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三信[제삼신]
第三信[제삼신]
나는 三日前[삼일전]에야 海參威[해참위]에 漂着[표착]하였나이다 , .
갖은 고생과 갖은 危險[위험]을 겪고 몇 번 죽을 번하다가 내 一生[일생]이 元來[원래] 고생 많은 一生[일생]이언마는 이번같이 죽을 고생하여 본 적은 없었나이다. 나는 上陸[상륙]한 後[후]로부터 이곳 病院[병원]에 누워 이 글도 病狀[병상]에서 쓰나이다. 이제 그 동안 十餘日間[십여일간]에 지내온 이야기를 들으소서.
나는 美國[미국]에 가는 길로 지난 一月五日[일월오일]에 上海[상해]를 떠났나이다. 혼잣몸으로 數萬里[수만리] 異域[이역]에 向[향]하는 感情[감정]은 참 形言[형언]할 수 없더이다. 桑港[상항]으로 直航[직항]하는 배를 타려다가 旣往[기왕] 가는 길이니, 歐羅巴[구라파]를 通過[통과]하여 저 人類 世界[인류세계]의 主人[주인] 노릇 하는 民族[민족]들의 本國[본국] 구경이나 할 次[차]로 露國[노국] 義勇艦隊[의용함대] 프르타와號[호]를 타고 海參威[해삼위]로 向[향]하여 떠났나이다. 나 탄 船室[선실]에는 나 外[외]에 露人[노인] 하나이 있을 뿐. 나는 외로이 寢牀[침상]에 누워 이런 생각 저런 생각 하다가 元來[원래] 衰弱[쇠약]한 몸이라 그만 잠이 들었나이다. 깨어본즉 電燈[전등]은 반작반작 하는데 機械[기계]소리만 멀리서 오는 듯이 들리고 자다 깬 몸이 으스스하여 外套[외투] 뒤쳐쓰고 甲板[갑판]에 나섰나이다. 陰十一月下旬[음십일월하순] 달이 바로 檣頭[장두]에 걸리고 늠실늠 실하는 波濤[파도]가 月光[월광]을 反射[반사]하며 파랗게 맑은 하늘 한편에 啓明星[계명성]이 燦爛[찬란]한 光彩[광채]를 發[발]하더이다. 나는 外套[외투]깃으로 목을 싸고 甲板上[갑판상]으로 왔다갔다 거닐며 雄大[웅대]한 밤 마다 景致[경치]에 醉[취]하였나이다. 여기는 아마 黃海[황해]일 듯, 여기서 바로 北[북]으로 날아가면 그대 계신 故鄕[고향]일 것이로소이다.
四顧茫茫[사고망망]하여 限際[한제]가 아니 보이는데 方向[방향] 모르는 靑年[청년]은 물결을 따라 흘러 가는 것이로소이다.「江天一色無纖塵皎皎空中 孤月輪[강천일색무섬진교교공중고월륜]」이란 張若虛[장약허]의 詩句[시구]를 읊조릴 제 마음조차 이 詩[시]와 같이 된 듯하여 塵世名利[진세명리]와 뒤숭숭한 心慮[심려]가 씻은 듯 스러지고 다만 月輪[월륜] 같은 精神[정신]이 뚜렷하게 胷中[흉중]에 坐定[좌정]한 듯하더이다. 山[산]도 아름답지 아님이 아니로되 曲折[곡절]과 凹凸[요철]이 있어 아직 사람의 맘을 散亂[산란]케 함이 있으되 바다에 이르러서는 萬顷一面[만경일면] 지질펀한데 眼界[안계]를 막는 것도 없고 心情[심정]을 刺激[자격]하는 것도 없어 참말 自由[자유]로운 心境[심경]을 맛보는 것이로소이다. 그러나 이러한 中[중]에도 떨어지지 않는 것은 愛人[애인]이라, 그대와 一蓮[일련]의 생각은 心中[심중]에 雜念[잡념]이 없어질수록에 더욱 鮮明[선명]하고 더욱 懇切[간절]하게 되나이다. 만일 이 景致[경치]와 이 心境[심경]을 저들과 같이 보았으면 어떠랴, 이 달 아래 이 바람과 이 물결에 그네의 손을 잡고 逍遙[소요]하였으면 어떠랴 하는 생각이 차차 더 激烈[격렬]하게 일어나이다. 그러나 여기는 萬頃海中[만경해중]이라 나 혼자 이 天地[천지] 속에 깨어 있어 이러한 생각을 하건마는 그네들은 只今[지금] 어떠한 꿈을 꾸는가. 아아 그립고 그리운 母國[모국]과 愛人[애인]을 뒤에 두고 數萬里外[수만리외]로 漂泊[표박]하여 가는 情[정]이 그 얼마나 하오리이까.
