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국선 · coreano
안국선(1878~1926, 호 천강)의 1915년 한국 최초 단편집 「공진회(共進會)」 수록 단편. 인력거꾼 김서방이 술 취해 귀가한 밤에 길에서 주운 지전 뭉치를 두고 부부가 양심과 욕심 사이에서 갈등하다 끝내 임자에게 되돌려주고, 다섯 해 뒤 공진회 개최 소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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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선(1878~1926, 호 천강)의 1915년 한국 최초 단편집 「공진회(共進會)」 수록 단편. 인력거꾼 김서방이 술 취해 귀가한 밤에 길에서 주운 지전 뭉치를 두고 부부가 양심과 욕심 사이에서 갈등하다 끝내 임자에게 되돌려주고, 다섯 해 뒤 공진회 개최 소문이 들려올 때 그날의 결단을 되돌아보는 1915년 식민지 빈민 사실주의 단편. 한국 최초 단편집 「공진회」의 둘째 작품이며, 「금수회의록」(1908) 우화 신소설과 짝짓기하는 안국선 후기 sastra realisme rakyat 자리.
안국선 · coreano
안국선(1878~1926, 호 천강)의 1915년 한국 최초 단편집 「공진회(共進會)」 수록 단편. 인력거꾼 김서방이 술 취해 귀가한 밤에 길에서 주운 지전 뭉치를 두고 부부가 양심과 욕심 사이에서 갈등하다 끝내 임자에게 되돌려주고, 다섯 해 뒤 공진회 개최 소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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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al (coreano)
해는 거의 서산에 넘어가고 겨울바람은 냉랭하여 남의 집 행랑채에 세로 들어,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노동자의 여편네가 쌀은 없고 나무 없어 구구한 살림살이 애만 부둥부둥 쓰는 이때에, 새문 밖 냉동 좁은 골목 막다른 집 행랑채 한 간 방에 턱을 고이고 수심 중에 앉아서 혼잣말로 한탄하는 여편네가 있으니, 그 남편은 병문 친구들이 부르기를 김서방이라 하고, 김 서방은 본시 양반의 자식으로 가세가 타락하여 할 수 없이 남의 집 행랑채를 얻어 들고 병문에 나가서 지게벌이도 하며, 남의 심부름도 하여, 하루 벌어다가 겨우 연명하는 터인데, 김서방의 위인이 술을 좋아하여 하루라도 술을 못 먹으면 병이 되는 듯하다. 술만 먹으면 한두 잔은 평생 먹어본 일이 없고 소불하 수십 잔이나 먹어야 겨우 갈증이나 면하는 모양이랴. 그러하므로 매일 장취 술만 먹고 살림은 돌아보지 아니하는도다. 사나이가 살림을 돌보아 주지 아니하면 그 여편네는 물을 것 없이 고생하는 법이라. 김서방의 아내는 일구월심 속이 타고 마음이 상하여 하루 몇 번 죽을 마음도 먹어 보았으며, 도망하여 다른 서방을 얻어 살 생각도 하여 보았지마는, 오늘 이때까지 있는 것은 그 본심이 상스럽지 아니하고 얼마쯤 장래의 희망을 가지고 있는 터이라. 이날도 김서방의 아내는 씁쓸한 방안에 혼자 앉아서 배가 고파도 밥 지을 양식이 없고, 방이 추워도 불 땐 나무가 없이 바느질만 종일 하다가 이따금 두 손을 입에 대고 호호 불며 발가락을 꼼작꼼작 꼼작이며 한숨만 쉬고 들창에 비치는 햇빛만 바라보더니 혼잣말로,
"애고, 벌써 해가 다 갔네. 저녁밥을 어떻게 하나……. 오늘은 얼마나 술을 자시기에 이때껏 아니 들어 오시노……."
이때에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사람은 김서방이라. 날마다 보는 모양이라, 대단히 취한 술 냄새와 방 문턱을 못 넘어서고 드러눕는 그 거동을 그 여편네는 별로 이상히도 생각지 아니하고 하는 말이,
"그런데 쌀도 조금 아니 팔아 가지고 들어왔으니 저녁은 어떻게 하라오."
"아, 쌀이 조금도 없나, 응. 나는 밥 생각이 없어."
