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二信[제이신]
第二信[제이신]
前書[전서]는 只今[지금] 渤海[발해]를 건너갈 듯하여이다. 그러나 다시 사뢸 말씀 있어 또 그적이나이다.
오늘 아침에 처음 밖에 나와 爲先[위선] 恩人[은인]의 집을 찾아보았나이다. 그러나 姓名[성명]도 모르고 通戶[통호]도 모르매 아무리 하여도 찾을 수는 없이 空然[공연]히 四隣[사린]을 휘휘 싸매다가 마침내 찾지 못하고 말았나이다 . 찾다가 찾지 못하니 더욱 마음이 焦燥[초조]하여 뒤에 人跡[인적]만 있어도 幸[행]여 그 사람인가 하여 반드시 돌아보고 돌아보면 반드시 모를 사람이러이다. 幸[행]여 길에서나 만날까 하고 아무리 注目[주목]하여 보아도 그런 사람은 없더이다. 나는 무엇을 잃은 듯이 茫然[망연]히 돌아왔나이다. 돌아와서 그 보지 못하던 담요를 만지고 三[삼], 四日前[사일전]에 있던 光景[광경]을 그려 없는 곳에 그를 볼 양으로 철없는 애를 썼나이다.
나는 그가 섰던 자리에 서도 보고 그가 만지던 바를 만져도 보고 그가 걸어 다니던 길을 回想[회상]하여 그 方向[방향]으로 걷기도 하였나이다. 그가 우두커니 섰던 자리에 서서 깊이 숨을 들이쉬었나이다. 만일 空氣[공기]에 對流作用[대류작용]이 없었던들 그의 깨끗한 肺[폐]에서 나온 입김이 그냥 그 자리에 있던 온통으로 내가 들이마실 수 있었을 것이로소이다. 나는 그동안 門[문]을 열어 놓은 것을 恨[한]하나이다. 門[문]만 아니 열어 놓았던들 그의 입김과 살내가 아직 남았을 것이로소이다. 그러나 나는 조금 남은 김이나 들여마실 양으로 한 번 더 深呼吸[심호흡]을 하였나이다. 나는 다시 생각하였나이다. 그러나 香氣[향기]로운 입김과 깨끗한 살내는 내 房[방]에만 있을 것이 아니라, 全宇宙[전우주]에 퍼져서 全萬物[전만물]로 하여금 造物主[조물주]의 大傑作[대걸작]의 醇味[순미]를 맛보게 할 것이라 하였나이다. 나는 다시 한 번 담요를 만지고 만지다가 담요 위에 이마를 대이고 엎더졌나이다. 내 가슴은 자주 뛰나이다. 머리가 훗훗 다나이다. 숨이 차지나이다. 나는 丁寧[정녕] 무슨 變化[변화]를 받는가 하였나이다. 「아아 이것이 사랑이로구나!」하였나이다. 그는 나의 말에 感謝[감사]를 주는 同時[동시]에 一種[일종] 不可思議[불가사의]한 불길을 던졌나이다. 그 불길을 只今[지금] 내 속에서 抵抗[저항]치 못할 勢力[세력]으로 펄펄 타나이다.
나는 朝鮮人[조선인]이로소이다. 사랑이란 말은 듣고, 맛은 못본 朝鮮人[조선인]이로소이다. 朝鮮[조선]에 어찌 男女[남녀]가 없사오리이까마는 朝鮮男女[조선남녀]는 아직 사랑으로 만나본 일이 없나이다. 朝鮮人[조선인]의 胷中[흉중]에 어찌 愛情[애정]이 없사오리이까마는 朝鮮人[조선인]의 愛情[애정]은 두 잎도 피기 前[전]에 社會[사회]의 習慣[습관]과 道德[도덕]이라는 바위에 눌리어 그만 말라 죽고 말았나이다. 朝鮮人[조선인]은 果然[과연] 사랑이라는 것을 모르는 國民[국민]이로소이다. 그네는 夫婦[부부]가 될 때에 얼굴도 못 보고 이름도 못 듣던 남남끼리 다만 契約[계약]이라는 形式[형식]으로 婚姻[혼인]을 맺자 一生[일생]을 이 形式[형식]에만 束縛[속박]되어 지나는 것이로소이다. 大體[대체] 이따위 契約[계약] 結婚[결혼]은 짐승의 雌雄[자웅]을 사람의 맘대로 마주 붙임과 다름이 없을 것이로 소이다 옷을 지어 입을 . 때에는 제 맘에 드는 바탕과 빛갈에 제 맘에 드는 모양으로 지어 입거늘 , 담뱃대 하나를 사도 여럿 中[중]에서 고르고 골라 제 맘에 드는 것을 사거늘, 하물며 一生[일생]의 伴侶[반려]를 定[정]하는 때를 當[당]하여 어찌 다만 父母[부모]의 契約[계약]이라는 形式[형식]하나로 하오리이까. 이러한 婚姻[혼인]은 오직 두 사람 意義[의의]가 있다 하나이다. 하나는 父母[부모]가 그 아들과 며느리를 노리개감으로 앞에 놓고 구경하는 것과, 하나는 돼지 장사가 하는 모양으로 새끼를 받으려 함이로소이다. 이에 우리 朝鮮男女[조선남녀]는 그 父母[부모]의 玩具[완구]와 生殖[생식]하는 機械[기계]가 되고 마는 것이로소이다. 이러므로 지아비가 그 지어미를 생각할 때에는 곧 肉慾[육욕]의 滿足[만족]과 子女[자녀]의 生産[생산]만 聯想[연상]하고 男女[남녀]가 女子[여자]를 對[대]할 때에도 곧 劣等[열등]한 獸慾[수욕]의 滿足[만족]만 생각하게 되는 것이로소이다. 男女關係[남녀관계]의 究竟[구경]은 毋論[무론] 肉的交接[육적교접]과 生殖[생식]이로소이다. 그러나 오직 이뿐이오리이까. 다른 짐슴과 조금도 다름 없이 오직 이뿐이오리이까. 肉的交接[육적교접]과 生殖以外[생식이외]에, 또는 以上[이상]에는 아무 것도 없을 것이리이까. 어찌 그러리요. 人生[인생]은 禽獸[금수]와 달라 精神[정신]이라는 것이 있나이다. 人生[인생]은 肉體[육체]를 重[중]히 여기는 同時[동시]에 精神[정신]을 승히 여기는 義務[의무]가 있으며 肉體[육체]의 滿足[만족]을 求[구]하는 同時[동시]에 精神[정신]의 滿足[만족]을 求[구]하려는 本能[본능]이 있나이다. 그러므로 肉體的行爲[육체적행위]만이 人生行爲[인생행위]의 全體[전체]가 아니요, 精神的行爲[정신적행위]가 또한 人生行爲[인생행위]의 一半[일반]을 成[성]하나이다. 그뿐더러 人類[인류]가 文明[문명]할수록, 個人[개인]이 修養[수양]이 많을수록 精神行爲[정신행위]를 肉體行爲[육체행위]보다 더 重[중]히 여기고 따라서 精神的滿足[정신적만족]을 肉體的滿足[육체적만족]보다 더 貴[귀]히 여기는 것이로소이다. 好衣好食[호의호식]이나 滿足[만족]하기는 凡俗[범속]의 하는 바로되 天地[천지]의 美[미]와 善行[선행]의 快感[쾌감]은 오직 君子[군자]라야 能[능]히 하는 바로소이다. 이와 같이 男子關係[남자관계]도 肉交[육교]를 하여야 비로소 滿足[만족]을 얻음은 野人[야인]의 일이요, 그 容貌[용모] 擧止[거지]와 心情[심정]의 優美[우미]를 嘆賞[탄상]하며 그를 精神的[정신적]으로 사랑하기를 無上[무상]한 滿足[만족]으로 알기는 文明[문명]한 修養[수양] 많은 君子[군자]라야 能[능]히 할 것이로소이다. 아름다운 女子[여자]을 사랑한다 하면 곧 野合[야합]을 想像[상상]하고, 아름다운 少年[소년]을 사랑한다 하면 곧 醜行[추행]을 想像[상상]하는 이는 精神生活[정신생활]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卑賤[비천]한 人格者[인격자]라 할 것이로소이이다. 외나 호박꽃만 사랑할 줄 알고 菊花[국화]나 薔薇[장미]를 사랑할 줄 모른다면 그 얼마나 賤[천]하오리이까. 