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of 1

坂口安吾

첫째

가모 고로베에(加茂五郎兵衛)의 가모(加茂)는 오래된 성씨입니다. 가모라는 지명이나 가모 신사(賀茂神社) 같은 것이 여러 지방에 보이는데, 이는 상고 시대 가모(加茂) 부족의 분포를 나타내는 것이며, 신대(神代) 무렵 가모족이라는 한 부족이 있어 후대에 여러 지방으로 흩어져 정착하고 조상신을 모셔 가모 신사라 일컬었던 것이지요. 이 부족의 생업은 대장장이가 아니었을까, 라는 견해가 오늘날 일부 민족학자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만, 가모족이며 스와족(諏訪族), 미와족(三輪族) 등은 우선 구니쓰카미(国神) 계통의 대표적 씨족일 터이며, 그 밖에도 “신센쇼지로쿠(新撰姓氏録)”에 수백 개 성씨가 기재되어 오래된 기원을 보이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요. 그런데 가모 고로베에라는 인물은 실제로는 가모 고로베에라는 성과 이름이 아닙니다.

메이지·다이쇼 무렵에는 알아보는 이도 있었겠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변명(變名)을 쓸 필요도 없을지 모릅니다. 다만 한때 어찌 됐든 정계에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었고, 누(累)가 미치는 것을 꺼려 변명을 썼을 따름이며, 진짜 성씨는 가모(加茂)와 비슷한 옛 성씨 중 하나입니다. 내가 옛 성씨나 부족 명에 관해 조금이나마 지식이 있는 것은 이 사람의 전기 집필을 의뢰받아 조사한 데서 비롯된 것이며, 실제로 이 사람의 고향에 남아 있는 자(字) 이름이며 우지가미(氏神) 같은 것에 씨족 전통의 흔적이 역연(歷然)히 남아 있어, 아득한 이천 년 삼천 년의 세월에 나도 자못 감회가 있었습니다. 하기야 인간이라면 누구나 유인원 이래의 오랜 역사가 있는 것이지만요. 그런 까닭에 변명을 쓰는 데 있어서도 거기에 매달리는 마음이 남아, 가모족의 가모를 빌려다가 다소나마 회고의 감회를 채운 셈입니다. 따라서 인물의 변명에 따라 마을이며 산하의 이름도 가짜이지만, 천지는 현지우현(玄之又玄)이라 하늘과 땅은 가물고 또 가무니, 사물의 이름 같은 것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대체로 가모 고로베에의 사상이기도 했습니다.

하기야 가모 고로베에는 결코 대정치가는 아닙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정무차관쯤 되는 자리에서 정계와 인연을 끊었습니다만, 이때는 대단한 소동이었지요.

당시 내각에 대명(大命)이 내릴 때에는 이면에 사정이 있어, 그 대신 이러이러한 일을 실현해 달라, 그런 조건이 세화인(世話人)과 어느 방면 사이에 맺어져 있었습니다. 물론 세화인 쪽에서 신임 총리될 사람에게 그 뜻을 전해 두기는 했습니다만, 이 신임 총리께서 대정치가라 해야 할지 대사상가라 해야 할지, 이런 분을 일컬어 대인물이라 부르는지도 모르겠으나, 약속이라거나 앞서 한 말 따위에 얽매일 만한 좁은 도량은 갖고 있지 않으셨습니다. 죽 늘어선 신임 대신들도 또한 누구 하나 못지않은 대인물이라, 사법대신이 지나(支那) 문제에 대해 대연설을 하는가 싶더니, 총리대신의 시정 연설과 똑같은 식으로 방침을 설하는 대신도 있는 형국입니다. 관료적 실무는 말똥처럼 짓밟아 버리고, 정치의 위세가 호쾌하고 화려하기 그지없는 것이 오늘날같이 인심이 옹졸한 시대의 도량으로는 짐작도 가지 않을 정도이지요. 행정 사무는 각 분야 차관에게 맡기고, 허풍 보자기를 펼치듯 천하 국가를 컴퍼스로 그은 원처럼 자유자재로 또 유창하게 다루고 있었습니다.