그 여편네는 아무 말 없이 돌아앉아서 눈물이 그렁그렁. 김서방의 아내는 얼굴이 동그스름하고 이목이 청수한 중에 과히 어여쁘지는 못하나, 성품이 순직하고 태도가 안존하여 아무가 보아도 밉지 아니하다. 스물두 살이나 세 살쯤 되었는데, 모양은 조금도 내지 아니하고 생긴 본바탕대로 그대로 있어 어디인지 귀인(貴人) 성스러운 자태가 드러난다.
김서방은 술기운에 걱정 없이 드러누워 씩― 씩― 잠을 자는데, 그 아내는 혼자 앉아서 등불만 보고 정신없이 무슨 생각을 하고 이따금 한숨도 쉬며 세상이 귀찮게 생각하는 모양이라. '제길할 것, 내버리고 달아나서 좋은 남편 만나가지고 살아볼까. 어디 가기로 이렇게야 고생할라고. 아니 아니, 그렇지도 못하지. 귀밑머리 맞풀고 만난 남편을 어떻게 내버리고 어디를 가나……. 고생을 하면서도 잘 공경하고 살아가면 자기도 지각이 날 때가 있겠지. 종시 이러하거던 죽어버리지.'
저녁밥도 못 먹고 곤한 몸이 밤 깊도록 앉아서 한숨으로 그 밤을 보내다가 드러누워 잠을 자려 한즉,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눈이 더욱 말똥말똥. 잠 커녕 아무것도 아니 온다. 불도 끄지 아니하고 혼자 고생고생할 때에 씩씩거리고 잠을 자던 그 남편이 벌떡 일어 앉으며,
"아이고 목말라라. 물 좀 주어, 물 좀."
추위가 이를 데 없는 그 밤에 문을 열고 나가서 물을 떠다주니 꿀떡꿀떡 한 대접 물을 다 먹고 한참 드러누웠더니 하는 말이,
"여보게, 자네 저녁밥 먹었나."
그 아내는 아무 대답도 아니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만 그렁그렁하다.
"응, 못 먹은 것이로고. 아, 내가 잘못하였지. 그놈의 술집, 그놈의 술집이 원수야."
이 때에 그 아내가 무엇을 감동하였는지 정색하고 돌아앉아 그 남편을 보고 하는 말이,
"여보시오. 술집이 무슨 원수요. 당신이 오늘 나와 약조를 합시다. 우리가 일생을 이대로 지낸단 말이오. 평생을 이렇게 가난하게만 고생으로 살 것 같으면 차라리 지금 죽어버립시다. 당신도 사람이오 나도 사람이지. 아까 집주인이 방 내놓고 어디로 나가라고 사설하던 일과, 일수 놓는 오 생원이 돈 내라고 구박하던 일과, 쌀가게 외상 쌀값 스무 냥 내라고 욕설하던 일을 생각하면 저녁거리가 있은들 밥이 어찌 목구멍으로 넘어간단 말이오. 당신이 내 말을 들으시지 못할 것 같으면 나는 오늘 밤이나 내일 아침에 자결하여 죽겠소."
말을 그치고 앉았는 모양이 엄숙하고 무섭도다. 김서방은 아내의 정당한 말에 할 말이 없어서 일어 앉아서 팔짱을 끼고 고개를 숙이고 잠잠히 있는데 그 아내는 다시 말하기를,
"우리 집안이 그전에는 그렇지 아니하던 집으로 오늘날은 떨어져서 이 지경이 되었으니 어떻게 하든지 돈을 모아 집을 성가하면 남부럽지 아니하게 살아보아야 할 것 아니오. 또 삼촌이 잘 살면서 자기 조카를 구박하여 죽이려 하고, 나중에는 내어쫓은 일을 생각하면 우리가 이를 갈고 천하고 힘드는 일이라도 아무쪼록 벌이하여 돈을 모아 분풀이를 하여야 할 것 아니오니까. 그까짓 술 좀 아니 자시면 어떠하오. 내가 무슨 저녁밥을 좀 못 먹어 서운하겠소……."
말을 다 하지 못하여 목이 메어 눈에는 눈물이 핑 돈다. 한참 동안을 두 내외가 아무 말도 없이 앉았더니, 김성방이 천치스럽게 하는 말이,
"자네 말을 들으면 그러한데, 아― 술집 앞으로 지나면 술 냄새가 자꾸 나를 잡아당기는 것을 어떻게 하여."
그 아내가 이 말을 듣더니 눈물은 어디 가고 빙긋 웃는다.
