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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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久生十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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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Pagera AI
원문 Public Domain
Chapter 5 of 5

5

곧 검시관과 경찰서 의사가 와서 형식적인 검시를 했다. 그것이 끝나고 스에의 몸을 관에 넣으려 할 때, 살덩이 하나가 정강이에서 벗겨져 나와 툭 문짝 위에 떨어졌다. 나는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울었다.

스에가 살아 있다고 여기던 동안은 이렇다 할 감정도 없었지만, 이제 이 세상에 없다, 이 세상에서는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니, 후회라고도 애련이라고도 이름 붙일 수 없는 마음이 북받쳐 멈출 수가 없다. 나는 이 호숫가에서 처음 스에를 만났고, 이 호숫가에서 스에와 헤어지게 되었다. 첫날 스에가 보트 안에서 들려준 이야기와 몸짓, 혼인한 뒤의 갖가지 천진한 장난, 잊고 있던 사소한 일들이 기억에 되살아나 하나하나 눈물을 자아낸다.

관은 넓은 방에 안치했다. 스에가 오르간을 치며 혼자 놀던 바로 그 방이다. 관 앞에는 스에가 좋아하던 가을 장미꽃과 하카타 인형을 올렸다. 생각해 보면 사랑스럽고도 순진한 아내였다. 스에가 얼마나 다정하고 진실하고 애정이 깊었는지, 죽고 나서 보니 그것을 잘 알겠고, 그래서 더욱 단념할 수가 없다. 이제 와 생각하면 스에야말로 이 세상에서 진심으로 나를 사랑해 준 단 한 사람의 여자였다. 나 역시 마음속으로는 스에를 사랑하고 있었지만, 미숙한 성정이 그 마음이 솟구쳐 나오는 것을 막고 있었을 뿐이다. 지금이라면 하고 말해 본들 스에는 이미 죽어 버렸다. 내 어리석음을 깨달았을 때에는 스에가 이미 이 세상에 없는 것이다.

관 앞에 앉아 맥없이 길게 서려 오르는 향 연기를 보고 있으니, 정말로 이승에서의 마지막 이별이라는 느낌이 들어 슬퍼서 견딜 수가 없다. 사람 없는 곳에 가서 실컷 울어 주리라 마음먹고, 뜰에서 이어진 뒤쪽 숲으로 들어갔다.

오솔길 양쪽에는 삼나무, 졸참나무, 노송나무 따위가 무성하게 우거져 햇빛을 가릴 지경이다. 딱따구리 소리가 숲에 메아리쳐 깊은 산속에라도 있는 기분이 든다. 저물녘의 어두운 오솔길 낙엽을 밟으며 울적하게 걷는 사이, 갑자기 눈물이 가슴께로 치밀었다. 삼나무 줄기에 이마를 대고 울고 있으니 그 근처에서 가지 꺾이는 듯한 소리가 났다.

스에가 두 소매를 가슴 위로 여미고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땅거미 속에 흐릿하게 서 있다. 나는 슬픔으로 머리가 돌아 또다시 환각에 사로잡히게 된 것인가 하고 생각하며 그림자 같은 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스에는 짙은 보라색 오코소 두건을 쓰고 같은 색 아즈마 코트를 입고서 역시 나를 응시하고 있다. 그러나 산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로 얼굴 윤곽이 옅어졌다가 어렴풋해졌다가 한다. 정체가 무엇이든 그립기 짝이 없어서,

“스에.”

하고 불렀더니, 스에는 아이처럼 흐느끼며 달려들어 숨이 막히도록 내 목을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스에가 죽은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하자마자, 스에가 살아 있는 것을 누군가에게 들키면 그야말로 큰일이라며 허둥대기 시작했다. 이 근방은 아직 숲 어귀라 마을 아이들이 곧잘 마른 가지를 주우러 오는 곳이므로, 나는 스에의 등을 쓸어 주며,

“큰 소리 내지 마라, 사람이 오면 안 되니까.”

하고 말하자, 스에는 갑자기 울음을 그치고 눈물에 젖은 큰 눈으로 가만히 내 얼굴을 바라보며,

“당신을 죽이고 저도 죽을 작정으로 왔으니까, 이제 명성 따위는 아무래도 좋아요. 네? 제발 같이 죽어 주세요.”

라고 하며 허리띠 사이에서 칼집째 단도를 꺼내 보였다.

