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푸성귀 국
어머니의 푸성귀 국
아주 캄캄해서야 어머니는 돌아왔다. 또 산으로 가서 나무를 해 이고 온 것이다.
「어디 아프냐?」
어둠 속에 약간 드러나는 어머니의 윤곽은 피로에 싸여 넘어질 듯하다. 그리고 짙은 풀내가 치마폭에 흠씬 배어 마늘내 같이 강하게 풍겼다.
「이 애야, 왜 대답이 없어?」
아들의 몸을 어루만지는 장작개비 같은 그 손에도 온기만은 돌았다.
칠성이는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돌아누웠다. 어머니는 물러앉아 아들의 눈치를 살피다가 혼자 하는 말처럼,
「어디가 아픈 모양인데, 말을 해야지 잡놈 같으니라구.」
이 말을 남기고 일어서 나갔다. 한참 후에 어머니는 푸성귀 국에다 밥을 말아 가지고 들어와서 아들을 일으켰다. 칠성이는 언제나처럼 어머니 팔목에서 뚝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일어나 앉아 떨리는 손으로 술을 붙들었다.
「이 애야, 어디 아프냐?」
아까와 달리 어머니 옷 가에 그을음 내가 풍기고, 숨소리에 따라 밥내 구수한 데, 무겁던 몸이 가벼워진다.
「아, 아니,」
마음을 졸이던 끝에 비로소 안심하고 아들이 국 마시는 것을 들여다보았다.
「에그, 큰년네 어머니는 오늘 밭에서 아기를 낳았다누나. 내 남없이 가난한 것들에서 새끼가 무어겠니.」
아까 버드나무 아래서 본 큰년의 어머니가 떠오르고 으아 으아 울던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 또 영애의 그 꼴이 선히 나타난다.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글쎄 새끼가 왜 태워, 진절머리 나지.」
한숨 섞어 어머니는 이렇게 탄식하고, 빈 그릇을 들고 나가버린다. 칠성이는 방안이 덥기도 하지만, 큰년의 일이 궁금해서 그만 일어나 나왔다.
뜰 한 모퉁이에 쌓여 있는 나뭇단에서 짙은 풀내가 산 속인 듯싶게 흘러나오고, 검푸른 하늘의 별들은 아기 눈같이 예쁘다.
왱왱거리는 모기를 쫓으면서 나무 말리어 모아놓은 곳에 주저앉았다. 마른 갈잎이 버석버석 소리를 내고 더운 김에 밑이 뜨뜻하였다. 어머니가 저리로부터 온다.
「칠성이냐? 왜 나왔니.」
버석 소리를 내고 곁에 앉는다. 땀내와 영애의 똥내가 훅 끼치므로. 그는 머리를 돌리었다. 어머니는 젖을 꺼내 아기에게 물리고 한숨을 푹 쉰다. 무슨 말을 하려나 하고 칠성이는 어머니의 눈치를 살피나. 안타깝게 병든 고양이 새끼 같은 영애를 어루만지기만 하고. 쉽사리 입을 열지 않았다.
해종일 김매기에 그 몸이 고달팠겠고. 더구나 산에 가서 나무를 해오려기에 그 몸이 지칠 대로 지쳤으련만, 또 아기에게서라도 시달림을 받으니. 오늘날이라도 잠만 들면 깨지 못할 것 같다. 그렇게 피로한 몸을 돌아보지 않는 어머니가 어딘지 모르게 미웠다.
「계집애는 자지도 않아!」
칠성이는 보다못해서 꽥 소리쳤다. 영애는 젖꼭지를 문 채 울음을 내쳤다
어머니는 그 애가 어디 자게 되었니, 몸이 아픈데다 해 종일 굶었고 또 이리 젖이 안 나니까, 하는 말이 혀끝에서 뚝 떨어지려는 것을 꾹 참으니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다.
「오오, 널 보고 안 그런다. 어서 머,,,,,,」
겨우 말을 마치자 눈물이 줄줄 흘렀다. 문득 어머니는 이 눈물이 겉으로 흘러서 영애의 타는 목을 추겨주었으면 가슴이 이다지도 쓰리지 않으련만 하였다.