나는 船室[선실]에 들어가 자리에 누웠나이다. 그러나 精神[정신]이 灑落[쇄락]하여 졸리지는 아니하고 하릴없이 上海[상해]를 떠난 적에 사 가진 新聞[신문]을 끄내어 뒤적뒤적 읽었나이다.
그러다가 다시 잠이 들었더니 더 할 수 없는 恐怖[공포]를 가지고 그 잠을 깨었나이다. 일찍 들어 보지 못하던 轟然[굉연]한 爆響[폭향]이 나며 船體[선체]가 空中[공중]에 떴다 내려지듯이 搖動[요동]하더이다. 나는「水雷[수뢰], 沈沒[침몰]」하는 생각이 번개같이 일어나며 門[문]을 차고 甲板[갑판]에 뛰어 나가다가 소낙비 같은 물바래에 精神[정신]을 잃을 번하였나이다. 甲板上[갑판상]에는 寢衣[침의]대로 뛰어 나온 男女船客[남녀선객]이 몸을 떨며 부르짖고 船員[선원]들은 미친 듯이 左右[좌우]로 馳驅[치구]하더이다. 우리 배는 벌써 三十餘度[삼십여도]나 左舷[좌현]으로 傾斜[경사]하고 汽罐[기관]소리는 죽어 가는 사람의 呼吸[호흡] 모양으로 아직도 퉁퉁 퉁퉁하더이다.「水雷[수뢰], 水雷[수뢰]」하는 소리가 絶望[절망]한 音調[음조]로 名[명]사람의 입으로 지나가더니 上甲板[상갑판]에서 누가.
『船體[선체]는 水雷[수뢰]에 腹部[복부]가 破碎[파쇄]되어 救援[구원]할 길이 없소. 只今[지금] 救助艇[구조정]을 내릴 터이니 各人[각인]은 文明[문명]한 男子[남자]의 最後體面[최후체면]을 생각하여 女子[여자]와 幼兒[유아]를 먼저 살리도록 하시오.』하고 외치는 것은 船長[선장]이러이다.
이때에 敏活[민활]한 水夫[수부]들은 船上[선상]에 配置[배치]하였던 個人 救助艇[개인구조정]을 내리고 船客[선객]들은 悲慘[비참]한 慟哭[통곡]속에 女子[여자]와 小兒[소아]를 그리로 올려 태우더이다. 어떤 婦人[부인]은 그 지아비에게 매어달려 말도 못하고 慟哭[통곡]하며 그러면 그 지아비는 無情[무정]한 듯이 그 아내의 가슴을 떠밀어 救助艇[구조정]에 싣고 소리 높이 「하나님이시여 主[주]께 돌아가나이다」하고, 어떤 이는 미친 듯이 부르짖 으며 前後[전후]로 왔다갔다하며, 어떤 이는 氣力[기력]없이 甲板[갑판]에 기대어 彫像[조상] 모양으로 멍멍하니 섰기로 하더이다. 各救助艇[각구조정]에는 水夫[수부]가 六穴砲[육혈포]를 들고 서서 定員以外[정원이외] 오르기를 不許[불허]하고 어떤 卑怯[비겁]한 男子[남자]는 억지로 救助艇[구조정]에 오르려다가 여러 사람의 叱責[질책] 속에 도로 本船[본선]에 끌려 오르기도 하더이다. 救助艇[구조정]은 하나에 二十餘名[이십여명]씩이나 싣고 定處[정처]없이 萬頃[만경]에 나뜨더이다. 거기 탄 女子[여자]와 小兒[소아]는 本船[본선]에서 時間[시간]이 못하여 죽으려 하는 지아비와 아비를 向[향]하여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우짖고 本船上[본선상]에 남아 있는 男子船客[남자선객]과 船員[선원]은 도리어 萬事泰平[만사태평]인 듯이 沉着[침착]하더이다. 사람이란 避[피]할 수 없는 危險[위험]을 當[당]할 때에는 도리어 泰然[태연]한 것이러이다. 船體[선체]의 前半部[전반부]는 半以 上[반이상]이나 물에 들어가고 우리는 暫時[잠시]나마 生命[생명]을 늘일 양으로 後半部[후반부]로 옮았나이다. 