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설령기사(雪靈記事)
이즈미 교카
一
“이쯤이야 무슨…… 어린 시절에는 가루타(歌留多) 가지러 다녔던 걸 떠올리면―”
에치젠(越前) 부, 다케후(武生)의 쓸쓸한 여관, 눈에 파묻힌 처마를 떠나 두 정(町)쯤 나아갔을 때, 눈보라에 발이 묶이며 나는― 그렇게 생각하였다.
생각하면서 헤치고 나아가는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사십여 리 떨어진, 같은 눈 깊은 고장에서 태어난 터라, 이러한 밤길을 십 정 십오 정쯤 걷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그 사나움이라니, 마치 새하얀, 차가운, 가루의 큰 물결을 헤엄치는 듯하고, 바람은 거친 바다와도 다름없이 우우 신음하며, 땅을―이라 해도 대여섯 자나 쌓인 눈을―밀어 흔들며 미친 듯이 날뛰는 것이다.
“그 시절에는 옆구리에 날개라도 돋아 있었던 모양이지. 분명 그러하였으리라. 가볍게 눈 위에 올라 날아갈 수 있도록.”
……그렇지 않고서야, 하고 숨조차 내쉴 수 없는 가운데 생각했다.
아홉 살 열 살쯤의 그 아이는, 유키게다(雪下駄, 눈용 게다), 다케조리(竹草履, 대나무 짚신), 그것은 눈이 얼어붙은 때, 이런 밤에는 격에 어울리지 않는 다카아시다(高足駄, 굽 높은 게다)까지 신고 있었건만, 넘어지지도 않고, 게다가 놀이에 빠져 정월 밤 열두 시 지나서까지 어울려 놀다 가까운 친구들과 헤어지면, 홀로, 흰 신사의 너른 경내도 가로지르고, 저택가의 희고 긴 토담 길도 지난다……… 자작자작, 우우 울리며, 강의 물결, 산바람과 함께 휘몰아쳐 오면, 빙글빙글 도는 수레바퀴 같은 짙고 거뭇한 눈의 소용돌이 속에서, 빙그르 빙그르 춤추면서, 둥실둥실 태연히 집으로 돌아왔다― 꿈이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눈에 정령이 깃들어, 어린아이를 어여삐 여겨 데려다주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아, 모질구나.”
헛, 하고 숨을 들이쉰다. 눈코에 밀려드는 가루눈에, 후딱 등을 돌리고, 그때마다 바람과 반대 방향으로 깊이 고개를 숙여 막아내는 것이다. 이런 때에는 그 가루눈을 땅째 부추기는 까닭에, 아래에서도 솟구쳐 오르고, 좌우에서도 휘말아 올려, 흔히 하는 말처럼, 얼굴을 돌릴 데가 없는 것이다.
아이의 게다를 떠올렸을 무렵에는, 실은 이미 신을 것 따위 진작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안심하시라. 눈 속을 맨발로 걷는 일은, 도회지 도련님 아가씨들이 깜짝 놀라실 만큼 차갑지만은 않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다. 푹, 하고 발을 들이딛은 한순간은 차가움이 골수에 사무치지만, 기세 좋게 걷고 있는 동안에는 따뜻해진다, 후끈후끈해질 정도다.
이윽고 예닐곱 정쯤을 헤치고 나왔다.
아직 이 사이는 마음 든든하였다. 거리 안이라 양쪽으로 집들이 늘어서 있다. 이 부근은 물이 맑은 곳이라, 처마 밑 양편에 맑은 물결을 이룬 작은 시내가 흐른다. 물론 그것을 보일 만큼 눈이 만만하게 쌓인 것은 아니지만.
아시는 분들은, 다케후라 하면, 아아, 물이 맑은 곳이지요, 라 하신다― 이 물이 종을 단련하기에 알맞다 하여, 가마, 냄비, 식칼, 온갖 명산― 그 옛날에는 이름난 도검 대장장이도 살았다. 지금도 대장간이 처마를 나란히 늘어서 있고, 그 사이로 버드나무와 더불어 눈에 띄는 것이 여관이다.
