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一信[제일신]
第一信[제일신]
사랑하는 벗이여
前番[전번] 平安[평안]하다는 片紙[편지]를 부친 後[후] 사흘만에 病[병]이 들었다가 오늘이야 겨우 出入[출입]하게 되었나이다. 사람의 일이란 참 믿지 못할 것이로소이다. 平安[평안]하다고 便紙[편지] 쓸 때에야 뉘라서 三日後[삼일후]에 重病[중병]이 들 줄을 알았사오리까. 健康[건강]도 믿을 수 없고, 富貴[부귀]도 믿을 수 없고, 人生萬事[인생만사]에 믿을 것이 하나도 없나이다. 生命[생명]인들 어찌 믿사오리이까. 이 便紙[편지]를 쓴지 三日後[삼일후]에 내가 죽을는진들 어찌 아오리까. 古人[고인]이 人生[인생]을 朝露[조로]에 비긴 것이 참 마땅한가 하나이다. 이러한 中[중]에 오직 하나 믿을 것이 精神的[정신적]으로 同胞民族[동포민족]에게 善影響[선영향]을 끼침이니, 그리하면 내 몸은 죽어도 내 精神[정신]은 여러 同胞[동포]의 精神[정신] 속에 살아 그 生活[생활]을 管攝[관섭]하고 또 그네의 子孫[자손]에게 傳[전]하여 永遠[영원]히 生命[생명]을 保全[보전]할 수가 있는 것이로소이다. 孔子[공자]가 이리하여 永生[영생]하고, 耶蘇[야소]와 釋迦[석가]가 이리하여 永生[영생]하고, 여러 偉人[위인]과 國土[국토]와 學者[학자]가 이리하여 永生[영생]하고, 詩人[시인]과 道士[도사]가 이리하여 永生[영생]하는가 하나이다.
나도 只今[지금] 病席[병석]에서 일어나 사랑하는 그대에게 이 便紙[편지]를 쓰려 할 제 더욱 이 感想[감상]이 깊어지나이다. 어린 그대는 아직 이뜻을 잘 理解[이해]하지 못하려니와 聰明[총명]한 그대는 近似[근사]하게 想像[상상]할 수는 있는가 하나이다.
내 病[병]은 重[중]한 寒感[한감]이라 하더이다. 元來[원래] 上海[상해]란 水土[수토]가 健康[건강]에 不適[부적]하여 이곳 온지 一週日[일주일]이 못하여 消化不良症[소화불량증]을 얻었사오며 이번 病[병]도 消化不良[소화불량]에 原因[원인]한가 하나이다. 첨 二[이], 三日[삼일]은 身體[신체]가 倦怠[권태]하고 精神[정신]이 沈鬱[침울]하더니 하루 저녁에는 惡寒[악한]하고 頭痛[두통]이 나며 全身[전신]이 떨리어 그 괴로움이 참 形言[형언]할 수 없더이다. 어느덧 한잠을 자고나니 이번에는 全身[전신]에 모닥불을 퍼붓는 듯하고 가슴은 바짝바짝 들이타고 燥渴症[조갈증]이 나고 腦[뇌]는 부글부글 끓는 듯하여 가끔 精神[정신]을 잃고 군소리를 하게 되었나이다.
