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of 1

Chapter 1

저물녘 가게 앞으로 우편배달부가 던져 놓고 간 여인 글씨의 편지 한 통, 고타쓰 방 남포등 그늘에서 읽고 나서 돌돌 말아 띠 사이에 챙겨 넣자, 일거수일투족이 신경 쓰여 무언가 골똘히 시름하는 모양이 한두 가지가 아니더니, 절로 기색에 드러나 사람 좋은 서방님이 무슨 일이냐 물으시기에, 아니에요, 별일은 아니오나 나카초의 언니가 어쩐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는 듯하니, 이쪽에서 가 보면 좋겠으나 잔소리 많은 남편이 짬이라 하면 머리카락 한 올만큼도 비워 주지 아니하는 그 성가심, 밤이라도 좋으니 돌아올 때는 이쪽에서 바래다드릴 터이니 서방님께 부탁하여 잠시 와 줄 수 없겠느냐, 기다리고 있겠다, 라는 글이옵니다, 또 의붓딸과 다툼이라도 일었는지요, 마음이 좁은 사람인지라 무슨 일이고 입에 담아 말하지 못하고 가슴만 잔뜩 앓는 것이 그분의 성품, 딱한 노릇이옵니다, 하면서 일부러 큰 웃음을 지어 들려 드리니, 허허 참 안되었구나 하고 굵은 눈썹을 찌푸리시며, 너에게는 단 하나뿐인 혈육, 좋고 나쁨을 아울러 들어 주어야 할 처지를 우스개로 넘길 수는 없겠지, 무슨 일로 의논하는지 가서 형편을 살피는 것이 좋겠다, 여인은 마음이 좁은지라 기다린다 하면 한 시각도 십 년처럼 여겨지리니, 너의 소홀함을 나 탓으로 돌려 원망을 사게 된다면 덕될 일이 못 되니, 밤에는 별다른 볼일도 없으니 어서 가서 들어 드리는 것이 좋겠다, 하시며 어여쁜 아내의 언니 일이라 하니 부탁드리지 아니해도 다정한 허락이 절로 떨어져, 뛸 듯이 기쁜 속내를 일부러 기색에 드러내지 아니하고, 그럼 가 볼까요 하고 마지못한 양 옷장에 손을 대니, 마음에도 없는 소리 말고 어서 가 드리려무나, 저쪽에서는 얼마나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 않느냐, 하고 영문 모르는 부처 같은 서방님이 재촉하시니, 양심의 가책이 절로 일어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에는 두근거림의 물결이 높이 일어났더라.

비단 명주 고소데를 겹쳐 입고 지리멘 하오리에 오코소 두건을 걸치니, 키가 큰 사람인지라 밤바람을 가리는 각수 외투의 자태가 잘 어울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하며 가게 어귀에서 고마게타를 신을 때, 다키치, 다키치 하고 점원 소년의 등을 집게손가락 끝으로 콕 찌르고는, 졸음에 배 젓는 시늉만 하지 말고 정신 차려 가게 물건을 슬쩍 빼돌리지 않게 잘 살펴 다오, 내 돌아옴이 늦거든 개의치 말고 덧문을 내리고, 행화(작은 화로)에 손을 쪼이려거든 언제든 이부자리 속에는 들여 두지 마라, 식모는 부엌의 불씨를 살피고, 서방님 베갯머리에는 늘 그렇듯 물 끓이개와 담뱃대 받침, 잊지 말고 챙겨 불편하시지 않게 하여라, 되도록 일찍 돌아올 터이지만, 하고 유리문에 손을 얹으니, 서방님이 소리쳐 부르시기를 인력거를 부르라 일러 두지 그러느냐, 어차피 걸어서야 가지 못할 길이 아니냐 하고 다정한 말씀, 무슨 장사치의 여편네가 가게에서 인력거 타고 나서는 게 호화로운 짓이옵니까, 거리 모퉁이 아무 데서나 알맞게 값을 깎아 타고 가오리다, 이래 봬도 셈은 알고 있사오니, 하고 귀여운 목소리로 웃으니, 살림꾼다운 소리를 한다 하시며 서방님이 흐뭇한 얼굴, 그 모습을 못 본 척하며 아내는 거리로 나섰는데, 큰 하늘을 올려다보고 한숨을 짓는 그때, 흐릿한 듯하던 얼굴빛에 구름이 더욱 깊어졌더라.