그러므로 男女[남녀]의 關係[관계]는 다만 肉交[육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요, 精神的 愛着[정신적애착]과 融合[융합]에 있다 하나이다 , 더구나 文明[문명]한 民族[민족]에 對[대]하여 그러한가 하나이다. 男女[남녀]가 서로 肉體美[육체미]와 精神美[정신미]에 홀리어 서로 全心力[전심력]을 傾注[경주]하여 사랑함이 人類[인류]에 特有[특유]한 男女關係[남녀관계]니 이는 무슨 方便[방편]으로 即[즉] 婚姻[혼인]이라는 形式[형식]을 이룬다든가, 生殖[생식]이라는 目的[목적]을 達[달]한다든가, 肉慾[육욕]의 滿足[만족]을 求[구]하려는 目的[목적]의 方便[방편]으로 함이 아니요,「사랑」그 물건이 人生[인생]의 目的[목적]이니 마치 나고 자라고 죽음이 사람의 避[피]치 못할 天命[천명]임과 같이 男女[남녀]의 사랑도 避[피]치 못할 또한 獨立[독립]한 天命[천명]인가 하나이다. 婚姻[혼인]의 形式[형식] 같은 것은 社會[사회]의 便宜上[편의상] 制定[제정]한 規模[규모]에 지나지 못한 것 , 即[즉] 人爲的[인위적]이어니와 사랑은 造物[조물]이 稟賦[늠부]한 天性[천성]이라 人爲[인위]는 거스릴지언정 天意[천의]야 어찌 禁違[금위]하오리이까. 毋論[무론] 사랑 없는 婚姻[혼인]은 不可[불가]하거니와 사랑이 婚姻[혼인]의 方便[방편]은 아닌 것이로소이다. 吾人[오인]의 忠孝[충효]의 念[염]과 兄友弟恭[형우제공]의 念[염]이 天性[천성]이라 거룩한 것이라 하면 男女間[남녀간] 사랑도 毋論[무론] 그와 같이 天性[천성]이라 거룩할 것이로소이다. 그러므로 吾人[오인]은 決[결]코 이 本能[본능] , 사랑의 本能[본능]을 抑制[억제]하지 아니할뿐더러 이를 自然[자연]한 (即[즉] 正當[정당]한) 方面[방면]으로 啓發[계발]시켜 人性[인성]의 完全[완전]한 發見[발견]을 期[기]할 것이로소이다. 忠孝[충효]의 念[염] 없는 이가 非人[비인]이라 하면 사랑의 念[염]없는 이도 또한 非人[비인]일지며 事實上[사실상] 人類[인류]치고 萬物[만물]이 다 가진 사라의 念[염]을 아니 가진 이가 있을 理[리]없을지나, 或[혹] 나는 없노라 壯談[장담]하는 이가 있다 하면 그는 社會[사회]의 慣習[관습]에 잡혀 自己[자기]의 本性[본성]을 抑制[억제]하거나 또는 社會[사회]에 阿謟[아첨]하기 爲[위]하여 本性[본성]을 欺罔[기망]하는 것이라 하나이다. 그러므로 人生[인생]이란 男女[남녀]를 勿論[물론]하고 一生[일생] 一次[일차]는 사랑의 맛을 보게 된 것이니 男子十七[남자십칠], 八歲[팔세] 女子[여자] 十五[십오], 六歲[육세]의 肉體[육체]의 美[미]와 心中[심중]의 苦悶[고민]은 即[즉] 사랑을 要求[요구]하는 節期[절기]를 表[표]하는 것이로소이다. 이때를 當[당]하여 그네가 正當[정당]한 사랑을 求得[구득]하면 그 二年[이년] 三年[삼년]의 사랑期[기]에 心身[심신]의 發達[발달]이 完全[완전]히 되고 男女[남녀] 兩性[양성]이 서로 理解[이해]하며 人情[인정]의 奧妙[오묘]한 理致[이치]를 깨닫나니, 孔子[공자]께서 「學詩乎[학시호]」아 하심같이 나는「學愛乎」[학애호]아 하려 하나이다. 이렇게 實利[실리]를 超絶[초절]하고 肉體[육체]를 超絶[초절]한 醇愛[순애]에 醉[취]하였다가 만일 境遇[경우]가 許[허]하거든 世上[세상]의 習慣[습관]과 法律[벌률]을 따라 婚姻[혼인]함도 可[가]하고 아니하더라도 相關[상관]없을 것이로소이다. 진실로 사랑은 人生[인생]의 一生行事[일생행사]에 매우 重要[중요]한 하나이니, 男女間[남녀간] 一生[일생]에 사랑을 지녀 보지 못함은 그 不幸[불행]함이 마치 사람으로 世上[세상]에 나서 衣食[의식]의 快樂[쾌락]을 못 보고 죽음과 같은 것이로소이다.
너무 말이 길어지나이다마는 하던 걸음이라 사랑의 實際的利益[실제적이익]에 開[개]하여 한 마디 더 하려 하나이다.
사랑의 實際的利益[실제적이익]에 세 가지 있으니, 一[일], 貞操[정조]니, 男女[남녀]가 各各[각각] 一個[일개] 異性[이성]을 全心[전심]으로 사랑하는 동안 決[결]코 다른 異性[이성]에 눈을 거는 法[법]이 없나니 男女間[남녀간] 貞操[정조] 없음은 다 사람에 對[대]한 사랑이 없는 까닭이로소다. 大抵[대저] 한 사람을 熱愛[열애]하는 동안에는 晝夜[주야]로 생각하는 것이 그 사람뿐이요, 말을 하여도 그 사람을 爲[위]하여, 일을 하여도 그 사람을 爲[위]하여 하게 되며, 내 몸이 그 사람의 一部 分[일부분]이요, 그 사람이 내 몸의 一部分[일부분]이라 내 몸과 그 사람과 合[합]하여 一體[일체]가 되거니 하여 그 사람 없이는 내 生命[생명]이 없다고 생각할 때에 내 全心全身[전심전신]을 그 사람에게 바쳤거니 어느 겨를에 남을 생각하오리이까. 古來[고래]로 貞婦[정부]를 보건대 다 그 지아 비에게 全心全身[전심전신]을 바친 者[자]라. 그렇지 아니하고는 一生[일생]의 貞操[정조]를 지키기 不能[불능]한 것이로다. 또 朝鮮人[조선인]에 왜 淫風[음풍]이 많으뇨. 더구나 男子[남자]치고 二[이], 三人[삼인] 女子[여자]와 醜關係[추관계] 없는 이가 없음이 專[전]혀 이 사랑 없는 까닭인가 하나이다.
二[이], 品性[품성]의 陶冶[도야]와 事爲心[사위심]의 奮發[분발]이니,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 내 言行[언행]을 監視[감시]하는 威權[위권]은 王[왕]보다도 父師[부사]보다도 더한 것이라, 王[왕]이나 父師[부사]의 앞에서는 할 좋지 못한 일도 사랑하는 이 앞에서는 敢[감]히 못하며, 王[왕]이나 父師[부사]의 앞에서는 能[능]치 못할 어려운 일도 사랑하는 이의 앞에서는 能[능]히 하나니, 이는 첫째 사랑하는 이에게 나의 義氣[의기]와 美質[미질]을 보여 그의 사랑을 끌기 爲[위]하여, 둘째 사랑하는 者[자]의 期望[기망]을 滿足[만족]시키기 爲[위]하여 이러함이니, 이러하는 동안 自然[자연]히 品性[품성]이 高潔[고결]하여지고 여러 가지 美質[미질]을 기르는 것이로소이다. 古來[고래]로 英雄烈士[영웅열사]가 그 愛人[애인]에게 奬勵[장려]되어 品性[품성]을 닦고 大事業[대사업]을 成就[성취]한 이가 數多[수다]하나니 愛人[애인]에게 滿足[만족]을 주기 爲[위]하여 萬難[만난]을 排[배]하고 所志[소지]을 貫徹[관철]하려는 勇氣[용기]는 實[실]로 莫大[막대]한 것이로소이다. 그대도 愛人[애인]이 있었던들 實驗[실험]에 優等首席[우등수석]을 하려고 애도 더 썼겠고 運動會[운동회] 達距離競走[달거리경주]에 一等賞[일등상]을 타려고 競走練習[경주연습]도 많이 하였을 것이로소이다.