이때에 나는 더욱 懇切[간절]히 그대를 생각하였나이다. 그 때에 내가 病[병]으로 있을 제 그대가 밤낮 내 머리맡에 앉아서 或[혹] 손으로 머리도 짚어 주고 多情[다정]한 말로 慰勞[위로]도 하여 주고 , 그 中[중]에도 언제 내 病[병]이 몹시 重[중]하던 날 나는 二[이], 三時間[삼시간] 동안이나 精神[정신]을 잃었다가 겨우 깨어날 제 그대가 무릎 위에 내 머리를 놓고 눈물을 흘리던 생각이 더 懇切[간절]하게 나나이다. 그때에 내가 겨우 눈을 떠서 그대의 얼굴을 보며 내 여위고 찬 손으로 그대의 따뜻한 손을 잡을제 내 感謝[감사]하는 생각이야 얼마나 하였으리이까. 只今[지금] 나는 異城[이성] 逆旅[역려]에 외로이 病[병]들어 누운 몸이라 懇切[간절]히 그대를 생각함이 또한 當然[당연]할 것이로소이다. 나는 하도 아쉬운 마음에 억지로 그대가 只今[지금] 내 곁에 앉았거니, 내 머리를 짚고 내 손을 잡아주거니 하고 想像[상상]하려 하나이다. 夢寐間[몽매간]에 그대가 내 곁에 있는 듯하여 반겨 깨어 본즉 차디찬 電燈[전등]만 無心[무심]히 天井[천정]에 달려 있고 琉璃窓[유리창] 틈으로 찬바람이 휙휙 들여쏠 뿐이로소이다. 世上[세상]에 여러 가지 괴로움이 아무리 많다 한들 異城逆旅[이성역려]에 외로운 病이[병]든 것보다 더한 괴로움이야 어디 있사오리이까. 몸에 熱[열]은 如前[여전]하고 頭痛[두통]과 燥渴[조갈]은 漸漸[점점] 甚[심]하여 가되 主人[주인]은 잠들고 冷水[냉수]한 잔 주는 이 없나이다. 그때 그대가 冷水[냉수] 먹는 것이 害[해]롭다 하여 밤에 커다란 무를 얻어다가 깍아 주던 생각이 나나이다. 焦渴[초갈]한 中[중]에 시원한 무, 사랑하는 그대의 손으로 깍은 무 먹는 맛은 仙桃[선도], 만일 있다 하면, 먹는 맛이라 하였나이다.
이러한 때에는 여러 가지 空想[공상]과 雜念[잡념]이 많이 생기는 것이라 只今[지금] 내 머리에는 過去[과거] 일, 未來[미래] 일, 있던 일, 없던 일, 기쁘던 일, 섧던 일이 連絡[연락]도 없고 秩序[질서]도 없이 짤막짤막 조각조각 쓸어 나오나이다. 한참이나 이 雜念[잡념]과 空想[공상]을 겪고 나서 번히 눈을 뜨면 마치 그 동안에 數十年[수십년]이나 지나간 듯하나이다. 或[혹]「죽음」이라는 생각도 나나이다. 내 病[병]이 漸漸[점점] 重[중]하여 져서 明日[명일]이나 再明日[재명일]이나 또는 이 밤이 새기 前[전]에라도 이 목숨이 스러지지 아니할는가, 이렇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다가 非夢似夢間[비몽사몽간]에 이 世上[세상]을 버리지나 아니할는가, 或[혹] 只今[지금] 내가 죽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여 제 손으로 제 몸을 만져 보기도 하였나이다.「죽음!」生命[생명]은 무엇이며 죽음은 무엇이뇨. 生命[생명]과 죽음은 한데 매어 놓은 빛 다른 노끈과 같으니 붉은 노끈과 검은 노끈은 元來[원래]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노끈의 한 끝을 붉게 들이고 한 끝을 검게 들였을 뿐이니 이 빛과 저 빛의 距離[거리]는 零[영]이로소이다. 우리는 광대 모양으로 두 팔을 벌리고 붉은 끝에서 始作[시작]하여 時時刻刻[시시각각]으로 검은 끝을 向[향]하여 가되 어디까지나 붉은 끝이며 어디서부터 검은 끝인지를 알지 못하나니, 다만 가고 가고 가는 동안에 언제 온지 모르게 검은 끝에 발을 들여 놓는 것이로소이다. 나는 只今[지금] 어디쯤에나 왔는가. 나선 곳과 검은 끝과의 距離[거리]가 얼마나 되는가. 나는 只今[지금] 病[병]이란 것으로 全速力[전속력]으로 검은 끝을 向[향]하여 달아나지 않는가, 할 때에 알 수 없는 恐怖[공포]가 全身[전신]을 둘러싸는 듯하더이다. 오늘날까지 工夫[공부]한 것은 무엇이며 勤苦[근고]하고 일한 것은 무엇이뇨. 사랑과 미움과 國家[국가]와 財産[재산]과 名望[명망]은 무엇이뇨. 希望[희망]은 어디 쓰며, 善[선]은 무엇, 惡[악]은 무엇이뇨. 사람이란 一生[일생]에 얻은 모든 所得[소득]과 經驗[경험]과 記憶[기억]과 歷史[역사]를 아끼고 아끼며 지녀 오다가 무덤에 들어가는 날, 무덤 海關[해관]에서 말끔 빼앗기고 世上[세상]에 나올 때에 발가벗고 온 모양으로 世上[세상]을 떠날 때에도 발가벗기어 쫓겨나는 것이로소이다. 다만 變[변]한 것은 고와서 온 것이 미워져서 가고, 기운차게 온 것이 가엾게 가고, 祝福[축복]받아 온 것이 咀呪[저주]받아 감이로소이다. 그러므로 나는 생각하나이다. 이제 죽으면 어떻고 來日[내일] 죽으면 어떠며 어제 죽었으면 어떠랴, 아주 나지 않았은들 어떠랴. 아무 때 한 번 죽어도 죽기는 죽을 人生[인생]이요, 죽은 뒤면 王公[왕공]이나 거지나 사람이나 돼지나 乃至[내지] 귀뚜라미나 다 같이 스러지기는 마치 一般[일반]이니 두려울 것이 무엇이며 아까울 것이 무엇이랴 함이 나의 死生觀[사생관]이로소이다.