하지만 이미 번화가는 지났고, 점차 변두리, 거리 끝―이라 하면 곧장 큰 산, 험한 비탈이 펼쳐지는― 그 언저리쯤. ……이 거리를 벗어나 진수의 신사를 빠져나가면, 지금 가려고 하는, 마음 둔 곳에 닿게 될 터이다.
그곳은―아니, 그것은― 내 입으로 말씀드리기 면구스러운 일이지만, 나의 큰 은인―아니, 은인이며, 그리고 꿈에도 잊지 못할 아름다운 사람의 쓸쓸한 거처이다.
쓸쓸한 거처라 말씀드린다― 예전에는, 북국에서도 여관 시설로는 으뜸이라 세상에 알려졌던 이 다케후 안에서도, 그 으뜸가는 여관의 딸로, 스물여섯 살에 그 무렵 인근 고장의 지사의 첩이 되었다…… 첩이라고는 하나, 정 깊고, 다정한 모습을, 옛 국주(國主)의 귀부인, 렌추(簾中, 정실 부인)와 같다고들 칭송하던 이가, 이름 그대로 이름난 나카노코치(中の河内)의 산자락에 있는 이타도리(虎杖) 마을에서, 쓸쓸히 산속 살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큰 눈 속에.
二
흐르는 물과 더불어, 다케후는 여인이 아름다운 곳이라고 예부터 사람들이 말하였다. 그중에서도 츠타야(蔦屋)― 그 여관― 의 오요네 씨(은인의 이름이다)라 하면, 고장마다 평판이 자자하였다.
아직 기차가 통하지 않던 시절의 일. ……
“어젯밤에는 어느 곳에 묵으셨소.”
“다케후입니다.”
“츠타야로군. 곱디고운 따님이 있지요. 물론 보셨겠지.”
길동무란, 역참 대기소든 가로수 아래든,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이에 분명 이 이야기가 빠지지 않으면 끝맺지 않을 정도였다.
길에 익숙해져, 몇 차례나 츠타야의 손님이 되어 잘 안다는 표정을 짓는 자들은 오요네 씨를 별명 지어 무쓰노하나(むつの花, 여섯 잎의 꽃), 무쓰노하나 라고 하였다. ―빛깔이 그러하다거나, 또 눈 깊은 호쿠리쿠 길의 눈만큼 세상에 알려졌다는 뜻이 아니라― 이는 뒷말이었던 것이다. ……기형이라는 말이다. 육손이로, 손의 새끼손가락이 왼손에 둘이라고, 마치 눈으로 본 듯이 떠들어 댔다. 어째서인고― 지방은 특히 혼기가 이른데― 스물여섯 일곱이 되도록 시집을 가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머잖아 지사의 첩이 된 일은 앞서 살짝 말씀드렸다.)
나는 잘 알고 있다― 육손이라느니 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분명히 보았다. 더구나 그 눈처럼 새하얀 손가락은, 마야부인(摩耶夫人)이 끼시는 희고 가는 꽃의 장갑처럼, 틀림없이 다섯 잎이었으며, 그 손이 구사일생이던 내 이마에 가만히 얹히고, 가볍게 가슴에 닿았던 것을, 운명의 별을 헤아리듯 가만히 응시하였던 까닭이다. ―
또한 그 손으로, 유리잔의 흰 눈에 달걀노른자를 풀어 녹인 것을, 감로(甘露)를 부어 주듯 마시게 해 주었다.
그 덕분에 나는 다시 살아났다.
“찬물을 주십시오.”
이제 임종이라 여겨, 물을 마시던 때였던 것이다.