三[삼], 여러 가지 美質[미질]을 배움이니, 첫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랑맛을 배우고, 사랑하는 者[자]를 爲[위]하여 獻身[헌신]하는 獻身[헌신]맛을 배우고, 易地思之[역지사지]한 同情[동정]맛을 배우고, 精神的要求[정신적요구]를 위하여 生命[생명]과 名譽[명예]와 財産[재산]까지라도 犧牲[희생]하는 犧牲[희생]맛을 배우고 精神的快樂[정신적쾌락]이라는 高尙[고상]한 快樂[쾌락]맛을 배우고…… 이밖에도 많이 있거니와 上述[상술]한 모든 美質[미질]은 修身敎科書[수신교과서]로도 不能[불능]하고 敎壇[교단]의 說敎[설교]로도 不能[불능]하고 오직 사랑으로야만 體得[체득]할 高貴[고귀]한 美質[미질]이로소이다. 人類社會[인류사회]에 모든 美德[미덕]이 거의 上述[상술]한 諸質[제질]에서 아니 나온 것이 없나니 이 意味[의미]로 보아 사랑과 民族[민족]의 隆替[융체]가 至大[지대]한 關係[관계]가 있는 가 하나이다.
우리 半島[반도]에는 사랑이 갇혔었나이다. 사랑이 갇히매 거기 附隨[부수]한 모든 貴物[귀물]이 같이 갇혔었나이다. 우리는 大聲疾呼[대성질호]하여 갇혔던 사람을 解放[해방]하사이다. 눌리고 束縛[속박]되었던 우리 精神[정신]을 봄 풀과 같이 늘이고 봄 꽃과 같이 피우게 하사이다.
어찌하여 우리는 아름다운 사람(男子[남자]나 女子[여자]나)을 보고 사랑 하여 못 쓰나이까. 우리는 아름다운 景致[경치]를 對[대]할 때 그것을 사랑 하지 아니하며, 아름다운 꽃을 對[대]할 때 그것을 鑑賞[감상]하고 읊조리고 讚美[찬미]하고 입맞추지 아니하나이까. 草木[초목]은 사랑할지라도 사람을 사랑하지 말아라 , 그런 背理[배리]가 어디 있사오리이까. 毋論[무론] 肉的[육적]으로 사람을 사랑함은 社會[사회]의 秩序[질서]를 紊亂[문란]하는 것이매, 마땅히 排斥[배척]하려니와 精神的[정신적]으로 사랑하기야 왜 못하리이까. 다만 그의 양자를 胷中[흉중]에 그리고 그의 얼굴을 對[대]하고 말소리를 들고 손을 잡기를 어찌 禁[금]하오리이까. 제 兄弟[형제]와 제 姉妹[자매]인들이 이 모양으로 사랑함이 무엇이 惡[악]하오리이까. 이러한 사랑에 肉慾[육욕]이 짝하는 境遇[경우]도 없다고 못할지나, 人心[인심]에는 自己[자기]가 精神上[정신상]으로 사랑하는 이에게 對[대]하여 肉的滿足[육적만족]을 얻으려 함이 罪悚[죄송]한 줄 아는 觀念[관념]이 있으므로 결코 危險[위험]이 많으리라고 생각하지 아니하나이다.
大體[대체] 社會[사회]의 乾燥無味[건조무미]하기 우리 나라 같은 데가 다시 어디 있사오리까. 그리고 品性[품성]의 卑劣[비열]하고 情[정]의 醜惡[추악]함이 우리보다 더한 이가 어디 있사오리이까. 그리고 이 原因[원인]은 敎育[교육]의 不良[불량], 社會制度[사회제도]의 不完全[불완전], 여러 가지 있을지나 그 中[중]에 가장 重要[중요]한 原因[원인]은 男女[남녀]의 絶緣[절연]인가 하나이다. 생각하소서. 一家庭內[일가정내]에서도 男女[남녀]의 親密[친밀]한 交際[교제]를 不許[불허]하며 甚至於[심지어] 夫婦 間[부부간]에도 肉交[육교]할 때 外[외]에 接近[접근]치 못하는 수가 많으니, 自然[자연]히 男女[남녀]란 肉交[육교]하기 爲[위]하여만 接近[접근]하는 줄로 더럽게 생각하는 것이로다. 이렇게 人生和樂[인생화락]의 根源[근원]인 男女[남녀]의 交際[교제]가 없으매, 社會[사회]는 朔風[삭풍] 불어 지나간 曠野[광야]같이 되어 快樂[쾌락]이라든가 忘我[망아]의 웃음을 볼수 없고 그저 욱적욱적 小小[소소]한 實利[실리]만 다투게 되니 社會[사회]는 恒常[항상] 서리친 秋景[추경]이라, 이 中[중]에 사는 人生[인생]의 情境[정경]이 참 可憐[가련]도 하거니와 이 中[중]에서 쌓은 性格[성격]이 그 얼마나 粗惡無味[조악무미]하리이까. 一家族[일가족]은 勿論[물론]이어니와 親[친]히 性格[성격]을 알아 信用[신용]할 만한 男女[남녀]가 正當[정당]하게 交際[교제]함은 人生[인생]을 春風花香[춘풍화향]의 快樂裏[쾌락리]에 둘뿐더러 吾人[오인]의 精神[정신]에 生氣[생기]와 强[강]한 彈力[탄력]을 줄 줄을 믿나이다.
이 意味[의미]로 보아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것이나 또는 只今[지금] 내 새 恩人[은인]을 사랑하는 것이 조금도 非難[비난]할 餘地[여지]가 없을뿐 더러 나는 人生[인생]이 되어 人生[인생] 노릇을 함인가 하나이다.
나는 한참이나 담요에 엎디었다가 하염없이 다시 고개를 들고 册床[책상]을 對[대]하여 보다 놓았던 小說[소설]을 읽으려 하였나이다. 그러나 눈이 册張[책장]에 붙지 아니하여 아무리 읽으려 하여도 文字[문자]만 하나씩 둘씩 보일 뿐이요, 다만 한 줄도 連絡[연락]한 뜻을 알지 못하겠나이다. 부질 없이 두어 페이지를 벌덕벌덕 뒤다가 휙 집어 내어던지고 椅子[의자]에서 일어나 뒤숭숭한 머리를 숙이고 왔다갔다하였나이다. 아무리 하여도 가슴에 무엇이 걸린 듯하여 견딜 수 없어 그대에게 이 便紙[편지]를 쓸 양으로 다시 册床[책상]을 對[대]하였나이다. 書簡用箋[서간용전]을 내려고 册床舌盒[책상설합]을 열어 본즉 어떤 書柬[서간] 한 封[봉]이 눈에 띄었나이다. 西洋封套[서양봉투]에 다만「林輔衡氏」[임보형씨]라 썼을 뿐이요, 住所[주소]도 없고 發信人[발신인]도 없나이다. 나는 깜짝 놀래었나이다. 이 어떤 書柬[서간]일까, 뉘 것일까? 그 恩人[은인] , 그 恩人[은인]도 나와 같은 생각으로(即[즉] 나를 사랑하는 생각으로)써 둔 것 , 이라 하는 생각이 一種[일종] 形言[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부끄러움 섞인 感情[감정]과 함께 일어나나이다. 나는 이 생각이 참일 것을 믿으려 하였나이다. 나는 그글 속에「사랑하는 내 輔衡[보형]이여, 나는 그대의 病[병]을 看護[간호]하 다가 그대를 사랑하게 되었나이다 , 사랑하여 주소서」하는 뜻이 있기를 바라고 또 있다고 믿으려 하였나이다. 마치 그 말이 엑스 光線[광선] 모양 으로 封套[봉투]를 꿰뚫고 내 뜨거운 머리에 直射[직사]하는 듯하더이다.
내 가슴은 자주 치고 내 숨은 차더이다. 나는 그 書柬[서간]을 두 손으로 들고 茫然[망연]히 앉았었나이다. 그러나 나는 얼른 뜯기를 躊躇[주저]하였나이다. 대개 只今[지금] 내가 想像[상상]하는 바와 다를까보아 두려워함이로소이다. 만일 이것이 내 想像[상상]한 바와 같이 그의 書柬[서간]이 아니면 , 或[혹] 그의 書柬[서간]이라도 나를 사랑한다는 뜻이 아니면 그때 失望[실망]이 얼마나 할까, 그때 부끄러움이 얼마나 할까. 차라리 이 書柬[서간]을 뜯지 않고 그냥 두고 내 想像[상상]한 바를 참으로 믿고 지낼까 하였나이다. 그러나 마침내 아니 뜯지 못하였나이다. 뜯은 結果[결과]는 어떠하였사오리이까. 내가 기뻐 뛰었사오리이까, 落望[낙망]하여 울었사오리이까. 아니로소이다. 이도 저도 아니요, 나는 또 한 번 깜짝 놀래었나이다.