한참 후에 어머니는,
「글쎄 살지도 못할 것이 왜 태어나서 어미만 죽을 경을 치게 하겠니. 이제 가 보니 큰년네 아기는 죽었더구나. 잘되기는 했더라만,,,,,, 에그 불쌍하지. 얼마나 밭고랑을 타고 헤매이었는지, 아기 머리는 그냥 흙투성이라더구나. 그게 살면 또 병신이나 되지 뭘 하겠니. 눈에 귀에 흙이 잔뜩 들었더라니, 아이구 죽기를 잘했지, 잘했지!」
어머니는 흥분이 되어 이렇게 중얼거린다. 칠성이도 가슴이 답답해서 숨을 크게 쉬었다. 그리고 자신도 어려서 죽었더라면 이 모양은 되지 않을 것을 하였다.
「사는 게 뭔지, 큰년네 어머니는 내일 또 김매러 가겠다더구나. 하루쯤 쉬어야 할 텐데, 이게, 이게 어느 때냐. 그럴 처지가 되어야지. 없는 놈에게 글쎄 자식이 뭐냐. 웬 자식이냐.」
영애를 낳아놓고 그 다음날로 보리마당질 하던, 그 지긋지긋하던 때가 떠오른다. 하늘이 노랗고 핑핑 돌고, 보리이삭이 작았다 커 보이고, 도리깨를 들 때 내릴 때 아래서는 무엇이 뭉클뭉클 나오다가 나중엔 무엇이 묵직하게 매어 달리는 듯해서 좀 만져보았으나, 사이도 없고 또 남들이 볼까 꺼리어 그냥 참고 있다가 소변보면서 보니 허벅다리에 피가 흔전했고, 또 주먹 같은 살덩이가 축 늘어져 있었다. 겁이 더럭 났지만, 누구보고 물어보기도 부끄럽고 해서 그냥 내버려두었더니, 그 살덩이가 오늘까지 늘어져서 들어갈 줄 모르고 또 무슨 물을 줄줄 흘리고 있다.
그것 때문에 여름에는 더 덥고 또 고약스런 악취가 나고, 겨울엔 더하고 항상 몸살이 오는 듯 오삭오삭 추웠다, 먼 길이나 걸으면 그 살덩이가 불이 붙는 듯 쓰라리고, 또 염증을 일으켜 퉁퉁 부어서 걸음 걸을 수가 없으며, 나중에 주위로 수 없는 종기가 나서, 그것이 곪아터지느라 기막히게 아팠다. 이리 아파도 누구에게 아프다는 말도 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병이었다.
어머니는 지금도 척척히 늘어져 있는 그 살덩이를 느끼면서 한숨을 푹 쉬었다
갈잎이 바삭바삭 소리를 낸다. 마침 영애는 젖꼭지를 깍 물었다.
「아이그!」
소리까지 내치고도 얼른 칠성이가 이런 줄을 알면 욕할 것이 싫어서 그 다음 말은 뚝 그치고 손으로 영애의 머리를 꼭 눌러 아프다는 뜻을 영애에게만 알리었다. 그러고도 너무 눌렀는가 하여 누른 자리를 금시로 어루만져 주었다.
「정말 오늘 그 난시에 글쎄 큰년네 집에는 손님이 와서 방 안에 앉아도 못 보고 갔다누나.」
칠성이는 머리를 들었다. 어디서 불려오는 모기 쑥내는 향긋하였다.
「전에부터 말 있는 그 집에서 왔다는데 넌 정 모르기 쉽겠구나. 읍에서 무슨 장사를 한다나. 꽤 돈푼이나 있다더라. 한데, 손을 이때까지 못 보았다누나. 해서, 첩을 여남은두 넘어 얻었으나 이때까지 못 낳았단다. 에그 그런 집에나 태지. 」
어머니는 영애를 잠잠히 내려다본다. 칠성이는 이야기하면서도 아기를 생자하는 어머니가 보기싫었다. 하나 다음 말을 들으려니 가만히 앓아 있었다.