本船[본선]을 떠나는 救助艇[구조정]에서는 讚頌歌[찬송가]가 일어나며 이것을 듣고 우리도 各各[각각] 讚頌歌[찬송가]를 부르며 어떤이는 두 팔을 들고 소리를 내어, 어떤이는 고개를 숙이고 主[주]에게 마지막 祈禱[기도]를 올리더이다. 나는 暫間[잠간] 故鄕[고향]과 家族[가족]과 同族[동족]과 그대와 그와 朋友[붕우]들과 품었던 將來[장래]의 希望[희망]을 생각하고 아주 冷靜[냉정]하게 最後[최후]의 決心[결심]을 하였나이다. 나는 이 世上[세상]의 아름다움을 생각할 때에 恐怖[공포]하였나이다. 아껴하였나이다. 그러나 이 世上[세상]의 冷酷[냉혹]하고 괴로움을 생각할 때에 하루라도 바삐 이 世上[세상]을 벗어남을 기뻐하였나이다. 나는 더러운 病席[병석]에서 오줌똥을 싸뭉개다가 죽지 아니하고 新鮮[신선]한 朝日光[조일광] 茫茫[망망]한 海洋中[해양중]에 悲壯[비장]한 景光裏[경광리]에 죽게 됨을 幸福[행복]으로 여겼나이다. 實狀[실상] 집에서 죽으려거든 功成名遂[공성명수]하고 限命[한명]까지 살다가 子女[자녀]와 社會[사회]의 깊이 哀悼[애도]하는 속에 하거나, 그렇지 아니하거든 或[혹]은 霜刃下[상인하]에, 或[혹] 人類[인류]의 文明[문명]을 爲[위]하여 電氣[전기]나 化學[화학]의 實驗中[실험중]에 죽을 것인가 하나이다. 나는 저 苟且[구차]하게 無氣力[무기력]한 生命[생명]을 아껴 醜[추]한 生活[생활]을 이어가는 者[자]를 誹笑[비소]하나이다. 只今[지금] 洋洋[양양]한 바다는 우리를 받아들일 양으로 늠실늠실하고 光輝[광휘]한 太陽[태양]은 他界[타계]로 가는 우리를 作別[작별]하는 듯이 우리에게 따뜻한 빛을 주더이다. 배가 가라앉음을 좇아 차차 後部[후부]로 옮는 船客[선객]들을 이제야 몸과 몸이 서로 마주 닿게 되었나이다. 그러다가 우리는 한 걸음 한 걸음 上甲板[상갑판]과 檣[장]으로 기어 오르나이다. 汽罐[기관] 벌써 죽었나이다. 이제는 우리 차례로소이다. 그러나 우리 中[중]에는 이제는 우리 이도 없고 덤비는 이도 없고 다만 悲愴[비창]한 한숨 소리와 祈禱[기도] 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릴 뿐이로소이다. 船員[선원]은 우리 生命[생명]이 이제 四十分[사십분]이라 하나이다. 우리 心臟[심장]은 一秒一秒[일초일초] 뛰나이다. 一分[일분] 가나이다, 二分[이분] 가나이다. 이때에 가끔 물바래가 우리 熱[열]한 얼굴을 적시더이다. 우리는 한 걸음 한 걸음 우으로 우으로 올라가나이다. 다만 一瞬間[일순간]이라도 할 수 있는 대로는 生命[생명]을 늘이려 하는 人生[인생]의 情狀[정상]은 참 可憐[가련]도 하여이다. 救助艇[구조정]도 어디 갈 데가 있는 것이 아니요, 後[후]에 오는 배만 기다리는 故[고]로 그 周圍[주위]로 슬슬 떠다닐 뿐이러이다. 가끔 女子[여자]의 울음 소리가 물결 소리와 함께 울려 올 뿐이로소이다. 十分[십분] 지났나이다. 남은 것이 三十分[삼십분]. 우리는 不知不覺[부지불각]에 주먹을 부르 쥐고 입을 꼭 다물었나이다. 마치 우리를 向[향]하여 오는 무엇을 抵抗[저항]하려는 듯이. 그러나 우리는 그 運命[운명]을 抵抗[저항]할 수 있사오리까. 아까 救助艇[구조정]에 오르려던 男子[남자]는 失神[실신]한 듯이 甲板上[갑판상]에 거꾸러지며 거푸을 吐[토]하고 痙攣[경련]을 生[생]하더이다.
