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위기잡고 (바둑 잡고)
고다 로한
바둑은 중국에서 일어났다. “박물지(博物志)”에는, 요(尭)임금이 바둑을 만들고 단주(丹朱)가 이를 잘 두었다 하였고, “진중흥서(晋中興書)”에는, 도간(陶侃)이 형주(荊州)의 임지에 있을 때 좌사(佐史)들의 박혁(博奕)의 놀이 도구를 보고 이를 강에 던지며 이르기를, “바둑은 요순(尭舜)이 어리석은 자식을 가르치기 위함이요, 박(博)은 은(殷) 주왕(紂)이 만든 바이라. 제군은 모두 나라의 그릇이거늘, 어찌 이로써 일삼으리오” 하였다 하니, 일찍이 바둑이 요순 시대에 일어났다는 설이 있었음을 가히 알 만하다. 그러나 바둑이 과연 요임금의 손에서 창조되었는지 어떤지는 분명치 않으니, 이는 마치 “박물지”에 노자(老子)가 호(胡) 땅에 들어가 저포(樗蒲)를 만들었다 하고, “설문(説文)”에 옛날에는 도조박(島曹博)을 만들었다 함과 같으니, 이는 다만 옛 전설이라 일컬을 따름이라.
다만 바둑이 매우 일찍 중국에서 일어난 것은 의심할 바 없다. “논어(論語)”에 “박혁이라는 것이 있지 않으냐”는 말이 있고, “맹자(孟子)”에 혁추(奕秋)의 일이 있으며, “좌전(左伝)”에 태숙문자(太叔文子)가 “임금을 보매 바둑 두는 것만 못하니, 그가 어찌 화를 면하리오” 한 말이 있다. 더욱이 이미 혁추와 같이 기예로써 한때에 이름을 떨친 자가 있었다 하면, 바둑의 도(道)가 당시에 발달하였음을 가히 살필 만하다. 가령 요임금의 손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바둑은 적어도 주(周) 혹은 그 이전에 세상에 나왔던 것임을 알 만하다.
바둑이 말미암아 온 바가 이같이 오래된지라, 만일 바둑에 관한 문헌을 찾고자 한다면, 방대한 큰 책을 이룰 만하다. 사상(史上)에 유명한 인물의 바둑에 관한 일화는, 비(費)와 내민(来敏)이 우격(羽檄)이 어지러이 오가는 사이에 대국하였다는 것 같음이며, 왕찬(王粲)이 한 판의 바둑을 기록함에 그르치지 않았다 함과 같음이며, 왕중랑(王中郎)이 바둑을 좌은(座隠)이라 하고 지공(支公)이 수담(手談)이라 한 것과 같음이며, 원굉(袁)이 바둑을 두면서도 은중감(殷仲堪)이 “역(易)”의 뜻을 묻는 데 답하기를 응답이 흐르듯 하였다 함과 같음이며, 반고(班固)에게 “혁지(奕旨)의 논”이 있고 마융(馬融)에게 “위기(囲棊)의 부”가 있음과 같음이며, 진(晋)의 조섭(曹), 채홍(蔡洪), 양(梁)의 무제, 선제에게 부(賦)가 있음과 같음이며, 위(魏)의 응창(応)에게 “혁세(奕勢)에 관한 글”이 있고 양의 심약(沈約)에게 “기품(棋品)의 서(序)”가 있음과 같으니, 당(唐) 이후로 이르러서는 시부(詩賦) 따위가 이루 헤아릴 겨를이 없을 정도라. 그러나 양에 “기품”이 있을 뿐, 따로 전문서가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송(宋)이 남도(南渡)할 즈음에, 안천장(晏天章)이 “원기경(元棋経)”을 짓고 유중보(劉仲甫)가 “기결(棋訣)”을 지으니, 이로부터 전문서가 점차 나오게 되었다. 