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四信[제사신]
第四信[제사신]
나는 只今[지금] 小白山中[소백산중]을 通過[통과]하나이다. 正[정]히 午前[오전] 四時[사시]. 겹琉璃窓[유리창]으로 가만히 내다보면 稀微[희미]하 게나마 白雪[백설]을 지고 인 沈沈[침침]한 森林[삼림]이 보이나이다. 우리 列車[열차]는 零下[영하] 二十五[이십오], 六度[육도] 되는 天地開闢以來[천지개벽이래]로 일찍 人跡[인적] 못 들어 본 大森林[대삼림]의 밤 空氣[공기]를 헤치고 헐럭헐럭 달아가나이다. 들리는 것이 오직 둥둥둥둥한 車輪[차륜]소리와 汽罐車[기관차]의 헐덕거리는 소리뿐이로소이다. 우리 車室[차실]은 寢臺[침대] 四個中[사개중]에 二層[이층] 二個[이개]는 비고 나와 金娘[김랑]이 下層[하층] 二個[이개]를 占領[점령]하였나이다. 蒸氣鐵管[증기철관]으로 室內[실내]는 우리 溫突[온돌]이나 다름 없이 훗훗 하여이다.
나는 金娘[김랑]의 자는 얼굴을 보았나이다. 담요를 가슴까지만 덮고 입술을 半[반]쯤 열고 부드러운 숨소리가 무슨 微妙[미묘]한 音樂[음악]같이 들리더이다. 그 가는 붓으로 싹그은 듯한 눈썹하며 방그레 웃는 듯한 두 눈하며 여러 날 危險[위험]과 勞困[노곤]으로 좀 해쓱하게 된 두 뺨하며 입술이 약간 가뭇가뭇하게 탄 것이 도리어 風情[풍정] 있더이다. 나는 이 사람을 사랑한지 오래거니와 아직 이 사람의 其間[기간]의 變遷[변천]과 經過[경과]를 仔細[자세]히 들어 볼 機會[기회]가 없었나이다. 上海[상해]서 精誠[정성]된 看護[간호]를 받을 때 그의 마음이 如前[여전]히 天使[천사] 같거니 하기는 하였으나 그 眞僞[진위]를 判定[판정]할 機會[기회]는 없었나이다. 나는 이제야 그 좋은 機會[기회]라 하였나이다. 대개 아무리 外飾[외식]에 익숙한 者[자]라도 잘 때엣 容貌[용모]와 態度[태도]는 숨기지 못하는 것이로소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의 자는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性情[성정]을 大槪[대개]는 正確[정확]하게 判斷[판단]하는 것이로소이다. 죽은 얼굴은 더욱 그의 性格[성격]을 잘 發表[발표]한다 하나이다. 그러나 家族 外[가족외]에는 남의 자는 얼굴을 보기 어려운 것이니 이러한 硏究[연구]의 最好[최호]한 機會[기회]는 車中[차중]이나 船中[선중]인가 하나이다. 나는 그대의 자는 얼굴을 여러 번 보았나이다. 그러고 그 얼굴로 그대의 性情[성정]을 많이 判斷[판단]하였나이다. 이제 그 솜씨를 가지고 金娘[김랑]의 자는 얼굴을 硏究[연구]하려 하였나이다.