다른 사람들은 빙그() 웃으면서 그 사람의 파래진 얼굴을 보았나이다. 우리는 그를 救援[구원]하려 할 必要[필요]가 없고 다만 暫間[잠간] 먼저 가거라, 우리도 네가 아직 一哩[일리]을 앞서기 前[전]에 따라갈 것이로다 할 뿐이로소이다. 이때 우리 心中[심중]에야 무슨 慾心[욕심]이 있으며 무슨 念慮[염려]가 있으리이까. 萬人[만인]이 꿈에도 놓지 못하던 名利[명리]의 慾[욕]이며 快樂[쾌락]의 慾[욕]이며 , 온갖 것을 다 잊어버리고 다만 우리가 世上[세상]에 올 때에 가지던 바와 같은 純潔[순결]한 맘으로 오려는 죽음을 맞을 따름이로소이다. 이때에 우리 二百餘名[이백여명] 사람은 모두 聖人[성인]이요, 모두 天使[천사]로소이다. 만일 누구나 葬式[장식]을 볼 때에 暫間[잠간] 이러한 생각을 하였던들 社會[사회]의 모든 惡[악]하고 無用[무용]한 軋轢[알력]이 없어질 것이로다. 이 배에는 或[혹] 金貨[금화]도 실었으리이다. 그러나 只今[지금] 누가 그것를 생각하며, 美人[미인]은 있으리이다. 그러나 只今[지금] 누가 그를 생각하오리이까. 그뿐더러 우리의 生命[생명]까지도 그리 아까운 줄을 모르게 되어 沈沒[침몰]하는 船體[선체]의 異常[이상]한 不快[불쾌]한 音響[음향]을 發[발]할 때마다 本能的[본능적]으로 몸이 흠칙흠칫 할 뿐이로소이다. 二十分[이십분] 지내었나이다. 船體[선체]는 漸漸[점점] 물 아래로 잠기나이이다. 우리는 더 올라 갈 곳이 없어 그 자리에 가만히 섰나이다. 이때에 群衆中[군중중]에서 누가.
『저기 배 보인다!』
하고 외친다. 群衆[군중]의 視線[시선]은 一齊[일제]히 西[서]편 까만 點[점]으로 쏠리더이다. 船長[선장]은 마스트 第一桁[제일항]에 올라가 雙眼 鏡[쌍안경]으로 그 異點[이점]을 보더니, 손을 내어두르며.
『코리아號[호]외다. 우리 배보다 二時間後[이시간후]에 떠난 코리아號[호]외다. 우리 배 沈沒[침몰]한다는 無線電信[무선전신]을 받고 이리로 옴이외다. 그러나 저 배는 一時間後[일시간후]가 아니면 오지 못할 터이니 各各[각각] 무엇이나 하나씩 붙들고 저 배 오기를 기다리시오.』
우리의 얼굴은 一時[일시]에 變[변]하였나이다. 沈着[침착]하던 마음이 도리어 動亂[동란]하더이다. 一條[일조]의 生道[생도]가 보이매 至今[지금]껏 죽으려고 決心[결심]하였던 것이 다 虛事[허사]가 되고 이제는 살려는 希望[희망]을 가지고 努力[노력]하게 됨이로소이다. 우리는 船員[선원]과 함께 널쪽 뜯기에 着手[착수]하였나이다. 나도 依接[의접]할 것을 하나 얻을 양으로 잠기다 남은 甲板[갑판] 위로 뛰어 돌아 가다가 異常[이상]한 소리에 깜짝 놀래어 우뚝 섰나이다.「사람살리오!」하는 女子[여자]의 소리(英語[영어]로) 들리며 무엇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이다. 나는 곧 그 소리가 서너 치나 이미 물에 잠긴 主檣[주장]밑 一等室[일등실]에서 나는 줄을 알아 차리고 얼른 뛰어가.