「그런데 어찌어찌 하다가 큰년의 말이 났는데 사내는 펄쩍 뛰더란다. 그래두 안으로 맘이 켕기어서 그러하다고 하더니, 하필 오늘 같은 날, 글쎄 선보러 왔다갔다니 큰년이는 이제 복 좋을라 ! 언제 봐도 덕성스러워. 그 애가 눈이 멀었다 뿐이지 못하는 게 뭐 있어야지. 허드렛일이나 앓아 하는 일이나 휭 잡았으니 눈뜬 사람보다 낫다. 이제 그런 집으로 시집가게 되고 달덩이 같은 아들을 낳아 놀 게다. 아이그 좀 잘살아야지,,....」
「눈먼 것을 얻어다 뭐를 배!」
칠성이는 뜻밖에 이런 말을 퉁명스레 내친다. 그의 가슴은 지금 질투의 불길로 과 찼고, 누구든지 큰년이만 다친다면 사생을 결단하리라 하였다. 이러구 나니 머리에 열이 오르고 다리 팔이 떨리었다,
「그래, 시, 시집가기로 됐나?」
어머니는 아들의 눈치를 살피고 어쩐지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동시에 저것도 계집이 그리우려니 하자 불쌍한 마음이 들고 또 아들의 장래가 캄캄해 보이었다.
「아직은 되지 않았더라마는,,,,,,」
이 말에 그의 마음은 다소 가라앉은 듯하나, 웬일인지 슬픈 생각이 들어 그는 일어났다.
「들어가 자거라. 내일은 일찌기 읍에 가게 해. 어떡허겄니.?」
칠성이는 화를 버럭 내고 어머니 곁을 떠나 되는대로 걸었다. 발걸음에 따라 모기 쑥내 없어지고 산뜻한 공기 속에 풀내 가득히 흐른다. 멀리 곡식대 비벼치는 소리 바람결에 은은하고, 산기를 띤 실바람이 그의 몸에 싸물싸물 기고 있다, 잠뱅이 가랑이 이슬에 젖고, 벌레소리 발끝에 채여 요리 졸졸졸, 고리 쓸쓸쓸,,,,,,
그는 우뚝 섰다. 저 앞은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어둠으로 덮였고, 하늘 아래 저 불타산의 윤곽만이 검은 구름같이 뭉실뭉실 떠 있다. 그 위에 별들이 너도나도 빛나고, 별빛이 눈가에 흐르자 눈물이 핑그르르 돌며 통곡이라도 하고 싶었다. 저 산도, 저 하늘도 너무나 그에겐 무심한 것 같다.
「이 애야, 들어가자.」
어머니의 기운 없는 음성이 들린다.
「왜. 왜 쫓아 다녀유.」
칠성의 마음에 잠겼던 어떤 원한이 일시에 머리를 들려고 하였다.
「제발 들어가. 이리 나오면 어쩌겠니.」
어머니는 그의 손을 붙들었다. 칠성이는 뿌리치려 했으나 힘이 부친다. 길 풀이 그들의 옷에 비비칙 실실 소리를 낸다. 어머니는 절반 울면서 사정을 하였다. 그는 어머니 손에 붙들리어 돌아오면서, 오냐 내일 저를 만나보고 시집가는지 안 가는지 물어보고, 또 나한테 시집 오겠니도 물어야지 할 때. 가슴은 씩씩 뛰고 어떤 실같은 희망이 보인다.
「날 보고 네 동생들을 봐라.」
어머니는 이러한 말을 하여 아들을 달래려고 한다. 칠성이는 말없이 그의 집까지 왔다.
이튿날 일부러 늦게 일어난 칠성이는, 오늘은 기어코 큰년이를 만나 무슨 말이든지 하리라, 만일 시집가기로 되었다면,,,,,,그는 아득하였다. 그때는 그만 죽여버릴까, 나는 그 칼에 죽지하고 뒤뜰로 나와서 바자 곁에 다가섰다. 큰년네 집은 고요하고, 뜨물동이에서 왕왕거리는 파리 소리만이 간혹 들릴 뿐이다. 가자 ! 바자에서 선뜻 물러섰다. 눈에 마주 띄는 저 앞의 큰 차돌은 웬일인지 노랗게 보이었다.