그러나 人生[인생]이 生[생]을 아끼고 死[사]를 두려워함은 生[생]이 있으므로 얻을 무엇을 잃어버리기를 아껴 함이니, 或[혹] 金錢[금전]을 좋아하는 이가 金錢[금전]의 快樂[쾌락]을 아낀다든가, 사랑하는 父母[부모]나 妻子[처자]를 둔 이가 이들과 作別[작별]하기를 아낀다든가, 或[혹] 힘써 얻은 名譽[명예]와 地位[지위]를 아낀다든가, 或[혹] 사랑하는 사람과 떠나기를 아낀다든가, 或[혹] 宇宙萬物[우주만물]의 美[미]를 아낀다든가 함인가 하나이다. 이러한 생각이야말로 人生[인생]으로 하여금 生[생]의 慾望[욕망]과 執着[집착]을 生[생]하게 하는 것이니, 이 생각에는 人世[인세]의 萬事[만사]가 發生[발생]하는 것인가 하나이다. 내가 只今[지금] 死[사]를 생각하고 恐怖[공포]함은 무엇을 아낌이오리이까. 나는 富貴[부귀]도 없나이다, 名譽[명예]도 없나이다, 내게 무슨 아까울 것이 있사오리이까, 오직 「사랑」을 아낌이로소이다. 내가 남을 사랑하는 데서 오는 快樂[쾌락]과 남이 나를 사랑하여 주는 데서 오는 快樂[쾌락]을 아낌이로소이다. 나는 그대의 손을 잡기 爲[위]하여, 그대의 多情[다정]한 말을 듣기 爲[위]하여, 그대의 香氣[향기]로운 입김을 맡기 爲[위]하여, 차디차고 쓰디쓴 人世[인세]의 曠野[광야]에 내 몸은 오직 그대를 안고 그대에게 안겼거니 하는 意識[의식]의 짜르르 하는 妙味[묘미]를 맛보기 爲[위]하여 살고자 함이로소이다. 그대가 만일 平生[평생] 내 머리를 짚어 주고 내 손을 잡아 준다면 나는 즐겨 一生[일생]을 病[병]으로 지내리이다. 蒼空[창공]을 바라보매 모두 차디차디한 별인 中[중]에 오직 따뜻한 것은 太陽[태양]인 것같이 人事[인사]의 萬般現象[만반현상]을 돌아보매 모두 차디차디한 中[중]에 오직 따뜻한 것이 人類[인류] 相互[상호]의 愛情[애정]의 現象[현상]뿐이로소이다.
그러나 나는 저 形式的宗敎家[형식적종교가], 道德家[도덕가]가 입버릇으로 말하는 그러한 愛情[애정]을 이름이 아니라, 生命[생명] 있는 愛情[애정] , 펄펄 끓는 愛情[애정], 빳빳 마르고 슴슴한 愛情[애정] 말고, 자릿자릿하고 달디달디한 愛情[애정]을 이름이니, 假令[가령] 母子[모자]의 愛情[애정], 어린 兄弟姉妹[형제자매]의 愛情[애정], 純潔[순결]한 靑年男女[청년남녀]의 相思[상사]하는 愛情[애정], 또는 그대와 나와 같은 相思的友情[상사적우정]을 이름이로소이다. 乾燥冷淡[건조냉담]한 世上[세상]에 千年[천년]을 살지 말고 이러한 愛情[애정] 속에 一日[일일]을 살기를 願[원]하나이다. 그러므로 나의 잡을 職業[직업]은 아비, 敎師[교사], 사랑하는 사람, 病人看護[병인간호]하는 사람이 될 것이로소이다.