맨처음 그의 얼굴과 숨소리가 小兒[소아]의 그것과 같이 和平[화평]함은 그의 心情[심정]이 善[선]하고 快暢[쾌창]함을 보임이요, 그의 방그레한 웃음을 띄움은 어떤 處地[처지] 어떤 事件[사건]을 當[당]하거나 絶望[절망]하고 悲痛[비통]하지 아니하고 恒常[항상] 主宰[주재]의 攝理[섭리]를 依支[의지]하여 마음을 和樂[화락]하게 가짐을 보임이니, 만일 그렇지 아니하면 그렇게 큰 困難[곤란]을 겪은 뒤에는 반드시 얼굴에 苦悶不平[고민불평]한 빛이 보일 것이로소이다. 그의 숨소리가 順[순]하고 長短[장단] 같음은 그 이 肉體[육체]와 心情[심정]의 完全[완전]히 調和[조화]함을 보임이니 숨소 리의 不齊[부제]함은 무슨 不調和[부조화]가 있음이로소이다. 그는 어젯밤에 누운 대로 端正[단정]한 姿勢[자세]를 維持[유지]하였으니 이는 그의 心情[심정]이 端雅[단아]하고 沈着[침착]함을 보임이로소이다. 或[혹] 베개를 목에 걸고 고개를 번적 재낀다든가 입으로 침을 질질 흘린다든가 팔과 다리를 모양 없이 내어 던지는 사람은 반드시 맘의 主[주]대 없고 亂雜[난잡]함을 보임이로소이다. 입을 꼭 다물지 아니함은 意志[의지]가 弱[약]하다든가 남에게 依賴[의뢰]하려는 性情[성정]을 表[표]함이어니와 조금 방싯하게 입을 연 것은 도리어 美[미]를 더하는 點[점]이로소이다. 只今[지금] 우리 金娘[김랑]은 마치 아기가 그 慈母[자모]의 품에 안긴 듯이 마음을 푹 놓고 極[극]히 安穩[안온]하게 자는 것이로소이다. 나는 한참이나 이 純潔[순결]한 女性[여성]의 얼굴을 凝視[응시]하다가 눈을 감고 壁[벽]에 기대어 생각 하였나이다. 果然[과연] 아름답도소이다. 이 아름다움을 보고 嘆美[탄미]하고 愛着[애착]하는 情[정]이 아니 날 사람이 있사오리이까. 造物[조물]은 嘆美[탄미]하기 爲[위]하여 이런 美[미]를 짓고 이런 美[미]를 鑑賞[감상]하는 힘을 人生[인생]에게 준 것이로소이다. 그 동안 여러 危險[위험]과 困難[곤란]에 餘裕[여유] 없는 胷中[흉중]은 다시 舊[구]에 復[복]하여 散亂[산란]하기 始作[시작]하였나이다. 나는 六年前[육년전] 某女學校[모여학교] 寄宿舍[기숙사]에서「奔走[분주]하신데」하고 살작 낯을 붉히던 그를 回想[회상]하고, 日比谷[일비곡]의 一場夢[일장몽]을 回想[회상]하고, 그때 나의 憧憬[동경]과 苦悶[고민]을 생각하고, 또 내가 지난 四[사], 午年間[오년간]에 겪은 모든 精神的變遷[정신적변천]과 苦悶[고민]이 太半[태반]이나 只今[지금] 내 앞에 누워자는 一短軀[일단구]에 原因[원인]함을 생각 하였나이다. 아마 그는 내가 自己[자기]를 爲[위]하여 겪은 모든 것을 모를 것이로소이다. 그래서 같이 死生間[사생간]에 出入[출입]하면서도 또는 같이 無人[무인]한 車室內[차실내]에 있으면서도 彼此[피차]의 心中[심중]은 大端[대단]히 懸殊[현수]한 것이로소이다. 胷壁[흉벽] 하나를 隔[격]한 사람과 사람 사이에 心中[심중]은 마치 此界[차계]와 他界[타계]와 같아야 其間[기간]에 交通[교통]이 생기게 前[전]에는 決[결]코 接觸[접촉]하지 못하는 것이로소이다. 그 交通機關[교통기관]은 言語[언어]와 感情[감정]이니 이 機關[기관]으로 彼此[피차]의 內情[내정]을 査悉[사실]한 後[후]에야 和親[화친]도 생기고 排斥[배척]도 생기는 것이로소이다. 