각기병을 앓아 충심(衝心, 심장 발작)을 일으키려 하던 참이었다. 그 까닭에 도쿄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더러워질 대로 더러워진 흰 가스리(白絣) 한 벌만을 걸치고, 즈다부쿠로(頭陀袋, 행자 자루) 같은 가죽 가방 하나를 멘 모습이 현관 앞에서 거절당할 뻔한 것을, 묵게 해 준 것 또한, 반딧불이와 수국이 훤히 비치는 뒷마당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던, 그 오요네 씨가 돌아본 눈동자의 정이었던 것이다.
물이라 하면 기껏해야 쌀뜨물이라도 줄 법한 형편에, 흰 눈에 노른자라는 정. ―연두빛 모기장, 붉은 마(麻), …… 모기가 지독한 곳이건만, 오요네 씨가 드나드는 길에는 사르르 반딧불이가 따라붙어, 손을 비추고, 가락지를 비추고, 가슴의 봉오리까지 비춰 내어, 유카타에 물들인 가을풀은, 마타리꽃은 노랗게 싸리꽃은 보랏빛으로, 빛깔이 살아날 만큼 모기장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어머, 땀범벅이로구려.”
하시며 더러운 병고의 식은땀 위로…… 살랑살랑 바람을 보내 주시던, 옅은 쪽빛 물부채(水團扇)에는 어렴풋이 달이 비치었다……
큰 은혜라 함이 이것이다. ―
같은 해, 겨울 첫머리, 서리에 단풍잎 흩날리는 길을 산뜻하게 고향에서 되돌아 다시 상경하던 길이었으나, 후쿠이(福井)까지는 못 미치고, 내 고향에서 칠 리 앞쯤의 마루오카(丸岡) 역참에 인력거가 쉬었을 때 마주친 오가는 길손들의 입을 통해, 벌써 오요네 씨의 풍문을 들었다.
지사의 첩이 되어 집을 나간 것은 그 가을이었던 것이다.
이 부분은 헤아려 주시기 바란다. ―홀가분하게 답례 편지를 보내거나, 그저 안부조차 전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열예닐곱 해가 흘렀다. ―지금의 사바에(鯖江), 사바나미(鯖波), 이마조(今庄)의 역들이, 익히 들리던 나카노코치, 기노메 고개(木の芽峠), 유노오 고개(湯の尾峠)를, 앞뒤 좌우로 높고 깊게 꿰뚫고 지나가, 기차는 구름 위를 달린다.
중간 역참이라 세상사 볼일은 조금도 없었으나, 그리움이 사무친 끝에, 가는 도중 다케후에 들렀다.
남몰래…… 어쩐지 얼굴을 들킬 것 같아서, 그래서 남몰래 그 츠타야로 갔다.
사쓰키(皐月, 음력 오월) 상순이었다.
三
대문, 뒷문 옆 맑은 시내, 처마에 우뚝 솟은 두 그루 버드나무, ―그 푸른 버드나무 잎의 무성함― 여기에 가만히 서서 저 뒷마당에 단선(団扇)을 들고 있던 그 모습이 떠오른다. 그것은 옛 모습 그대로였으나, 한 채, 양관이 따로 서 있고, 장방(帳場)도 탁자를 놓은 안내데스크가 되어, 츠타야의 모습은 변해 있었다.
대가 바뀐 것이다. ―
조금이나마 하녀에게 행하 정도는 줄 수 있게 되었으므로, 슬며시 오요네 씨의 소식을 물으니, 츠타야도 츠타류칸(蔦龍館)이 되어 발전한 끝에, 지금 이 하녀 같은 사람들은 교토 쪽에서 와 있는 모양으로, 은인의 일은 조금도 알지 못하였다.
번두(番頭, 지배인)를 불러 묻자― 물론 그 무렵의 사람은 아니었으나― 이쪽은 잘 알고 있었다.
츠타야는, 젊은 주인― 오요네 씨의 오빠― 이 시세에 손대다 가운이 기울어 망했다 한다. 오요네 씨에 못잖은 미인이라며, 젊은 주인은 기온(祇園)의 게이샤를 빼내어 아내로 삼고 있었다 하는데, 그마저도 세상을 떠났다.