어디의 언니가 편지를 보내랴, 새빨간 거짓말을, 하며 우리 집 쪽을 돌아보니, 무슨 일도 모르신 채 좋은 얼굴로 외출을 허락해 주시는 송구함이여, 저토록 악의 없고 의심하는 마음이라곤 추호도 품지 아니하시는 고운 마음씨의 그분을, 어쩌면 그토록 세 치 혀로 속여 두고 마음껏 부정하고 방탕한 짓을 일삼으니, 이것이 사람의 아내가 할 짓이런가, 무어라 일컬어야 할 못된 자, 사람답지 못한 자, 법도 도리도 무엇 하나 분간 못 하는 개·짐승 같은 마음이런가, 이 같은 못된 짐승 같은 자를, 모르신 채로 하늘에도 땅에도 없을 것처럼 어여삐 여겨 주시고, 내 일이라면 당신 몸은 안중에도 두지 않으시고 내 편을 들어 주시는 그 마음 씀씀이가 고맙고 기쁘고 두려워, 그 송구함에 절로 눈물이 고이는데, 저런 서방님을 모신 몸이 무엇이 부족하여 칼날 위를 건너듯 위태로운 꾀를 부리는가, 가엾어라, 사람 좋은 나카초의 언니까지 끌어들여 사방팔방 거짓으로 굳혀 놓고는, 이 발은 대체 어디로 향하는가, 생각하면 나는 못된 자에 사람답지 못한 자, 부정한 자에 방탕한 자, 대체 이 무슨 정신 나간 짓이런가, 하며 갈림길에 서서 발걸음도 떼지 못하다가, 골목 모퉁이를 두어 번 돌아 이제는 우리 집 처마도 보이지 아니하는데, 돌아보고는 뜨거운 눈물을 후두두 떨구었더라.

서방님 이름은 고마쓰바라 도지로, 서양 잡화 가게는 이름뿐, 넘쳐나는 재산을 곳간에 묵혀 두고, 그러면서도 요즘 셈에는 어두운 사람 좋은 사내라, 사랑하는 아내 오리쓰의 민첩함이 안채도 가게도 능숙히 다스려, 고운 눈초리로 남편의 치미는 화를 누그러뜨리고, 귀여운 입가로 손님께 건네는 인사치레까지 흘려 보내니, 나이도 그리 들지 않으셨는데 어찌나 총명한 안주인이신가 하며 보는 이마다 칭찬거리로 삼더라. 그러나 이 사람의 이 몸이 뒷길의 짓, 남이야 모르거니 스스로 감춰 두어도, 다정한 서방님의 마음 씀이 공교로이 휘감기는 듯하여 오리쓰는 길가에 선 채로 굳어, 가지 말까, 가지 말까, 차라리 모질게 마음먹어 가지 말까, 오늘까지의 죄는 오늘까지의 죄, 이제부터라도 내 마음만 고쳐먹는다면 그분이라 하여 그토록 미련을 내지는 아니하시리라, 서로 얕은 정분으로 그치고 남이 알기 전에 허물을 씻어 버린다면, 앞으로의 그분을 위함이요 나를 위함이거니, 어설피 그리워 매달려 본들 떳떳이 부부가 될 사이도 아니거니와, 어여쁜 분께 부정한 이름을 씌워 조금이라도 세상에 알려진다면 어찌하려느냐, 나야 어찌 되든 그분은 앞으로의 출세 한평생을 암흑에 잠기게 하여 두고 그것으로 내 마음이 흡족하랴, 아아 싫은 일, 두려운 일, 무엇을 생각하여 내가 만나러 나섰던가, 설령 편지가 천 통 온들 가지만 아니하면 서로 흠은 되지 아니하리라, 이제 모질게 마음먹어 돌아갑시다, 돌아갑시다, 돌아갑시다, 돌아갑시다, 아아 이제 나는 다 끊었노라, 하고 길을 돌이켜 고마게타를 되돌리니, 마침 밤바람이 몸에 차가워, 꿈결 같은 생각이 다시금 문득 깨져 흩어져, 아니 내가 그 같은 마음 약한 짓에 끌려서야 되겠는가, 처음 그 집에 시집올 때부터 도지로 님을 남편으로 정하고 들어간 것이 아니거늘, 몸은 가더라도 마음만은 결코 주지 아니하리라 정해 두었거늘, 이제 와서 무슨 의리며 체면이리오, 못된 자라도 좋고 방탕한 자라도 좋으니 마음에 들지 않거든 버리시라, 버림받는다면 도리어 본디 바라던 바, 저런 어리석은 분을 남편으로 받들면서 요시오카 님을 외면하려는 따위 생각을, 어찌 잠시라도 품었던 것이리오, 내 목숨이 다하지 아니하는 한 만나기를 그치지 아니하리, 끊지는 못하리, 남편을 두시든 정실부인을 들이시든 이 약속만은 깨뜨리지 아니하리라 약속해 두었거늘, 누가 무엇 하나 다정히 군다 한들, 고마운 말씀을 건네 준다 한들, 내 남편은 요시오카 님 이외에는 없거늘, 이제는 무엇도 생각지 아니하리, 생각지 아니하리, 하면서 두건 위로 귀를 막고 빠른 걸음으로 대여섯 걸음 내달으니, 가슴의 두근거림은 어느새 잦아들어, 마음은 고요하고 정신은 또렷해져, 혈색 없는 입술에는 차가운 미소마저 떠올랐더라. (미정고)

●도서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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