그는 숨이 차서 방으로 들어왔다. 옷을 이 모양을 하고 가, 하고 굽어보았다. 쇠똥 자국이 여기저기 있고, 군데군데 해졌고. 뭘 눈이 멀었는데 이게 보이나, 그럼 만나서는 뭐라구 말을 해야지, 그는 천장을 바라보고 생각하였다. 입가에 흐르는 침을 몇 번이나 시 하고 들여마시나, 그저 캄캄한 것뿐이다, 생전 말이리 그는 못해본 것처럼 아득하였다.
내가 병신임을 제가 아나, 하는 불안이 불쑥 일어 맥이 탁 풀린다. 「너까짓 것에게 시집가 -하는 큰년의 말이 들리는 듯해서 그는 시름없이 밖을 내다보았다,
바자에 얽힌 호박넌출 박넌출, 그 옆으로 옥수숫대, 썩 나와서 살구나무. 작고 큰 대싸리가 아무 기탄 없이 하늘을 바라보고 가지가지를 쭉쭉 쳤으니, 잎잎이 자유스럽게 미풍에 흔들리지 않는가. 웬일인지 자신은 저러한 초목만큼도 자유롭지 못한 것을 전신에 느끼고 한숨을 후 쉬었다.
한참 후에 칠성이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마당으로 나와서, 큰년네 집 앞으로 몇 번이나 왔다갔다 하다가, 싸리문을 가만히 밀고 껑충 뛰어들었다.
봉당문도 꼭 닫히었고 싸리비만이 한가롭게 놓여 있다. 얼떨결에 봉당 문을 삐걱 열었을 때 고양이 한 마리가 야웅하고 튀어나간다. 그는 어찌 놀랐는지 숨이 하늘에 닿을 것처럼 뛰었다. 봉당으로 들어서서 한참이나 망설이다가 방문을 열어보았다. 무거운 공기만이 밀려나오고 큰년이는 없었다. 시집을 갔나? 하고 얼른 생각하면서, 부엌으로 뒤뜰로 인기척을 찾으려 하였으나 조용하였다. 그는 이러하고 언제까지나 있을 수가 없어서 발길을 돌리려 했을 때 싸리문 소리가 났다. 그는 얼떨결에 기둥 이편으로 와서 그 뒤 멍석 곁에 바싹 다가섰다. 부엌에서 소리가 덜그렁 나더니 큰년이가 빨래 함지를 이고 들어온다. 그의 눈은 캄캄해지고 정신이 나른해진다, 큰년이가 그를 알아보고 이리 오는 것만 같고, 그의 눈은 먼 것이 아니요. 언제나 창 틈으로 볼 수 있는 별눈을 빠끔히 뜨고서 쳐다보는 듯했다. 숨이 차서 견딜 수 없으므로 멍석 아래 뒤로 돌아가며 숨을 죽이었으나, 점점 더 숨결이 항항거리고 멍석 눈에 코가 닿아서 기절을 할 지경이었다,
큰년이는 뒤뜰로 나간다. 짤짤 끄는 신발소리를 들으면서 머리를 내밀어 밖을 살피고 발길을 옮기려 했으나 온몸이 비비꼬이어 한 보를 옮길 수가 없다. 어색하여 그만 집으로 가려고도 했다. 그의 몸은 돌로 된 것 같았으나 마침 빨래 널리는 소리가 바삭바삭 나자, 큰년이가 읍으로 시집간다 ! 하는 생각이 들며. 발길이 허둥하고 떨어진다.
큰년이는 빨래를 바자에 걸치다가 휘끈 돌아보고 주춤한다. 칠성이는 차마 큰년이를 쳐다보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누구요?」
「…」
「누구야요?」
큰년의 음성은 떨려 나왔다. 칠성이는 무슨 말이든지 해야 할 터인데. 입이 딱 붙고 떨어지지 않는다. 한참 후에 발길을 지척하고 내디디었다.