지사― 그 삼 년 전 세상을 떠난 일은 나도 신문으로 알고 있었다― 그 얼마간의 위자료가 남은 모양이라 짐작된다. 당시 거리에서 떨어진 이타도리 마을에 오누이가 살고, 젊은 주인 쪽은 거리 한복판 어느 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이러한 사정을 번두가 들려주었다. 재작년의 일이다.
―지금 나는 무서운 눈보라 속을, 그곳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한데, 막상 재작년 그때는, 다음 날 한나절, 아니 오후 세 시 무렵까지, 볼일도 없으면서 하녀들이 뒤에서 수상히 여기는 기색이 짚일 만큼, 팔짱을 낀 채, 팔베개를 한 채, 이윽고는 이불을 뒤집어쓰고서까지, 생각하고 또 고민하며 몇 번이나 망설인 끝에, 여관을 비틀거리며 나서서, 마침내 은인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일부러 가는 길에 다른 곳에서 듣고, 이타도리 마을을 그리며 향한다……
길은 진수의 신사가 표지였다.
희고, 고요하며, 흐린 날, 황매화도 빛이 옅고, 작은 시내에 이끼 낀 돌다리가 걸려 있고, 그 안쪽에 크지는 않으나 깊고 신성한 기운이 어린 신사가 있어, 큰 삼나무들이 곧게 삼나무 모양 그대로 늘어서 있다. 입구의 돌 도리이 왼쪽, 그중에서도 어둑하게 솟은 삼나무 아래, 모양은 흔한 것이지만 설난지비(雪難之碑)라 새겨진 비석 한 기가 보였다.
눈의 환란― 짐꾼, 우편배달부, 그 옛날에는 수많은 길손도― 이로부터 다다라 넘으려 하는 고갯길에서 자주 목숨을 잃었던 까닭에, 필시 그 영혼을 모셨으리라, 하고 큰 하늘의 구름, 겹겹한 산, 이어진 봉우리들, 우뚝 솟은 산정을 바라보며, 사나운 큰 물결 같은 눈의 풍정을 떠올리면서, 나그넷길 마음도 사무치게 지나쳐 갔다.
논두렁 길을 조금쯤 가다 유채밭 두렁으로 들어선 곳에, 마음 둔 암자가 보였다. 쓸쓸한 외딴 평옥(平屋)이지만, 대문께가 어쩐지 옛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띠를 인 지붕은 아니다.
키가 큰 뒷문 쪽에 버드나무가 아련하고, 이곳에도 가는 시내에 황매화 그림자가 어리는 것이, 그림으로 그린 반딧불의 빛을 환영처럼 보는 듯하였다.
꿈에서만, 또 현실에서만, 십 몇 해.
신기하게도 이곳에서 만났다― 옛 모습은, 검은 머리에 비녀를 꽂고, 눈빛 우치카케(裲襠)를 걸친 귀부인 같으리라 아득히 그려 보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검은 수자(繻子) 깃을 댄 줄무늬 고소데(小袖, 평상복)에, 살짝 해진 자국이 있을 뿐인 하늘빛 비단의 같은 깃을 댄 통소매를, 띠도 보이지 않을 만큼 여며, 가냘프게 입고 있었다.
그 차림으로 손을 짚었다. 아아, 어여쁜 흰 손가락, 갓 묶은 품새 좋은 마루마게(圓髷, 둥근 트레머리), 정 어린 다소곳한 살쩍이 귓불에 걸려, 눈빛 같은 목덜미가 다정하고 청초하게 숙여졌다.
건방지게 지팡이를 들고 서 있는 자신이, 눈앞이 아찔할 만큼 부끄럽게 여겨졌다.
“저는…… 세키……”
하고 이름을 밝히며,
“츠타야 댁 따님을 뵈러 왔습니다.”
“요네는 저올시다.”
하고 얼굴을 들어, 맑은 눈으로 지긋이 응시하였다.
내 이마는 땀이 배었다. ―언젠가 이마에 얹혔던, 그 손의 그림자만이 희게 떠오른다.