"여보, 당신이 집안일을 생각하면 술 냄새가 비상 냄새 같을 것이오. 시아버님이 안주를 과히 잡수시다가 끝에는 술 취하여 깊은 개천에 떨어져서 골병들어 돌아가시고, 요부하던 재산이 다 술로 하여 없어졌으니, 술이 당신에게는 비상이오. 그러한즉 여보, 내가 아까 당신과 약조합시다 한 것은 당신이 삼 년 동안만 술을 끊고 부지런히 벌이하여 봅시다 하는 말이오. 세상에 술 아니 먹고 부지런하면 못할 이치가 어디 있겠소. 당신이 만일 못 하겠다면 나는 죽을라오."
김서방이 머리를 득득 긁더니 손톱에 끼인 시커먼 머리 때를 엄지손톱으로 바람벽에다가 탁탁 튀기면서,
"어디 그렇게 하여볼까. 그래, 술 아니 먹으면 부자 될까."
아내가 허허 웃으며
"술 아니 먹는다구 부자 될 리가 있겠소. 술을 끊고도 부지런하여야지. 자―, 그러면 밝는 날에는 인력거 한 채 세내 가지고 인력거를 끌어서 하루 스무 냥을 벌든지 쉰 냥을 벌든지 나한테만 맡기시오. 나도 바느질도 하고 남의 집일도 하여 다만 한 푼씩이라도 돈을 모으고 살 터이니."
김서방이 가만히 생각하더니 별안간 하는 말이,
"그러세, 제―길, 술 먹으면 개자식일세."
(이 책을 기록하는 이 사람이 김서방 부인에게 감사할 말 한마디가 있도다. 이 책 보는 세상의 모든 군자들이여, 김서방 부인의 '술 끊고도 부지런하여야지' 하는 말 한 구절을 기억할지어다. 이것이 치부의 비결(致富之秘訣)인가 하노라.)
김서방 내외의 의론이 일치하여 장래에 부자 되고 잘 살 이야기로 그럭저럭 밤을 새우고 날이 밝으매 그 아내가 머리에 꽂은 귀이개를 빼어 가지고 전당포에 가서 돈푼이나 얻어 가자고 구멍가게에서 파는 쌀 서너 웅큼을 팔아다가 부엌 구석의 검불을 닥닥 긁어 밥을 지어 먹은 후에 김서방은 인력거세 얻으러 나간다. 술집 앞을 지나면 억지로 고개를 외로 두고 술집을 아니 보려 하지마는 고개는 외로 두었지 눈은 저절로 술집으로 간다. 이때에 어떠한 사람이 술집에서
"한잔 더 부오." 하는 소리가 나면 술 냄새가 김서방의 코를 찌르니 김서방이 깜짝 놀라며, 두 손을 코를 싸쥐고 달음박질하면서 하는 말이,
"아이고, 비상 냄새야."
종일 헤매다가 해질 머리에야 겨우 인력거 한 채를 세 얻어 가지고 돌아오니, 그 아내는 벌써 저녁밥을 지어놓고 기다리거늘, 두 내외가 저녁밥을 먹은 후에 지난밤에 조금도 잠을 자지 못한 까닭으로 졸음이 와서 못 견디어 어둡기 전부터 잠을 잔다. 김서방이 하는 말이,
"여보게, 나는 늦도록 잠자기 쉬우니 내일 새벽에 어둑한 때에 나를 깨우게. 종현 뾰죽집의 종칠 때에 곧 깨우게. 새벽부터 일찍이 나가서 벌어야지."
그 여편네는 그 남편이 술을 끊고 이렇게 부지런한 마음이 생긴 것만 좋아서 그리 하마 하고 허락하고, 두 내외가 전보다 유별하게 정 있게 드러누워 장래에 부자 될 꿈이나 꾸었는지.
종현 뾰죽집 종소리가 새문 밖 김서방의 마누라의 꿈을 깨워 잠든 귀를 떵떵 울리니, 김서방의 아내가 잠결에 깜짝 놀라 일어 앉아 불을 켜고 그 남편을 깨운다.
"여보, 일어나오. 지금 종쳤소. 창이 훤하게 밝았나 보오. 예―, 어서 일어나오."
곤하게 잠을 자던 김서방이 벌떡 일어나며 혼잣말로 하는 말이,
"잠든 지가 얼마 아니 되는 듯한데 벌써 밤이 새었나. 아이고, 졸리어."