조각(組閣) 당초의 약속 따위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림자도 형체도 없는 형편이라, 세화인은 당황했습니다. 이 세화인과 특히 친교가 있던 이가 가모 고로베에입니다.

그래서 고로베에는 총리를 면회하여 그 약속은 어떻게 되었느냐, 어서 빨리 실현해 달라, 하고 따집니다. 본디 대인물이시니까 “음, 약속은 실현하지 않으면 안 되지” 하고 두말없이 떠올려 주십니다. 그뿐 아니라, 그 방면 대신 또한 더 말할 것 없는 대인물이라 “음, 약속이라면 실현하지 않으면 안 되지” 하고 이쪽도 또한 거리낌이 없어요. 그래서 차관과 절충하는데, 차관은 전문 행정관이라 머릿속에는 책상 서랍이며 서류 따위가 가득 차 있습니다. 크게 놀라서 “그런 일이 자네, 가능할 것 같은가” 하고 마지막 결의를 내보이며 정색해 버렸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약속은 내각이 공약한 정책과 정반대의 것이었지요. 그렇기는 하나, 거기는 대인물의 내각이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굽는 정도로 거리낄 도량은 없는 까닭에, 광풍제월(光風霽月)이라 할까, 수종방원기(水從方圓器)라 할까, 그야말로 명경지수의 심경이지요. 내각 쪽에서는 전혀 거리낌이 없는데도, 이것이 세간으로 새어 나가니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 차관은 훗날 관료를 그만두고 반대당으로 달려가 대신이 되어 솜씨를 휘두른 인물이니까, 고로베에의 절충은 무겁고도 큰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로베에는 그때 사사로운 일로 고민하고 있어서 거처조차 분명치 않았으니, 일생일대의 솜씨를 보여야 할 자리에서 때를 놓치고 기회를 놓쳤습니다. 고로베에의 거처를 찾기 위해 원외단(院外団)이 동서남북의 요릿집을 뛰어다녔다는 형편이니, 요컨대 그 또한 한쪽의 대인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시 가모 고로베에가 시달리던 사사로운 일은 연애였습니다. 사랑에 야위고 갈가리 흐트러진다는 것은 나라·헤이안 옛날부터 이어져 온 우리 정치가의 미덕이지요. 그런데 고로베에는 사랑 그 자체에 그리 흐트러지지는 않았습니다만, 집념의 여인에게 쫓겨 크게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오타마라 하여, 본디 가모 집안의 하녀였습니다. 선대 부인이 죽자 어느 사이엔가 후처 같은 자리에 앉았는데, 미인도 아니고 재녀도 아니지만, 가모 집안을 휘어잡는 권세는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고집불통이라 오른쪽이라 말했다 하면 그 후의 인생은 왼쪽으로 눈도 돌리지 않는 성미라, 내조의 공이라곤 전혀 없었고, 선대 부인의 자식들은 거세된 꼴이었습니다. 신기할 정도로 고로베에가 기를 못 편 까닭은 어디에 있었던 건지요. 그래도 그는 늘 여색에 빠져 헤매며 끊임없는 파란을 일으키고는 있었지요.

마침 그 무렵 고로베에는 춤 사범의 딸과 사랑에 빠져, 어색(漁色)의 여유를 잃고 참된 어둠의 길로 헤매는 몸이 되었습니다. 그때 고로베에는 쉰셋, 딸은 갓 열아홉이었습니다. 딸은 거문고에 나가우타에 춤이며 갖은 예능에 통달했고, 국문학 소양이 깊어 “이세 모노가타리(伊勢物語)”의 현대어 역(譯)을 남길 정도의 재원이었습니다. 거기에 자작 고우타(小唄)에는 유현하고도 침통한 걸작이 있었다고 하는 통인(通人)이며, 알 만한 남자라면 누구나 회한을 품게 한 가인이었습니다. 이만한 사람이 쉰셋의 고로베에와 서로 사모하는 사이로 떨어진 것이니, 본디 고로베에에게 범상치 않은 장점이 있어서이겠으나, 이 딸도 별난 사람이지요. 부모인 사범도 승낙하여 “그 일에 관해서는 정식으로 결혼해 달라” 했고, 고로베에도 그럴 속셈이었지만, 오타마가 버티고 있으니 네기시(根岸) 마을에 적당한 거처를 정해 신혼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것을 오타마가 냄새 맡았으니 이젠 칼부림 판입니다. 네기시 마을에도 머무를 수 없게 되고, 친정도 위태롭게 되니, 그 결과 새 부인은 이 여관 저 요릿집으로 거처를 옮기며 오타마의 습격을 피하는데, 이에 따라 고로베에의 거처도 분명치 않게 되었지요. 이것이 고로베에의 일생일대 큰일에 즈음한 행적이올시다.