“어머나, 세키 씨. ―어른이 되셨군요……”
이러하니, 그리움이야 오죽하랴.
그러나 여기에서 나는 첫사랑, 짝사랑, 사랑의 푸념을 늘어놓으려는 것이 아니다.
……이 사나운 눈보라 밤, 신기한 일과 마주쳤기에,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四
그때는 다다미 넉 장 반은 아니었다. 다만, 화로를 낸 차실(茶室)로 안내되었다.
그때 마침, 먼저 와 있던 손님 한 분이 화로 오른편에 있었다. 기품 그 자체로 품위 있는 나이 든 비구니 분이었다. 실례지만, 이 선객(先客)이 거추장스러웠다. 그로 인하여, 더없이 서툰 입에서 천 번에 한마디도, 아무것도 말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당신은 담배를 즐기십니까.”
나는 오요네 씨가, 그 통소매의 다정한 손으로 담뱃대를 드는 것을 보고 그렇게 말하였다.
오요네 씨는 삼가 조금 고개를 숙였다.
“무슨 일이든 망우초(忘れ草)라 이르느니라.”
하고 비구니가, 노(能)의 가면이 말을 하듯 말하였다.
“세키 씨는, 올해 서른다섯이 되시는지요.”
하고 오요네 씨가 먼저 헤아리며 내 나이를 물었다.
“삼벽(三碧)이로구나.”
하고 비구니가 말하였다.
“당신은요?”
“저는 한 살 위……”
“사록(四緑)이로구나.”
하고 비구니가 또 말하였다.
―줄여서 말씀드리거니와, 그곳에 안내도 없이 성큼성큼 들어와, 선 채로 잠시 나를 곁눈질하더니 화로 왼쪽 자리에 앉은 사람이 하나 있었다― 야마부시(山伏, 산악 수행자)인지 은자인지 싶은 풍채로, 짐짓 호장한, 사납게 말하자면 거만한, 솜씨 없는 자가 그린 “오슈 순례”의 미토(水戸)의 미쓰쿠니라 할 만한, 코가 우뚝하고 수염이 흰, 이미 일흔 가까운 노인이었다.
“이가 세키인가.”
하고 다짜고짜 말한다. 나는 깜짝 놀랐다.
오요네 씨가, 곱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러한가.”
하더니, 이로부터 도도하게 일장연설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그 말하는 바가 도회지의 우리네, 동인이라 하는, 동인이라 해 본들 나 같은 자는 거론할 가치도 없거니와, 훌륭한, 화단의 화백들의 이름을 거명하며 닥치는 대로, 놈이 어쨌다며 짜증을 내고, 그자가 어쨌다고 깎아내리며, 꼬마라며 껄껄 비웃는 것이다.
나는 대여섯 자나 물러나 머리를 조아렸다.
“기차 시간이 있어서요.”
오요네 씨가 배웅하러 나섰다. 유채꽃밭 한가운데를 절반쯤 갔을 때, 나는 향기에 목이 메어, 눈물 어린 목소리로,
“적적하게 지내실 텐데요.”
하고 안간힘을 다해 말하였다.
“아니에요, 오라버니가 함께 있으니…… 다만 큰눈 내리는 밤 같은 때에는 거리에서 길이 끊어지면, 여기 저 혼자, 닷새도 엿새도 지내곤 하지요.”
하면서 살짝 눈시울을 적시었다.
“그 대신 여름은 시원합니다. 피서하러 오세요…… 잠자리를 마련해 드리지요. ……그 무렵에는 쏟아질 듯이 반딧불이가 날고, 이 물에는 창포가 핍니다.”
밤 기차의 불꽃이 기노메 고개를 반딧불처럼 날고, 창문에는 그 창포가 피어났던 것이다― 꿈만 같다……… 그 노년의 비구니는 오요네 씨의 수호신― 어라, 그 노인은― 지사의 원혼이 아니었던가.