그 아내가 물을 데워서 찬밥과 함께 소반을 받쳐다가 김서방의 앞에 놓으니 물만 조금 마시고 수건으로 귀를 싸매고 인력거를 끌고 나간다.
설상에 부는 바람은 몸이 떠나갈 것 같고 노변에 깔린 얼음은 발목이 빠질 듯하다. 추위가 하도 지독하고 바람이 하도 몹시 불어 지나다니는 사람 하나도 없고 천지가 쓸쓸한데, 김서방은 인력거 채를 가슴 위에 얹고 큰 거리에 나가서 인력거 주거장에 인력거를 놓고 두루마기로 몸을 싸고 앉았으니 밤은 밝지 아니하고 점점 더 어두워간다. 김서방은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일기가 하도 지독히 추워서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으니까 다른 동무들은 그저들 아니 나오나. 이것이 웬일인고. 아무리 보아도 새벽 같지 아니하고 초저녁 같으니 웬일인고. 인력거 탈 손님은 오든지 말든지 밤이나 어서 밝아야 할 터인데, 천지가 종용한데 나 혼자 여기서 이게 무슨 청승인가. 내가 도깨비한테 홀리었나. 종쳤다고 한지가 벌써 두 시간이나 지내었을 요량인데, 여태 밝지 아니하니 아마도 마누라가 다른 소리를 종치는 소리로 알고 깨운 것이나 아닌가. 이 제―밀, 졸리기는 퍽도 졸리네. 눈을 들 수가 없이 졸리네, 어찌한 셈이야. 내가 아무리 하여도 무엇에게 홀린 것이로고……. 이렇게 졸린 것 보았나, 여기서 잠을 잤다가는 강시할걸……. 눈을 집어서 얼굴을 씻으면 잠이 달아나겠지."
이렇게 혼자 구성구성하면서 그 옆의 언덕 위로 올라가서 길가로 쌓인 눈을 한주먹 집어서 얼굴을 씻으려 하더니 무엇에 놀랐는지 깜짝 놀라며 머리끝이 쭈뼛하여진다.
이때 그 아내는 남편이 나간 후로, 저렇게 바람이 불고 저렇게 추운데 남편을 내어 보내고 마음이 미안하여 잠도 아니 자고 앉았는데, 오래지 아니하여 밝으려니 하고 밝기만 기다리되 도무지 아니 밝는도다. 가만히 생각한 즉 잠든 지가 얼마 아니 되었는데 뾰죽집의 종소리는 정녕히 들었는지라, 초저녁 일곱 시 반에 치는 종소리를 잠결에 듣고 새벽인 줄 알고 그 남편을 깨워 보내었도다. 다른 날 같으면 초저녁 이때 즈음에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닐 터이지마는, 이날은 풍세가 대단하고 추위가 지독하여 길에 다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 아내는 자기 남편을 잠도 못 자게 공연히 깨워 보내서 추운데 떨고 있을 생각을 하고 더욱 마음에 미안하여 도로 들어오기만 기다린다.
별안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야단스럽게 나면서 무엇에게 쫓겨오는 사람같이 문 열라는 소리가 연거푸 숨차게 난다. 나가서 문을 열어주니 김 서방이 인력거는 문 앞에 내던지고 뛰어들어와 신발도 벗지 아니하고 방으로 들어가서 헐레벌떡거리며 숨이 차서 말도 못하거늘, 그 아내는 눈이 휘둥그래서,
(처) "아, 이게 웬일이오. 글쎄 왜 이리하오."
(김) "여보게, 문 열 때에 내 뒤에 아무도 쫓아오지 아니하던가."
(처) "쫓아오기는 누가 쫓아와요"
(김) "아이고 숨차. 정녕히 아무도 아니 쫓아오던가."
(처) "쫓아오는 사람 없어요."
(김) "누가 내 뒤를 쫓아오는 듯하던데."
(처) "아―, 그래서 이렇게 야단이요. 신발이나 좀 벗으시오."
(김) "아니여, 이것보아. 내가 하도 졸리기에 길옆에 쌓인 눈을 집어서 얼굴을 씻으려 한즉 눈 속에서 이것이 집혀서 깜짝 놀랐어."
(처) "그것이 무엇이요."
(김) "문 단단히 잠갔나. 누구 들어오리. 인제는 우리 부자 되었네."
(처) "글쎄, 문은 단단히 걸었소. 그것이 무엇이라는 말이요."