『門[문]을 칠 터이니 물러서시오.』
하며 손에 들었던 도끼로 돌저귀를 때려부수고 힘껏 그것을 잡아 제쳤나이다. 그 속에는 어떤 늙은 西洋夫人[서양부인] 하나와 젊은 東洋夫人[동양부인] 하나이 있다가 흐트러진 머리 寢衣[침의] 바람으로 문을 차며 마주 뛰어 나오더이다. 나는 그 門[문]을 떼어 生命[생명]을 依接[의접]할 양으로 도끼로 잡을 손 있는 데를 깨뜨렸나이다. 이때에 뒤로서 누가 내게 매어달 리기로 돌아본즉 이것이 누구오리까. 내 恩人[은인] 金一蓮[김일련]이로소이다. 나는 다른 말 할새 없이 다만.
『이 門[문]을 잃지 말고 여기 매어달리시오. 只今[지금] 救助[구조]할 배가 옵니다.』
하였나이다. 돌아서며 보니 船客[선객]과 船員[선원]들은 벌써 널쪽을 하나씩 집어 타고 물에 나떴더이다. 甲板[갑판]에 물이 벌써 무릎을 잠그고 船體[선체]는 漸漸[점점] 빠르게 가라앉더이다. 게다가 굽신굽신하는 물결이 몸을 쳐 한 걸음만 걸핏하면 그만 千[천]길 海中[해중]으로 쑥 들어 갈 것이로소이다. 船上[선상]에는 우리 세 사람 뿐이로소이다. 내가 도끼로 문을 부시는 동안에 남들은 다 내려간 것이로소이다. 아아 어찌하나 이 門[문] 한 짝에 세 사람이 붙을 수 없고 그러나 이제 달리 어쩔 수도 없어 그 危急[위급]한 中[중]에 얼마나 躊躇[주저]하였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 門[문]을 타고 나가시오. 걸핏하면 그만이오. 어서어서.』
하고 다시 물 속에 든 도끼를 찾아 다른 門[문]을 부시려 하였나이다. 그러나 이때에 벌써 물이 허리 위에 올라 오고 물 속에 잠긴 돌저귀를 부시지 못하여 한참이나 애를 쓰다가 뒤를 돌아본즉 두 婦人[부인]은 水上[수상]에 조금 남겨 놓인 欄干[난간]을 붙들고 흑흑 느끼더이다. 나는 이를 보고 허리를 물에 잠그고 겨우하여 그 門[문]을 뜯어 내어 놓고 본즉 먼저 뜯어 놓은 門[문]이 갑자기 밀어 오는 물결에 밀려 달아나더이다. 나는 도끼를 집어 내어던지고 그 門[문]을 잡고 헤어나갈 準備[준비]를 하였나이다. 그러나 어찌하리요. 門[문] 하나에 셋은 탈 수 없으니 우리 셋 中[중]에 하나는 죽어야 할 것이라, 누가 죽고 누가 살 것이리이까.
이제 우리는 寸刻[촌각]의 餘裕[여유]도 없나이다. 두 婦人[부인]더러 그 門[문]의 한편 옆에 붙으라 하고 나는 다른 옆에 붙어 아주 우리 몸이 뜨기만 바랐나이다. 沈沒[침몰]하는 本船[본선] 周圍[주위]에는 運命[운명]에 生命[생명]을 맡긴 人生[인생]들이 或[혹]은 널쪽에 或[혹]은 救命帶[구명대]에 或[혹]은 救助艇[구조정]에 붙여 물결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며 말없이 떠다니나이다. 아까 보이던 코리아號[호]는 果然[과연] 오는지마는지.