고로베에의 추태와 서툰 솜씨에도 죄가 있기는 했지만, 본디 내각의 성립에 무리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내무성과 사법성 사이에 관할상 다툼으로 암투가 있어 반(反)내각의 불길이 사법관 내부에서 일어났던지라, 이 문제가 형법상의 사건으로 비화하여 고로베에는 정계에서 실각하였는데, 이때 고로베에는 배를 갈랐습니다. 가족이 알아채고 서둘러 의사의 손을 댔기에 위태로운 목숨을 가까스로 건졌습니다만, 옛 시대극 같은 거창한 사건이라 사내를 올렸는지 내렸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왁자한 소동이었지요. 고로베에가 일체의 책임을 지고 사방으로 누가 미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배를 갈랐다 하여, 사실 검사의 추궁도 흐지부지되어 결국 사건은 불기소로 끝났습니다만, 고로베에의 할복은 실은 거짓입니다. 과연 고로베에의 뱃속에 와키자시(脇差)가 꽂혀 있기는 했지요. 그러나 이 와키자시는 광란한 오타마가 찔러 박은 것이며, 그것을 할복으로 둔갑시킨 것은 순간적인 고로베에의 기지였습니다. 하녀에게 배를 찔렸다는 사회면 기사는 추태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마침 하라키리가 있어 줘야 할 때에 등이 아니라 배를 찔린 고로베에는 행운이었던 셈입니다. 이는 고로베에의 장남이자 가모 집안의 당주인 사람이 목격한 사실이니, 틀림이 없습니다.

그때 고로베에는 침착했습니다. 상처 자리를 한 손으로 누르며 가족에게 진상을 입 밖에 내지 말라 일러 두었다고 하는데, 고로베에가 침착하니까 손가락 사이로 내장이 흘러내리고 있는데도 가족은 상처가 가벼운 줄로만 알았습니다. 실은 빈사의 중상이었지요. 고로베에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와키자시를 집어 들어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바보 같으니, 이건 곤피라 님(이었던가 이나리 님이었던가) 참배길의 찻집 도코노마에서 발견하여 이십오 엔(이었던가 얼마였던가)에 산 싸구려다. 골라 골라 가장 싼 것을 잡아낸 건 너의 천한 근성 탓이렷다” 하고 잔소리인지 허세인지 두런두런 늘어놓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병상에서 지시하여 오타마에게 별거를 명했다는데, 이것은 그에게 통쾌한 일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토록 거세던 오타마도 저항할 길이 없었고, 이리하여 퇴원과 함께 떳떳이 신혼 생활로 들어갔으니, 고로베에는 뱃속의 와키자시를 최대한 활용하여 이자까지 벌어들인 셈입니다. 그 후로는 정계에 대한 야심도 없이 유유히 새 부인과의 생활을 사랑했습니다만, 새 부인은 박명하여 고로베에보다 먼저 황천길의 사람이 되었지요. 잊지 못할 분이 남긴 자식이 하나, 여자아이로 오리하라 합니다. 고로베에는 오리하를 사랑하기 이를 데 없어, 산책에, 술자리에, 관극에, 방문에,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듯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습니다. 오리하는 이 이야기의 주요 인물 한 사람입니다.

고로베에는 오리하 열두 살 되던 해 영면했습니다. 만년에는 독서, 바둑, 술, 관극 따위로 날을 보냈고, 오리하를 능가할 만한 연인은 없었다고 하니 평온한 만년이었지요.