「난 누구라고,,,,,, 」
큰년이는 바자 곁으로 다가서고, 머리를 다소곳 한다. 곱게 감은 그의 눈등은 발랑발랑 떨렸다. 칠성이는 자기를 알아보는 것을 알고 조금 마음이 대담해졌다. 이번엔 밖이 걱정이 되어 연방 눈이 고리로만 간다.
「나가 ! 야, 어머니 오신다.」
큰년이는 암팡지게 말을 했다. 어려서 음성이 그대로 남아 있다.
「너, 너 시집간다지. 조, 좋겄구나!」
「새끼두 별소리 다 하네. 나가 야.」
큰년이는 빨래를 조몰락거리고 서서 숨을 가볍게 쉰다. 해어진 적삼 등에 횐 살이 불룩 솟아 있다. 칠성이는 무의식간에 다가섰다.
「아이구머니!」
큰년이는 바자를 붙들고 소리쳤다. 칠성이는 와락 겁이 일어 주춤 물러서고 나갈까도 했다. 앞이 캄캄해지고 또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 같았다.
「어머니 오신다야.」
칠성이는 잠깐 눈을 감았다가 덜덜 떨리어 나오는 소리에 눈을 떴다. 등어리로 흘러 내려온 삼단 같은 머리채는 큰년의 냄새를 물씬물씬 피우고 있다, 칠성이는 얼른 큰년의 발을 짐짓 밟았다. 큰년이는 얼굴이 새빨개서 발을 빼어 가지고 저리로 간다. 손에 들었던 빨래는 맥없이 툭 떨어진다.
쟤가 돌을 집어 치려고 저러나 하고 겁을 먹었으나. 큰년이는 바자 곁에 다가서서 바자를 보시락보시락 만지고 있는데, 댕기꼬리는 풀풀 날린다. 야물야물하던 말도 쑥 들어가고 애꿎은 바자만 만지고 있다.
「사탕두 주구, 옷 옷감두 주 주께. 시집 안 가지?」
큰년이는 언제까지나 잠잠하고 있다가 조금 머리를 드는 체하더니,
「누구,,,,,,사탕,,,,,,히 , ,,,,」
속으로 웃는다. 칠성이도 따라 웃고,
「응 야, 안 안 가지?」
「내가 아니, 아버지가 알지.」
이 말엔 말이 막힌다. 그래서 우두커니 섰노라니,
「어서 나가 야.」
큰년이는 얼굴을 돌린다. 곱게 감은 눈에 눈썹이 가무레하게 났는데, 그 눈썹 끝에 걱정이 대글대글 맺혀 있다.
「그럼 시집 가, 가겄니」
큰년이는 머리를 푹 숙이고, 발끝으로 돌을 굴리고 있다. 칠성이는 슬픈 마음이 들어 울고 싶었다.
「안, 안 안 가지, 응 야」
큰년이는 대답 대신으로 한숨을 푹 쉬고 머리를 들려다가 돌아선다. 그때 어린애 울음소리가 들렸다, 칠성이는 놀라 뛰어나왔다.
집에 오니, 칠운이가 아기를 부엌바닥에 내려 굴리고 띠로 아기를 꽁꽁 동이려고 한다. 아기는 다리 팔을 함부로 놀리고 발악을 하니, 칠운이는 사뭇 죽일 고기 다루듯 아기를 칵칵 쥐어박는다.
「이 계집애 자겄니, 안 자겄니. 안 자면 죽이고 말겠다.」
시퍼런 코를 쌍 줄로 흘리고서 주먹을 겨누어 보인다. 아기는 바르르 떨면서 눈을 꼭 감고 눈물을 졸졸 흘리고 있다.
「그러구 자라, 이 계집애.」
칠운이는 아기 옆에 엎어지고, 한 손으로 그의 허리를 꼬집어 당긴다.