명(明)의 왕치등(王穉登)이 “혁사(奕史)” 한 권을 지어, 바둑의 역사가 비로소 이루어졌다. 명의 가정(嘉靖) 연간에는 임응룡(林応竜)이 “적정록(適情録)” 이십 권을 엮었으니, 그 가운데 일본 승려 허중(虚中)이 전한 바의 바둑보 삼백팔십사 도(図)를 실었다 한다. 그 기품의 높낮이는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나라 사람의 기예가 저쪽에 전하여 확실한 자취를 남긴 것은, 마땅히 이를 효시(嚆矢)로 삼아야 하리라. 내가 바둑에 있어서는 국외(局外)의 사람이라, 까닭에 듣고 아는 바가 적다 할지라도, “추선유보(秋仙遺譜)” 이하로 바둑보가 세상에 나온 것이 매우 많으리라. 우리나라가 수당(隋唐)에 왕래한 이래로, 바둑을 전하여 이를 잘 두는 자 또한 적지 않다. 전하는 바의 일화가 잡서에 흩어져 보이는 것이 또한 많다. 혼인보(本因坊)가 있어 언무(偃武)의 세상에 나타남에 미쳐서는, 울연(蔚然)히 한 가문을 이루어 태평 삼백 년 사이에 출중한 재주가 서로 이어 일어나니, 지금에 이르러서는 우역(禹域, 곧 중국)을 압도한다 한다. 바둑보 또한 매우 많다. 그러나 그 도보 이외의 저술에 있어서는 심히 드무니, 저쪽과 우리쪽을 합하여도 “기경(棋経) 십삼편(十三篇)”에 미칠 만한 것이 없다. 십삼편은 대저 “손자(孫子)”를 본뜬 것이라. 그 가운데 명언이 많음은 앞사람들이 이미 이를 일렀다. 바둑이 있은 이래로 말을 세우고 도를 논함에 이를 능가할 자가 없으니, 이를 기가(棋家)의 손자라 일컬어도 누가 감히 마땅치 않다 하리오. 바둑은 십삼편으로 다하였다 하여도 가하리라. 두부자(杜夫子)와 왕적신(王積薪)의 무리가 기예로써 한때에 빼어났다 할지라도, 지금에는 가히 볼 만한 바가 없음을 한탄할 따름이라. 바둑의 대개(大概)가 이와 같으니라.
일(一) 기경묘지 (棋経妙旨)
○옛으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바둑 두는 자에게 같은 판국이 없다. 전(伝)에 이르되, “날로 새롭다” 하니, 까닭에 마땅히 뜻을 씀이 깊고 헤아림이 정밀하여, 그 승부가 말미암는 바를 구한다면, 곧 그 아직 이르지 못한 곳에 이르리라.
○바둑이라는 것은 정(正)으로써 그 형세를 합하고, 권(権)으로써 그 적을 제압한다. 싸움이 아직 합하기 전에 헤아린다. 싸워서 이기는 자는 헤아림을 얻음이 많은 자라. 싸워서 이기지 못하는 자는 헤아림을 얻음이 적은 자라. 싸움이 이미 합한 뒤에야 승부를 알지 못하는 자는 헤아림이 없는 자라. “병법(兵法)”에 이르되, “산(算)이 많으면 이기고, 산이 적으면 이기지 못한다” 하였느니라.
“산이 많으면 이기고, 산이 적으면 이기지 못한다(多算勝、少算不勝)”는 “손자”의 말이라. ○가까이 있다 하여 반드시 가까이 모이는 것이 아니요, 멀리 있다 하여 반드시 어긋나는 것도 아니라.
