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of 1

Chapter 1

와카 아닌 노래

나카지마 아쓰시

편력

어느 때는 헤겔처럼 만유를 내 체계로 거두려고 하였노라

어느 때는 아미엘처럼 조심스레 숨죽이고 살아가려 생각하였노라

어느 때는 젊은 지드와 더불어 생명에 가득 차 들판을 헤매었노라

어느 때는 횔덜린과 날개 나란히 그리스 하늘을 훨훨 날아갔노라

어느 때는 필리프처럼 작은 마을의 작은 사람들을 사랑하리라 생각하노라

어느 때는 랭보와 함께 아라비아 뜨거운 사막에서 끝나려는 마음

어느 때는 고흐는 아니라도 사람의 귀를 물어 뜯어 미쳐 보고자 하였노라

어느 때는 도연명(陶淵明)처럼 의심 없이 저 천명(天命)을 믿으려 하였노라

어느 때는 관념 속에 영원을 보고자 하였노라 플라톤처럼

어느 때는 노발리스처럼 돌에 꽃에 기이한 비문(祕文)을 읽으려 하였노라

어느 때는 사람을 멀리하여 돌 위에 묵묵히 앉으리 달마(達磨)처럼

어느 때는 이백(李白)처럼 취하고 또 취하여 노래하다 세상을 마치고자 하노라

어느 때는 왕유(王維)를 본받아 고요히 깊은 대숲 속에 홀로 있고 싶노라

어느 때는 스위프트와 함께 이 지구의 야후(Yahoo)들을 미워하고 깔보노라

어느 때는 베를렌처럼 비 내리는 밤거리에서 마시며 눈물 흘렸노라

어느 때는 완적(阮籍)처럼 백안(白眼)으로 사람을 흘겨보며 거문고를 타리

어느 때는 프로이트에게 가서 뭇사람의 기이한 심리를 더듬으려 하노라

어느 때는 고갱처럼 늠름한 야생의 목숨에 닿고자 하노라

어느 때는 바이런처럼 인간 세상의 계명을 짓밟고 껄껄 웃으리라

어느 때는 와일드처럼 깊은 못에 떨어져 한탄하며 참회하려는 마음

어느 때는 비용처럼 죽이고 훔치고 쓸쓸히 서서 바람에 불리고 싶노라

어느 때는 보들레르의 댄디즘으로 의기양양하게 길을 가는 마음

어느 때는 아나크레온과 피롱만이 더불어 말할 만하다고 여겼노라

어느 때는 파스칼처럼 마음 아파하며 약한 갈대를 기리고 가엾이 여겼노라

어느 때는 카자노바처럼 여인의 살결을 쓸쓸히 더듬어 가는 마음

어느 때는 노자(老子)처럼 이 세상의 현묘하고 또 현묘한 것을 헛되다 보았노라

어느 때는 괴테를 우러러 한숨지었노라 우뚝이 솟아 너무도 높아라

어느 때는 저녁 새와 함께 날아가 구름 끝자락에 사라지려는 마음

어느 때는 스토아처럼 내 의지를 단련하리라 떨쳐 일어났노라

어느 때는 기카쿠(其角)처럼 밤거리에서 어린 기녀를 희롱하려는 마음

어느 때는 히토마로(人麿)처럼 물풀 같은 옆에 누운 그대를 사랑스레 여기노라

어느 때는 바흐처럼 평온하게 다만 예술과 마주하려는 마음

어느 때는 티치아노처럼 백 년의 풍요한 목숨을 살고자 하는 마음

어느 때는 클라이스트처럼 나와 내 생명을 태우고 끝나려는 마음

어느 때는 눈도 귀도 마음도 모두 닫고 겨울 뱀처럼 잠들고 싶은 마음

어느 때는 발자크처럼 커피를 마시며 맹렬히 글을 쓰고 싶은 마음

어느 때는 소보(巣父)처럼 속된 말을 들은 귀를 씻고 싶은 마음

어느 때는 사이교(西行)처럼 집을 버리고 도를 찾아 떠도는 마음

어느 때는 늙어 귀도 멀어버린 베토벤을 들으며 울었노라

어느 때는 마음 꺼림하면서도 내 안의 예수를 내쫓았노라 빌라도처럼

어느 때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작열하는 의욕에 닿아 타려 하였노라

어느 때는 바울에게 내려온 신의 음성 내게도 있었으면 하고 한결같이 빌었노라

어느 때는 안일 속에서 우러러보는 칸트의 ‘선(善)’이 엄숙하기 그지없었노라

어느 때는 정연하게 맑디맑은 스피노자에게 와 눈을 크게 떴노라

어느 때는 발레리식으로 부린 오성(悟性)의 날카로운 칼날에 몸을 다쳤노라

어느 때는 모차르트처럼 괴로움에서 밝은 예술을 낳고자 하노라

어느 때는 총명함과 사랑과 체관(諦觀)을 아나톨 프랑스에게 배우려 하였노라

어느 때는 스티븐슨의 아름다운 꿈에 끼어들어 흠뻑 취하였노라

어느 때는 도데와 함께 프로방스 언덕의 양지에서 졸고 있었노라

어느 때는 다이가도(大雅堂)의 그림을 보고 도연(陶然)히 몸도 세상도 잊고 우두커니 서 있었노라

어느 때는 산적 많은 코르시카의 산을 메리메와 더불어 헤매는 심정

어느 때는 결박을 풀려 몸부림치는 프로메테우스와 나를 가엾이 여기노라

어느 때는 차라투스트라와 함께 산에 가서 눈매 날카로운 독수리와 놀았노라

어느 때는 파우스트 박사가 가르쳤으니 ‘행위로써가 아니면 그대 구원받지 못하리’