「어마이. 난 여기 자꾸자뚜 아파서 아기 못 보겠다야 씨,,,,흥.」
코를 혀끝으로 빨아올리면서 칠운이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 눈에 졸음이 가득하더니. 그만 씩씩 자버린다.
칠성이는 무심히 이 꼴을 보고 봉당으로 들어섰다.
「엄마!」
자는 줄 알았던 아기가 눈을 동글하게 뜨고 오빠를 바라본다. 칠성이는 머리 끝이 쭈뼛하도록 놀랐다. 해서 이 결에 발을 들어 찰 것처럼 하고 눈을 딱 부릅떠 보이니, 아기는 그 얇은 입술을 비죽비죽하며 눈을 감는다.
「엄마! 엄마!」
아기는 그 입으로 이렇게 부르고 울었다. 칠성이는 방으로 들어와서 빙빙 돌다가 뒤뜰로 나와 큰년이가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으면 하고, 바자를 가만히 뻐개고 들여다보니. 큰년이는 보이지 않고 빨래만이 가득히 널려 있었다.
방으로 들어와서 벽에 걸린 동냥자루를 한참이나 바라보면서 큰년의 옷감 끊어다 줄 궁리를 하고, 그러면 큰년이와 그의 부모들도 나에게로 뜻이 옮겨질지 누가 아나 하고, 동냥자루를 벗겨 메고서 밀짚모를 비스듬히 젖혀 쓴 다음에 방문을 나섰다. 눈결에 보니 아기는 무엇을 먹고 있으므로, 그는 머리를 넘석하여 보았다. 아기는 띠 동친 데서 벗어나와 아궁이 곁에 오줌을 눈 듯한데, 그 오줌을 쪽쪽 핥아 먹고 있다.
「이애 ! 이 계집애.」
칠성이는 이렇게 버럭 소리를 지르고 밖으로 나왔다. 뜨거운 물 속에 들어서는 듯 전신이 후끈하였다. 신작로에 올라서며 그는 옷을 바로 하고 모자를 고쳐 쓰고 아주 점잖은 양하였다. 이제부터는 이래야 할 것 같다. 에헴 ! 하고 큰기침도 하여보고 걸음도 천천히 걸으려 했다. 이러면 애들도 달려들지 못하고, 어른들도 놀리지 못할 테지, 할 때 큰년이가 떠오른다. 슬며시 돌아보니, 벌써 그의 마을은 보이지 않고 수수밭이 탁 막아섰다. 수수밭 곁으로 다가서니 싱싱한 수숫잎 내가 훅 끼치고 등허리가 근질근질하게 땀이 흘러내린다. 두어 번 몸을 움직이고 어디라없이 바라보았다.
수수밭머리로 파랗게 보이는 저 불타산은 몇 발걸음 옮기면 올라갈 듯이 그렇게 가까와 보인다. 그의 집 창문 곁에 비껴 서서 맘놓고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저 산이요, 또 이런 수수 밭머리에서 숨어가며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저 산이다.
그는 한숨을 푹 쉬었다. 언제나 저 산을 바라볼 때엔 흩어졌던 마음이 한데 모이는 듯하고, 또한 깜박 잊었던 옛날 일이 한 두가지 생각되곤 하였다.
먼 산에 아지랭이 아물아물 기는 어느 봄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 곁에 서너, 동무들이 조그만 지게를 지고 지팡이를 지게에 끼웃이 꽃아 가지고 열을 지어 산으로 가고 있다. 어찌나 부럽던지 한숨에 뛰어나와서 우두커니 바라볼 때, 언제나 나도 이 병이 나아서 재들처럼 지팡이를 저리 꽃아 가지고 나무하러 가보나, 난 어른이 되면 저 산에 가서 이런 굵은 나무를 탕탕 찍어서 한 짐 잔뜩 지고 올 테야,,,,,,
여기까지 생각한 그는 흠 하고 코웃음쳤다. 뼈 마디마디가 짜릿해오고 가슴이 죄어지는 것 같다. 두어 번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고 터벅터벅 걸었다. 지금 그의 앞엔 큰년이가 있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