세상에 말 잘하고 약삭빠르며 남의 환심 사는 솜씨가 능란한 자가 있어 천만 마디 말을 늘어놓는다 한들, 스에의 한마디만큼 내 영혼을 뒤흔들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는 진정 스에에게 사랑받고 있었음을 이때 불현듯 컴프리헨드했다. 내 붓으로는 이때의 감정을 그려 낼 수가 없다. 설령 바이런이나 괴테 같은 필력을 지니고 있었다 해도 마찬가지로 불가능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나는 기쁜 나머지 울고 있었다. 스에가 손수건으로 여러 번 내 눈물을 닦아 주었던 듯하다. 나는 아이가 소중한 장난감이라도 쥔 것처럼 무턱대고 힘을 주어 스에를 끌어안으며,

“잘 돌아와 주었구나. 나는 너를 만나고 싶어서 방금까지 저기서 울고 있었단 말이다.”

하고 두서없이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고 한다. 스에는 웃으면서 지금도 그 흉내를 내 보인다.

두 사람은 서로 엉키듯이 숲 깊은 곳의 오두막으로 가서 거기서 교합했다. 서 있는 나무를 기둥 삼아 널 지붕을 비스듬히 얹어 엉성하게 세운 오두막으로, 입구는 흙바닥이고 헌 다다미 너덧 장을 깐 자리에 화덕이 파여 있다. 산지기가 비를 만났을 때의 피난처였지만 지금은 들르는 사람이 없다.

두 사람은 껴안은 채 입을 다물 새 없이 지껄였다. 스에는 얼마나 나를 사랑했는지, 내게 미움받는다고 여겨 얼마나 쓸쓸한 나날을 보냈는지, 그 쓸쓸한 나날이 얼마나 괴로웠는지.

“그러니까 당신 대신 그 사람한테 와 달라고 했어요. 그 사람한테 말했어요. 저는 그쪽을 오쿠다이라라고 여기고 그걸 하는 거니까, 그쪽도 그런 셈 치고 되도록 그럴듯하게 흉내를 내 달라고요. 그 사람이 감쪽같이 당신이 되어 주었을 때만 그걸 했어요. 잘못한 거예요? 저는 역시 정조를 더럽힌 건가요?”

하고 천진하게 내 얼굴을 올려다보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저는 당신하고만 줄곧 함께 있었는걸요.”

“그래서, 네 상대는 누구였느냐?”

스에는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며,

“이것만은 죽임을 당해도 말하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지금이라면 말씀드릴게요. 실은 다카기였어요.”

“역시 그랬던 거냐?”

“알고 계셨어요?”

“송장이 호수에서 올라왔을 때 새파랗게 질려 달려와서 합장하고 염불을 외고 평소에 없던 행동을 하기에 옳거니 하고 눈치챘다. 그 뒤로 다카기는 별장지기도 하녀도 내쫓고 넓은 별장에 달랑 혼자 칩거하고 있다는데, 아마 혼자서 끙끙대고 있겠지. 그 녀석은 마음이 약한 놈이라 그런 짓만 하다가는 머잖아 목이라도 매고 말 거다. 다카기는 피똥을 쌀 만큼 애를 써서 나를 무죄로 만들었으니, 그만한 죄는 진작에 소멸했다. 나는 이제 아무한테도 화나지 않는다. 너한테도, 다카기한테도.”

나는 있는 대로 속옷을 벗어 스에에게 입혀 주고 부리나케 별장으로 달려 돌아갔다. 스에의 이불 대신 쓸 두툼한 외투 두 벌과 손난로를 안고 나가려는데, 다다미방 한구석에 밤샘 손님에게 돌릴 도시락이 쌓여 있기에 간 김에 세 개쯤 훔쳐 내어 오두막으로 돌아갔다. 두 번째에는 용케 방석과 차가 든 질주전자를 훔쳐 냈지만, 도중에 품속에서 뜨거운 차가 쏟아져 화상을 입었다.

독경이 시작될 즈음 다시 별장으로 돌아갔는데, 마음이 들떠 있는 터라 분향 도중에 웃음이 터질 것 같아 난감했다. 이튿날 다카기와 둘이서 도쿄에 가서 무사히 매장을 마쳤다. 어디 누구인지도 모를 사람의 장례에서 다카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울기만 했다. 왜 그렇게 우느냐고 물었더니, 요즘 울증이 있어 까닭 없이 울고 싶으니 내버려 두라고 했다.

오두막 안에 조금씩 물건이 늘었다. 이 빠진 찻사발에 단무지를 담는 정도이긴 했지만, 그럭저럭 지내는 데 아쉬울 것은 없게 되었다. 나는 아내를 죽이고 애인을 얻었다고 할 만한 처지이나, 여기에 이르러서는 두 사람 사이에 이제 어떤 거짓도 허세도 없다. 내가 약속한 시간대로 찾아가면 스에는 오두막에서 뛰쳐나와 내게 안기며,

“잘 와 주셨네요, 기뻐라.”

