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of 1

Chapter 1

마음을 드높여 주는 무궁한 즐거움이라는 것은, 아직 무엇 하나 몸에 익히지는 못하였습니다만, 소설 쓰는 사람이 소설 모르고, 게다가 음악이며 회화에 있어서도 저는 한 글자도 알지 못하는 어린아이입니다. 그렇지만 그것들을 신기하게도 애정을 가지고 보거나 듣거나 할 수는 있답니다. 세상에서는 곧잘 취미가 있다 없다 하는 것을 따지는 이도 있지만, 안목의 높이, 학문의 높이를 제하고 본다면, 군자도 거지도 그림이나 음악이나 문학을 한결같이 싫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엔슈류(遠州流)의 시조 고보리 마사카즈 후의 가키쇼(壁書, 가르침을 적은 글) 가운데에 “임금에게 충효를 다하고, 집집의 가업을 게을리 말 것이며 특히 옛 벗과의 사귐을 잃지 말지어다, 봄은 안개, 여름은 푸른 잎 그늘의 두견새, 가을은 한층 더 쓸쓸함이 더해 가는 저녁 하늘, 겨울은 눈 내리는 새벽, 그 어느 것도 다도의 정취로다, 도구라 해서 그리 진귀한 것에 기댈 일이 아니라. 명물이라 해도 별다른 것이 없고, 옛것이라 해도 그 옛날에는 새것이었으니, 다만 집안에 오래도록 전해 내려온 도구야말로 명물이라, 옛것이라 해도 모양이 비루한 것은 쓰지 말 것이며, 새것이라 해도 자태가 어울릴 때에는 버려서는 아니 된다, 수가 많음을 부러워 말고 적음을 마다하지 말지니, 일품일색의 도구라 할지라도 거듭거듭 아끼고 빛나게 함으로써, 후세 자손에까지 전해지는 길도 있으리라, 한술 밥을 권한다 한들 마음 두터움을 으뜸으로 삼을지니, 갖은 맛이 있다 한들 주인 되는 자의 마음이 엷으면, 여울의 은어, 물밑 잉어인들 도무지 맛이 있을 리 없다. 울타리의 이슬, 산길의 담쟁이덩굴, 아침저녁으로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잎 바람, 가마 끓는 소리 끊이게 하지 말라.”

하는 글이 있었는데, 몸에 사무치는 좋은 한 장이라고 생각하고 있답니다.

요즈음, 우스차(薄茶)를 타는 일을 조금씩 익히기 시작했습니다만, 뭐 모르는 저의 일상에도, 이것은 참으로 밝고 산뜻한 구원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마음, 인생의 갖가지 일에도 저는 자연스러운 것을 사랑합니다. 평소 사내의 제일의란 어떠한 것일까. 사내의 제일의란 어떠한 것일까 하고 묘한 것을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사내는 그렇다 치고, 여인의 제일의는, 사랑을 가지고 부엌일 하는 여인으로 마치는 것 또한 즐겁고, 그것이 본분이 아닐까 생각하는 일입니다만, 부엌일 하는 여인이라 하였다 해서, 아침저녁으로 물일로 마친다는 뜻이 아니라, 집의 사방을 늘 따뜻하게 해 두는 평범한 살림하는 여인으로 마치고 싶다고 바라는 일입니다. 아이를 사랑하고, 남편을 사랑하고, 혈육의 모두, 남, 집, 가축, 들과 산 모든 것에, 사랑 두터운 여인이고 싶다고 마음먹는 일입니다.

차를 타고 있노라면 느끼는 것이, 일상에서, 가득 찬 것보다 모자란 것에 무언가 매력을 느끼고, 출발이라 할 만한 것을 느낀답니다만 어떠하실는지요.

요즈음, “모르는 것”이라는 것은 명예로운 일은 아니지만 별달리 불명예스러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얕고 넓게 많은 것을 아는 수고로움보다, 작은 일이라도 하나하나 마음 깊은 곳에 새겨 두는 것은 여간한 기쁨이 아니랍니다. 부엌일 하는 여인이라면, 이것저것 백화점 같은 무서운 심장을 갖지 않아도 좋고, 잘도 여인으로 태어났구나 하고 행복한 마음을 즐길 때가 있습니다.