그러나 나는 只今[지금] 사랑할 이도 없고 사랑하여 줄 이도 없는 외로운 病席[병석]에 누웠나이다.
이리하기를 三[삼], 四日[사일] 하였나이다. 上海[상해] 안에는 親舊[친구]도 없지 아니하오매, 내가 앓는 줄을 알면 찾아오기도 하고 慰勞[위로]도 하고 或[혹] 醫員[의원]도 데려오고 밤에 看護[간호]도 하여줄 것이로소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앓는다는 말을 아무에게도 傳[전]하지 아니하였나이다. 그 뜻은 사랑하지 않는 이의 看護[간호]도 받기 싫거니와 내가 저편에 請[청]하여 저편으로 하여금 體面上[체면상] 나를 慰問[위문]하게 하고 體面上[체면상] 나를 爲[위]하여 밤을 새우게 하기가 싫은 까닭이로소이다.
나도 지내 보니 제가 사랑하는 사람을 爲[위]하여서는 連日[연일] 밤을 새워도 困[곤]한 줄도 모르고 設或[설혹] 病人[병인]이 吐[토]하거나 똥을 누어 내 손으로 그것을 쳐야 할 境遇[경우]를 當[당]하더라고 싫기는커녕, 도리어 내가 사랑하는 이를 爲[위]하여 服務[복무]하게 된 것을 큰 快樂[쾌락]으로 알거니와 제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爲[위]하여서는 한 時間[시간]만 앉아도 졸리고 허리가 아프고 그 病人[병인]의 살이 내게 닿기만 하여도 싫은 症[증]이 생겨 或[혹] 억지로 體面[체면]으로 그를 안아 주고 慰勞[위로]하여 주더라도 이는 한 外飾[외식]에 지나지 못하며 甚至於[심지어] 저것이 죽었으면 사람 죽는 구경이나 하련마는 하는 수도 있더이다. 그러므로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이의 外飾[외식]하는 看護[간호]를 받으려하지 아니함이로소이다. 그때에도 여러 사람이 곁에 둘러앉아서 여러 가지로 나를 慰勞[위로]하고 救援[구원]하는 것보다 그대가 혼자 困[곤]하여서 앉은 대로 壁[벽]에 기대어 조는 것이 도리어 내게 큰 效力[효력]이 되고 慰安[위안]이 되었나이다. 그러므로 나를 사랑하지 않는 여러 사람의 看護[간호]를 받기보다 想像[상상]으로 실컷 사랑하는 그대의 看護[간호]를 받는 것이 千層萬層[천층만층] 나으리라 하여 아무에게도 알리지 아니한 것이로소이다.
第五日夜[제오일야]에 가장 甚[심]하게 苦痛[고통]하고 언제 잠이 들었는지 모르나 精神[정신]을 못 차리고 昏睡[혼수]하였나이다. 하다가 곁에서 사람의 말소리가 들리기로 겨우 눈을 떠 본즉 어떤 淸服[청복] 입은 젊은 婦人[부인]과 男子學徒[남자학도] 하나이 風爐[풍로]에 조그마한 남비를 걸어 놓고 무엇을 끓이더이다. 稀微[희미]한 精神[정신]으로나마 깜짝 놀랐나이다. 꿈이나 아닌가 하였나이다. 나는 淸人女子[청인여자]에 아는 이가 없거늘 이 어떤 사람이 나를 爲[위]하여 , 외롭게 病[병]든 나를 爲[위]하여 무엇을 끓이는고. 나는 다시 눈을 감고 가만히 動靜[동정]을 보았나이다.
얼마 있다가 그 少年學生[소년학생]이 내 寢臺[침대] 곁에 와서 가만히 내 어깨를 흔들더이다. 나는 깨었나이다. 그 少年[소년]은 핏기 있고 快活[쾌활]한 하고 상긋상긋 웃는 얼굴로 나의 힘없이 뜬 눈을 들여다보더니 淸語[청어]로.