둘째

내가 가모 고로베에의 전기 편찬을 맡게 된 것은 기무라 데쓰잔(木村鉄山) 선생의 주선이었습니다. 선생은 메이지 중기의 정객이지만, 메이지 후기에는 기업가, 다이쇼 이후로는 취미가이십니다. 별달리 드나들었던 것도 아니지만, 같은 고향이라는 까닭에 내 이름을 기억해 두셨고, 때때로 졸작에 눈을 두신 일도 있다고 하여, 일반의 평가보다는 높이 사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가모 고로베에 전기는 그 사내에게 맡겨 보자”, 그렇게 되어 선생의 댁으로 초대받아 “귀군은 지금은 불우한 삼문문사이지만 필력이 비범하여 장래의 대기(大器)이니, 작중 인물로는 가모 고로베에가 자네에게 격이 모자랄지도 모르겠으나, 이번 한 번 격이 모자라는 역할인 점을 참고 진력해 주시오” 같은 식으로 최대급의 격려를 받았습니다. 선생은 추켜세우기의 명인이지요. 내가 감격했음은 두말할 것이 없습니다.

그때 선생으로부터 메이지·다이쇼 정계의 이면사에 대해 한 차례 강설을 들었으며, 더하여 여러 곳으로의 소개장 — 총리대신, 총재, 대신과 전직 대신 같은 분들이지요 — 그러니 나는 대단히 많은 대인물을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천하 명제(名題)의 대인물들이라 하나하나가 유난스럽고 별나서, 위풍이 하나하나 폐부에 새겨졌습니다만, 이 방문기는 생략하기로 합니다.

이리하여 마지막으로 가모 고로베에의 고향 집을 찾게 되어, “여기서 자료를 정리하고 마음 내키면 거기서 집필하는 것도 좋겠지”, 이런 이야기였으니, 내가 가모 마을을 방문한 것은 쇼와 ×년이고, 나는 스물아홉이었습니다.

“필력이 비범하여 장래의 대기”라는 선생의 선전이 두루 퍼져 있는 까닭에, 산골짜기 작은 마을에서는 이미 대기에 이른 사람처럼 정중히 대접을 받게 되었습니다. 도회의 누추한 골목에서 그날그날의 입을 거리며 먹을 것에 곤궁하던 삼문문사가 별안간 선경(仙境)에 잘못 발을 들여놓은 셈이지요.

가모 집안의 당주는 다로마루라는 별난 이름을 가졌으며, 어느덧 쉰에 손이 닿을 연배였는데, 당주에 한정되지 않고 도대체가 가모 집안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 유난스럽고 별나 보였습니다.

처음 가모 집안을 방문했을 때, 나타난 이는 시즈에 부인이었는데, “잘 오셨습니다, 자아 자아” 하고 맞아들이고는 이게 또 대단한 수다입니다. 십 년 지기와 미지의 사람을 구별하지 않는 것은 좋은 일이지요. 그러나 사람에 따라 화제를 가려 고려하지는 않으시므로, 모르는 고장과 모르는 이의 이름이 잇따라 등장하는 통에, 나는 구름 한가운데 앉아 종달새 소리를 듣는 사람처럼 잠자코 있었습니다. “요즘 도쿄는 어떠신지요” 하고 물으시기에 답하려는 사이에 “우리가 도쿄에 살고 있던 무렵”으로 어느새 추억은 십 년 전 이십 년 전 삼십 년 전으로 가없이 떠돌아 머무는 곳을 알지 못합니다.

그때 한 사내가 한 다발의 장작을 메고 뒷문으로 들어와, 도마(土間)에 털썩 던져 놓고는, 이어서 손도끼를 휘둘러 장작을 쪼개기 시작했습니다. 시골집은 입구에서 안쪽까지 도마가 통해 있고, 오래된 집이 되면 이 도마에서 캐치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널찍합니다. 도마의 한쪽은 요리쓰키노마, 차노마, 불간(佛間) 같은 것들이고, 다른 한쪽은 부엌과 욕실 따위지요. 그런데 이 집에는 도마를 활용한 양풍 응접실이 있어 요코즈나에게도 남아돌 만큼 큰 의자가 놓여 있었습니다. 우리는 차노마에 있었어요. 사내는 도마 한가운데에 장작을 던져 놓고 손도끼를 휘두르기 시작했는데, 장작을 베어 자르는 호쾌한 작업이 아니라, 한쪽 팔의 위아래 운동으로 끊임없이 장작을 두드리는 딱따구리 같은 작업이었습니다.

