는데, 그 아내는 혼자 앉아서 등불만 보고 정신없이 무슨 생각을 하고 이따금 한숨도 쉬며 세상이 귀찮게 생각하는 모양이라. '제길할 것, 내버리고 달아나서 좋은 남편 만나가지고 살아볼까. 어디 가기로 이렇게야 고생할라고. 아니 아니, 그렇지도 못하지. 귀밑머리 맞풀고 만난 남편을 어떻게 내버리고 어디를 가나……. 고생을 하면서도 잘 공경하고 살아가면 자기도 지각이 날 때가 있겠지. 종시 이러하거던 죽어버리지.'
저녁밥도 못 먹고 곤한 몸이 밤 깊도록 앉아서 한숨으로 그 밤을 보내다가 드러누워 잠을 자려 한즉,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눈이 더욱 말똥말똥. 잠 커녕 아무것도 아니 온다. 불도 끄지 아니하고 혼자 고생고생할 때에 씩씩거리고 잠을 자던 그 남편이 벌떡 일어 앉으며,
"아이고 목말라라. 물 좀 주어, 물 좀."
추위가 이를 데 없는 그 밤에 문을 열고 나가서 물을 떠다주니 꿀떡꿀떡 한 대접 물을 다 먹고 한참 드러누웠더니 하는 말이,
"여보게, 자네 저녁밥 먹었나."
그 아내는 아무 대답도 아니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만 그렁그렁하다.
"응, 못 먹은 것이로고. 아, 내가 잘못하였지. 그놈의 술집, 그놈의 술집이 원수야."
이 때에 그 아내가 무엇을 감동하였는지 정색하고 돌아앉아 그 남편을 보고 하는 말이,
"여보시오. 술집이 무슨 원수요. 당신이 오늘 나와 약조를 합시다. 우리가 일생을 이대로 지낸단 말이오. 평생을 이렇게 가난하게만 고생으로 살 것 같으면 차라리 지금 죽어버립시다. 당신도 사람이오 나도 사람이지. 아까 집주인이 방 내놓고 어디로 나가라고 사설하던 일과, 일수 놓는 오 생원이 돈 내라고 구박하던 일과, 쌀가게 외상 쌀값 스무 냥 내라고 욕설하던 일을 생각하면 저녁거리가 있은들 밥이 어찌 목구멍으로 넘어간단 말이오. 당신이 내 말을 들으시지 못할 것 같으면 나는 오늘 밤이나 내일 아침에 자결하여 죽겠소."
말을 그치고 앉았는 모양이 엄숙하고 무섭도다. 김서방은 아내의 정당한 말에 할 말이 없어서 일어 앉아서 팔짱을 끼고 고개를 숙이고 잠잠히 있는데 그 아내는 다시 말하기를,
"우리 집안이 그전에는 그렇지 아니하던 집으로 오늘날은 떨어져서 이 지경이 되었으니 어떻게 하든지 돈을 모아 집을 성가하면 남부럽지 아니하게 살아보아야 할 것 아니오. 또 삼촌이 잘 살면서 자기 조카를 구박하여 죽이려 하고, 나중에는 내어쫓은 일을 생각하면 우리가 이를 갈고 천하고 힘드는 일이라도 아무쪼록 벌이하여 돈을 모아 분풀이를 하여야 할 것 아니오니까. 그까짓 술 좀 아니 자시면 어떠하오. 내가 무슨 저녁밥을 좀 못 먹어 서운하겠소……."
말을 다 하지 못하여 목이 메어 눈에는 눈물이 핑 돈다. 한참 동안을 두 내외가 아무 말도 없이 앉았더니, 김성방이 천치스럽게 하는 말이,
"자네 말을 들으면 그러한데, 아― 술집 앞으로 지나면 술 냄새가 자꾸 나를 잡아당기는 것을 어떻게 하여."
그 아내가 이 말을 듣더니 눈물은 어디 가고 빙긋 웃는다.
"여보, 당신이 집안일을 생각하면 술 냄새가 비상 냄새 같을 것이오. 시아버님이 안주를 과히 잡수시다가 끝에는 술 취하여 깊은 개천에 떨어져서 골병들어 돌아가시고, 요부하던 재산이 다 술로 하여 없어졌으니, 술이 당신에게는 비상이오. 그러한즉 여보, 내가 아까 당신과 약조합시다 한 것은 당신이 삼 년 동안만 술을 끊고 부지런히 벌이하여 봅시다 하는 말이오. 세상에 술 아니 먹고 부지런하면 못할 이치가 어디 있겠소. 당신이 만일 못 하겠다면 나는 죽을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