『어떠시오? 좀 나아요?』
나는 無人曠野[무인광야]에서 동무를 만난 듯하여 꽉 그 少年[소년]을 쓸어안고 싶었나이다. 나는 힘없는 목소리로.
『네, 關係[관계]치 않습니다.』
이때에 한 손에 부젓거락 든 婦人[부인]의 視線[시선]이 마주치더이다. 나는 얼른 보고 그네가 오누인 줄을 알았나이다. 그 婦人[부인]이 나 잠 깬 것을 보고 寢臺[침대] 가까이 와서 英語[영어]로.
『藥[약]을 다렸으니, 爲先[위선] 잡수시고 早飯[조반]을 좀 잡수시오.』
이때에 내가 무슨 對答[대답]을 하오리이까. 다만.
『感謝[감사]하올시다. 하나님이여, 당신네게 福[복]을 내리시옵소서.』
할 따름이로소이다. 나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나이다. 그 少年[소년]은 外套[외투]를 불에 쪼여 입혀 주고 婦人[부인]은 남비에 데인 藥[약]을 琉璃盞[유리잔]에 옮겨 담더이다. 나는 일어 앉아 내 이불위에 보지 못하면 上等[상등] 담요가 덮인 것을 發見[발견]하였나이다. 나는 참말 꿈인가 하고 고개를 흔들어 보았나이다. 나는 차마 이 恩人[은인]을 더 고생시키지 못하여 억지로 일어나 내 손으로 藥[약]도 먹으려 하였나이다. 그러나 이 두 恩人[은인]은 억지로 나를 붙들어 앉히고 藥[약] 그릇을 손수 들어 먹이나이다.
나는 그 藥[약]을 먹음보다 그네의 愛情[애정]과 精誠[정성]을 먹는 줄 알고 단모금에 죽 들이켰나이다. 곁에 섰던 少年[소년]은 더운 물을 들고 섰다가 곧 양치하기를 勸[권]하더이다. 婦人[부인]은.
『이제 早飯[조반]을 만들겠으니 바람 쏘이지 말고 누워 계십시오.』
하고 물을 길러 가는지 아래 層[층]으로 내려가더이다. 나는 그제야 少年[소년]을 向[향]하여
『누구시오?』
한대, 少年[소년]은 한참 躊躇躊躇[주저주저]하더니.
『나는 이 이웃에 사는 사람이올시다.』
하고는 내 册床[책상] 위에 놓은 그림을 보더이다. 나는 다시 물을 勇氣[용기]가 없었나이다.
婦人[부인]은 바께쓰에 물을 길어 들고 올라오더니 少年[소년]을 한 번 구석에 불러 무슨 귓속말을 하여 내어보내고 自己[자기]는 藥[약] 달이던 남비를 부시어 牛乳[우유]와 쌀을 두고 粥[죽]을 쑤더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물어 보고 싶은 맘이 懇切[간절]하기는 하나 未安[미안]하기도 하고 어떻게 물을지도 알지 못하여 가만히 베개에 기대어 하는 양만 보고 있었나이다. 그때엣 나의 心中[심중]은 어떻게 形言[형언]할 수가 없었나이다. 婦人[부인]은 그리 燦爛[찬란]하지 아니한 비단 옷에 머리는 流行[유행]하는 洋式[양식] 머리, 粉[분]도 바른 듯 만 듯, 自然[자연]한 薔薇[장미]빛 같은 두 보조개가 아침 光線[광선]을 받아 더할 수 없이 아름답더이다. 그뿐더러 매우 精神[정신]이 純潔[순결]하고 敎育[교육]을 잘 받은 줄은 그 얼굴과 擧止[거지]와 言語[언어]를 보아 얼른 알았나이다. 나는 그가 아마 어느 文明[문명]한 耶蘇敎人[야소교인]의 家庭[가정]에서 가장 幸福[행복]하게 자라난 處子[처자]인 줄을 얼른 알았나이다. 그러고 그의 父母[부모]의 德[덕]을 사모하는 同時[동시]에 人類中[인류중]에 이러한 淨潔[정결]한 處子[처자]있음을 자랑으로 알며 그를 보게 된 내 눈과 그의 看護[간호]를 받게된 내 몸을 無上[무상]한 幸福[행복]으로 알았나이다. 나는 病苦[병고]도 좀 덜린 듯하고 設或[설혹] 덜리지는 아니하였더라도 淸淨[청정]한 稀罕[희한]한 기쁨이 病苦[병고]를 잊게 함이라 하였나이다. 實狀[실상] 昨夜[작야]는 참 苦痛[고통]하였나이다. 하도 괴롭고 하도 외로와 내 손으로 내 목숨을 끊어버리려고까지 하였나이다. 만일 이런 일이 없었다면 오늘 아침에 깨어서도 또 그러한 凶[흉]하고 슬픈 생각만 하였을 것이로소이다. 그러나 나는 다시 맘에 기쁨을 얻고 生命[생명]의 快樂[쾌락]과 執着力[집착력]을 얻었나이다. 나는 죽지 말고 살려 하나이다. 울지 말고 웃으려 하나이다. 이러한 美[미]가 있고 이러한 愛情[애정]이 있는 世上[세상]은 버리기 에는 너무 아깝다 하나이다. 하나님은 地獄[지옥]에 들려는 어린 羊[양]에게 두 天使[천사]를 보내다 다시 당신의 膝下[슬하]로 부른 것이로소이다.