그러자 부인은 사내를 향하여 “어제는 큰 통나무를 쪼개지도 않은 채 게다가 젖은 것을 들이미시는 통에 매캐해서 눈도 못 뜨고 있었어요. 오늘은 잘 말랐겠지요. 젖은 장작과 마른 장작 정도는 구별할 줄 아실 테지요” 하고 머리 위로 잔소리를 퍼붓는데, 사내는 태연자약하게 대꾸도 없이 딱따구리의 작업을 이어 갑니다. “그렇게 부지런히 톡톡 두드리시다간 손가락을 베이세요. 어느 손가락이 없어도 불편한데, 손가락은 나중에 다시 자라지 않아요. 그리 부지런히 두드린들 쪼개질 리가 있나요. 좀 더 차분하게 한 번에, 자, 봐요, 나무가 튀잖아요” — 잔소리는 그칠 줄 모르고 이어집니다만, 사내는 마이동풍, 자기 류(流)를 끝까지 묵수(墨守)하여 십 분이나 되는 격투 끝에 장작 패기를 마치자 이번에는 그것을 안고 가서 욕실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있었습니다. 이가 곧 당주인 다로마루(太郎丸) 씨였지요. 당주는 사사로이 멋대로 하인을 며칠간 여행 보냈으니, “당신이 멋대로 하신 일이니까 목욕물도 당신이 데우셔야지요”, 이렇게 비틀어진 말에 정론(正論)으로 맞설 궤변을 세울 길도 없는 까닭에, 다로마루 씨는 분한 마음으로 욕실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녀가 몇 명이나 있는데도 저마다 직역(職域)을 지키며 굳게 끼어들기를 삼가는 것이 가헌(家憲)이나 다름없는 모양이었지요.

그 이튿날의 일입니다. 가모 고로베에의 손때 묻은 물건이며 일기 같은 것이 한꺼번에 던져 넣어져 있다는 광 안으로 안내를 받았는데, 다로마루 씨는 단 한두 권씩 자료를 꺼내 와서 약간의 해설을 덧붙여 내게 건네고는 다시 꺼내러 사라집니다. 그러는 사이에 내 앞으로 한쪽 무릎을 세워 앉더니 느닷없이 천외의 기상(奇想)을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저 사람은(이라 하는 것은 자기 부인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보통 사람이 아니랍니다. 고대의 사람이지요. 일본이 아직 신대(神代)이던 무렵 규슈에 히미코라는 여인 임금이 있었다고 하는데, 저 사람도 그런 사람이지요. 완력은 약하지만 계략이 능하니, 임금이 되시지요. 저 사람은 촌장도 할 수 있답니다. 마을의 기풍이며 관습은 변하지요. 하지만 저 사람의 방법으로 마을은 원만히 다스려져요. 농민들은 밭을 가꾸기보다 아첨을 한답니다. 일용 인부는 일을 게을리하고 불단 앞에서 향을 피운 채 낮잠을 자지요. 그러면서도 농민이 세금을 안 내면 저 사람은 군대를 보내지요. 하지만 영악한 농민은 세금의 절반에 해당하는 돈으로 저 사람에게 뇌물을 바쳐요. 그래서 마을 세금은 거두어지지 않지만 저 사람은 부자가 되시지요. 저 사람은 자기 돈으로 병정을 먹여 살리니 누구도 불평할 수 없답니다.”

거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오리하 씨가 부친의 일기를 집어 들어 읽고 있었지요. 그러자 다로마루 씨의 착상은 급각도로 방향을 틀어, 그분 자신이 홀연히 고대사의 깊디깊은 곳으로 잠겨 들어가 버렸습니다.