사발로 차를 타는 것도 좋겠고, 도코노마(床の間)에 아무것도 없는 쓸쓸함을 푸념하는 것 또한 흥겹다고 생각하기도 한답니다. 며칠 전에도, 저의 차 스승이신 선사의 스님이, 일부러 도쿄에 올라오시어 하루는 어느 명문가에 차 대접을 받고 돌아오신 이야기에,

“지위가 있는 인간이며, 돈을 가진 인간은, 아무래도 어중간한 자세로 차를 타고 있어 곤란하구먼. 다이코모치(太鼓持ち, 술자리 흥 돋우는 사내) 같은 사내가 나와서, 이 나쓰메(棗, 차통)는 오만 엔이라느니, 이 겐스이(建水, 퇴수기)는 이만 엔, 찻사발이 얼마, 시끄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지, 그럴 바엔 차라리 지폐를 란마(欄間, 인방 위 격자)에 붙여 두면 좋을 법한 일이지 않은가.”

그렇게 말씀하시며, 제가 탄 가난한 찻사발의 차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들이마셔 주시는데, 조금 흥미로운 말씀이라 생각하였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남화(南画)에 대하여 무언가 써야 하겠습니다만, 저는 남화라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지나(중국)에서 건너온 것으로 본디 남종(南宗)과 북종(北宗)으로 갈려 있던 그림의 갈래가, 남화라 일컬어지게 된 것이라고 어디선가 옛날 읽은 적이 있었던 것 같이 생각합니다만 그 기억도 미덥지 않습니다. 수묵으로서는, 이만큼 늠름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어떠하실는지요. 어린아이의 안목밖에 없으므로 까다로운 일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만 남화는 무척 깊이 다다른 데가 있어 좋답니다. 며칠 전 요로즈 데쓰고로 씨의 미망인이 요로즈 씨가 애장하시던 이케 다이가도(池大雅堂)의 한 폭을 가지고 와 저에게 보여 주신 일이 있었는데, 알지 못하는 대로, 저는 몹시 가슴에 와닿는 무언가를 느꼈답니다. 다이가도의 그림을 남화라 하는지 북화(北画)라 하는지 조금도 모릅니다만, 그 산수의 먹빛은 산을 마주하는 듯한 “청춘”을 느끼게 합니다. 청춘이라는 말은 무척 젊은 말이라, 다이가도의 그림에 빗대는 것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릅니다만, 제가 그 그림 속에서 “청춘” 같은 것을 느낀 것이니 어쩔 도리가 없겠지요.

지난달에도 어느 분에게 말씀드린 일입니다만, 저는 요즈음 무척 먹의 그림을 좋아하게 되었답니다. 전람회에 유화를 보러 가면 곧 지쳐 버립니다만, 수묵에는 마음이 위로받아 돌아옵니다. 그리고 수묵의 그림 속에서는, 그림 바깥에 있는 갖가지 색채의 여운까지도 느껴집니다. 이제부터 수묵이며 차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풋내가 나서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릅니다만 좋아하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겠지요. 부엌일을 하는 것이 좋듯이, 거창한 설명도 없이 수묵은 무척 마음에 든답니다.

평범함에 철저한 조심스러운 부인이, 남편의 그늘 안에서, 회화며, 음악, 문학, 갖가지 일을 가만히 즐기고 사랑하고 있는 모습은 청초하고 사랑스럽다고 생각합니다만 어떠하실는지요. 이러한 마음은 문화 운동에 종사하고 있는 지식 부인들에게는, 진보적이지 않다고 비웃음을 살지도 모릅니다만, 저는 아메야 소케이(阿米夜宗慶)의 안사람이 빚는 아마야키(尼焼) 찻사발처럼, 외로이 자연의 모든 것을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다면 행복하리라 생각하고 있답니다.

여인의 애정으로 가득 찬, 세상사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멋지지 않을는지요.

●도서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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