그러므로 朋友[붕우]라 함은 서로 理解[이해]하여 各其[각기] 他人[타인]에게 自己[자기]와의 共通點[공통점]을 發見[발견]함으로 생기는 關係[관계]라 할 수 있는 것이로소이다. 그러나 사랑은 이와는 딴 問題[문제]니 그의 性情[성정]이며 思想言行[사상언행]이 或[혹] 사랑의 原因[원인]도 되며, 或[혹] 이미 成立[성립]한 사랑을 强[강]하게 하는 效力[효력]은 있으되 그것은 理解[이해]한 後[후]에야 비로소 사랑이 成立[성립]되는 것이 아니로소이다. 말이 너무 곁길로 들었나이다. 나는 내 心情[심정]을 吐說[토설]함이 金娘[김랑]에게 어떠한 생각을 줄까 하였나이다. 내가 自己[자기]를 爲[위]하여 全人格[전인격]의 變動[변동]과 苦悶[고민]을 받은 줄을 말하면 그의 感想[감상]이 어떠할는가. 自己[자기]를 爲[위]하여 五[오], 六年[육년]을 苦悶中[고민중]으로 지낸 男子[남자]인 줄을 알 때에 果然[과연] 어떠한 感想[감상]이 생길는가. 毋論[무론] 그 事情[사정]을 듣는다고 없던 사랑이 생길 理[리]는 없으련마는 自己[자기]를 爲[위]한 犧牲[희생]을 可憐[가련]하게는 여기리라 하였나이다. 設或[설혹] 그가 내 陳情[진정]을 듣고 도리어 성내어 나를 排斥[배척]하리라 하더라도 稀微[희미]한 怨望[원망]과 함께 오래 품어 오던 情[정]을 바로 그 當者[당자]를 向[향]하여 吐露[토로]하기만 하여도 훨씬 속이 시원하고 달콤한 맛이 있을 듯하더이다. 그래 나는 제가 잠을 깨기만 하면 곧 그러한 말을 하리라 하였나이다. 그러고 다시 눈을 떠 그의 얼굴을 보매 如前[여전]히 安穩[안온]히 자더이다. 나는 다시 생각하였나이다. 設或[설혹] 저편이 나를 사랑한다 한들 내가 저를 사랑할 權利[권리]가 있을까. 나는 旣婚男子[기혼남자]라, 旣婚男子[기혼남자]가 다른 女性[여성]을 사랑함은 道德[도덕]과 法律[법률]이 禁[금]하는 바라, 그러나 내 아내에게는 어찌하여 사랑이 없고 도리어 法律[법률]과 道德[도덕]이 사랑하기를 禁[금]하는 金娘[김랑]에게 사랑이 가나이까. 法律[법률]과 道德[도덕]이 人生[인생]의 意志[의지]와 情[정]을 거스르기 爲[위]하여 생겼는가. 人生[인생]의 意志[의지]와 情[정]이 所謂[소위] 惡魔[악마]의 誘惑[유혹]을 받아 道德[도덕]과 法律[법률]을 違反[위반]하려 하는가. 이에 나는 道德[도덕]‧法律[법률]과 人生[인생]의 意志[의지]와 어느 것이 原始的[원시적]이며 어느 것이 더욱 權威[권위]가 있는가를 생각하여야 하겠나이다. 人生[인생]의 意志[의지]는 天性[천성]이니 天地開闢[천지개벽]때부터 創造[창조]된 것이요, 道德[도덕]이나 法律[법률]은 人類[인류]가 社會生活[사회생활]을 始作[시작]함으로부터 社會[사회]의 秩序[질서]를 維持[유지]하기 爲[위]하여 생긴 것이라. 即[즉] 人生[인생]의 意志[의지]는 自然[자연]이요, 道德[도덕]·法律[법률]은 人爲[인위]며 따라서 意志[의지]는 不可變[불가변]이요, 絶對的[절대적]이요, 道德[도덕]·法律[법률]은 可變[가변]이요, 相對的[상대적]이라. 그러므로 吾人[오인]의 意志[의지]가 恒常[항상] 道德[도덕]과 法律[법률]에 對[대]하여 優越權[우월권]이 있을 것이니 그러므로 내 意志[의지]가 現在[현재] 金娘[김랑]을 사랑하는 以上[이상] 道德[도덕]과 法律[법률]을 違反[위반]할 權利[권리]가 있다 하나이다.
