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 부부 논쟁 — 양심과 욕심의 갈림길
제3장 · 부부 논쟁 · 양심과 욕심의 갈림길
이때 그 아내는 남편이 나간 후로, 저렇게 바람이 불고 저렇게 추운데 남편을 내어 보내고 마음이 미안하여 잠도 아니 자고 앉았는데, 오래지 아니하여 밝으려니 하고 밝기만 기다리되 도무지 아니 밝는도다. 가만히 생각한 즉 잠든 지가 얼마 아니 되었는데 뾰죽집의 종소리는 정녕히 들었는지라, 초저녁 일곱 시 반에 치는 종소리를 잠결에 듣고 새벽인 줄 알고 그 남편을 깨워 보내었도다. 다른 날 같으면 초저녁 이때 즈음에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닐 터이지마는, 이날은 풍세가 대단하고 추위가 지독하여 길에 다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 아내는 자기 남편을 잠도 못 자게 공연히 깨워 보내서 추운데 떨고 있을 생각을 하고 더욱 마음에 미안하여 도로 들어오기만 기다린다.
별안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야단스럽게 나면서 무엇에게 쫓겨오는 사람같이 문 열라는 소리가 연거푸 숨차게 난다. 나가서 문을 열어주니 김 서방이 인력거는 문 앞에 내던지고 뛰어들어와 신발도 벗지 아니하고 방으로 들어가서 헐레벌떡거리며 숨이 차서 말도 못하거늘, 그 아내는 눈이 휘둥그래서,
(처) "아, 이게 웬일이오. 글쎄 왜 이리하오."
(김) "여보게, 문 열 때에 내 뒤에 아무도 쫓아오지 아니하던가."
(처) "쫓아오기는 누가 쫓아와요"
(김) "아이고 숨차. 정녕히 아무도 아니 쫓아오던가."
(처) "쫓아오는 사람 없어요."
(김) "누가 내 뒤를 쫓아오는 듯하던데."
(처) "아―, 그래서 이렇게 야단이요. 신발이나 좀 벗으시오."
(김) "아니여, 이것보아. 내가 하도 졸리기에 길옆에 쌓인 눈을 집어서 얼굴을 씻으려 한즉 눈 속에서 이것이 집혀서 깜짝 놀랐어."
(처) "그것이 무엇이요."
(김) "문 단단히 잠갔나. 누구 들어오리. 인제는 우리 부자 되었네."
(처) "글쎄, 문은 단단히 걸었소. 그것이 무엇이라는 말이요."
(김) "이것이 지전 뭉치여. 얼마나 되는가 좀 세어 보아야."
이상스러운 색보자기에 똘똘 뭉쳐 싸고 또 그 속에는 신문지로 한 겹을 쌌는데, 십 원짜리, 오 원짜리, 일 원짜리 지전과 오십 전, 이십 전, 은전이라. 김서방이 지폐를 들고 세어보려 하나 손이 떨려서 세지를 못하고 지폐를 들고 성주대를 내리는 모양이라. 그 아내가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이리 주시오. 내가 세리다." 하고 십원 지폐 이백 장, 오원 지폐 삼백 장, 일원 지폐 오백 장, 은전 삼십이원 오십전, 모두 사천삼십이원 오십전이요.
김서방이 사천원을 당오 풀이로 풀어 보더니,
"이십만냥일세 그랴, 단 만 냥 하나를 손에 만져보지 못하였는데 이십만냥, 참 엄청나다. 여보게 마누라, 이것 가졌으면 자네도 고운 옷 좀 하여 입고 나도 술 좀 먹고 그리하고도 넉넉히 살겠지."
그 아내가 한참 생각하고 아무 말도 없다가 그 남편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더니 하는 말이,
(처) "여보, 그 돈을 그대로 쓰시려오. 이 돈을 잃어버린 사람은 오죽 원통하여 하겠소."
(김) "벌 제―밀 붙을 소리를 다 하네. 내 복으로 내가 얻은 돈인데 그럼 아니 쓰고 무엇하여."
그 아내가 감히 남편의 말을 항거하지는 못하고 한참 동안을 잠잠히 앉았더니,
"여보, 저 지난밤에도 한숨 못 자고, 오늘밤에도 잠을 못 자서 졸리어 죽겠으니, 이 돈은 내게 맡기고 편히 잡시다. 자, 어서 잡시다."
이틀 밤이나 잠을 못 자서 곤한 김서방이 꿈결같이 지전 뭉치를 얻어서 어찌 좋은지 잠잘 생각도 없지마는, 그 돈을 아내에게 맡기고 이불을 쓰고 드러누워 눈을 감고 내일부터 돈 쓸 생각에 그 밤을 다 보내고 다 밝기에 잠을 들어 오정 때까지나 정신 모르고 잠을 자다가, 이웃집 어린아이들 장난하다가 싸우고 우는 소리에 깜짝 놀라 잠을 깨어 벌써 일어나서, 세수도 아니하고 곰방대에 담배 담아 왜성냥에 피워 물고 그 근처에 사는 친구들을 경사나 있는 듯이 청하여 가지고 술집으로 들어가서 모두 술을 먹이고 저도 취하도록 먹을 때에, 술집 주인이 술값이나 못 받을까 염려하여 술을 잘 아니 주려고 한즉, 김서방의 하는 말이
"구차한 사람은 일상 구차한 줄 아는가. 이따 우리 집으로 오면 전후 술값 다 셈하여 줄 터이니 걱정 말고 술을 부르라니."
곰방대 든 왼손으로 바른팔의 토시를 어깨까지 치키면서 고성대담으로 의기양양하여 예전 모양과 딴판이라. 눈이 게슴츠레하여 하늘인지 땅인지 분별하지 못하도록 잔뜩 취케 먹은 후에 길을 휩쓸고, 갈지자 걸음이라더니, 이것은 강남 갈지자걸음으로 간신히 집에 와서 방에도 미처 못 들어가고 문지방에 걸쳐 누워 정신없이 잠들었다.
그 아내가 간신히 끌어다가 아랫목에 뉘었더니 해가 저물어도 깨지 아니하고 밤이 깊어도 깨지 아니하고, 그 이튿날 늦은 아침때 비로소 일어나서 얼굴 씻고 밥을 먹고 가만히 생각하니 어제 일이 맹랑하다. 돈 얻은 일과 술 먹은 일만 생각이 나고 그 외에는 며칠이나 잠을 잤는지, 술 먹고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전연히 알 수 없도다. 그 아내더러 묻는 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