(김) "이것이 지전 뭉치여. 얼마나 되는가 좀 세어 보아야."
이상스러운 색보자기에 똘똘 뭉쳐 싸고 또 그 속에는 신문지로 한 겹을 쌌는데, 십 원짜리, 오 원짜리, 일 원짜리 지전과 오십 전, 이십 전, 은전이라. 김서방이 지폐를 들고 세어보려 하나 손이 떨려서 세지를 못하고 지폐를 들고 성주대를 내리는 모양이라. 그 아내가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이리 주시오. 내가 세리다." 하고 십원 지폐 이백 장, 오원 지폐 삼백 장, 일원 지폐 오백 장, 은전 삼십이원 오십전, 모두 사천삼십이원 오십전이요.
김서방이 사천원을 당오 풀이로 풀어 보더니,
"이십만냥일세 그랴, 단 만 냥 하나를 손에 만져보지 못하였는데 이십만냥, 참 엄청나다. 여보게 마누라, 이것 가졌으면 자네도 고운 옷 좀 하여 입고 나도 술 좀 먹고 그리하고도 넉넉히 살겠지."
그 아내가 한참 생각하고 아무 말도 없다가 그 남편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더니 하는 말이,
(처) "여보, 그 돈을 그대로 쓰시려오. 이 돈을 잃어버린 사람은 오죽 원통하여 하겠소."
(김) "벌 제―밀 붙을 소리를 다 하네. 내 복으로 내가 얻은 돈인데 그럼 아니 쓰고 무엇하여."
그 아내가 감히 남편의 말을 항거하지는 못하고 한참 동안을 잠잠히 앉았더니,
"여보, 저 지난밤에도 한숨 못 자고, 오늘밤에도 잠을 못 자서 졸리어 죽겠으니, 이 돈은 내게 맡기고 편히 잡시다. 자, 어서 잡시다."
이틀 밤이나 잠을 못 자서 곤한 김서방이 꿈결같이 지전 뭉치를 얻어서 어찌 좋은지 잠잘 생각도 없지마는, 그 돈을 아내에게 맡기고 이불을 쓰고 드러누워 눈을 감고 내일부터 돈 쓸 생각에 그 밤을 다 보내고 다 밝기에 잠을 들어 오정 때까지나 정신 모르고 잠을 자다가, 이웃집 어린아이들 장난하다가 싸우고 우는 소리에 깜짝 놀라 잠을 깨어 벌써 일어나서, 세수도 아니하고 곰방대에 담배 담아 왜성냥에 피워 물고 그 근처에 사는 친구들을 경사나 있는 듯이 청하여 가지고 술집으로 들어가서 모두 술을 먹이고 저도 취하도록 먹을 때에, 술집 주인이 술값이나 못 받을까 염려하여 술을 잘 아니 주려고 한즉, 김서방의 하는 말이
"구차한 사람은 일상 구차한 줄 아는가. 이따 우리 집으로 오면 전후 술값 다 셈하여 줄 터이니 걱정 말고 술을 부르라니."
곰방대 든 왼손으로 바른팔의 토시를 어깨까지 치키면서 고성대담으로 의기양양하여 예전 모양과 딴판이라. 눈이 게슴츠레하여 하늘인지 땅인지 분별하지 못하도록 잔뜩 취케 먹은 후에 길을 휩쓸고, 갈지자 걸음이라더니, 이것은 강남 갈지자걸음으로 간신히 집에 와서 방에도 미처 못 들어가고 문지방에 걸쳐 누워 정신없이 잠들었다.
그 아내가 간신히 끌어다가 아랫목에 뉘었더니 해가 저물어도 깨지 아니하고 밤이 깊어도 깨지 아니하고, 그 이튿날 늦은 아침때 비로소 일어나서 얼굴 씻고 밥을 먹고 가만히 생각하니 어제 일이 맹랑하다. 돈 얻은 일과 술 먹은 일만 생각이 나고 그 외에는 며칠이나 잠을 잤는지, 술 먹고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전연히 알 수 없도다. 그 아내더러 묻는 말이,
"여보게, 내가 며칠이나 잠을 잤나. 어떻게 잠을 잤는지 정신이 하나 없네."