“비(比)”란 서로 돕는 뜻이라. “괴(乖)”는 서로 미치지 못함이라. ○박혁(博奕)의 도는 근엄(謹厳)을 귀히 여긴다. 높은 자는 배(腹)에 있고, 낮은 자는 가(辺)에 있고, 가운데인 자는 모(角)에 있다. 법(法)에 이르되, “차라리 한 돌을 잃을지언정 한 선수(先)를 잃지 말라” 하였다. 왼쪽을 치고자 하면 곧 오른쪽을 살피고, 뒤를 공격하고자 하면 곧 앞을 바라본다. 먼저 두고도 늦어지는 일이 있고, 늦게 두고도 앞서는 일이 있다. 둘이 함께 살아 있는 것은 끊지 말고, 모두 살아 있는 것은 잇지 말라. 트인 것이라도 너무 성기게 두어서는 안 되고, 빽빽한 것이라도 너무 다그쳐서는 안 되니, 그 돌을 아껴 살리려고 함보다는, 이를 버리고 승리를 취하는 편이 낫다. 그 일이 없는데도 억지로 두느니, 그것을 따라 스스로 보충하는 편이 낫다. 적이 많고 우리가 적으면, 먼저 그 살길을 도모하고, 우리가 많고 적이 적으면 힘써 그 형세를 펼친다. 잘 이기는 자는 다투지 아니하고, 잘 진치는 자는 싸우지 아니하고, 잘 싸우는 자는 패하지 아니하고, 잘 패하는 자는 어지럽지 아니하다. 무릇 바둑이란 처음에는 정(正)으로써 합하고, 끝에는 기(奇)로써 이기는 것이라. 무릇 적의 일이 없는데도 스스로 보충하는 자는 침범과 끊음의 뜻이 있는 자라. 작은 것을 버리고 구하지 않는 자는 큰 것을 도모하는 마음이 있는 자라. 손에 따라 두는 자는 무모한 사람이라. 생각함 없이 응하는 자는 패배를 취하는 길이라.
○무릇 바둑이란, 실마리가 많으면 형세가 갈라지고, 형세가 갈라지면 구하기 어렵다. 바둑을 구함에는 핍박하지 말지니, 핍박하면 곧 저쪽이 충실해지고 우리쪽이 허해진다. 허하면 곧 공격받기 쉽고, 충실하면 곧 깨뜨리기 어렵다. 때에 임하여 변통할지니, 마땅히 한 가지에 집착하지 말라.
○무릇 지혜로운 자는 아직 싹트기 전에 보고, 어리석은 자는 이미 이루어진 일을 본다. 까닭에 자기의 해를 알고서 저편의 이로움을 도모하는 자는 이긴다. 가히 싸울 만함과 가히 싸워서는 안 됨을 아는 자는 이긴다. 무리의 많고 적음을 부리는 법을 아는 자는 이긴다. 대비함으로써 대비치 않은 자를 기다리는 자는 이긴다. 편안함으로써 수고로움을 기다리는 자는 이긴다. 싸우지 않고 사람을 굴복시키는 자는 이긴다.
○무릇 바둑의 형세를 펼치는 데는, 서로 잇닿게 함을 힘쓴다. 처음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선수(着先)를 구할지니라. 판에 임하여 서로 다투되, 자웅이 아직 결판나지 않거든, 호리(毫釐)도 어긋남이 없게 할지라. 판세가 이미 쇠하였거든 정신을 오로지하여 살길을 구하라. 판세가 이미 약하거든 뜻을 날카로이 하여 침범하고 풀어 헤쳐라. 가에 따라 달리는 자는 비록 살아남는다 할지라도 패한다. 약하면서도 엎드리지 않는 자는 더욱 굽히게 되고, 조급히 굴며 승리를 구하는 자는 흔히 패한다. 두 형세가 서로 둘러싸이거든, 먼저 그 바깥을 다그쳐라. 형세가 외롭고 도와줄 곳이 적거든, 곧 달아나지 말라. 이런 까닭에 바둑에는 달아나지 않는 달아남이 있고, 두지 않는 둠이 있다. 사람을 그르치는 자는 길이 여럿이고, 공을 이루는 자는 한 길뿐이다. 능히 판세를 살필 줄 아는 자는 곧 흔히 이긴다.