무엇이 나오려는가 하는 希望[희망]도 많거니와 不安[불안]도 많은 맘으로 皮封[피봉]을 떼니 아름다운 鐵筆[철필] 글씨로 하였으되.
『나는 金一蓮[김일련]이로소이다. 못 뵈온지 六年[육년]에 아마 나를 잊었으리이다. 나는 그대가 이곳 계신 줄을 알고 또 그대가 病[병]든 줄을 알고 暫時[잠시] 그대를 訪問[방문]하였나이다. 내가 淸人[청인]인 듯이 그대를 속인 것을 容恕[용서]하소서. 그대가 熱[열]로 昏睡[혼수]하는 동안에 金一蓮[김일련]은 拜[배]』
라 하였더이다 . 나는 이 書柬[서간]을 펴 든 대로 한참이나 멍멍하니 앉았었나이다. 金一蓮[김일련]! 金一蓮[김일련]! 옳다 듣고 보니, 그 얼굴이 果然[과연] 金一蓮[김일련]이로다. 그 좁으레한 얼굴, 눈꼬리가 잠간 처진 맑고 多情[다정]스러운 눈, 좀 숙는 듯한 머리와 말할 때에 살작 얼굴 붉히는 양하며 그 中[중]에도 귀 밑에 있는 조그마한 허물 , 果然[과연] 金一蓮[김일련]이러이다. 萬一[만일] 그가 上海[상해]에 있는 줄만 알았더라도 내가 보고 모르는지 아니하였으리이다. 아아 그가 金一蓮[김일련]이런가? 내가 그대에게 對[대]하여서는 아무러한 秘密[비밀]도 없었나이다. 내 胷底[흉저] 속속 깊이 있는 秘密[비밀]까지도 그대에게는 말하면서도 金一蓮[김일련]에 關[관]한 일만은 그대에게 알리지 아니하였나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는 말 아니하고 참을 수 없사오며 또 對面[대면]하여 말하기는 수줍기도 하지마는 이렇게 멀리 떠나서는 말하기도 얼마큼 便[편]하여이다.
내가 일찍 東京[동경]서 早稻田大學[조도전대학]에 있을 제 같은 學校[학교]에 다니는 親舊[친구] 하나가 있었나이다. 그는 나보다 二年長[이년장]이로되 學級[학급]도 三年[삼년]이나 떨어지고 맘과 行動[행동]과 容貌[용모]가 도리어 나보다 二[이], 三年[삼년]쯤 떨어진 듯, 그러나 그와는 처음 만날 때부터 서로 愛情[애정]이 깊었나이다. 나는 그에게 英語[영어]도 가르치고 詩[시]나 小說[소설]도 읽어 주고 散步[산보]할 때에도 반드시 손을 꼭 잡고 二[이], 三日[삼일]을 作別[작별]하게 되더라도 서로 떠나기를 아껴 西洋式[서양식]으로 꽉 쓸어안고 입을 맞추고 하였나이다. 그와 나와 別[별]로 主義[주의]의 共通[공통]이라든가, 特別[특별]히 親[친]하여질 格別[격별]한 機會[기회]도 없었건마는 다만 彼此[피차]에 까닭도 모르게 서로 兄弟[형제]같이 愛人[애인]같이 사귀게 된 것이로소이다.
하루는 그와 함께 어디 놀러 갔던 길에 어느 女學校[여학교] 門前[문전]에 다다랐나이다. 나는 前[전]부터 그 學校[학교]에 金一鴻君[금일홍군]의 妺氏[말씨]가 留學[유학]하는 줄을 알았는 故[고]로 그가 妺氏[말씨]를 訪問[방문]하기 爲[위]하여 나는 먼저 돌아오기를 請[청]하였나이다. 그러나 그는「그대도 내 누이를 알아 둠이 좋을지라」하여 紹介[소개]하려는 뜻으로 나를 데리고 그 寄宿舍[기숙사] 應接室[응접실]에 들어가 더이다. 거기서 暫間[잠간] 기다린즉 門[문]이 방싯 열리며 單純[단순]한 黑色[흑색] 洋服[양복]에 漆[칠] 같은 머리를 한 편 옆을 갈라 뒤로 치렁치렁 땋아 늘인 處女[처녀]가 방금 沐浴[목욕]을 하였는지 紅暈[홍훈]이 도는 빛나는 얼굴로 들어오더이다. 一鴻君[일홍군]은 일어나 나를 가리키며.
『이이는 早稻田[조도전] 政治科[정치과] 三學年[삼학년]에 있는 林輔衡[임보형]인데, 나와는 兄弟[형제]와 같은 사이니, 或[혹] 以後[이후]에라도 잊지 말고…….』하고 나를 紹介[소개]하더이다. 나도 일어나 慇懃[은근]히 절하고 그도 答禮[답례]하더이다. 그러고는 限[한] 五分間[오분간] 말없이 마주앉았다가 함께 宿所[숙소]에 돌아왔나이다. 그後[후] 一鴻君[일홍군]이 感氣[감기]로 數日[수일] 辛苦[신고]할 때에 그 妺氏[말씨]에게서 書籍[서적]을 몇 가지 사 보내라는 寄別[기별]이 왔더이다. 學期初[학기초]이라 時日[시일]이 急[급]한 모양인 故[고]로 一鴻君[일홍군]의 請[청]대로 내가 代身[대신] 가기로 하였나이다. 나는 이때에 아직 一蓮[일연] 아씨에게 對[대]하여 別[별]로 想思[상사]의 情[정]도 없었나이다. 다만 아름다운 깨끗한 處子[처자]요, 親舊[친구]의 누이라 하여 情[정]답게 여겼을 뿐이로소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處子[처자]를 爲[위]하여 힘쓰기를 매우 기뻐하기는 하였나이다. 그래 곧 神保町册肆[신보정책사]에 가서 所請[소청]한 書籍[서적]을 사가지고 곧 나를 寄宿舍[기숙사]에 찾아가 前[전]과 같이 應接室[응접실]에서 그 册[책]을 傳[전]하고 一鴻君[일홍군]이 感氣[감기]로 辛苦[신고]하는 말과 그래서 내가 代身[대신]왔노라는 뜻을 告[고]하였나이다.
그때에 나는 自然[자연]히 가슴이 설레고 말이 訥[눌]함을 깨달았나이다.
저의 얼굴이 빨갛게 됨을 슬쩍 볼 때에 나의 얼굴도 저러하려니 하여 차마 얼굴을 들지 못하였나이다. 그는 겨우 가느나마 快活[쾌활]한 목소리로.
『奔走[분주]하신데 수고하셨읍니다.』
할 뿐이러이다. 나는 어찌할 줄을 모르고 우두커니 섰었나이다. 그도 할 말도 없고 수줍기만 하여 고개를 숙이고 册[책]싸개만 凝視[응시]하더이다.
그제야 나는 어서 가야 될 사람인 줄을 알고.
『저는 가겠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門[문]밖에 나섰나이다. 그도 門[문]을 열고.
『感謝[감사]하올시다. 奔走[분주]하신데.』
하더이다. 나는 速步[속보]로 四[사], 五步[오보]를 大門[대문]을 向[향]하여 나가다가 不意[불의]에 뒤를 휙 돌아보았나이다. 幻覺[환각]인지는 모르나 琉璃窓[유리창]으로 그의 얼굴이 번듯 보이는 듯하더이다. 나는 다시 부끄러운 맘이 생겨 더한 速步[속보]로 大門[대문]을 나서서 冷靜[냉정]한 모양으로 또 四[사], 五步[오보]를 나왔나이다. 그러나 自然[자연]히 몸이 뒤로 끌리는 듯하여 차마 발을 옮기지 못하고 四[사], 五次[오차]나 머뭇머뭇 하였나이다. 狂亂怒濤[광란노도]가 서두는 듯한 가슴을 가지고 電車[전차]를 탔나이다. 宿所[숙소]에 돌아와 一鴻君[일홍군]에게 前後始末[전후시말]을 이야기할 제도 아직 맘이 가라앉지 못하여 一鴻君[일홍군]이 有心[유심]히 나를 보는 듯하여 얼른 고개를 돌렸나이다. 그러고 그날 하루는 아무 생각도 없이 맘만 散亂[산란]하여 지내고 그 二[이], 三日[삼일]이 지나도록 이 風浪[풍랑]이 자지 아니하더이다. 그 후부터는 하루에 몇 번씩 그를 생각지 아니한 적이 없었나이다.