내가 이를 違反[위반]하면 道德[도덕]과 法律[법률]은 반드시 나를 制裁[제재]하리라. 或[혹] 나를 姦淫者[간음자]라 하고 或[혹] 重婚者[중혼자]라 하여 社會[사회]는 나를 排斥[배척]하고 法律[법률]은 나를 處罰[처벌]하리이다. 그러나 내가 만일 金娘[김랑]을 사랑함이 社會[사회]와 法律[법률]의 制裁[제재]보다 重[중]타고 認定[인정]할 때에는 나는 그 制裁[제재]를 甘受[감수]하고도 金娘[김랑]을 사랑할지니 大槪[대개] 靈[영]의 要求[요구]가 有形[유형]한 온갖 것보다도 , 天下[천하]보다도 宇宙[우주]보다도 더 重[중]함이로소이다. 現代人[현대인]은 너무 道德[도덕]과 法律[법률]에 靈性[영성]이 麻痺[마비]하여 靈[영]의 權威[권위]를 認定[인정]못하나니 이는 生命[생명] 있는 人生[인생]으로서 生命[생명] 없는 機械[기계]가 되어버림과 다름이 없나이다. 예수가 十字架[십자가]에 박힘도 當時[당시]의 道德[도덕]과 法律[법률]에 違反[위반]하였음이요, 모든 國土[국토]와 革命 家[혁명가]가 重罪人[중죄인]의로 或[혹]은 賤役[천역]을 하며 或[혹]은 生命[생명]을 잃음도 靈[영]의 要求[요구]를 貴重[귀중]하게 여기어 現時[현시]의 制度[제도]를 違反[위반]함이로소이다. 大槪[대개] 道德[도덕]과 法律[법률]을 違反[위반]함에는 二種[이종]이 있으니, 一[일]은 私慾[사욕], 物慾[물욕], 情慾[정욕]을 滿足[만족]하기 爲[위]하여 違反[위반]함이니 이때에는 반드시 良心[양심]의 苛責[가책]을 兼受[겸수]하는 것이요, 基二[기이]는 良心[양심]이 許[허]하고 許[허]할뿐더러 獎勵[장려]하여 現社會[현사회]를 違反[위반]케 하는 것이니, 이는 法律上[법률상]으로 罪人[죄인]이라 할지나 他日[타일] 그의 爲[위]하여 싸우던 理想[이상]이 現實[현실]되는 날에 그는 敎祖[교조]가되고 國祖[국조]가 되고 先覺者[선각자]가 되어 社會[사회]의 追崇[추숭]을 받는 것이니, 歷史上[역사상]에 모든 偉人傑士[위인걸사]는 대개 이러한 人物[인물]이로소이다. 나는 不幸[불행]히 凡人[범인]이 되어 政治上[정치상] 또는 宗敎上[종교상] 이러한 革命家[혁명가]가 되지 못하나 人道上[인도상] 一革命者[일혁명자]나 되어 보려 하나이다.
내가 金娘[김랑]을 사랑함이 果然[과연] 이만한 高尙[고상]한 意義[의의]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나 이미 내 全靈[전령]이 그를 사랑하는 以上[이상] 나는 決[결]코 社會[사회]를 두려 내 靈[영]의 要求[요구]를 抑制[억제]하지 아니하려 하나이다. 或[혹] 社會[사회]가 나를 惡人[악인]으로 여겨 다시 나서지 못하게 한다 하더라도 나는 내 靈[영]의 神聖[신성]한 自由[자유]를 죽여서까지 肉體[육체]와 名譽[명예]의 安全[안전]을 圖謀[도모]하려 아니하나이다. 나는 日本人[일본인]의 情死[정사]를 부러워하나니 대개 제가 사랑하는 者[자]를 爲[위]하여 목숨을 버리기조차 辭讓[사양]히 아니하는 그 精神[정신]은 果然[과연] 아름답소이다. 저 或[혹]은 名譽[명예]를 爲[위]하여, 或[혹]은 身體[신체]나 財産[재산]을 爲[위]하여 사랑하던 者[자] 버리기를 식은 밥 먹듯하는 種族[종족]을 나는 미워하나이다. 나도 그러한 懦弱[나약]하고 冷淡[냉담]한 피를 받았으니 果然[과연] 저 外國人[외국인] 모양으로 사랑하는 者[자]를 爲[위]하여 生命[생명]까지라도 아끼지 않게 될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나는 이제 金娘[김랑]을 對[대]하여 이 實驗[실험]을 하여 보려 하나이다. 내가 日前[일전] 破船[파선]하였을 때에 한 行動[행동]도 이 方面[방면]의 消息[소식]을 傳[전]함인가 하나이다. 人生[인생]의 一生[일생]이 果然[과연] 우습지 아니하리이까. 오래 살아야 七十 年[칠십년]에 구태여 社會[사회] 앞에 꿇어 엎디어 온갖 服從[복종]과 온갖 阿謟[아첨]을 하여 가면서까지 奴隸的安全[노예적안전]과 快樂[쾌락]에 戀戀[연연]할 것이랴 무엇이니이까. 제가 正義[정의]로 생각하는 바를 따라 勇往邁進[용왕매진]하다가 成[성]하면 좋고 敗[패]하면 暴風[폭풍]에 떨어 지는 꽃 모양으로 훌적 날아가면 그만이로소이다. 나는 벌떡 일어섰나이다.
