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싱그러운 신록이 창밖으로 바싹 다가와, 살랑살랑 바람에 떨리고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생각했습니다. 어찌 이리 아름다운 빛깔인가. 대지에서 쑥 자라난 나무가 이러한 초록빛 새싹을 피우는 일, 이것 하나만은 태고 이래 변함이 없는 현상이며, 사람이 그것을 들여다보며 삶의 기쁨을 느끼는 마음 또한 몇백 몇천 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으리라 여겨졌습니다.
거기에는 아무런 이치가 없습니다. 그저 아름답다고 여기면 그것으로 좋고, 그리하여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 삶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세상에서, 이 봄을 맞아 나무들이 피우는 꽃을 바라보고, 이 싱그럽고, 어떤 물감으로 그려 보아도 이 생명이 약동하는 빛깔만은 낼 수 없는 신록을 들여다보며, 뜻깊은 자연 앞에서 길어 다 퍼낼 수 없는 자애를 느끼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것을 떠올릴 때 나는 또한 이치를 떠나서 불행하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바쁘고 황망한 생활을 보내고 있다가는, 끝내 죽을 때까지 한가로이 이 자연을 즐기는 일도 없이 죽어 버릴지 모릅니다.
이런 일은 아마도 옛 어느 시대에는 없었을 것입니다. 바다에, 깊은 숲에, 또 들짐승에게 위협받던 그 당시의 사람들은 동시에 자연의 자애를 한껏 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땅 위에 사는 자는 흙냄새를 충분히 맡지 않으면 그 생활을 관철할 수 없습니다. 거기에 그 땅을 떠난 때에는, 이미 자신들의 진정한 생활이라는 것은 사라져 버린 때입니다. 땅 위에 사는 인간이 가장 가까운 흙과 나무와 물의 참된 빛깔을 잊고, 향기를 잊고, 본성을 잊는다면, 그들은 이미 어디에도 보금자리를 갖지 못한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연에 대한, 아니, 땅에 대한 반역자이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면, 땅과 인간 사이의 친밀한 교감, 그것을 빼고는 생활은 따로 없는 것입니다. 사랑과 아름다움과 따뜻한 감정만이 생활에 필요한 것이지, 지식이라는 것은 본능적인 생활에는 필요치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처음 땅에서 태어났을 때의 기쁨과 사랑과 아름다움을 영원히 이어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기쁨도 사랑도 행복도 영영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그 행복을 되찾아야 합니다. 그 정의로웠던 생활을 다시 한번 땅 위에 일구어 보아야 합니다. 똑같은 상태가 영원히 두 번 다시 실현되는 것은 아니라 해도, 그와 같은, 또 그에 견줄 만한 행복한 생활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는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식은 그것을 위해서만 필요합니다. 또한 노력과 신념도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입니다. 인간의 행복을 잊은 지식이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또 우리의 평화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신념과 노력이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그것을 지금이라도 이루어 낼 수 있다면, 윤리나 철학상의 지식은 그때부터 필요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옛 어느 시대에 깃들었던 듯한 감격이 이 땅 위에 솟아오른다면, 그것으로 우리는 만족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평등하고, 자유롭고, 화목하며, 허위라는 것이 생활 위에 없다면 말입니다.
이상의 사회라는 것은 결코 허위 위에는 세워지지 않습니다. 순정한 인간성 위에서만 지어지는 사회여야 합니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이상의 사회는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지식이라는 것은 때로 허위를 바탕으로 한 사회를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게 할 것인가라는 경우에 필요할지 몰라도, 인간의 양심은 지식에 의해 증명되는 것도 아니거니와 빚지는 바도 없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순정만이 우리가 바라는 희망의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지식에 권위를 느끼는 사람들은 어떤 종류의 허위에는 만족하는 사람들입니다. 설명이나 해석의 방식에 따라 사물의 선악이 이리저리 바뀔 까닭이 없기 때문입니다. 더 좋다는 것은 더 진실하다는 것이며, 더 가치 있다는 것은 더욱 인간 생활을 일구는 데에 보탬이 된다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직과 선량함이 있다면, 조용한 시골 생활일지라도, 허위와 부박(浮薄)이 풍조를 이루고 물질적 문명으로 꾸며진 대도회의 생활보다 훨씬 귀하다고 확신되는 것처럼, 악인이 아무리 겉으로 아름답게 꾸며도 필경(畢竟) 선한 인간이 되지는 않는 것과 같습니다.
땅 위에 태어난 이상, 땅 위의 아름다움을 마음으로부터 즐길 수 있는 생활을 일구어야 합니다. 또 그러한 생활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봄이 오면 봄을 즐기고, 여름이 오면 여름을 즐길 수 있는 생활이야말로 진정한 생활인 것입니다.
자연은 무한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마치 눈먼 사람처럼 우리는 그것을 누리지 못합니다. 여기에서 현실의 생활을 의심하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시인만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모두가 온전치 못한 자가 된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따름입니다. 지식 있음을 자랑하려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동시에 진리를 깨우치는 까닭에 사회혁명가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식이 있어도 그러한 마음이 없다면, 그 사람은 이 사회에 그다지 가치 없는 인간인 것입니다.
나는 인간의 생활이 인간답게 정직하게 일구어진 때에, 오랜 세월 잊혀 있던 인간성이 되돌아왔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성이 마침내 싸움에 이겼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때부터의 문명이야말로 진정한 빛이 있는 문명이며, 그 뒤에 오는 진보한 인간의 생활이 머지않아 또한 기대되는 것입니다.
양심을 잃은 사회는 아무리 노력해도 목적에 이르지 못합니다. 지식 또한 아무런 쓸모가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점점 더 생활을 허위와 암흑에 빠뜨릴 따름입니다. 모두의 머릿속에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선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동안에는, 사회는 점점 더 타락할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 모두가 한때 지녔던 인간성을 되찾기까지는, 결코 쉬운 노력이 아니라고 믿는 바입니다.
만약 오늘날의 지식계급이라는 이름이 붙은 자들 가운데 사회주의적 정신을 깨닫지 못하는 자가 있다면, 그자는 바보라거나 영리하다는 평을 받기에 앞서 아마도 양심이 없는지를 의심받을 것입니다. 정사(正邪)와 선악이 너무도 분명한 사실을 보면서도 그의 마음에는 아무런 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아직 일하는 법이 모자란 것이라네. 더 일해서 돈을 모아 너희도 자본가가 되는 것이 좋겠지.”
창밖에서 부드럽게 바람에 떨리는 신록의 나무들 모습을 보며, 나는 갖가지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여기에 적은 것만으로는 본디 그 복잡한 심정을 드러낼 수가 없습니다.
(다이쇼 10년 4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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