나는 風爐[풍로]의 불을 불고 숟가락으로 粥[죽]을 젓는 婦人[부인]의 등을 向[향]하여 慇懃[은근]히 고개를 숙이며 속으로 天使[천사]시여 하였나이다. 婦人[부인]은 偶然[우연]히 뒤를 돌아보더이다. 나는 부끄러워 고개를 푹 숙였나이다.
이윽고 층층대를 올라오는 소리가 나더니 그 少年[소년]이 蜜柑[밀감]과 林檎[임금] 담은 광주리와 牛乳筩[우유통]을 들고 들어와 그 婦人[부인]께 주더이다. 婦人[부인]은 또 무어라고 소곤소곤 하더니 그 少年[소년]이 알아들은 듯이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날더러.
『칼 있읍니까?』
『네 저 册床[책상] 왼편 舌盒[설합]에 있읍니다.』
『열어도 關係[관계]치 않습니까?』
『녜.』
하는 내 對答[대답]을 듣고 少年[소년]은 발소리도 없이 册床[책상] 舌盒[설합]을 열고 칼을 내어다가 林檎[임금]을 깍아 白紙[백지]위에 쪼개어 내 寢床[침상]머리에 놓으며.
『잡수세요, 목마르신데.』
하고 焦悴[초췌]한 내 얼굴을 걱정스러운 듯이 보더이다. 나는 感謝[감사]하고 기쁜 맘에.
『참 感謝[감사]하올시다.』
하고 얼른 두어 쪽 집어 먹었나이다. 그 맛이여! 빼빼 마르던 가슴이 뚫리는 듯하더이다. 그때에 그대의 손에 무쪽을 받아 먹던 맛이로소이다.
알지 못하는 處女[처녀]가 異國病人[이국병인]을 爲[위]하여 精誠[정성]들여 끓인 粥[죽]을 먹고 알지 못하는 少年[소년]이 손수 발가주는 蜜柑[밀감]을 먹고 나니 몸이 좀 부드러워지는 듯하더이다. 그제야 나는 婦人[부인]더러.
『참 感謝[감사]드릴 말씀이 없읍니다. 大體[대체] 아씨는 누구시완데 外國病人[외국병인]에게 이처럼 恩惠[은혜]를 끼치십니까?』
하고 나는 不知不覺[부지불각]에 눈물을 흘렸나이다. 婦人[부인]은 少年[소년]의 어깨를 만지며.
『저는 이 이웃의 사람이올시다. 先生[선생]은 저를 모르시려니와 저는 여러번 先生[선생]을 뵈었나이다. 여러 날 出入[출입]이 없으시기로 主人[주인]에게 물은즉 病[병]으로 계시다기에 客地[객지]에 얼마나 외로우시랴 하고 제 同生[동생](少年[소년]의 어깨를 한 번 더 만지며)을 데리고 藥[약]이나 한 貼[첩] 달여 드릴까 하고 왔읍니다.』
나는 너무 感激[감격]하여 한참이나 말을 못하고 눈물만 흘리다가.
『未安[미안]하올시다마는 좀 앉으시지요.』
하여 婦人[부인]이 椅子[의자]에 앉은 뒤에 나는.