“두다(下)”는 돌을 두는 것을 말함이라. ○바둑의 승부는, 가히 미리 시험하여 알 수 있다. 이르되, 무릇 침착하고 무게 있게 검소한 자는 흔히 얻고, 가벼이 굴며 탐하는 자는 흔히 잃는다. 다투지 않고 스스로를 지키는 자는 흔히 이기고, 죽이기에 힘써 돌아보지 않는 자는 흔히 진다. 패한 것에 말미암아 생각하는 자는 그 형세가 나아가고, 싸워 이기고도 교만한 자는 그 형세가 물러난다. 자기의 폐단을 구하고 남의 폐단을 구하지 않는 자는 보태고, 그 적을 치되 적이 자기를 치는 줄 알지 못하는 자는 던다. 눈이 한 판에 모이는 자는 그 생각이 두루 미치고, 마음이 다른 일에 부려지는 자는 그 헤아림이 흩어진다. 행하기를 멀리 하면서도 바른 자는 길(吉)하고, 기미가 얕고 속이는 자는 흉(凶)하다. 능히 스스로 적을 두려워할 줄 아는 자는 강하고, 사람이 자기만 못하다 이르는 자는 망한다. 뜻이 두루 통하는 자는 높고, 마음이 한 가지에 집착하는 자는 낮다. 말과 침묵에 떳떳함이 있으면 적으로 하여금 헤아리기 어렵게 하고, 움직임과 고요함에 절도가 없으면 사람들의 미움을 사게 된다.
“의방통(意旁通)”이라 함은, 마주하는 곳에만 마음이 머무르지 않고 사려가 좌우 전후에 미침을 말함이라. “심집일(心執一)”이라 함은, 마음이 한 가지에 집착하여 다른 면에 미치지 못함을 말함이라. ○병(兵)은 본디 거짓 모략을 숭상하지 않는다. 휼도(譎道)를 말하는 자는 곧 전국 종횡(縦横)의 설(説)이라. 바둑이 비록 작은 도(道)이나, 실로 병(兵)과 합치한다. 까닭에 바둑의 품(品)이 매우 번다하여 그 뜻이 한결같지 않다. 품(品)이 낮은 자는 거동에 사려가 없고, 움직이매 곧 변사(変詐)한다. 혹 손을 써서 그 형세를 그늘에 감추거나, 혹 두고자 하다가 다시 멈추거나, 혹 떠나려 하다가 떠나지 않거나, 혹 말을 내어 그 기미를 새게 한다. 품의 위에 든 자는 곧 이와 다르다. 모두 깊이 생각하여 멀리 헤아리고, 정신은 판 안에 노닐며, 뜻은 돌의 앞에 있어, 자취 없는 곳에서 승리를 도모하고, 일이 일어나기 전에 행함을 사라지게 한다. 어찌 말의 다변함과 손짓의 빠름에 의지하리오.
○무릇 바둑에는 이를 이롭게 하면서도 손해 보는 것이 있고, 이를 손해 보게 하면서도 이로운 것이 있다. 이를 침범하여 이로운 것이 있고, 이를 침범하여 해로운 것이 있다. 왼편에 던질 만한 것이 있고, 오른편에 던질 만한 것이 있다. 먼저 둘 자가 있고, 나중에 둘 자가 있다. 단단히 두어야 할 것이 있고, 천천히 두어야 할 것이 있다. 돌을 잇는 것은 앞서지 말고, 돌을 버릴 때는 뒤를 생각하라. 처음에는 가깝다가 끝에 이르러 멀어지는 것이 있고, 처음에는 적다가 끝에 이르러 많아지는 것이 있다. 바깥을 강하게 하려거든 먼저 안을 치고, 동쪽을 채우려거든 먼저 서쪽을 친다. 길이 비고 눈이 없으면 곧 먼저 살길을 마련하고, 다른 돌에 해가 없으면 곧 패(劫)를 만든다. 길이 넉넉하면 곧 성기게 두고, 길이 막히면 곧 싸우지 말라. 땅을 가려서 침범하고, 막힘이 없으면 곧 나아간다. 이는 모두 기가(棋家)의 깊고 미묘한 법이니, 알지 못해서는 안 되느니라.