두루 헤매며 어디로 가는가 내 영혼이여 어느덧 서른에 가깝다 하는데

가엾이 여기며 기리는 노래

칠흑 같은 우주의 어둠 속에 한 곳 밝은 것이 있노라 인류의 문화여

현현(玄玄)한 태충(太沖) 가운데 한 곳 따뜻한 것이 있노라 이 지구 위에

두루 어둑한 가운데 찬연히 인류의 예지가 빛나니 거룩하여라

이 지구의 인류 문화의 밝음이여 등 뒤의 어둠에 떠올라 아름답구나

비유하자면 광맥에 숨은 청옥(琅玕)이라 어리석음 속에 예지가 빛나는 것이로다

몇만 년 사람이 태어나 이어 쌓아 올린 바벨탑이 무너질 그날이여

인간의 꿈도 사랑도 스러지리라 이 지구의 운명을 슬퍼하노라

학문이여 예술이여 예지여 사랑이여 이 아름다운 것들이 스러지리니 가엾어라

언젠가 올 멸망을 알기에 인간은 생명을 더욱 아름답게 살려는가

스스로 운명을 알면서도 더 높이 오르려는 인간이여 애틋하구나

약한 갈대 약한 그대로 아름답게 자라려 함을 보면 애틋하여라

인류의 멸망 앞에 응연히 두려워하지는 않으나 슬프기는 하여라

그래도 나는 이 삶을 사랑하노라 천식 앓는 밤이 괴롭다 한들

있는 그대로 추한 그대로 인생을 사랑하리라 다른 길은 없어라

있는 그대로 이 인생을 사랑해 가리라 이 마음이 옳다고 끄덕였노라

나는 아노라 괴테와 플라톤이 사악한 세상에 아름다운 생명을 살았음을

서서 서리 기둥을 밟으며 생각하노라 번갯빛 그림자 속에서 어찌 살아갈 것인가를

돌이 되고 싶은 밤의 노래 여덟 수

돌이 되어라 돌은 두려움도 괴로움도 분노도 없으리니 어서 돌이 되어라

나는 차라리 돌이 되리라 돌이 되어 차가운 바다를 가라앉아 가고 싶노라

진눈깨비 내리고 도깨비불 타오르는 겨울밤에 나는 돌이 된다 검은 작은 돌로

눈을 감으면 얼음 위로 바람이 분다 나는 돌이 되어 굴러가고 있노라

썩어 가는 물고기의 눈에는 빛이 없다 돌이 될 날을 기다리며 나는 있노라

덧없이 한 자락 목숨을 쓸쓸히 바라보았노라 차가운 별 위에 나는 있노라

아아 어둡구나 차가운 바람이 천천히 분다 나는 떨어져 가노라 운석처럼

민달팽이인가 거머리 같은 것인가 칠흑 같은 밤의 어둠 속에 꿈틀대며 비웃는다

또 같은 밤에 읊은 노래 두 수

하염없이 응시하고 있으면 문득 거리(距離)의 관념이 사라져 버렸노라

크고 작음도 멀고 가까움도 없어 멍하니 있노라 태어나기 전의 나도 이러하였을 것이로다

누군가 나에게 명하였노라 나뉘지 않는 수를 무한히 나누어 가라고

무한한 순환소수가 나타났노라 나누어도 끝나지 않으니 두려울 만큼