『참 이런 큰 恩惠[은혜]가 없읍니다. 平生[평생] 잊지 못할 큰 恩惠[은혜]올시다.』
婦人[부인]은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잠간 붉히며.
『千萬外[천만외] 말씀이올시다.』할 뿐.
이 말을 듣고 나는 갑자기 精神[정신]이 아득하여지며 房[방] 안이 노랗게 되는 것만 보고는 어찌 된지 몰랐나이다. 아마 衰弱[쇠약]한 몸이 過劇[과극]한 精神的動搖[정신적동요]를 견디지 못하여 氣絶[기절]한 것이로다. 이윽고 멀리서 나는 사람의 소리를 들으며 깨어 본즉, 곁에는 그 婦人[부인]과 少年[소년]이 있고 그 外[외]에 어떤 洋服[양복] 입은 男子[남자]가 내 팔목을 잡고 섰더이다. 一同[일동]의 눈치와 얼굴에는 驚愕[경악]한 빛이 보이더이다. 나는 이 여러 恩人[은인]을 걱정시킨 것이 더욱 未安[미안]하여 기써 웃으며.
『暫時[잠시] 昏迷[혼미]하였었읍니다. 이제는 平安[평안]하올시다.』
그제야 婦人[부인]과 少年[소년]이 웃고 내 손목을 잡은 사람도 婦人[부인]을 向[향]하여.
『二[이], 三日內[삼일내]에 낫지요.』
하고 아래로 내려가더이다. 婦人[부인]은「후, 」하고 한숨을 쉬며.
『아까 잡수신 早飯[조반]이 滯[체]하셨는가요. 어떻게 놀랐는지, 두 時間[시간]이나 되었읍니다.』
그 後[후] 아무리 辭讓[사양]하여도 三日[삼일]을 連[연]하여 晝夜[주야]로 藥[약]과 飮食[음식]을 여투어 주어 부드러운 말로 慰勞[위로]도 하더이다. 그러나 앓는 몸이요, 또 물을 勇氣[용기]도 없이 姓名[성명]이 무엇인지, 다만 이웃이라 하나 統戶數[통호수]가 얼마인지도 몰랐나이다. 너무 오래 그네를 수고시키는 것이 좋지 아니하리라하여 不得已婦人[부득이부인]의 代筆[대필]로 몇몇 親舊[친구]에게 便紙[편지]를 띄우고 이제부터 내 親舊[친구]가 올 터이니 너무 수고 말으소서, 크나 큰 恩惠[은혜]는 刻骨難忘[각골난망]하겠나이다 하여 겨우 돌려보내었나이다. 그 동안 이 두 恩人[은인]에게 받은 恩惠[은혜]는 참 헤이릴 수도 없고 形言[형언]할 수도 없나이다. 더우기 그 추운 밤에 病床[병상]에 지켜 앉아 連[연]해 젖은 手巾[수건]으로 머리를 식혀 주며 자리를 덮어 주고 甚至於[심지어] 물을 데워 아침마다 手巾[수건]으로 얼굴을 씻어 주고 少年[소년]은 册床[책상]을 整頓[정돈]하여 주며 심부름을 하여 주고 , 마침 十二月[십이월] 二十四[이십사], 五日頃[오일경]이라 學校[학교]는 休業[휴업]이나 , 하루 세 번 藥[약]을 달이고 먹을 것을 만들어 주는 等[등] 親同生[친동생]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나이다. 나는 이 두 恩人[은인]을 무엇이라 부르리이까. 아우와 누이 , 우리 言語中[언어중]에 여기서 더 親切[친절]한 말이 없으니 이말에「가장 사랑하고 가장 恭敬[공경]하는」이라는 形容詞[형용사]를 달아 「가장 사랑하는 누이」,「가장 사랑하는 아우」라 하려 하나이다. 사랑하는 그대여, 나는 살려 하나이다. 살아서 일하려 하나이다 , 그대와 저와 세 사람을 爲[위]하여 그 세 사람을 가진 福[복] 있는 人生[인생]을 爲[위]하여 잘 살면서 잘 일하려 하나이다.
오늘은 十二月[십이월] 二十七日[이십칠일]. 부디 心身[심신]이 平安[평안]하여 게으르지 말고 正義[정의]의 勇士[용사] 될 工夫[공부]하소서.
사랑하시는 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