○바둑은 너무 잦기를 바라지 않으니, 잦으면 곧 게을러지고, 게을러지면 곧 정밀하지 못하다. 바둑은 너무 성기기를 바라지 않으니, 성기면 곧 잊고, 잊으면 곧 잃음이 많다.
“수(数)한다” 함은 대국하기를 너무 자주 함이라. “소(疎)하다” 함은 대국함이 없이 세월을 보냄이라. ○이기고도 말하지 아니하며, 지고도 말하지 아니하고, 겸양을 숭상하는 자는 군자라. 원노(怨怒)를 일으키는 자는 소인이라. 높은 자라도 뽐내지 말 것이며, 낮은 자라도 겁내지 말지라. 기운이 화하고 뜻이 펴지는 자는 그 장차 이기려 함을 기뻐함이라. 마음이 동요하고 낯빛이 변하는 자는 그 장차 패하려 함을 근심함이라. 부끄러움 가운데 바꿈보다 더 부끄러운 것이 없고, 수치 가운데 도둑질보다 더 수치스러운 것이 없다. 묘함은 송(鬆)을 씀보다 묘한 것이 없고, 어두움은 패(劫)를 뒤엎음보다 어두운 것이 없다.
이(二) 혁지 (奕旨) 후한 반고
○북방의 사람은 바둑을 일러 혁(奕)이라 한다. 이를 넓혀 이를 풀이하여 그 대략을 들어보리라.
이 몇 구절은 한 편 글의 서두라. 반고는 중국에서 손꼽히는 사가(史家)이며 탁월한 문인이라. ○판이 반드시 방정(方正)함은 땅의 법칙(地則)에 본떠서라. 도(道)가 반드시 정직함은 명덕(明徳)을 신묘히 함이라.
“국(局)”이란 바둑판이라. 옛적에는 땅을 모지다 하였으니, 까닭에 “땅의 법칙에 본뜬다” 함이라. “도(道)”는 바둑판 위의 선이라. “명덕”은 곧 정직함이라. ○돌에 흑백이 있는 것은 음양이 갈리는 것이라. 변려(駢羅)히 늘어서 펼쳐짐은 천문(天文)을 본뜸이라.
“기(棊)”는 “기(碁)”와 같으니, 곧 바둑돌이며, 본디 한 글자로 족함이라. 흰 것은 양(陽)이며 검은 것은 음(陰)이라. 변려히 늘어서 펼쳐짐이란 흰 돌과 검은 돌이 흩어져 펼쳐진 모양을 일컬음이라. 이를 천상의 별들이 늘어서 있음에 견주어 말함이라. ○사상(四象)이 이미 펼쳐졌으니, 이를 행하는 것은 사람에 있다. 대저 왕정(王政)이라.
“사상”이란 지칙(地則), 명덕, 음양, 천문이라. 바둑의 일이 이미 펼쳐졌으니, 이를 행함은 사람에 있다. 그 행하는 바는 대저 왕정이라. 패도(覇道)가 속임수와 폭력을 위주로 함과 같지 않다는 뜻이라. ○혹은 비워서 미리 두어 스스로를 호위(衛護)하나니, 대저 포희(庖犠)의 그물(網罟)의 제도에 본뜸이라.
포희는 복희씨이니, 그물을 처음 만든 사람이라. 이 단(段)에 이르러 비로소 바둑의 정(情)을 말함이라. “비워 미리 두어 스스로를 호위한다(虚設予置、以自衛護)”는 여덟 글자, 둠이 매우 묘함이라. 바둑의 첫 포석(布局)이 진실로 그물에 닮아 있음이라. ○방어를 두루 일으키며 막힘과 끊김이 새고 터지는 것은, 하후(夏后)가 물 다스리는 형세에 닮아 있음이라.
