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of 1

Chapter 1

“티롤의 가을” 초연 당시의 회상

기시다 구니오

“티롤의 가을”은 내 두 번째 희곡이었다. 관동대지진(1923년) 이듬해, 다이쇼 13년(1924년) 10월인지 11월인지, 신극협회 사람들의 손으로 데이코쿠 호텔 연예장에서 상연되었는데, 그것이 내 처녀 상연이었다. 마사무네 하쿠초(正宗白鳥)의 “인세의 행복”과 구메 마사오(久米正雄)의 “귀거래”가 같은 프로그램에 나란히 올랐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내 처녀 상연에 대해 그리 향기로운 추억을 품고 있지 않아서, 되도록 입에 올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강하다. 그 이유는, 작가로서 적잖이 큰 실망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작품을 무대 위에서 바라보는 것을 견디지 못해, 공연이 반쯤 진행된 때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와버릴 정도였다.

조금 강하게 말하자면, 주위 관객들에게는 아랑곳없이 무대를 향해 “막을 내려라!” 하고 고함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다.

그러나 그 실망의 원인을 배우나 연출가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었다. 대부분의 원인은 오히려, 내가 쓰는 것이 일본 신극의 토양에 맞지 않았다는 점과, 무대에 대한 내 이상이 도저히 실현될 수 없을 만큼 크고 넓었다는 데 있었다. 미숙한 희곡을 두고 나 혼자 머릿속 무대에 그려낸 공상이 너무도 눈부셨던 것이다. 실제 무대라는 것에 아무런 경험이 없었던 나는, 극작가의 이상이 무대 위에서 어느 정도 실현되면 만족해야 하는가 하는 기준을 전혀 몰랐다. 말하자면 희곡과 연극 사이에 마땅히 두어야 할 거리를 터득하지 못했던 것이다.

누구든 연극의 실제에 익숙해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작가의 이상이란 상연 때는 그 일부분밖에 실현되지 않는 것이 보통임을 알게 되고, 스스로 납득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것이 작가에게 몹시 위험한 함정이 되기도 한다. 어떻게 해봤자 결국 무대 위에서는 이 정도밖에 실현되지 않는다고 가볍게 여기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창작하는 마음 자체를 그 수준까지 끌어내리고도 깨닫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창작가는 연극의 실제와는 될 수 있는 한 거리를 두는 편이 낫다는 지론을 갖게 되었다. 희곡을 쓰는 데 무대 실제를 알아두는 편이 유리하고, 공부 삼아 무대 경험을 쌓겠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요즘 많은 것 같지만, 나는 창작을 하는 데 기존의 무대 관습 같은 것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창작가는 어떤 의미에서 무대의 실제적 제약이나 답답함에 얽매이지 않고, 어디까지나 자신의 이상을 높이 견지하며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무대 실제, 특히 현재 배우들의 능력을 너무 소상히 알게 되면, 무의식중에 상연 결과를 고려하여 타협하기 쉬워지고, 따라서 창작 태도가 불순해지기 쉽다.

나는 첫 상연에서 무대 위의 모든 일을 남에게 맡기고, 나 자신은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그런 실제 작업을 맡으려면 배우 한 명 한 명의 성격, 재능, 소질 등을 세세히 알아야 하는데, 나는 그 방면의 지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작자가 자신의 작품을 올리는 리허설에 나와 이런저런 주의를 기울이고 자신의 의도를 전달하는 것은, 작품 해석이라는 면에서도, 구석구석까지 신경 쓰인다는 면에서도, 필요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나처럼 현재의 일본 신극과 어딘가 맞지 않는 경향의 작가에게는, 섣불리 말참견하거나 관여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이야기가 조금 곁길로 빠지지만, 내가 보고 온 프랑스에서는 무대감독이 대체로 극단의 주요 배우 중 한 사람인 경우가 많다. 그런 무대감독은 무대 실제에 경험도 있고, 배우 한 명 한 명에게 손수 가르칠 수도 있다.