하루는 一鴻君[일홍군]이 어디 가고 나 혼자 宿所[숙소]에 있을 제 如前[여전]히 그 생각으로 心緖[심서]가 定[정]치 못하여 하다가 幸[행]여나 그의 글씨나 볼 양으로 一鴻君[일홍군]의 册床[책상] 舌盒[설합]을 열었나이다. 그 속에는 그에게서 온 書柬[서간]이 있는 줄을 알았으므로 葉書[엽서]와 封書[봉서]를 몇 장 뒤적뒤적하다가 다른 舌盒[설합]을 열었나이다. 거기서 나는 그와 다른 두 사람이 박힌 中板寫眞[중판사진] 한 장을 얻었나이다. 나는 가슴이 뜨끔하면서 그 寫眞[사진]을 두 손으로 들었나이다. 그 寫眞[사진]에 박힌 모양은 꼭 日前[일전] 册[책] 가지고 갔을 때 모양과 같더이다. 한 편을 갈라 넘긴 머리하며 방그레 웃는 態度[태도]하며, 한 손을 그 동무의 어깨에 얹고 고개를 잠간 기울여 그 동무의 걸앉은 椅子[의자]에 힘없는 듯 기대어 섰는 양이 참 美妙[미묘]한 藝術品[예술품]이러이다. 나는 그때 寄宿舍[기숙사] 應接室[응접실]에서 그를 對[대]하던 것과 같은 感情[감정]으로 한참이나 그 寫眞[사진]을 보았나이다. 그 방그레 웃는 눈이 마치 나물나물 더 웃으려는 듯하며 살짝 마주 붙인 입술이 今時[금시]에 살짝 열려 하얀 이빨이 드러나며 琅琅[낭랑]한 웃음소리가 나올 듯. 두 귀밑 으로 늘어진 몇 줄기 머리카락이 그 부드럽고 香氣[향기]로운 콧김에 하느 적하느적 날리는 듯하더이다. 아아 이 가슴 속에는 只今[지금] 무슨 생각을 품었는고. 내가 그를 보니 그도 나를 물끄러미 보는 듯, 그의 그림은 只今[지금] 나를 向[향]하여 방그레 웃는다. 그의 가슴 속에는 日光[일광]이 차고 春風[춘풍]이 차고 詩[시]가 차고 美[미]와 사랑과 溫情[온정]이 찼도다. 이에 외롭고 싸늘하게 식은 靑年[청년]은 그 흘러 넘치는 기쁨과 美[미]와 사랑과 溫情[온정]의 一滴[일적]을 얻어 마시려고 무릎을 꿇고 두손을 들고 눈물을 흘리며 그 앞에 엎더졌도다. 그가 한 방울 피를 흘린다사 무슨 자리가 아니 날 모양으로 그가 가슴에 가득찬 사랑의 一滴[일적]을 흘린다사 무슨 자리가 나랴. 뜨거운 沙漠[사막]길에 먼지 먹고 목마른 사람이 서늘한 샘물을 보고 一掬水[일국수]를 求[구]할 때 그 우물을 지키는 이가 이를 拒絶[거절]한다 하면, 너무 慘酷[참혹]한 일이 아니오리이까. 그러나 내가 아무리 이 寫眞[사진]을 向[향]하여 懇請[간청]하더라도 그는 들은 체만체 如前[여전]히 방그레 웃고 나를 내려다볼 뿐이로소이다. 그가 마치 「내게 사랑이 있기는 있으나 내가 주고 싶어 줄 것이 아니라, 주지 아니치 못하여 주는 것이니 , 네가 나로 하여금 네게 주지 아니치 못하게 할 能力[능력]이 있고사 이 단샘을 마시리라」하는 듯하더이다. 나는 이윽고 寫眞[사진]을 보다가 마침내 情火[정화]를 이기지 못하여 그 寫眞[사진]에 내얼굴을 닿이고 그 입에 熱烈[열렬]하게 입을 맞추고 그 동무의 어깨위에 놓은 손에 내 손을 힘껏 대었나이다. 나는 狂人[광인]같이 그 寫眞[사진]을 품에 품기도 하고, 뺨에 닿이기도 하고, 물끄러미 쳐다보기도 하고, 뺨도 대고 키스도 하였나이다. 내 얼굴은 水蒸氣[수증기]가 피어오도록 熱[열]하고 숨소리는 마치 全速力[전속력]으로 다름질한 사람 같더이다. 나는 한 時間[시간]이나 이러다가 大門[대문] 열리는 소리에 놀래어 그 寫眞[사진]을 처음 있던 곳에 집어넣고 얼른 일어나 그날 新聞[신문]을 보는 체하였나이다.
그 後[후] 얼마 동안을 苦悶中[고민중]으로 지내다가 나는 마침내 내 心情[심정]을 書柬[서간]으로 그에게 알리려 하였나이다. 어떤 날밤 남들이 다 잠든 열 두 時[시]에 일어나 불일듯하는 생각으로 이러한 書柬[서간]을 썼나이다.
『사랑하는 누이여, 내가 이 말씀 드림을 容恕[용서]하소서. 나는 외로운 사람이로소이다. 父母[부모]도 없고 同生[동생]도 없고 넓은 天下[천하]에 오직 한 몸이로소이다. 나는 至今[지금]토록 일찍 누구를 사랑하여 본 적도 없고 누구에게 사랑함을 받은 적도 없나이다. 사랑이라는 따뜻한 春風[춘풍] 속에 자라날 나의 靈[영]은 至今[지금]껏 朔風寒雪[삭풍한설] 속에 얼어 지내었나이다. 나는 나의 靈[영]이 그러한 오랜 겨울에 아주 말라 죽지 아니한 것을 異常[이상]히 여기나이다. 그러나 以後[이후]도 春風[춘풍]을 만나지 못하면 可憐[가련]한 이 靈[영]은 아주 말라 죽고야 말 것이로소이다. 그 동안 봄이 몇 번이나 지났으리이까마는 꽃과 사랑을 실은 東君[동군]의 수레는 늘 나를 찾지 아니하고 말았나이다. 아아 이 어린 靈[영]이 한 방울 사랑의 샘물을 얻지 못하여 아주 말라 죽는다 하면 그도 불쌍한 일이 아니오리까. 나는 猥濫[외람]히 그대에게서 春風[춘풍]을 求[구]함이 아니나 그대의 胷中[흉중]에 사무친 사랑의 一滴甘泉[일적감천]이 能[능]히 말라 죽어가는 나의 靈[영]을 살릴 것이로소이다. 그대여, 그대는 내가 그대에게 要求[요구]하는 바를 誤解[오해]하지 말으소서. 내가 장난으로 또 凶惡[흉악]한 맘으로 이러한 말을 한다고 말으소서. 내가 그대에게 要求[요구]하는 바는 오직 하나 , 아주 쉬운 하나이니, 即[즉]「輔衡[보형]아 내 너를 사랑하노라, 누이가 오라비에게 하는 그대로」한 마디만 그만이로소이다. 만일 그대가 이 한 마디만 주시면 나는 그를 다시 護身符[호신부]로 삼아 一生[일생]을 그를 依支[의지]하고 살며 活動[활동]할 것이로소이다. 그 한 마디가 나의 財産[재산]도 되고 精力[정력]도 되고 勇氣[용기]도 되고 , 아니, 나의 生命[생명]이 될 것이로소이다. 나는 決[결]코 그대를 만나보기를 要求[요구] 아니하리이다. 도리어 만나보지 아니하기를 要求[요구]하리이다. 대개 歲月[세월]이 흘러가는 동안에 그대는 늙기도 하오리이다. 心身[심신]에 여러 가지 變化[변화]도 생기리이다. 決[결]코 그런 일이 있을 理[리]도 없거니와 或[혹] 그대는 惡人[악인]이 되고 病身[병신]이 되고 罪人[죄인]이 된다 하더라도 내 記憶[기억]에 남아 있는 그대는 永遠[영원]히 열 일곱 살 되는 아름답고 淸淨[청정]한 處女[처녀]일 것이로소이다. 後日[후일] 내가 老衰[노쇠]한 老人[노인]이 되고 그대가 曾祖母[증조모] 소리를 듣게 되더라도, 또는 그대가 이미 죽어 그 아름답던 얼굴과 몸이 다 썩어진 뒤에라도 내 記憶[기억]에 남아 있는 그대는 永遠[영원]히 그處女[처녀]일 것이로소이다. 그리하고 그대의「내 너를 사랑한다」한마디는 永遠[영원]히 希望[희망]과 歡樂[환락]과 熱情[열정]을 나에게 줄 것이로소이다. 이러므로 나는 決[결]코 그대를 다시 對[대]하기를 願[원]하지 아니 하고 다만 그대의 그「한 마디」만 바라나이다. 만일 그대가 그대의 胷中[흉중]에 찬 사랑의 一滴[일적]을 이 매마른 목에 떨어뜨려 죽어가는 이 靈[영]을 살려 주시면 그 靈[영]이 자라서 將次[장차] 무엇이 될는지 어찌 아오리이까. 只今[지금]은 夜半[야반]이로소이다. 冬至[동지] 寒風[한풍]이 萬物[만물]을 흔들어 草木[초목]과 家屋[가옥]이 괴로워하는 소리를 發[발]하나이다. 이러한 中[중]에 발가벗은 어린 靈[영]은 한 줄기 따뜻한 바람을 바라고 구름 위에 앉으신 天使[천사]에게 엎디어 懇求[간구]하는 바로소이다.』