두 주먹을 불끈 부르쥐고, 〈옳다 怯[겁]을 버려라. 내 사랑하는 金娘[김랑]을 爲[위]하여 全心身[전심신]을 바치리라.〉 하였나이다 . 내 발소리에 깨었는지 金娘[김랑]이 눈을 뜨며.
『추우십니까?』
『아니올시다. 너무 오래 잤기로 運動[운동]을 좀 하노라고 그럽니다.』
『只今[지금] 몇 時[시]야요?』
하면서 일어 앉는다.
『다섯時[시] 五分[오분]이올시다. 좀 더 주무시지요. 아직 이른데.』
하고 나는 異常[이상]하게 수줍은 맘이 생겨 金娘[김랑]을 正面[정면]으로 보지 못하고 窓[창]도 내다보며 電燈[전등]도 보며 하였나이다.
『여기가 어딥니까?』
『小白山[소백산] 森林[삼림] 속이올시다. 아직까지 두 발 달린 짐승 들어 보지 못한 聖殿[성전]인데 只今[지금]은 鐵道[철도]가 생겨 차차 森林[삼림]도 採伐[채벌]하고 아담과 말하던 새와 사람들도 가끔 두 발 달린 짐승의 銃[총]소리에 놀랍니다. 地球上[지구상]에는 이 두 발 달린 짐승이 過[과]히 繁盛[번성]하여서 모처럼 하나님이 數十萬年[수십만년] 품 들여서 만들고 새겨 놓은 地球[지구]를 말 못되게 보기 숭하게 만듭니다. 自然[자연]을 이렇게 버려 놓는 모양으로 사람의 靈性[영성]에도 붉은 물도 들이고 푸른 물도 들이고 깍기도 하고 새기기도 하여 모양 없이 만들어 놓습니다. 보시오. 우리 身體[신체]도 그러합지요. 모두 무슨 凶物[흉물]스러운 헝겊 으로 뒤싸고 禮儀[예의]니 習慣[습관]이니 하는 오라줄로 꽁꽁 동여매고….』
나는 나오는 대로 한참이나 지껄이다가 過[과]히 冗長[용장]한 듯하여 말을 뚝 끊고 金娘[김랑]의 얼굴을 보았나이다. 金娘[김랑]은 빙그레 웃으면서.