무한한 공간을 떨어져 갔노라 나뉘지 않는 수의 저주를 짊어진 채로

내 비명에 놀라 깨어났노라 겨울밤 플란넬 잠옷에 식은땀의 차가움이여

‘무한’이라는 것의 두려움이여 꿈에서 깨어 한동안 마음이 떨려 있노라

이 꿈은 어린 시절부터 몇 번이고 시달리던 꿈 두려운 꿈이로다

지금 생각해 보니 꿈속에서 이 꿈을 낯익은 꿈으로 알고 있었던 듯하여라

니체도 이런 꿈을 꾸고 떠올렸을까 차라투스트라의 영겁회귀(永劫回歸)를

옛날에 내가 날개를 뜯었던 귀뚜라미가 꿈에 찾아왔노라 사람의 말을 듣고서

어찌하여 산 채로 묻혔는가 외치고 부르짖고 불러도 사람은 오지 않는다

외쳐도 사람은 오지 않고 어둠 속에 발끝부터 썩어 가는 꿈

꿈 깨고 다시 잠들지 못할 때 읊은 노래

어딘가에서 어족(魚族) 놈들이 눈물 흘리는 훈제 냄새 풍기는구나 한밤은 메말라 가는데

방가

내 노래는 졸렬하다 하여도 나의 노래 다른 이가 아닌 바로 이 나의 노래로다

내 노래는 우스운 노래로다 히토마로(人麿)도 오쿠라(憶良)도 아직 읊지 못한 노래로다

내 노래는 단자쿠(短冊)에 적는 노래가 아니라 거리를 거닐며 메모에 적는 노래

내 노래는 뱃속의 더러운 것을 아침에 내보내며 측간 창 아래에서 읊는 노래

내 노래는 나의 먼 조상 사모스의 에피쿠로스 스승께 바치는 노래

내 노래는 천자가 불러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장안 술꾼들에게 보일 노래로다

내 노래는 겨울 저녁 끼니 뒤에 사과를 먹으며 읊은 노래

내 노래는 아침 가스불에 모카와 자바 커피를 끓이며 읊은 노래

내 노래는 아달린이 듣지 않아 잠들지 못한 깊은 밤 잠자리에서 읊은 노래

내 노래는 숨이 가빠와 일어나 앉은 새벽 햇빛 속에 적은 노래

내 노래는 진통제도 강한지라 지끈지끈 쑤시는 머리에 떠오른 노래

내 노래는 내 가슴 언저리의 천명(喘鳴) 소리를 손수 들으며 읊은 노래

몸이 약함에 어리광 부려 흐물흐물한 내 마음을 걷어차고 싶노라

손도 발도 눈도 모두 잃고서 유리 상자 속에 살아 있는 사람도 있다 하지 않느냐

괴테라는 사나이를 떠올리면 얼굴이 밉살스럽다 분하기는 하여도 거룩하기 그지없어라

가늘고 굳세고 굵고 윤기 있는 그 목소리 같은 마음을 가지고 싶노라 (샬리아핀을 듣고서)

고흐의 눈 모차르트의 귀 플라톤의 마음을 두루 갖춘 이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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