이 편지를 써 놓고 나는 再三[재삼] 생각하였나이다. 이것이 罪[죄]가 아닐까. 나는 벌써 婚姻[혼인]한 몸이라 다른 女子[여자]를 사랑함이 罪[죄]가 아닐까. 내 心中[심중]에서는 或[혹]은 罪[죄]라 하고 或[혹]은 罪[죄]가 아니라 自然[자연]이라 하나이다. 내가 婚姻[혼인]한 것은 내가 함이 아니요, 나는 男女[남녀]가 무엇이며 婚姻[혼인]이 무엇인지를 알기도 前[전]에 父母[부모]가 任意[임의]로 契約[계약]을 맺고 社會[사회]가 그를 承認[승인]하였을 뿐이니, 그 結婚行爲[결혼행위]에는 내 自由意思[자유의사]는 一分[일분]도 들지 아니한 것이요. 다만 나의 幼弱[유악]함을 利用[이용]하여 第三者[제삼자]가 强制[강제]로 行[행]하게 한 것이니, 法律上[법률상]으로 보는 지 倫理上[윤리상]으로 보든지, 내가 이 行爲[행위]에 對[대]하여 아무 責任[책임]이 없을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 契約的行爲[계약적행위]가 내 意思[의사]에 適合[적합]한 줄로 여기는 時[시]는 그 行爲[행위]를 是認[시인]함도 任意[임의]여니와 그것이 나에게 不利益[불이익]한 줄을 깨달을진댄 그 契約[계약]을 否認[부인]함도 自由[자유]라 하였나이다. 나와 내 아내는 조금도 우리의 夫婦契約[부부계약]의 拘束[구속]을 받을 理[리]가 없을 것이라, 다만 父母[부모]의 意思[의사]를 尊重[존중]하고 社會[사회]의 秩序[질서]를 근심하는 好意[호의]로 그 契約계약] , 내 人格[인격]을 蹂躪[유린]하고 侮辱[모욕]한 그 契約[계약]을 눈물로써 黙認[묵인]할 따름이어니와 내가 精神的[정신적]으로 다른 異性[이성]을 사랑하여 蹂躪[유린]된 權利[권리]의 一部[일부]를 主張[주장]하고 掠奪[약탈]된 享樂[향락]의 一部[일부]를 恢復[회복]함은 堂堂[당당]한 吾人[오인]의 權利[권리]인가 하나이다. 이 理由[이유]로 나는 그를 사랑함이요 , 더구나 누이와 같이 사랑함이요 , 또 그에게서 그와 같은 사랑을 받으려 함이 決[결]코 不義[불의]가 아니라고 斷定[단정]하였나이다.
이튿날 學校[학교]에 가는 길에 書柬[서간]을 投凾[투함]하려 하였으나 무엇인지 므를 생각에 制御[제어]되어 하지 못하고 그날에 十餘次[십여차], 그 後[후] 三日間[삼일간]에 數十餘次[수십여차]를 넣으려다는 말고 넣으 려다는 말고 하여 그 皮封[피봉]이 내 포키트 속에서 닳아지게 되었다가, 한 번 모든 名譽[명예]와 廉恥[염치]를 단번에 賭[도]하는 생각으로 마침내 어느 郵便凾[우편함]에 그것을 넣고 한참이나 그 郵便凾[우편함]을 보고 섰었나이다. 마치 무슨 絶大[절대]한 所得[소득]을 바라고 큰 冒險[모험]을 할 때와 같은 웃음이 내 얼굴에 떴다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三日[삼일]만에 學校[학교]로서 돌아오니, 案頭[안두]에 一封書[일봉서]가 놓였더이다. 내 가슴에는 곧 風浪[풍랑]이 일었나이다. 나는 그 글씨를 보았나이다 , 果然[과연] 그의 글씨로소이다. 나는 그 片紙[편지]를 집어 포키트에 넣고 선 자리로 발을 돌려 大久保[대구보] 벌판으로 나아갔나이다. 집에서 뜯어 보기는 남이 볼 念慮[염려]도 있고 또 이러한 글을 房[방]안에서 보기는 不適當[부적당]한 듯하여 , 깨끗하고 넓은 自然[자연] 속, 맑은 하늘과 빛나는 太陽[태양] 아래서 보는 것이 適當[적당]하리라 하여 그러함이로소이다. 나는 내 발이 땅에 닿는지 마는 지도 모르면서 大久保[대구보] 벌판에 나섰나이다. 겨울 날이 뉘엿뉘엿 넘어 가고 演習[연습] 갔던 騎兵[기병]들이 疲困[피곤]한 듯이 돌아오더이다. 그러나 나는 혼자 맘 속에 數千[수천] 가지 數萬[수만] 가지 想像[상상]을 그리면서 方向[방향] 없이 마른 들판으로 向[향]하였나이다. 이 片紙[편지] 속에 무슨 말이 있을는가 , 나는「사랑하나이다 오라비여」하였기를 바라고 또 그렇기를 믿으려 하였나이다. 나는 그 片紙[편지]를 내어 皮封[피봉]을 보았나이다. 그리하고 그가 내 片紙[편지]를 받았을 때의 그의 모양을 想像[상상]하였나이다. 爲先[위선] 보지 못하던 글씨에 놀래어 한참을 읽어 보다가 마침내 가슴이 설레고 얼굴이 훗훗했으려니, 그 글을 두 번 세번 곱 읽었으려니, 이 世上[세상]에 女子[여자]로 태어난 後[후] 첫 經驗[경험]을 하였으려니, 그리고 心緖[심서]가 散亂[산란]하여 그 片紙[편지]를 구겨 쥐고 한참이나 멍멍하니 앉았었으려니, 그러다가 一邊[일변] 기쁘 기도 부끄럽기도 하여 곧 내 모양을 想像[상상]하며 내가 自己[자기]를 그리워하는 모양으로 自己[자기]도 나를 그리워하였으려니, 그러고 곧 이 回答[회답]을 썼으렷다, 써가지고 넣을까 말까 躊躇[주저]하다가 오늘에야 부쳤으렷다, 그러고 只今[지금]도 나를 생각하며 내가 이 片紙[편지] 읽는 光景[광경]을 想像[상상]하고 있으렷다. 어제까지 어린아이같이 平穩[평온]하던 맘이 오늘부터는 異常[이상]하게 설레려는. 아무려나 나는 메마르던 목을 축이게 되었다, 나는 사랑의 단맛을 보고 生命[생명]의 快樂[쾌락]을 보게 되었다, 말라 가던 나의 靈[영]은 甘泉[감천]에 젖어 잎 피고 꽃 피게 되었다 하면서 풀판에 펄썩 주저앉아 그 皮封[피봉]을 떼고도 얼른 그 속을 끄집어내지 못하고 한참이나 躊躇[주저]하며 想像[상상]하다가 마침내 속을 뽑았나이다. 아아 그 속에서 무엇이 나왔사오리이까.
나는 激怒[격노]하였나이다. 「흑」하고 소리를 치고 벌떡 일어나며 그 片紙[편지]를 조각조각 가루가 되도록 찢어버렸나이다. 그러고도 不足[부족]하여 그것에 침을 뱉고 그것을 발로 지르밟았나이다. 그러고 方向[방향]없이 벌판으로 彷徨[방황]하며 그 侮辱[모욕]받은 羞恥[수치]와 이에 對[대]한 憤怒[분노]를 참지 못하여 혼자 주먹을 부르쥐고 이를 갈고 발을 구르며「흑」,「흑」소리를 連發[연발]하였나이다. 當場[당장] 그를 칼로 푹찔러 죽이고도 싶으고 내 목숨을 끊어버리고도 싶으고…이 모양으로 거의 한 時間[시간]이나 돌아다니다가 어스름에야 얼마큼 맘을 鎭定[진정]하고 돌아왔나이다. 돌아와 본즉 一鴻君[일홍군]은 벌써 저녁을 먹고 불을 쪼이며 담배를 피우다가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有心[유심]히 내 얼굴을 쳐다보더이다. 그에게 對[대]한 憤怒[분노]와 羞恥[수치]는 一鴻君[일홍군]에게 까지 옮더이다.