『그래도 衣服[의복]도 없고 文明[문명]도 없으면 이 추운 땅에서야 어떻게 삽니까?』
『못 살지요. 元來[원래]로 말하면 地球[지구]가 이렇게 식어서 눈이 오고 얼음이 얼게 되면 차차차차 赤道地方[적도지방]으로 몰려가 살 터지지요 말하자면 赤道地方[적도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짜장 살 權利[권리] 있는 사람 이요, 溫帶[온대]나 寒帶[한대]에 사는 사람들은 天命[천명]을 拒逆[거역]하여 사는 것이외다그려. 그러니까 赤道地方[적도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天命[천명]대로 自然[자연]스럽게 살아가지마는 溫帶[온대]나 寒帶[한대]에 사는 사람들은 所謂[소위]「自然[자연]을 征服[정복]」한다 하여 꼭 天命[천명]을 거슬리는 生活[생활]도 합니다그려. 그네의 所謂[소위] 文明[문명]이라는 것이 即[즉] 天命[천명]을 拒逆[거역]하는 것이외다. 爲先[위선] 우리로 보아도 한 時間[시간]에 十里[십리]씩 걸어야 옳게 만든 것을 꾀를 부려 百餘里[백여리]씩이나 걷지요. 눈이 오면 추워야 옳을 텐데 우리는 只今[지금] 따뜻하게 앉았지요……. 그러니까 文明[문명]속에 있어서는 하나 님을 섬길 수 없어요.』
『아 그러면 先生[선생]님께서는 文明[문명]을 詛呪[저주] 하십니다그려. 그러나 우리 人生[인생] 치고 文明[문명] 없이 살아갈까요? 톨스토이가 제아무리 文明[문명]을 詛呪[저주]한다 하더라도 그 亦是[역시]「家屋[가옥]」속에서「料理[요리]」한 飮食[음식] 먹고「機械[기계]」로 된 衣服[의복] 입고 지내다가 마침내는 鐵道[철도]를 타다가 停車場[정차장]에서「醫 師[의사]」의 治療[치료]를 받다가 죽지 아니하였읍니까.』
나는 이 말에는 대답하려 아니하고 單刀直入[단도직입]으로 金娘[김랑]의 事情[사정]을 探知[탐지]하려 하였나이다. 金娘[김랑]의 述懹[술양]은 如左[여좌]하여이다.
내가 東京[동경]을 떠난後[후] 一年[일년]에 金娘[김랑]도 某高等女學校[모고등여학교]를 卒業[졸업]하고 仍[잉]하여 女子大學校[여자대학교] 英文 學科[영문학과]에 入學[입학]하였나이다. 元來[원래] 才質[재질]이 超越[초월]한 者[자]라 入學以後[입학이후]로 學業[학업]이 日進[일진]하여 校門[교문]에 朝鮮才媛[조선재원]의 名聲[명성]이 赫赫[혁혁]하였나이다. 그러나 꽃과 같이 날로 피어가는 그의 아름다운 얼굴에는 醉[취]하여 모여드는 蝴蝶[호접]이 한둘이 아니런 듯하여이다. 그 中[중]에 一人[일인]은 姓名[성명]은 말할 必要[필요]가 없으나 當時[당시] 朝鮮留學生界[조선유학생계]에 秀才[수재]이던 某氏[모씨]러이다. 氏[씨]는 帝大[제대] 文學科[문학과]에 在[재]하여 才名[재명]이 隆隆[융융]하던 中[중], 그 中[중]에도 獨逸文學[독일문학]에 精詳[정상]하고 또 天稟[천품]의 詩才[시재]가 있어 입을 열면 노래가 흐르고 붓을 들면 詩[시]가 솟아나는 者[자]러이다. 朝鮮學 生[조선학생]으로 더구나 아직 靑年學生[청년학생]으로 日本文壇[일본문단]의 一方[일방]에 明星[명성]의 譽[예]를 得[득]한 者[자]는 아직껏 아마 氏[씨]밖에 없었으리이다. 