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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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첫 번째 격렬한 지진 이래로, 그 뒤로 이어진 천 수백 차례의 여진에 사람들은 얼마나 시달렸던가.
처음에는 일찍이 알지 못했던 드문 지진에 우리는 어찌할 바조차 알지 못했다. 절절히 생각하게 되는 것은 일대 사변에 임해 평소 정신의 단련이 어떠했는가 하는 것이다.
정관(靜観)과 침용(沈勇), 이러한 마음가짐 위에서야 우리는 비로소 참된 시(詩)의 길에 설 수 있는 것이다.
아아, 내 뜰의 붉은 잎맨드라미는 잎맨드라미로서의 살림을, 그 갈라진 흙 위에서도 잊지 않고 있다. 무너진 산밭에서도 참깨는 참깨로서의 지혜를 온전히 굴리고 있다.
천재일우의 이 귀한 체험을 우리는 마음 깊이 감사해도 좋다. 모든 것이 선명하게 새로 태어나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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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잘 살펴 다가올 날에 잘 처신한다는 일이 내게는 무엇보다 경건하게 믿어졌다. 놀라움을 놀라움으로, 두려움을 두려움으로 하여 바르게 부끄러워하고 바르게 돌이켜보는 일에서 우리는 비로소 구원받게 될 것이다.
이러한 비상시에는 사람들은 평소의 상식조차도 잃어버리고 만다. 두려워해야 할 바를 두려워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아도 좋을 것을 두려워함은 비겁이거나 어리석음이다. 스스로를 무엇으로 다잡아야 할지를 알지 못한다면, 또 무엇을 다잡으려 하였겠는가.
한데 경찰에서는 일찌감치 시민의 의용대를 모집했다. 마을 사람들은 미친 듯이 내달았다. 소문은 소문을 낳았다. 죽창, 총포, 도검 따위가 끄집어내어졌다.
그 사이에도 잇따라 피난하는 남녀가 동서로 오갔다. 아아, 그들은 이제는 거의 핏기가 없었다. 입은 그대로 입은 채였다. 그저 간신히 걷는다는 것뿐이었다. 그저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저 살아 있기만을 바랐다. 그저 앞으로 앞으로 정처 없이 도망쳐 가면 그뿐이었다. 그러면서도 또 양식을 짊어지고, 거적을 들쳐 메고, 깎은 대를 지팡이 삼아 가까운 친지의 안부를 염려하고, 벗의 구원에 나서는 이들 또한 하나같이 사선(死線)의 험난함에 어지러워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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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머리에 가벼운 상처를 입긴 했으나 다행히 목숨은 건졌다. 내 처자도 가까스로 피해 무사했다. 우리는 함께 기적의 운(奇運)을 입었다.
내 집은 크게 부서지긴 했으나, 신기하게도 무너지지는 않았다. 이 산속에서 이렇듯 은혜를 입은 집은 달리 단 한 채뿐이다. 그것조차 내 집에 견주면 피해가 가벼웠다고는 할 수 없다. 그 밖에는 눈에 보이는 한의 저택들이 모조리 무너져 버렸다. 그뿐이 아니다, 내가 사는 오다와라 마을 전체의 가옥이 거의 다 무너졌다. 게다가 그 태반은 사나운 불길에 타 하룻밤 사이에 망망한 잿더미가 되어 버렸다. 압사(壓死)와 소사(燒死)가 잇따라, 비참하다고도 무참하다고도 차마 할 말이 없었다. 거기에 더하여 산은 무너지고, 절벽은 미끄러지고, 해소(海嘯)가 일고, 폭풍우가 덮치고, 물자의 궁핍, 유언비어, 그것들이 끊이지 않는 여진과 더불어 재앙이 닿는 데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을 시험했다.
나로서도 생사조차도 멀리는 알릴 길이 없었다. 한때는 행방불명이라고도 전해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 무렵, 길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서로의 무사함에 놀라곤 하였다. 그러고는 「목숨만은 건졌습니다.」 「목숨만은요.」 하고 주고받았다.
그토록 처참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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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부터 우리와 이웃 절의 식구들은 바로 앞 맹종죽(孟宗) 대숲에 누워 잤다.