이튿날 나는 感氣[감기]라는 핑계로 學校[학교]를 쉬었나이다. 어제는 다만 一時的[일시적]으로 激怒[격노]만 하였거니와 오늘은 羞恥[수치]와 悲哀[비애]의 念[염]만 가슴에 가득하여 그 안타까움이 비길 데 없더이다. 나는 베개 위에 머리를 갈며 이불을 차 던지고 입술을 물어뜯었나이다. 이제 무슨 面目[면목]으로 世上[세상]을 보며 무슨 希望[희망]으로 世上[세상]에 살랴. 一鴻君[일홍군]이 만일 이 일을 알면 그 좁은 속에, 그 어린 속에, 얼마나 나를 嘲弄[조롱]하랴. 아아 나는 마침내 사랑의 맛을 못 볼 사람인가. 언제까지 孤獨[고독]하고 冷寂[냉적]한 生活[생활]을 할 사람인가. 나는 어찌하여 따뜻한 손을 못 쥐어 보고, 사랑을 말을 못 들어 보고 熱烈[열렬]하고 자릿자릿한 抱擁[포옹]을 못하여 보는고. 사람이 원망되고 世上[세상]이 원망되고 내 生命[생명]이 원망되어 내 손으로 내 머리털을 몇 번이나 쥐어뜯었사오리이까. 그러다가 오냐, 내가 男子[남자]가 아니다, 一開兒 女子[일개아여자]로 말미암아 이것이 무슨 꼴인고 하고 주먹으로 땅을 치며 決心[결심]하려 하나 그것은 제가 저를 속임이러이다. 그의 모양은 如前[여전]히 나의 가슴을 밟고 서서 방그레하는 모양으로 나를 支配[지배]하더이다. 나는 하염없이 天井[천정]을 바라보고 누웠나이다.
나는 一封書[일봉서]를 받았나이다. 그 글에 하였으되
『사랑하는 이여, 어제 지은 罪[죄]는 容恕[용서]하시옵소서. 그대가 그처럼 나를 사랑하시니 나도 이 몸과 맘을 그대에게 바치나이다. 暫間[잠간] 여쭐 말씀 있사오니, 午後[오후] 四時[사시]쯤 하여 日比谷公園[일비곡공원] 噴水池[분수지] 가에 오시기를 바라나이다.』
이 글을 받은 나는 미친 듯하였나이다. 곧 日比谷[일비곡]으로 달려갔나이다. 이제야 살았구나, 十九年[십구년] 겨울 世界[세계]에 봄이 왔구나 하면서.
夕陽[석양]이 鶴噴水[학분수]를 비치어 五色[오색]이 玲瓏[영롱]한 무지개를 세울 제 나는 藤棚下[등붕하] 걸상에 걸앉아 紫煙生[자연생]하는 噴水[분수]를 보면서 여러 가지 未來[미래]의 空想[공상]을 그렸나이다. 이제는 혼자가 아니로다. 슬픈 사람이 아니요, 不幸[불행]한 사람이 아니로다. 宇宙[우주]의 美[미]와 享樂[향락]은 내 一身[일신]에 集中[집중]하였도다.
只今[지금] 내 身體[신체]를 組織[조직]한 모든 細胞[세포]는 기쁨과 滿足[만족]에 뛰며 소리하고, 熱[열]한 血液[혈액]은 律呂[율려] 맞추어 循環[순환]하는도다. 내 얼굴이 夕陽[석양]에 빛남이여 天國[천국]의 樂[낙]을 맛봄이요, 내 靈[영]이 춤을 추고 노래함이여 砂漠[사막]길에 오아시스를 얻음이로다. 萬物[만물]이 이제야 生命[생명]을 얻었고 人界[인계]가 이제야 웃음을 보이도다 하였나이다. 果然[과연] 아까까지도 萬物[만물]이 모두 죽었더니 저 天使[천사]의 口號[구호]한 마디에 一齊[일제]히 蘇生[소생]하여 뛰고 즐기도소이다. 이따금 電車[전차]와 自動車[자동차] 지나가는 소리가 멀리서 들릴 뿐이요, 公園內[공원내]는 至極[지극]히 고요하여이다. 樹林[수림]속 瓦斯燈[와사등]은 어느새 반작반작 稀微[희미]한 빛을 發[발]하나이다. 이때에 噴水池[분수지] 저편가으로 쑥 나서는 이가 누구이리까. 그로소이다, 아아 그로소이다. 그는 只今[지금] 내 곁에 섰나이다. 내 눈과 그 눈은 같이 저 噴水[분수]를 보나이다. 우리는 서로 얼굴을 붉히며 절하였나이다. 그의 빨간 얼굴에는 夕陽[석양]이 反照[반조]하여 마치 타는 듯 하더이다. 내 가슴이 자주 뛰는 소리는 내 귀에도 들리는 듯, 나는 무슨 말을 할 것인지 어떤 行動[행동]을 할 것인지 全[전]혀 모르고 우두커니 噴水[분수]만 보고 섰었나이다. 하다가 겨우 精神[정신]을 차려.
『제가 그 따윗 片紙[편지]를 드린 것을 얼마나 괘씸히 보셨읍니까. 버릇 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그도 한참이나 머뭇머뭇하더니 겨우 눈을 들어 暫間[잠간] 나를 보며.
『저는 그 편지를 받자 한끝 기쁘면서도 한끝 무서운 생각이 나서 어찌할 줄을 모르다가…… 이것이 罪[죄]인가보다 하는 생각으로 도로 보내었읍니다. 그러나 도로 보내고 다시 생각한즉 어찌해 도로 보낸 것이 罪[죄]도 같이 또 알 수 없는 힘이 제 등을 밀어…….』
하고는 말이 아니 나오더이다. 얼마 沈黙[침묵]하였다가.
『제가 先生[선생]의 착하심을 믿으므로 설마 惡[악]에 끌어 넣지는 아니 하시려니 하고요.』
나는 다시 내 뜻을 말하였나이다 , 나는 그에게 다만.
『오라비여 사랑하노라.』
한 마디면 滿足[만족]한다는 뜻과 決[결]코 그를 다시 對面[대면]하고자 아니하는 뜻을 말하였나이다. 아직 어린 그는 毋論[무론] 그 意味[의미]를 十分[십분] 解得[해득]할 수는 없을지나 그 맘 속에 神奇[신기]한 變動[변동] , 아직 經驗[경험]하여 보지 못한 사랑의 意識[의식]이 생긴 것도 毋論[무론]이로소이다. 그러나 이 밖에 彼此[피차] 하려는 말이 많은 듯하면서도 나오려는 말은 없는 듯하여 한참이나 黙黙[묵묵]히 섰다가 내가.
『아무려나 그대는 나를 살려 주셨읍니다. 그대는 나로 하여금 참사람이 되게 하였고 내게 살 能力[능력]과 살아서 즐기며 일할 希望[희망]과 기쁨을 주셨읍니다. 나는 그대를 爲[위]하여, 그대의 滿足[만족]을 爲[위]하여 工夫[공부]도 잘하고 큰 事業[사업]도 成就[성취]하오리다. 나는 詩人[시인]이니 그대라는 생각이 내게 無限[무한]한 詩的刺激[시적자격]을 줄 것이외다. 그대도 부디 工夫[공부] 잘 하시고 맘 잘 닦으셔서 朝鮮[조선]의 大恩人[대은인] 되는 女子[여자]가 되십시오.』
나는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내 義務[의무] 같기도 하고 또 그밖에 할 말도 없어 또는 , 이런 말을 하여야 그의 내게 對[대]한 信愛[신애]가 더 깊어질 듯하여 이 말을 하였나이다. 그러고 오래 같이 섰고 싶은 맘이야 懇切[간절]하나 그럴 수도 없어 둘이 함께 고불고불한 길로 公園[공원]을 나오려 하였나이다. 그는 나보다 一步[일보]쯤 비스듬히 앞섰나이다. 그의 하얀 목이 異常[이상]하게 빛나더이다. 나는 가만히 그의 손을 잡았나이다. 그는 떨치려고도 아니하고 우뚝 서더이다. 그 손을 꼭 쥐었나이다. 그의 푹 숙인 머리는 내 가슴에 스적스적하고 그의 머리카락을 내 입김에 날리더이다. 나는 胷部[흉부]에 그의 體溫[체온]이 옮아옴을 깨달았다. 나의 꼭 잡은 손은 갑자기 확확 달음을 깨달았나이다. 내 몸은 痙攣[경련]하듯이 떨리고 내 눈이 朦朧[몽롱]하여졌나이다. 이윽고 두 얼굴은 서로 입김을 맡으리만큼 가까워지고 눈과 눈은 固定[고정]한 듯이 마주보나이다. 나는 그의 새말간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것을 보았나이다. 두 입술은 꼭 마주 붙었나이다.