그 아내가 하는 말이,
"인력거 세 얻어오던 날 해지기 전부터 잠자기 시작하여 어젯날 점심때에 일어나서, 술 먹으면 개자식이라는 맹세는 어찌하였는지 일어나는 길로 세수도 아니 하고 바로 나가서 술을 얼마나 자셨기에 그렇게 취하여 들어오셨소. 지금이야 일어났으니 잠도 무던히 잤지마는 어저께는 어찌하여 외상 술을 그렇게 많이 자셨소. 어저께는 술값이 일백팔십 냥이라고 술집 주인이 와서, 집에 돈이 있으니 전후 술값을 다 셈하여 주마 하였다고, 왜 돈 두고 아니 주느냐고 사설하고 갔소. 무슨 돈이 집에 있다고 술값 받으러 오라고 하였습더니까. 집에 돈을 두었는지 어쨌는지 나는 알 수 없으니 술 깨거든 와서 받아가라 하여 보내었소. 필연코 조금 있다가 또 올 것이오."
김서방의 하는 말이,
"왜 그 돈 어찌하였나. 그 속에서 내어 주지 그랴."
그 아내가 새삼스러이 하는 말이,
"그 돈이 무슨 돈이오. 어느 때에 나를 주었소."
김서방이 의아하여 말하기를,
"길에서 얻은 지전 뭉치, 왜 자네가 그때 세어보지 아니하였나. 그래서 사천삼십이원 오십전, 당오 풀이로 이십만 냥 자네에게 맡기고 자지 아니하였나 왜."
"아, 당신이 꿈을 꾸었소. 언제 어느 때에 지전 뭉치를 얻어 가지고 왔소. 나는 지전커녕 종이조각도 못 보았소. 잠을 그만치나 잤으니까 꿈도 많이 꾸었겠지."
김서방이 이 말을 듣더니 하도 기가 막히어 말 한 모금 못하고 잠잠히 앉았더라. 그 아내도 아무 말 없이 앉았더라.
한참 동안을 두 내외가 아무 말 없이 앉았더니 김서방이 입맛을 다시면서 묻는 말이,
"그래, 돈 얻은 것은 꿈이고 친구 데리고 술 먹은 것은 생시라는 말인가. 꿈에 돈 얻어 가지고 생시에 외상술을 먹었으니 술값을 어떻게 하나. 응, 입맛 쓰다."
어느 사람이든지 게으른 사람은 못 살고 부지런한 사람은 잘 사느니, 벌기는 적게 하고 쓰기는 많이 하여 술 먹고 노는 사람 평생이 간구하고 부지런히 벌이하여 적게 쓰고 많이 모아, 다만 한 푼이라도 돈을 모아 두는 사람은 아무리 하더라도 굶든 아니하는지라.
새문 밖 김서방도 일하기 싫고 술 먹기 좋아하여 자나 깨나 생각하기를, 저절로 돈이 생기어 술이나 매일 장취 먹었으면 이 위에 더할 낙이 없을 터인데 저절로 돈 생길 도리가 어디 있으리오. 어느 부처님이 지나다가 지전 뭉치나 길에 빠뜨려서 다른 사람 보기 전에 내가 먼저 얼른 집어 한 구석에 감추어 두고 남모르게 꺼내어 쓰면 술 먹고 싶은 때에 술 먹고 옷 해 입을 때에 옷하여 입고 마음대로 하였으면 좋겠다고 항상 생각하던 차에, 꿈인지 생시인지 이십만 냥 돈을 얻어 좋아하고 하였더니, 술 먹은 것은 적실하고 돈 얻은 것은 꿈이 되어 좋은 일이 허사로다. 가만히 생각한즉 하도 맹랑하고 하도 어이없어 목침 베고 드러누우니 일신이 찌쁘드듯하다.