그런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은, 마루마게에 머리를 묶고 통소매를 두른 그분을, 도리어 비밀의 안개로 감싸 두는 듯하였다.
서른 고개를 넘어, 야위었음에도 지금도 그 아름다움. 변방의 이타도리 마을 따위에 있을 사람으로는 도무지 여겨지지 않는다.
그래서 안부 전하기를 게을리하였다. 꿈에 주소를 적는 듯한 일이라서. ……그렇다고는 해도, 한편으로는 날이 갈수록 신기하게도 빛깔이 짙어 가는, 화로의 좌우에 있던 그 두 사람을 꺼린 것이었다.
안부를 전하여 은인에게 사례를 올리는 데에 무슨 거리낄 까닭이 있을 리 없다. 그러나, 항간에서도 흔히들 말한다. 자비를 베풀면 무언가 보답을 바란다고. ……그리하여, 은인이라 일컫는 그 은혜를 빌미 삼아 정에 빌붙으려는 듯한, 천하고 한심하고 비열하고 누추하고 무례한 마음이 도무지 떨어지지 않으므로, 홀로 스스로를 꺼린 것이었다.
나는 지금, 그곳을 향해―
五
“아아, 저곳이 진수의 신사다―”
눈보라 속, 눈길에 하얗게 이어진 그 신사를, 마치 봉우리 위에 쌓아 올린 듯이 높직하고 어슴푸레하게 우러러보았다.
“자, 한숨 돌리자.”
하건만, 그 숨이 내쉬어지지 않는다.
고개를 깊이 숙이고 나아가는 무거운 바람 속을, 등 뒤에서 슥, 가벼이 덮쳐 와, 옷자락과 머리를 와락 무서운 무엇이 휘감았다 싶더니, 헛, 하고 숨이 멎는 순간, 휙 빠져나가, 눈앞에 새하얀 큰 둥근 그림자가 나타난다. 빙글빙글 도는 것이다. 돌면서 동그라미를 말아, 말고 또 말아 거두어들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무시무시한 소용돌이가 되어, 휘이, 하고 울며 위로 솟구쳐 날아간다. ……날아가는가 싶으면, 이어 등 뒤에서 또 휘감겨 온다. 그것이 점차 거세어져, 여섯이고 넷이고 헤아리는 사이에 일곱이고 여덟이고, 몸의 앞뒤로 줄을 이루어, 휘감겨서는 날고, 휘감겨서는 날아간다. 바위에도 산에도 부서지지 않고, 모두 북쪽 바다의 거친 물결 위로 내달린다. ―이제 이 소용돌이가 이렇게 휘몰아치게 되니 견뎌낼 수가 없다. 이 소용돌이가 솟구쳐 오르는 자리는, 그 자취가 구멍이 되어, 그곳에서 눈의 기둥, 눈의 사람, 유키온나(雪女), 유키보즈(雪坊主) 같은 괴이한 형상이 슥, 일어선다. 일어나서 쓰러지는 것이, 그대로 눈의 언덕처럼 변한다…… 그것이 오른쪽이 되고, 왼쪽이 되어, 가로로 쌓이고, 세로로 깔린다. 그것이 가는 곳, 날아가는 곳에 사람의 몸을 끌어다, 위로 향하게도, 엎드리게도 메다꽂는 것이다.
―설난지비(雪難之碑). ―봉우리처럼 뾰족한, 그곳 큰 삼나무의 우듬지를 속눈썹에 얹은 채 쓰러졌다. 나는 눈에 묻혀 간다……… 몸을 움직일 수도 없다. 이를 악물어도, 입을 다물어도, 눈코에 스며드는 가루눈을, 그러나 수국의 푸른 꽃잎을 빨아들이듯 느끼었다.
―“창포가 핍니다.”―
반딧불이가 난다.
나는 오요네 씨의 맑고 따뜻한 살결을 떠올리며, 눈에 목메어 외쳤다.
“마(魔)가 가로막는다, 덴구(天狗)의 짓이로다― 저, 비구니인가, 수상쩍은 은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