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
이쿠우 군 족하
인간의 슬픈 외면. 증거로 인하여, 이치에 의하여, 그 일이 있을 수 있음을 알고, 나아가서는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그것을 고통이나 그 밖의 느낌으로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그것을 절실히 믿지 못하는, 도리어 믿으려 하지 않는 인간의 슬픈 외면. 이에 대해 저는 입원한 이래 몇 번이고 생각을 거듭해 보았습니다. 그러고는 자기 자신에 대해 부끄러워했습니다.
예컨대, 배가 비정상으로 부푼 일, 그 배 때문에 내장이 낮이고 밤이고 압박을 받아 거의 매일 밤 무서운 꿈을 잇따라 꾸었던 일, 식은땀이 났던 일, 세 시간만 이어 일하거나 이야기하면 그때까지 겪어 본 적 없는 깊은 피로에 휘둘려 사람이 없는 어딘가로 가서 누워 버리고 싶은 기분이 되었던 일 등으로, 저는 제 건강이 현저히 균형을 잃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아프지는 않다”라는 지극히 무력한 이유로, 한 친구가 와서 지금 당장 대학병원으로 가자고 졸라대기 전까지는, 진정으로 의사의 진찰을 받으려는 마음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또 같은 이유로, 이미 진찰을 받은 뒤에도 자기 병이 가벼운 복약 정도로는 낫지 않을 성질의 것임을 알면서, 그래도 자기 입으로 자기를 병자라 부를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일은, 그러나 결코 저의 병에 관해서만은 아니었습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저의 반평생은 거의 이 슬픈 외면의 연속이었던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일찍이 잘못된 생활을 하고 있어서, 그 때문에 늘 남과 자신을 속이지 않으면 안 되는 괴로움을 맛보면서도, 그 위에 그 생활을 바닥까지 밀어붙여, 어찌해 볼 수도 없게 되기까지는, 그 괴로움의 근원을 향해 적나라한 비평을 가하기를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꽤 이전의 일입니다만, 이 가까운 삼 년 남짓한 사이에도, 늘 자기 사상과 실생활 사이의 모순당착(矛盾撞着)에 시달리면서, 그 위에 그 모순이 다소 큰 하나의 비극으로서 사실로 드러나기까지는, 그 가슴 아픈 이중생활에 대한 자기의 근본 의식을 정해 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슬퍼할 만한 외면으로 인해 부지불식간에 제가 입은 손실은 거의 헤아릴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가장 가까운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저는 제 배에 물이 찼다는 사실을, 진찰을 받기 전부터도 아마 그러리라 자기 짐작은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입원 후 첫 시술을 받아 투관침(套管針, 트로카)에 연결된 고무관에서 한도 없이 흘러내리는 짙은 노란빛 액체를 목격하기까지는, 확실히 그렇다고 믿어지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