그리하여 단출한 죽림(竹林)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달이 사라지고, 비가 내리고, 어둠 속으로도 사람들이 관(棺)을 메고 왔다.
나중에는 밤만 뒤꼍 죽림으로 옮겼다. 기울어진, 벽도 문도 없는 내 암자에 받침대를 받쳐 놓고, 어쨌거나 우리는 가까스로 안식을 얻었다. 거기에는 다른 데서 인도 사라사(更紗) 휘장을 떼어다가 밤바람을 막았다.
낮에는 앞쪽 죽림에 있었다. 우리는 탁자며 곡목(曲木) 의자며, 등나무 안락의자 따위를 그 안에 들여놓았다.
누군가가 대나무 한 그루에 부서진 육각시계를 걸었다. 청동 부처의 얼굴을 걸어 준 사람도 있었다.
그 죽림에서는 곧잘 바다가 비쳐 보였다.
나는 웃으며, 내 죽림 생활이 한층 단소(單素)해져 가는 것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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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절의 스님은 너덧 마리의 닭과 세 마리의 고양이를 내버려 둔 채 달아났다. 물론 본존불(本尊佛)도 끄집어내지 못하였고 위패(位牌)도 내버려 둔 그대로였다.
묘지는 묘석이 죄다 무너져, 서너 칸이나 앞으로 밀려 나와 있었다.
단가(檀家)들이 곧잘 관을 메고 왔다. 그러고는 「스님은요?」 하고 묻곤 했다. 나는 「스님은 다른 절 뒤편 대숲에 피난해 계십니다.」 하고 답하는 데에 낯이 붉어지곤 하였다. 나는 찻잔에 물 같은 것을 담아 그 새 무덤에 가져갔다.
죽림에는 붉은 큰 목어(木魚)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또 풀숲 속에서 염주가 나오곤 했다.
무너진 절 지붕 위에서 어떻게 뛰어 올라타 있었는지, 봉봉시계가 이따금 봉, 딩 하고 시각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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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한 발짝 산을 내려서면, 그곳은 이미 참담한 지옥의 형상이었다.
교쿠덴지(玉伝寺) 죽림 안에서는 벌써 피난자들 사이에 온갖 천박한 물욕(物慾)의 다툼이 일어나 있었다. 혼잡과 외침과 아귀(餓鬼)의 말투와 ── 도무지 우리가 머무를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나는 산속에 머물러 있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절의 산속에도 밤이면 인광(燐光)이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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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집집의 담벼락은 사라져 버렸다. 철조망은 짓밟혀 무너졌다. 채마밭도 정원도 모든 것이 모두의 것이 되었다.
그러나 닷새 엿새가 지나자, 부유한 자는 다시 철조망을 둘러쳐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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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그러는 사이에, 기울어진 부엉이의 집 앞에는 흰 싸리가 피고, 향이 짙은 서양 생강의 꽃이 피고, 엷게 붉은 부용이 조릿대 울 앞에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노랑과 빨강의 칸나가 한층 빛나오게 되었다.
뜰에는 붉은 잎맨드라미가 타오르고, 갈고엉겅퀴(羯皷薊)의 엷은 보랏빛이 향기로웠으며, 옥수수의 수염이 늘어지고, 토마토가 익어 가고 있었다.
쓰르라미가 울고, 중추(中秋)의 그윽한 정취가 여기저기에 서늘히 일렁이었다.
좋은 계절, 좋은 살림. 우리는 비로소 마음이 편해졌다.
이러한 살림이야말로 참된 것이다. 가난이 다하면 마음의 풍요가 두루 차오른다.
우리의 죽림은 그야말로 낙원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분에 넘치는 이 풍광을 누리는 지금 처지의 황송함이여. 이 위에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하고.
참으로, 사가미(相模) 바다가 죽림 너머로 아침저녁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때때로 그 짙은 남빛이 군청(群青)에서 부드러운 황금빛으로, 영롱한 은빛으로 변환했다. 비 갠 뒤에는 해변만이 붉은빛이 되었다.
「하릴없구나.」 하고 나는 아내를 돌아보며 말했다. 나는 담배꽁초를 마음껏 빨았다.
●도서 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