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조 칙궁(자기 몸을 닦음) — 첫째 단: 새벽의 몸가짐과 마음의 다스림
제1조 칙궁(자기 몸을 닦음) — 첫째 단: 새벽의 몸가짐과 마음의 다스림
거처에 절도가 있고 의관과 띠가 단정하며 백성을 다스리되 장중함으로 임하는 것은 옛 도(道)이다.
동트기 전에 일어나 등불을 밝히고 세수를 하며, 옷을 가다듬고 띠를 매며, 조용히 단정하게 앉아 신기(神氣)를 함양한다. 잠시 뒤에 곧 생각의 실마리를 풀어 오늘 행해야 할 일을 가려서 먼저 그 선후(先後)와 차례를 정한다. 먼저 어느 첩문(牒文)을 처결하고, 다음에 어느 영(令)을 내릴지를 모두 마음속에 또렷이 두며, 그 첫째 건을 가지고 그 잘 처결할 길을 생각하고 다음 둘째 건을 가지고 또 그 잘 처결할 길을 생각한다. 힘써 사욕(私欲)을 끊고 오로지 천리(天理)를 따른다. 해뜨기 전에 등불을 끄고 한결같이 단정하게 앉는다. 날이 밝아 시중드는 종이 시각이 되었음을 고하면(이미 부임편에서 보였다) 곧 창을 열고 참알(參謁, 아침 인사)을 받는다. 검은 베로 만든 갓은 본디 길에서 햇볕을 가리는 것이라 평상복도 아니고 더구나 공복(公服)도 아니다. 백성을 다스리는 자는 마땅히 늘 오사모(烏紗帽)에 푸른 창의(敞衣)를 입어야 한다. 지금 경관(京官)으로 입직한 자가 모두 그러한데 외관(外官)이 어찌 홀로 그렇지 않을 것인가. 큰 좌기(坐起)가 있는 날에는 마땅히 단령포(團領袍)에 정대(鞓帶)와 검은 신을 갖추고 의자에 앉아 알현을 받는다. 무사(武事)로 인해 큰 좌기가 있을 때는 마땅히 융복(戎服)을 갖추고 호수립(虎鬚笠)과 사첩리(紗帖裏)에 검을 차야 한다. 더러 활달함을 즐기고 구속됨을 싫어하여 종건(騣巾)에 협수의(夾袖衣)만 입거나, 망건도 안 쓰고 버선도 안 신은 채 이민(吏民)에게 임하는 자가 있는데 크게 옳지 못하다. 《시경》에 이르기를 「위엄 있고 위엄 있는 위의(威儀)는 오직 덕의 모퉁이다」 하였고, 또 「위의를 공경하고 삼가니 백성의 본보기가 되라」 하였으니, 옛 도가 이러하다. 위의가 한 번 어그러지면 백성이 본받을 바를 잃어 무엇으로 다스림을 이루겠는가. 저녁에 관아(官衙)를 파할 때는 가을·겨울에는 늦게, 봄·여름에는 일찍 함이 마땅하다(이미 부임편에서 보였다). 호대초(胡大初)는 말하기를, 「하루의 일은 인시(寅時, 새벽 3~5시)에 있다. 오늘 어떤 일을 결단해야 하고, 어떤 첩문을 보고해야 하며, 어떤 부세(賦稅)와 어떤 색목(色目)을 분별해야 하며, 가두어 두었던 어느 사람을 풀어 주어야 할 것인지를 때때로 살피고 부지런히 행하라」 하였다. 여공저(呂公著)는 군수가 되어 늘 새벽 다섯 점에 일어나 등불을 잡고 안독(案牘, 공문서)을 살피고, 새벽이 되면 청(廳)에 나가 백성의 송사를 결단하였다. 물러나서는 편한 자리에 앉아 한가히 거처하기를 재계하듯이 하였고, 빈객과 동료들이 찾아오는 것은 시각에 구애하지 않았다. 그 까닭에 군에는 묵은 일이 없고 아랫사람의 사정이 위에 통하였다. 무릇 여섯 군을 다스리는 동안 이를 늘 그렇게 하였다. 당(唐)의 배요경(裵耀卿)이 다스리던 근정청(勤政廳) 앞에 큰 오동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새벽이 되면 새 떼가 날아 모여들었다. 이를 출청(出廳)할 때를 알리는 신호로 삼아 「보효조(報曉鳥, 새벽을 알리는 새)」라 불렀고 당시 사람들이 그것을 아름답게 여겼다. 