이윽고 우리 몸은 全[전]혀 그 門[문]에만 매어달리게 되었나이다. 두 婦人[부인]은 氣運[기운]없이 門[문]설주를 잡고 내 얼굴만 쳐다보더이다. 그러나 세 사람의 重量[중량]에 門[문]은 連[연]해 가라앉으려 하고 그러할 때마다 弱[약]한 婦人[부인]네는 더욱 팔에 힘을 주므로 우리는 몇 번이나 머리까지 물 속에 잠겼나이다. 가뜩이나 겨울 물에 四肢[사지]는 얼어 들어 오고 팔맥은 풀리고 아무리 하여도 이 모양으로 十分[십분]을 지낼 것도 같지 아니하더이다. 이제 우리가 한 가지 오래 갈 妙策[묘책]은 門[문]을 胸腹部[횽복부]에 기대고 팔과 다리로 方向[방향]을 잡음이러이다. 그러나 걸핏하면 널쪽이 뒤집히든가 가라앉든가 할 모양이니 어찌하오리이까. 그러나 우리는 數分間[수분간]에 一次[일차]씩 물에 잠기어 아무리 하여도 이대로 참을 수는 없더이다. 이때말로 姑息[고식]을 不許[불허]하고 勇斷[용단]이 必要[필요]하더이다. 이렁그렁하는 동안에 氣力[기력]은 차차 耗盡[모진]하더이다. 元來[원래] 纖弱[섬약]한 金娘[김랑]은 벌써 흐뜩흐뜩 느끼며 졸기를 시작하더이다. 아무리 하여도 셋 中[중]에 하나는 죽어야 하리라 하였나이다. 나는 얼른「살아야 할 사람」은 나와 내 同胞[동포] 金娘[김랑]인가 하였나이다. 人道上[인도상]으로 보아 두 婦人[부인]을 살리고 내가 죽음이 마땅하다 하려니와 나는 그때 내 生命[생명]을 먼저 버리기에는 너무 弱[약]하였나이다. 그러나 저 西洋婦人[서양부인]을 떠밀어 내기도 生命[생명]이 있는 동안은 못할 일이러이다. 또 한 번 우리는 물 속에 들었다 나왔나이다. 숨이 막히고 精神[정신]이 아뜩아뜩 하더이다. 나는 다시 생각하였나이다. 아직 國家[국가]가 있다. 國家[국가]가 있으니 內外國[내외국]의 別[별]이 있다, 그러니까 다 살지 못할 境遇[경우]에 내 同胞[동포]를 살림이 當然[당연]하다 하였나이다. 그러나 斷行[단행]치 못하고 또 한 번 물에 잠겼다 나왔나이다. 나는 이에 決心[결심]하였나이다. 차라리 이 널쪽을 뒤쳐엎었다가 둘 中[중]에 하나 사는 者[자]를 살리리라 하였나이다. 아아 나의 사랑하는 이의 生命[생명]이 어찌 될는가.
『하나님이시여 容恕[용서]하소서.』
하고 나는 널쪽을 턱 놓았나이다. 아아 그때의 心中[심중]의 苦悶[고민]이야 무엇으로 形容[형용]하리이까. 널쪽이 번쩍 들리며 두 婦人[부인]은 물 속에 들어 갔나이다. 나는 얼른 널쪽을 잡으려 하였으나 널쪽은 물결에 밀려 數步外[수보외]에 달아나더이다. 이윽고 두 婦人[부인]도 물을 푸푸 뿜으며 나뜨더이다 . 나는 最後[최후]의 努力[노력]이로구나 하면서 널쪽을 버리고 金娘[김랑] 있는 데로 헤어 가서 한 손으로 그의 겨드랑을 붙들고 널 쪽을 向[향]하여 헤었나이다. 널쪽은 잡힐 듯 잡힐 듯하면서 우리 보다 앞서 가더이다. 나는 死力[사력]을 다하여 헤었나이다. 우리의 두 몸은 이제야 겨우 코 以上[이상]이 물 위에 떴을 따름이로소이다. 나는「이제는 죽었 구나」하며 남은 힘을 다하였나이다. 그러나 屍體[시체]나 다름 없는 女子[여자]를 한 손에 들었으니 어찌 하오리이까. 그렇다고 차마 그는 놓지 못했나이다. 나는 不知不覺[부지불각]에「아이구」하였나이다. 그러나 내 生命[생명]은 아직 끊기지 아니하였으므로 그래도 허우적허우적 널쪽을 向[향]하여 헤었나이다. 거의 기운이 다하려 할 제 널쪽이 손에 잡혔나이다.