이리하여서는 아니 되겠다고 그 날부터 부지런히 인력거 벌이할 새, 새벽에 나가서 저녁까지 술도 아니 먹고 용돈 과히 아니 쓰고 한 냥을 벌든지 열 냥을 벌든지 집으로 가지고 가서 마누라에게 맡겨두고, 밥을 조금 많이 담아도 쌀 많이 없어진다고 말을 하며, 반찬을 조금 잘하여 놓아도 용돈 과히 쓴다고 잔말을 하여 아무쪼록 적게 쓰고 아무쪼록 많이 모으려 하며, 벌이를 할 때에도 동리 사람에게 신실하게 보이고 동무에게 밉지 아니케 굴어 다른 인력거꾼은 열 냥 받아 다니는 데를 김서방은 일곱 냥이를 여덟 냥을 받고 다니며 힘을 들여 인력거를 끄니, 동리 양반들이 인력거를 탈 일이 있으면 김서방을 부르고, 심부름을 시킬 일이 있더라도 김서방을 찾아서 그 신실하고 튼튼한 것을 어여삐 보아 삯전도 많이 주고 행하도 후히 하여, 일 년 지나 빚 다 벗고 이태 지나 인력거 사고 삼 년 지나 돈 모았다. 김 서방이 이렇게 부지런히 벌이하고 열심히 돈을 모으려 하고 신실하게 일을 하려고 할 때에, 그 아내도 또한 바느질하며 남의 집 일도 하여 밥도 더러 얻어다가 끼니를 에우고, 반찬도 더러 얻어다가 남편을 공대할 새 그럭저럭 삼사 년이 지내었더라.
섣달 그믐께는 새해를 맞으려고 사람마다 분주하여 빚 받으러 다니는 사람도 있고, 빚에 쫓겨 피신하는 사람도 있고, 세찬에 봉물에 오락가락 세상이 번화한데, 어떠한 집에는 흰떡하고 인절미하고 차례 차리느라고 야단법석하며 어떠한 집에는 아이들 설빔 하나 못 해 주고 돈이 없어 쩔쩔매는 집도 있도다.
김서방도 이삼 년 전에는 섣달 그믐을 당하면 술값이니 쌀값이니 일수, 월수 돈에 몰려 쫓겨 다니느라고 과세도 변변히 잘못하더니, 금년부터는 형세가 늘어서 집안이 넉넉하여 빚 한 푼 갚을 것 없고, 쌀 한 되 취한 데 없다. 김서방이 동리 양반에게 세찬 행하를 많이 얻어가지고 집으로 들어가니, 그 아내는 과세하려고 흰떡을 하며 만두를 하며 혼잣몸이 분주한지라, 방으로 들어가서 심심히 앉았다가 장롱을 열고 보니 어느 틈에 벌써 두 내외 입을 설빔 의복을 다 하여 놓았더라. 김서방의 입이 떡 벌어져서 혼자 빙긋 웃고 마음에 좋아라고 잠깐 앉았다가 다시 일어서서 바깥으로 나와서 그 아내 의하는 일을 거두쳐 주며 이야기하는 말이,
"여보게 마누라, 이번 설에는 마음이 참 좋아. 재작년 설만 하여도 우리가 빚에 쫓기어 고생을 좀 많이 하였나. 술집 늙은이가 술값 받으러 왔을 때에 돈은 없고 할 수 없어 내가 이불 개어놓은 뒤에 가서 자네 행주치마를 쓰고 숨었더니, 술집 늙은이가 자네더러 옥신각신 말하다가 나 숨은 데를 의심하였던지 늙은이가 하는 말이……. '애고 이상하여라. 저 이불 위의 행주치마가 왜 꿈지럭꿈지럭하여…….' 하는 소리에 떠들어볼까 하여 가슴이 두근두근하였네. 그때 만일 그 늙은이가 떠들어보았으면 내 모양이 어찌 될 뻔하였어. 지금 생각하여도 우습고 기가 막히지, 하하하."
일을 다한 후에 저녁밥을 차려가지고 방으로 들어가서 재미있게 먹은 후에 그 아내가 하는 말이,
"우리가 삼 년 전보다 형세가 늘어서 굶지 아니하고 넉넉하게 살며 명절을 재미있게 잘 세는 것은 당신이 술을 끊고 부지런히 벌이한 까닭인데, 그동안에 백사를 절용하여, 쓸 것을 아니 쓰고 돈을 모아 지금은 어지간히 많이 모였소. 얼마나 되는지 시원하게 세어보시려오."
김서방도 본래 자세히 알지 못하여 궁금하던 터이라, 속마음으로 인력거나 두어 채 사서 다른 사람에게 세로 줄 만한 돈이나 모였는가 생각하고 기꺼이 대답한다.
"그것 참 좋은 말일세. 아마 돈천이나 모였겠지. 당오 만 냥이 되어도 걱정 없겠는데."
그 아내가 벌떡 일어서서 장롱 안에서 무슨 뭉치를 두 손으로 무겁게 들고 꺼내어다가 김서방의 앞에 놓으며 말이,
"이것을 세어보니까 모두 삼천삼백원이니 당오 풀이로 이십일만 오천 냥입니다."