한지(韓祉)가 감사(監司)가 되어, 날이 새기 전에 세수를 하고 갓을 쓰고 도포를 입고 자리에 나가 앉되, 좌측에 베개나 안석이나 게으른 책상을 두지 않았다. 몸을 곧추 세우고 발꿈치를 모으고 두 손을 모아 앉아 종일토록 한 번도 기울거나 흔들리지 않았으며, 창살에 한 번도 기대지 않았다. 그와 더불어 삼 년을 지낸 자가 한 번도 그가 피곤하여 하품하거나 기지개 켜는 모습을 본 일이 없다 한다. 늦은 식사를 마치면 늘 뒤뜰을 거니는데 그 돌아 도는 모양이 곧은 자처럼 분명하여 처음과 끝이 한결같았다.
공무에 여가가 있거든 반드시 정신을 모으고 생각을 가다듬어 백성을 편안케 할 방책을 헤아리고, 지극한 정성으로 좋은 길을 찾아야 한다.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오제공(吳濟公)이 이르기를, 매일 사물에 응접하는 가운데 한 시진(時辰, 두 시간)이라도 고요함을 얻어 영위(榮衛)의 정신을 길러야 한다. 일이 번거로울수록 마음이 더 한가하게 하고, 저쪽이 부족할수록 내 쪽은 여유 있게 해야 한다. 이 말이 비록 이단의 설(說)에서 나왔으나 시험해 보매 자못 효험이 있다. 어찌 주자(周子, 주돈이)가 말한 「주신(主神)」이 아니겠는가」 하였다. 정백자(程伯子)가 현(縣)을 다스릴 때 좌우(座右)에 「시민여상(視民如傷, 백성 보기를 다친 사람 보듯)」 네 글자를 써 놓고 「나는 매일 이 말씀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하였다. 양귀산(楊龜山)이 말하기를, 「그 마음 쓰는 바를 보매 응당 한 가지 일도 그릇됨이 없을 것이다」 하였다. 주자가 일찍이 요덕명(廖德明)을 조사단(趙師端)에게 천거하면서 말하기를, 「만약 이 사람을 동료로 얻는다면 반드시 백성을 다친 사람 보듯이 할 것이다」 하였다. 자공(子貢)이 말하기를, 「내가 남이 나에게 가하기를 원하지 않는 바를 나도 또한 남에게 가함이 없고자 한다」 하였으니 이것이 곧 서(恕, 미루어 헤아리는 어진 마음)다. 성인도 오히려 능치 못하다 하셨거든 하물며 배우는 자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그러나 평소 일에 응하고 사람을 접하는 사이에 늘 마음에 이 「서」 한 글자를 두도록 가르쳐야 한다. 또 이르기를, 「오늘날 풍속에서 발 아래 횡재(橫財)를 마다할 줄 알면 큰 사람이라 하지만, 이른바 횡재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세상에서 의(義)와 이(利)의 분별이 가장 말하기 어렵다」 하였다. 살피건대 우리 유자(儒者)의 도(道)는 동(動)과 정(靜)을 아울러 닦아 본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그러나 관(官)에 있어 일을 처리하는 때에 더러 석가(釋家)의 설을 듣는 것이 마음을 맑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또한 해롭지 않다. 옛날 어진 목민관(牧民官)으로 정사에 부지런한 자들은 흔히 「시민여상(視民如傷)」 네 글자를 좌우명으로 새겼다. 범문정공(范文正公)이 정사를 할 적에 항상 이 네 글자를 좌우명으로 삼았다 한다. 당의 한황(韓滉)이 윤주(潤州)를 다스릴 때 백성을 다친 사람 보듯이 하여 일마다 반드시 친히 결단하였다. 송의 진희량(陳希亮)도 평생 임지마다 그처럼 부지런하게 정사를 보았다.