氏[씨]의 詩文[시문]이 어떻게 美麗[미려]하여 人[인]을 [뇌쇄]하였음은 일찍 氏[씨]의《少女[소녀]에게》라 하는 詩集[시집]이 出版[출판]됨에 그 後[후] 一個月[일개월]이 못하여 無名[무명]한 靑年女子[청년여자]의 熱情[열정]이 橫溢[횡일]하는 書翰[서한]을 無數[무수]히 受[수]함을 보아도 알 것이로소이다. 말하자면 金娘[김랑]의 萬人[만인]을 惱殺[뇌쇄]하는 美貌[미모]를 某氏[모씨] 그 筆端[필단]에 가진 것이라 할 것이로소이다. 金娘[김랑]과 某氏[모씨]와는 詩文[시문]의 紹介[소개]로 不識不知間[불식부지간] 相思[상사]하는 愛人[애인]이 되었나이다. 그러하여 爲先[위선] 雙方[쌍방]의 胷中[흉중]에 火焰[화염]이 일어나고 다음에 詩[시]와 文[문]이 되고 다음에 熱烈[열렬]한 書翰[서한]이 되고 또 다음에 偶然[우연]한 對面[대면]이 되고 마침내 핑계 있는 訪問[방문]이 되어 드디어 떼려도 뗄 수 없는 愛[애]의 融合[융합]이 된 것이로소이다. 或[혹] 新春[신춘]의 佳節[가절]에 手[수]를 携[휴]하고 郊外[교외]의 春景[춘경]을 爛漫[난만]한 百花[백화]의 熱烈[열렬]한 情熖[정염]을 돋우며 朗朗[낭랑]한 종달의 소리에 靑春[청춘]의 生命[생명]의 喜悅[희열]을 노래하고 或[혹] 瀧川高尾[농천고미]에 晩秋[만추]의 色[색]을 賞[상]하여 飄颻[표요]하는 落葉[낙엽]에 人生[인생] 無常[무상]을 歎[탄]하고 冷冷[냉랭]한 秋水[추수]에 뜨거운 靑春[청춘]의 紅淚[홍루]를 뿌리기도 하여 春去春來[춘거춘래] 三個[삼개]의 星霜[성상]을 꿈같이 달고 꿈같이 朦朧[몽롱]하게 지내었나이다. 그러나 某氏[모씨]는 天才[천재]의 흔히 있는 肺病[폐병]이 있어 몸은 날로 衰弱[쇠약]하고 詩情[시정]은 날로 淸純[청순]하여 가다가 去年[거년] 春三月[춘삼월] 피는 꽃 우는 새의 아까운 人生[인생]을 버리고 구름 위 白玉樓[백옥루]의 永遠[영원]한 졸음에 들었나이다. 其後[기후] 金娘[김랑]은 破鏡[파경]의 紅淚[홍루]에 속절없이 羅衿[나금]을 적시다가 斷然[단연]히 志[지]를 決[결]하고 一生[일생]을 獨身[독신]으로 文學[문학]과 音樂[음악]에 보내리라 하여 어떤 獨逸宣敎師[독일선교사]의 紹介[소개]로 伯林[백림]으로 向[향]하던 길에 今次[금차]의 難[난]을 遭[조]한 것이로소이다. 黃海中[황해중]에서 不歸[불귀]의 客[객]인 된 그 西洋婦人[서양부인]은 即[즉] 金娘[김랑]이 依託[의탁]하려던 獨逸婦人[독일부인]인 줄을 이제야 알았나이다. 娘[낭]은 言畢[언필]에 潜然[잠연]히 淚[루]를 下[하]하고 鳴咽[명인]을 禁[금]치 못하며 나는 고개를 돌려 주먹으로 눈물을 씻었나이다.
슬프다 某氏[모씨]여, 朝鮮[조선] 사람은 某氏[모씨]의 夭逝[요서]를 爲[위]하여 痛哭[통곡]할지어다. 槿花半島[근화반도]의 高麗[고려]한 江山[강산]을 누가 있어 咏嘆[영탄]하며 四千年[사천년] 묵은 民族[민족]의 胷中[흉중]을 누가 있어 읊으리이까. 山谷[산곡]의 百合[백합]을 보는 이 없으니 속절없이 바람에 날림이 될지요, 柳間[유간]의 黃鶯[황앵]을 듣는 이 없으니 無心[무심]한 空谷[공곡]이 反響[반향]할 따름이로소이다. 우리는 이러한 天才詩人[천재시인]을 잃었으니 이 또한 하늘의 뜻이라 恨歎[한탄]한들 미치지 못하거니와 幸[행]여나 마음 있는 누가 그의 무덤 위에 한 줌의 꽃을 供[공]하고 한 방울 눈물이나 뿌렸기를 바라나이다.