“나는 살아 있는 게 귀찮아지지요. 죽은 다음 인간이 어떻게 되는지, 당신은 알고 있나요. 나는 모릅니다. 누이(오리하 씨를 말함)에게 물어보았더니, 아마도 자고 있을 때와 똑같을 거라고 하던데, 나는 잠자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나는 깊이 잠들지 못하지요. 그 대신 하루에 열여섯 시간쯤 자리에 누워 있답니다. 책을 읽거나 자는 척을 하거나요. 나는 죽으려고 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누이와 의논해서 함께 죽으려고 생각했지요. 그렇지만 누이와 의논하면 누이는 반드시 함께 죽겠다고 답할 테니, 나는 황망한 처지에 놓이겠지요. 아마 나는 누이에게 이끌려 누이의 뒤를 따라 휘청휘청 죽는 그런 입장이 될 테니, 처량하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누이의 얼굴을 보았는데, 눈은 보지 않았고 코와 입술을 보았지요. 왜냐하면 그때 누이는 옆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누이의 코 모양은 아름답지요. 그렇지만 정돈된 아름다움이라, 입술의 싱그러움과 요염함에 비하면 오랫동안 시선을 끌지는 못했답니다. 나는 입술을 응시하고 있었어요. 당신은 이 세상에서 무한한 것을 보신 적이 있는지요. 나는 호류지를 구경했어요. 천 년의 옛날부터 이어져 왔고, 또 이로부터 몇천 년 이어질지 모르지요. 그래도 나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답니다. 그것은 무한이 아니에요. 유메도노의 관음도 보았는데, 나는 그저 그로테스크하다고 느꼈을 뿐이었지요. 나는 누이의 입술을 보고 있는 사이에 마음을 깊이 울려 와, 무한하다고 생각했어요. 누이와 함께 죽는 것은 안 될 일이라고 생각했답니다. 나는 울었어요. 하루 종일 자는 척을 하면서 울고 있었지요. 우는 까닭은 알 수 없었으나, 눈물이 흘러 언제까지나 마르지 않으니 신기하더이다. 하루 한밤을 울며 새웠어요. 그래서 죽는 것을 그만두었지요. 그렇지만 그 후로도, 지금도, 살아 있는 것이 귀찮아요. 나는 지금도 가끔 누이의 입술을 훔쳐보지만, 볼 때마다 점점 다른 것을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이젠 무한이 아니지요. 내게는 손이 닿지 않는 비밀이 있는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누이는 너무 아름답습니다. 나는 누이를 보고 있으면, 십 리 사방으로 이어지는 만개한 벚꽃의 숲이 있고, 그 한가운데에 나만 외톨이로 버려져 버린 듯한 쓸쓸함을 느낍니다. 나는 꽃잎에 묻혀, 꽃잎을 흔드는 바람에 쫓기며 곤혹스러운 채로 걸어가고 있는 것이지요.”

나는 어느 정도의 용기를 내어 오리하 씨 쪽을 훔쳐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거기서 분명히 오리하 씨의 옆얼굴을 보았지요. 그러나 코의 모양이며 입술 같은 것은 일단 차치하고, 무엇 하나 귀에 들리지 않는 양 그토록이나 청량하고 무심한 표정에 놀랐습니다. 귀가 있는지, 귀가 있다고 해도 이 사람의 절제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모든 것이 먼 세상의 모습을 눈앞에 보고 있는 듯한 기괴한 느낌에 사로잡혔지요. 그러나 그 표정의 청량함은 흡사 벚꽃 숲에 꽃잎을 흔드는 바람의 부류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공교롭게도 어정쩡하게 매달린 내 교양은 이런 느닷없는 고대사 인물들의 생활에 대처할 만한 훈련이 결여되어 있는 까닭에, 아마도 내 놀람이 거울처럼 순결한 다로마루 씨에게 반사되었던 것인지, 다로마루 씨는 큰 눈을 얼굴 가득 활짝 뜨고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내가 마음에도 없이 “어째서 당신은 살아 있는 것이 귀찮아지는지요” 하고 쓸데없이 입을 잘못 놀리고 만 까닭에, 내가 “아차” 하고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얼굴 가득 펼쳤던 큰 눈을 갑자기 작게 오므리고 있었지요. 그러고는 서둘러 일어서며 자료에 관해 두세 가지 사무적인 말을 덧붙이고는 떠나 버린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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