말을 많이 하지 말고, 갑작스레 노여워하지 말라.
백성 위에 선 자는 한 번 움직이고 한 번 멈춤, 한마디 말과 한 번의 침묵을 아래에 있는 자들이 모두 엿보아 살피고 헤아린다. 방에서 문으로, 문에서 읍(邑)으로, 읍에서 네 경계에 이르고 한 길로 펴진다. 군자가 집에 있을 때에도 오히려 말을 삼가야 하거든 하물며 관(官)에 있어서랴. 시동(侍童)이 비록 어리고, 시노(侍奴)가 비록 어리석어 보여도 여러 해 관에 있어서 무쇠처럼 단련된 자들이라 모두 기민하고 약삭빠르며 엿보는 것이 귀신같다. 관문(官門)을 한 발만 나서면 시시콜콜 다 새어 나간다. 내가 십여 년 동안 시골 읍에서 객으로 살면서 그 정상(情狀)을 안다. 노문기(盧文紀)는 말하기를, 「언어를 삼가고 음식을 조절하며 시비(是非)를 적게 하면 일이 쉬워진다」 하였다. 황노직(黃魯直)은 말하기를, 「만 마디 말이 만 가지로 다 맞는다 한들 한 번 잠잠히 있는 것만 못하다」 하였다. 그러나 말함과 침묵이 지나치면 또한 중화(中和)의 기운을 잃는다. 송사를 듣거나 사정을 살필 때, 말과 침묵이 각기 그 마땅함을 얻어야 한다. 소동파(蘇東坡)는 「한 뱃속 가득히 시의(時宜)에 맞지 않다」 하였고, 또 「입을 닫고 혀를 감추는 것이 몸을 편안케 하는 요체다」 하였으며, 또 「본성 가운데 기쁨과 노여움이 없어야 큰 데 쓸 수 있다」 하였다. 또 「희노애락이 아직 발(發)하지 않은 것을 중(中)이라 하고, 발하여 모두 절(節)에 맞는 것을 화(和)라 한다. 중(中)은 천하의 큰 근본이요 화(和)는 천하의 통달한 도리다」 하였고, 또 「마음 자리가 넓고 크면 세상이 넓고, 마음 자리가 좁고 작으면 세상이 좁다」 하였다. 살피건대 노여움이 끼치는 해(害)는 그 거셈이 술과 색(色)보다 심하다. 대저 사람의 칠정(七情)인 희(喜)·노(怒)·애(哀)·구(懼)·애(愛)·오(惡)·욕(欲)은 모두 병(病)이다. 그러나 기쁨·슬픔·사랑·욕심은 그 발(發)함이 반드시 기쁠 만하고 슬플 만하고 사랑할 만하고 욕심낼 만한 일에 말미암으니 비록 지나치더라도 자취가 있다. 오직 노여움의 발함만은 더러 아무 단서 없이 일어나고, 더러 작은 일에 갑작스레 일어나며, 더러 술 깬 뒤·병이 심할 때·피로할 때·더위에 상했을 때·놀랐을 때 등 가지가지 모양으로 나타나 사물에 부딪쳐 사납게 폭발한다. 매사가 산처럼 커 보이고 한순간에 천지를 뒤흔든다. 그러다 일이 지나가 마음이 가라앉으면 스스로 후회하여 「아아, 내가 어떻게 이 지경에 이르렀던가」 한다. 앞 세대의 이름난 유학자들이 다 중년에 노여움을 발하다가 비로소 이 까닭을 깨달아 날마다 부드럽고 너그러움을 법으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