나는 새 기운을 내어 金娘[김랑]을 널쪽에 올려 싣고 나도 가슴을 널쪽에 대었나이다. 그러고는 다리를 흔들어 널쪽의 方向[방향]을 돌렸나이다. 西洋婦人[서양부인]이 아직도 떴다 잠겼다 함을 보고 나는 그리로 向[향]하여 저어가려 하였나이다. 그러나 내 四肢[사지]는 이미 굳었나이다. 그러고는 精神[정신]을 잃었나이다.
깨어 본즉 나는 어느 船室[선실]에 누웠고 곁에는 金娘[김랑]과 다른 사람 들이 昏迷[혼미]하여 누웠나이다. 나는 몸을 움직일 수도 없고 말도 잘 나가지 아니하더이다. 이 모양으로 二十分[이십분]이나 누웠다가 겨우 精神[정신]을 차려 나는 어느 배의 救援[구원]을 받아 다시 살아난 줄을 았았나이다. 그러고 겨우 몸을 일혀 곁에 누운 金娘[김랑]을 보니 아직도 昏迷[혼미]한 모양이러이다. 뒤에 들은즉 이 배는 우리가 기다리던 코리아號[호]요, 그 船客[선객]들이 衣服[의복]을 내어 갈아 입히고 우리를 自己[자기]내 寢台[침태]에 누인게라 하더이다. 저녁때쯤 하여 金娘[김랑]도 일어 나고 다른 遭難客[조난객]도 일어나더이다. 三百餘名[삼백여명]에 生存[생존]한 者[자]가 겨우 一百二十幾人[일백이십기인]. 나도 그 틈에 끼인 것이 참 神奇[신기]하더이다. 아아 人生[인생]의 運命[운명]이란 果然[과연] 알 수 없더이다. 船長[선장]도 죽고 나와 같은 房[방]에 들었던 이도 죽고 毋論[무론] 西洋婦人[서양부인]도 죽고 , 그러나 그때 救助艇[구조정]에 뛰어 오르려다가 도로 끌려 내린 者[자]는 살아나서 바로 내 맞은편 寢牀[침상]에 누워 앓는 소리를 하더이다. 여러 船客[선객]은 여러 가지로 慰問[위문]하여 주며 어떤 西洋婦人[서양부인]네는 눈물을 흘리며 慰問[위문]하더이다. 나는 그네에게 對[대]하여 나의 目睹[목도]한 自初至終[자초지종]을 말하였나이다. 그네는 或[혹] 놀라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그 말을 듣더이다. 그 水雷[수뢰]는 敷設水雷[부설수뢰]인가 獨逸水雷艇[독일수뢰정]이 發射[발사]한 것인가 하고 議論[의론]이 百出[백출]하였으나 毋論[무론] 歸結[귀결]되지 못하였나이다. 우리도 국과 牛乳[우유]를 마시고 다시 잠이 들어 翌朝[익조] 長崎[장기]에 碇泊[정박]할 때까지 世上[세상] 모르고 잤나이다.
長崎[장기]서 이틀을 留[유]하여 단번 義勇艦隊[의용함대] 배로 이곳에 到着[도착]한 것이 再再昨日[재재작일] 午前[오전] 九時[구시]로소이다. 그러나 물에서 몸이 지쳐 우리는 그냥 病院[병원]에 들어와 只今[지금]까지 누웠으나 오늘부터는 心神[심신]이 자못 輕快[경쾌]하여 감을 느끼오니 過慮[과려]말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