曙色[서색]이 窓[창]에 비치었나이다. 하늘과 땅이 온통 雪白[설백]한 中[중]에 永遠[영원]의 沈黙[침묵]을 깨뜨리고 우리 列車[열차]는 數百名[수백명] 各種人[각종인]을 싣고 헐덕헐덕 달아나나이다. 이 列車[열차]는 무슨 뜻으로 달아나고 車中[차중]의 人[인]은 무슨 뜻으로 어디를 向[향]하고 달아나나이까. 봄이 가고 겨울이 오니 꽃이 피고 꽃이 지며 밤이 가고 낮이 오니 해가 뜨고 달이 지도다. 꽃은 왜 피고 지며 해와 달은 왜 뜨고 지나이까. 쉬임 없이 天軸[천축]이 돌아가니 滿天[만천]의 星辰[성진]이 永遠[영원]히 맴돌이를 하도다. 저 별은 왜 반짝반짝 蒼穹[창궁]에 빛나고 우리 地球[지구]는 왜 해바퀴를 싸고 빙글빙글 돌아가나이까. 나라와 나라이 왜 적었다 컸다가 있다가 없어지며 人生[인생]이 어이하여 났다가 자라다가 앓다가 죽나이까. 나는 어이하여 났으며 金娘[김랑]은 어이하여 났으며 그대는 어이하여 났으며 나는 무엇하러 小白山中[소백산중]으로 달아니고 그대는 무엇하러 漢江[한강]가에 머무나이까. 나는 모르나이다, 모르나이다.
그러나 하고 많은 나라에 나와 그대와가 어찌하여 한나라에 나고, 하고 많은 時期[시기]에 나와 그대와가 어찌하여 同時[동시]에 나고, 하고 많은 사람에 나와 그대와가 어찌하여 사랑하게 되었나이까. 나와 金娘[김랑]이 어찌하여 六年前[육년전]에 만났다가 헤어지고 黃海[황해]에서 같이 죽다가 살아나고 이제 同一[동일]한 車室[차실]에서 마주 보고 談話[담화]하게 되었나이까. 나는 모르나이다. 모르나이다. 그대를 腹中[복중]에 둔 그대의 母親[모친]과 나를 腹中[복중]에 둔 나의 母親[무친]과는 서로 그대와 나와의 關係[관계]를 생각하였으리까. 腹中[복중]에 있는 그대와 나와는 서로 나와 그대를 생각하였으리이까. 그대와 나와 初對面[초대면] 하기 前日[전일]에 그대와 나와는 翌日[익일]의 相面[상면]을 期[기]하였으리이까. 그대와 나와 初對面[초대면]하는 日[일]에 그대와 나와의 翌日[익일]의 愛情[애정]을 想像[상상]하였으리이까. 서로 생각도 못하던 사람과 사람을 만나게 하는 者[자] , 그 무엇이며 서로 제 各各[각각] 제 境遇[ 경우]에 자라던 사람과 사람의 맘을 서로 交通[교통]케 하는 者[자] , 그 무엇이리이까. 나는 모르나이다, 모르나이다.
알지 못케라. 우리가 가장 멀게 생각하는 亞弗利加[아불리가]의 內地[내지]나 南美[남미]의 南端[남단]에 휘파람하는 靑年[청년]이 나의 親舊[친구]가 아닐는지. 뽕 따고 나물 캐는 아리따운 處女[처녀]가 나의 愛人[애인]이 아닐는지. 나는 모르나이다. 모르나이다.
이제 金娘[김랑]과 나와 서로 對坐[대좌]하였으니 兩個[양개]의 靈魂[영혼]이 제 말대로 鼓動[고동]하나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微妙[미묘]한 줄이 萬人[만인]의 맘과 맘에 往來[왕래]하니 이 줄이 明日[명일]에 甲[갑]과 乙[을]과를 어떠한 關係[관계]로 맺아 놓고 丙丁[병정]과 戊巳[무사]와를 어떠한 關係[관계]로 맺아 놓으리이까. 나는 모르나이다, 모르나이다. 金娘[김랑]과 내가 將次[장차] 어떠한 關係[관계]로 웃을는지 울는 지도 나는 모르나이다, 모르나이다.
나는 이제는 明日[명일] 일을 豫想[예상]할 수 없고 瞬間[순간] 일을 豫想[예상]할 수 없나이다. 다만 萬事[만사]를 造物[조물]의 意[의]에 付[부]하고 이 列車[열차]가 우리를 실어가는 데까지 우리 몸을 가져가고 이 靈魂[영혼]을 끌어가는 데까지 우리는 끌려 가려 하나이다.
(一九一九年十一月[일구일구년십일월]《靑春》[청춘]第九號[제구호], 十一號[십일호] 所載[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