이것이 독일식으로 가면, 무대감독은 학자나 이론가인 경우가 주를 이루어, 자신이 배우로서의 경험이 전혀 없으니 실제로 구체적으로 지도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런 방식은 배우 개개인의 자유로운 재능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합당한 방법으로, 억지로 어떤 틀을 강요하는 일이 없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배우를 다소 인형처럼 여기는 관념이 앞서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일본은 일찍부터 독일식을 채택한 결과, 주로 신극에 대해 말하자면, 무대 장치나 무대감독, 조명 같은 이른바 연출 기법의 면에서는 상당히 새롭고 충실한 것을 볼 수 있게 되었지만, 그에 비해 배우 개개인의 연기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요즘 일본 신극이 막혔다는 소리를 듣는 것은, 결국 배우 자신의 교육이 뒤처져 연기가 서투르다는 데서 비롯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좋은 희곡이라는 면에서는 아직도 외국의 뛰어난 작품 중 상연되지 않은 것이 꽤 있고, 연극은 비교적 평범한 작품이라도 배우가 뛰어나면 꽤 흥미롭게 볼 수 있으니, 희곡 발굴이라는 면에서는 가능성이 충분하다 하겠다.

물론 엄밀한 의미에서 배우 교육이라는 것이 가능한가는 의문이지만, 결국은 실제적 지도를 통해 배우 자신이 지닌 갖가지 재능을 발굴하고 이끌어내는 일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앞으로 신극 배우의 지위가 점차 높아지고, 장래 어떤 분야에서도 충분히 해나갈 수 있는 교양과 재능을 갖춘 인물이 배우가 된다면, 현재 신극의 막힘은 자연스럽게 타개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초연의 실망으로 인해 작가로서 무대 위에 그려두었던 이상을 통렬히 짓밟혔지만, 동시에 이 환멸이, 내가 일본의 신극이라는 것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사실에서도 비롯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본 연극은 구극을 보나 신극을 보나 느끼는 것이지만, 연극을 쓰는 사람들은 항상 현재의 무대에서 갖가지 영감을 받고, 반드시 어떤 배우를 염두에 두고 쓰는 것은 아니더라도, 현재 일본 배우들의 능력이나 인품 같은 것을 무의식중이나마 끊임없이 머릿속에 담아두고 쓴다.

그런데 내 연극 개념은 거의 서양, 특히 프랑스로부터만 받아들인 것이라 해도 좋을 정도여서, 외국에서 돌아와 내 작품이 상연되기까지 나는 일본 연극이라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자신의 작품을 일본 무대에 올릴 것으로서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않고 썼다. 현재의 신극 배우가 어떤 연기를 하는지, 또 어떤 교양을 지니고 있는지 전혀 모른 채 썼다는 점에도, 초연 때의 큰 간극이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그런 내가 최근에 와서는 오히려 일본 배우에게 잘 맞는 것을 쓰게 되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그 후에 생각하게 된 것인데, 내 작품은 희곡의 종류에 따라 잘못 풀리면 몹시 불쾌한 것이 되어 참아내기 어려운 것과, 작자의 의도가 잘 살아나지 않더라도 비교적 그저 재미없다는 정도에 그치고 불쾌하지는 않은 것이 있어서, 초연 때는 불행히도 그 첫 번째 부류였던 것이다.

상세히 말하자면, 사실주의적이고 주제 면에서 비교적 엄숙한 사건이나 상황을 다룬 작품은 배우가 조금 서투르더라도 충분한 효과가 오르지 않는다는 정도에 그치고, 불쾌해서 볼 수 없다는 지경에는 이르지 않는다. 그러나 내 작품 중 어느 쪽이냐 하면 낭만적인 경향의 것, 서정적인 것, 혹은 유머나 위트를 주로 한 것은, 분위기가 주된 요소인 만큼 잘못 풀리면 역겹고 추악한 것이 되기 쉽다. 그런 위험을 내포하지 않는 견실한 작품이 가장 무난하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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