따뜻한 입김이 내 입술에 感覺[감각]될 때 나는 나를 잊어버렸나이다. 불같이 뜨거운 두 입술이 바르르 떨리는 것이 내 입술에 感覺[감각]되더이다.
이윽고「내 사랑하는 이여」하고 우리는 速步[속보]로 公園[공원] 밖에 나왔나이다. 이때에 누가 뒤로서 내 어깨를 치더이다. 깨어 본즉 이는 한바탕 꿈이요 곁에는 一鴻君[일홍군]이 正服[정복]을 입은 대로 앉아서 나를 깨우더이다. 一鴻君[일홍군]은 有心[유심]히 웃더이다. 나는 또 羞恥[수치]한 생각이 나서 벌떡 일어나 水道[수도]에 가 洗手[세수]를 하였나이다. 밖에 서는 바람 소리와 함께 豆腐[두부]장수의 뚜뚜 소리가 들리더이다. 一鴻君[일홍군]은 簡單[간단]히.
『그게 무슨 일이요, 내가 그대를 그런 줄 알았더면 내 누이에게 紹介[소개] 아니하였을 것이요. 만일 그대가 未婚자[미혼자]면 나는 기뻐 그대의 願[원]을 이루게 하겠소. 그러나 記憶[기억]하시오, 兄[형]은 旣婚男子[기혼남자]인 줄을.』
나는 고개를 숙이고 들었을 뿐이로소이다. 果然[과연] 옳은 말이로소이다.
누구나 이 말을 다 옳게 여길 것이로소이다. 그러나 世上萬事[세상만사]를 다 그렇게 單純[단순]하게만 判斷[판단]할 수가 있사오리이까. 우리가 簡單[간단]히「옳다」하는 일에 그 속에 어떠한「옳지 않다」가 숨은 줄을 모르며, 우리가 簡單[간단]히「옳지 않다」하는 속에 어떠한「옳다」가 있는지 모르나이까. 世人[세인]은 제가 當[당]한 일에는 이 眞理[진리]를 適用[적용]하면서도 第三者[제삼자]로 批評[비평]할 때에는 이 眞理[진리]를 無視[무시]하고 다만 表面[표면]으로 얼른 보아「옳다」「옳지 않다」하나이다.
只今[지금] 내 境遇[경우]도 表面[표면]으로 보면 一鴻君[일홍군]의 말이 果然[과연] 옳거니와 一步[일보] 깊이 들어서면 그렇지 아니한 理由[이유]도 깨달을 것이로소이다. 그러나 나는 一鴻君[일홍군]에게 對[대]하여 아무 答辯[답변]을 하려 하지 아니하고 다만 듣기() 하였을 뿐이로소이다. 그 後[후]에 나는 이유를 알았나이다 , 그가 내 書柬[서간]을 받고 一鴻君[일홍군]을 請[청]하여 물어 보았고 一鴻君[일홍군]은 내가 旣婚男子[기혼남자]인 理由][이유]로 이를 拒絶[거절]하게 한 것인 줄을 알았나이다.
그 後[후] 나는 매우 失望[실망]하였나이다. 술도 먹고 學校[학교]를 쉬기도 하고 밤에 잠을 못 이루어 不眠症[불면증]도 얻고 (이 不眠症[불면증]은 그後[후] 四年[사년]이나 繼續[계속]하다), 幽鬱[유울]하여지고 世上[세상]에 맘이 붙지 아니하며 成功[성공]이라든가 事業[사업]의 希望[희망]도 없어지고 , 말하자면 나는 싸늘하게 식은 冷灰[냉회]가 되었나이다. 或時[혹시] 나는 鐵道自殺[철도자살]을 하려다가 工夫[공부]에게 붙들리기도 하고, 卒業[졸업]을 三[삼], 四月後[사월후]에 두고 退學[퇴학]을 하려고도 하여보며, 이리하여 여러 朋友[붕우]는 나의 急激[급격]한 變化[변화]를 걱정하여 여러 가지로 忠告[충고]도 하며 慰勞[위로]도 하더이다. 그러나 元來[원래] 孤獨[고독]한 나의 靈[영]은 다시 나을 수 없는 큰 傷處[상처]를 받아 모든 希望[희망]과 精力[정력]이 다 스러졌나이다. 나는 이러한 되는 대로 生活[생활], 落望[낙망], 悲觀的生活[비관적생활]을 一年[일년]이나 보내었나이다. 만일 다른 무엇(아래 말하려는)이 나를 救援[구원]하지 아니 하였던들 나는 永遠[영원]히 죽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로소이다. 그「다른 무엇」은 다름 아니라, 「同族[동족]을 爲[위]함」이로소이다. 마치 人生[인생]에 失望[실망]한 다른 사람들이 或[혹] 削髮爲僧[삭발위승]하고, 或[혹] 慈善事業[자선사업]에 獻身[헌신]함같이, 人生[인생]에 失望[실망]한 나는 「同族[동족]의 敎化[교화]」에 내 몸을 바치기로 決心[결심]하여 이에 나는 새 希望[희망]과 새 精力[정력]을 얻은 것이로소이다. 그제부터 나는 飮酒[음주]와 懶惰[나타]를 廢[폐]하고 勤勉[근면]과 修養[수양]을 힘썼나이다. 가다가다 맘의 傷處[상처]가 아프지 아니함이 아니나 나는 少年[소년]의 敎育[교육]에 이 苦痛[고통]을 잊으려 하였으며 或[혹] 이 新愛人[신애인]에게서 새로운 快樂[쾌락]을 얻기까지라도 하였나이다. 그렁성하여 나는 至今[지금]토록 지내어 온 것이로소이다. 이 말씀을 듣고 보시면 내 行動[행동]이 或[혹] 解釋[해석]될 것도 있었으리이다. 아무려나 나는 그 金一蓮[김일련]을 爲[위]하여 最大[최대]한 希望[희망]도 붙여 보고 最大[최대]한 打擊[타격]과 動亂[동란]도 받아 보고 그 때문에 내가 只今[지금] 所有[소유]한 여러 가지 美點[미점]과 缺點[결점]과 한숨과 幽鬱[유울]과 悲哀[비애]가 생긴 것이로소이다. 말하자면 하나님이 나를 만드신 뒤에 金一蓮[김일련] 그가 나를 變形[변형]한 모양이로소이다.
이 金一蓮[김일련]이, 即[즉] 그 金一蓮[김일련]일 줄을 누가 알았사오리이까. 只今[지금]껏 때때로「奔走[분주]하신데……」하던 容貌[용모]와 音聲[음성]이 一種[일종] 抑制[억제]할 수 없는 悲哀[비애]를 띠고 내 記憶[기억]에 일어나던 것이 무슨 緣分[연분]으로 六年[육년]만에 또 한 번 번뜻 보이고 숨을 것이니이까. 내 心緖[심서]는 六年前[육년전]과 같이 散亂[산란]하였나이다. 그래서 終日[종일] 그를 찾아 돌아다녔나이다. 내가 이 담요에 얼굴을 대고 있을 제 日比谷[일비곡] 꿈이 歷歷[역력]히 보이나이다. 그것은 꿈이로소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은 꿈이 아니라 하나이다. 만일 그것이 꿈이면 世上萬事[세상만사] 어느 것이 꿈 아닌 것이 있사오리이까.
그 꿈은 참 解明[해명]하였나이다. 그뿐더러 一瞬間[일순간] 꿈이 내 一生 涯[일생애]에 가장 크고 重要[중요]한 內容[내용]이 되는 것이니 이것이 어찌 꿈이오리까.
편지가 너무 길어졌나이다. 벌써 新年[신년] 一月一日[일월일일] 午前[오전] 三時[삼시]로소이다. 歲[세] 잘 쇠시기 바라고 이만 그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