김서방이 깜짝 놀라며,
"웬 돈이 이렇게 많이 모였나."
그 아내는 온순한 태도로 조용히 말하되,
"오늘은 내 죄를 용서하여 주시오. 내가 남편에게 죄를 많이 지었소. 당초에 당신이 인력거를 끌고 나가서 지전 뭉치를 얻어 가지고 들어오셔서 그 이튿날 벌이할 생각은 아니하고 그 전날 밤에 약조한 말과 맹세한 말은 모두 잊어버리고 술 자시기를 시작하시기에, 하릴없이 당신을 속이고 당신 술 취한 것을 이용하여 꿈으로 돌려보내고 그 지전 뭉치를 경찰서로 가지고 가서 모든 사정 말을 하고 임자를 찾아주라 하였더니, 경찰서에서 광고를 붙이고 지전 잃은 사람을 사면으로 찾으나 돈 임자가 나서지 아니하는 고로 수일 전에 나를 부르기에 내가 경찰서에 갔더니, 경찰서장이 그 지전 뭉치를 내어주며 이 돈은 삼 년 지내어도 임자가 나서지 아니한즉 네게로 내어주노니, 그것 가지고 잘 살아라 하옵기 대단히 놀랍고 고마워서 가지고 나왔으나, 그동안 삼 년이나 당신을 속인 일이 여편네 된 도리에 대단히 죄송하오니 용서하시오. 경찰서에서 내어주신 돈은 사천삼십이원 오십전이오 그 나머지는 그동안 우리가 모은 돈이오."
김서방은 그 아내의 말만 듣고 잠잠히 앉았더니 별안간 하는 말이,
"아니여, 이것은 또 꿈이로군. 내가 또 지금 꿈을 꾸는 것이야."
그 아내는 김서방의 하는 말이 한편으로는 딱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또 김서방이 돈 많은 것을 보고 도로 예전 마음이 생기어 술이나 먹고 게을러질까 염려하여 엄연한 태도로 말을 한다.
"아니오, 꿈도 아니고 정말인데, 인제는 이것 가졌으면 전답 사고 추수하여 존절히 쓰고 먹으면 구차치 아니하게 살 터이니 우리가 더욱 마음을 굳게 먹고 규모를 부려가며 잘 사십시다."
김서방은 한참 동안이나 말이 없더니 눈에 눈물이 핑 돌면서 하는 말이,
"내가 오늘 이러한 기쁘고 좋은 말 하게 된 것은 모두 자네 덕일세. 마누라가 그때에 그렇게 아니하였더면 나는 그 돈을 다 썼을 터이오. 구차한 놈이 별안간 돈 잘 쓰는 것을 경찰서에서 가만히 있을 리가 있는가. 징역은 갈 데 없이 하였을 것이오. 또 오늘 이렇게 돈이 남을 수가 있었겠는가. 자―, 나는 부자 되었다고 마음 놓을 수는 없으니, 돈은 다 자네가 가지고 논도 사고 땅도 사게, 나는 인력거 벌이는 내어버리지 못하겠네……."
김서방은 인력거를 끌고 병문으로 나아간다.
공진회를 개최한다는 소문이 있더니, 서울서 공진회 협찬회가 조직이 되었는데, 공진회는 총독 정치를 시행한 지 다섯 해 된 기념으로 하는 것이라 하는 말을 김서방의 내외가 들었던지, 경찰서에서 돈을 내어준 것을 항상 고마워하고 총독 정치의 공명함을 평생 감사하게 여기던 터이라, 공진회 협찬회에 대하여 돈 이백 원을 무명씨로 기부한 사람이 있는데, 이 무명씨가 아마 김서방인 듯하다더라.
Nota del editor de Pagera
안국선(1878~1926, 호 천강)의 1915년 한국 최초 단편집 「공진회(共進會)」 수록 단편. 인력거꾼 김서방이 술 취해 귀가한 밤에 길에서 주운 지전 뭉치를 두고 부부가 양심과 욕심 사이에서 갈등하다 끝내 임자에게 되돌려주고, 다섯 해 뒤 공진회 개최 소문이 들려올 때 그날의 결단을 되돌아보는 1915년 식민지 빈민 사실주의 단편. 한국 최초 단편집 「공진회」의 둘째 작품이며, 「금수회의록」(1908) 우화 신소설과 짝짓기하는 안국선 후기 sastra realisme rakyat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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