하고, 기다리다 지친 애인에게 말하듯 신선한 정감을 담아 속삭인다. 그것이 내게는 무척 기뻤다. 읍내에서 구해 온 변변찮은 먹을거리를 먼지 이는 헌 다다미 위에 늘어놓고 둘이서 먹은 뒤, 외투를 뒤집어쓰고 한 시간쯤 잔다.

어느 날 나는 스에에게 말했다.

“나는 이 생활이 즐거워 견딜 수가 없으니 죽을 때까지 계속하고 싶다. 하지만 여기 있다가 네가 살아 있는 걸 들키면 감옥이다 뭐다 성가신 일이 생길 테니, 차라리 집도 재산도 내던지고 일본 어느 구석에서든 자유롭고 편하게 살고 싶은데.”

하고 말하자, 스에는 손뼉을 치며 곧바로 찬성했다. 나는 스에의 손을 잡고,

“하지만 돈 같은 걸 들고 나가면 들통나니까, 정말 입은 옷 그대로 뛰쳐나가는 거다. 죽을 때까지 이렇게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 그래도 좋으냐?”

스에는 좋아요, 그렇게 해요, 하며 일어나 환호작약하고, 당장이라도 나가고 싶은 눈치였다.

다음 날 아침 늘 가던 시간에 오두막에 가니 스에가 뛰어나와, 어젯저녁 숲 어귀에서 다카기를 만났다고 했다. 나는 절로 눈살을 찌푸리며,

“그건 곤란한 짓을 했구나. 그래서 이야기라도 했느냐?”

“아뇨, 저를 보더니 눈알을 이만큼이나 부릅뜨고 뒷걸음질 치다가 기다시피 해서 도망갔어요. 유령이라고 생각했을 테니 괜찮아요. 더구나 제가 무덤 속에 들어가는 것까지 지켜본 사람인걸요.”

“아니, 그건 모를 일이다. 하지만 다카기라면 입막음할 자신이 있다. 잠깐 다녀오마.”

두 시간쯤 뒤 오두막으로 돌아와 스에에게 말했다.

“이봐, 다카기가 목을 매고 있더라. 천장 들보에 매달려 있었어.”

스에는 말없이 내 얼굴을 마주 보았다. 다카기의 입을 막으려고 내가 가서 목 졸라 죽였다고 여기는 것은 아니겠지만, 무언가 납득하지 못하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러나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나는 다다미 위로 올라가 스에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다카기가 죽은 걸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실종 따위 미지근한 짓은 그만두고 내가 죽은 것으로 해 버리려 한다. 말하자면 다카기가 자취를 감춰 주고, 나는 자살한 것으로 하는 거다. 다카기의 송장을 숲 깊은 곳에 매달아 두고 내 대역으로 삼는 거지. 그러면 깨끗이 이 세상과의 인연이 끊어질 테니까.”

밤 열한 시쯤 보트를 저어 나가 다카기 집 뒤편에 대고, 다카기의 시체를 싣고 돌아왔다. 스에가 물가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둘이서 날랐다. 스에는 다리를, 나는 머리 쪽을 들고 숲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시체는 화가 날 만큼 무겁고 붙들 데가 마땅치 않다. 달은 있지만 나뭇잎이 두텁게 우거져 있어 아래 풀숲까지는 닿지 않는다. 가시덤불과 머루 덩굴이 서로 얽히고설킨 어두운 숲속에서 다루기 까다로운 물건을 나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넘어지면 스에도 넘어진다. 딱하게도 다카기는 긁힌 상처를 몇 군데나 입었는지 모른다. 그래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되도록 깊이 들어갔다. 그런 식으로 한 시간 넘게 걸었다. 앞은 졸참나무가 빽빽한 숲이라 더는 나아갈 수가 없으므로, 이쯤이면 되겠다 싶어 새끼줄로 올가미를 만들어 다카기의 목에 끼우고, 그 끝을 쥐고 느티나무에 기어올랐다. 알맞은 가지에 새끼줄을 감아 잡아당기자, 스에는 다카기의 발을 붙잡고 낮은 목소리로 영차, 영차 하고 구령을 붙이며 밀어 올렸다.

밑에서 올려다보니 다카기는 갑자기 흰머리가 늘어난 관자놀이를 은빛으로 빛내며, 체념한 듯한, 어딘지 의미심장한 얼굴로 매달려 있다. 수고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터라 무슨 훌륭한 예술품이라도 완성한 듯한 만족을 느끼며, 나는 품에 손을 찌른 채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Chapter 5 of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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