“하후”는 우(禹)이니, 홍수를 다스린 사람이라. “방어를 두루 일으킴”이란 만연(蔓衍)히 형세를 이루는 모양이라. “막힘”이란 자기를 지킴을 일컫고, “새고 터짐”이란 근심을 없애는 것을 일컬음이라. ○한 구멍을 막음이 있다 할지라도, 무너짐이 떨치지 못한다. 호자(瓠子)의 범람(汎濫)의 패배에 닮은 바 있음이라.
“알(閼)”은 “알(遏)”과 통하느니라. 한 구멍을 막아도 적의 형세가 크면 무너져 구할 수 없으니, 큰 형세를 어찌할 도리가 없음을 일컬음이라. “호자”는 곧 호자구(瓠子口)이며, 황하(黄河)의 물을 막는 곳이니, 복양현(濮陽県)의 남쪽에 있다. 한 무제 때 황하가 크게 불어 호자가 터져 거야(鉅野)에 흘러들고 회수와 사수(淮泗)에 통하였던 일이 있다. 우리 진영이 장차 패하려 하여 그 명이 한 가닥 실 같을 때, 사력을 다해 굳게 막아도 적군이 호탕(浩蕩)함에 당하여 마침내 패하는 모양이, 진실로 이 구절과 같은 일이 있느니라. ○복병을 두고 거짓을 베풀어, 포위를 뚫고 횡행함은, 전단(田単)의 기책(奇)이라.
병사를 매복시켜 적을 꾀어, 기책으로써 승리를 거두며, 두터운 포위를 돌파하여 천 리에 횡행하니, 통쾌하고 비할 데 없는 모양을 서술함이라. 전단은 제(斉)의 명장이라. 두터운 포위에 빠져도 굴하지 않고, 화우계(火牛之計)로써 연(燕)의 대군을 깨뜨려, 며칠도 안 되어 칠십여 성을 회복한 사람이라. ○액(厄)을 가두어 서로 위협하고, 땅을 떼어 주게 하여 상으로 취함은, 소장(蘇張)의 자태라.
“액”은 위급함이라. 죽고 사는 것이 갈리는 곳이 곧 액이라. 액을 가두어 위협하면, 적이 죽지 않고자 하여 땅을 떼어 줌을 사양치 않는다. 이는 서로 싸우지 않고도 능히 빼앗는 것이라. 소장(蘇張)은 소진(蘇秦)과 장의(張儀)이니, 모두 군마를 움직이지 않고 변설(弁舌)로써 공을 이룬 사람들이라. ○셋으로 나누어 둘을 가지고도 베지 아니하니, 주(周) 문왕의 덕(徳)이라.
“셋으로 나누어 둘을 가짐”이란 천하를 셋으로 나누어 그 둘을 보유함을 말함이라. 주의 문왕이 이미 천하의 실권을 가지고도 감히 주(紂)왕을 베지 않고 더욱 덕을 닦아 스스로를 굳게 하였다. 바둑의 도(道)에 잘 이기는 자가 늘 이와 같은 태도가 있음이라. ○주춤주춤 유행(儒行)하여, 모를 지키고 가에 의지하여, 도리어 스스로 보충하니, 비록 패하더라도 망하지는 아니한다. 이는 목공(繆公)의 지혜이며, 중용(中庸)의 방책이라.
“준순(逡巡)”은 나아가지 못하는 모양이라. “유행(儒行)”은 감연히 행하고 용감히 일하지 못함이라. “모를 지킨다” 함은 바둑판의 모(角)를 지킴이며, “가에 의지한다” 함은 바둑판의 가(辺)에 의지함이라. 크게 패권을 다투지 않더라도, 이같이 하여 스스로 보충하면, 이미 반드시 죽지 않는 형세가 있는지라, 비록 패하더라도 망하지 아니한다. 목공은 진(秦)의 목공이라. 서수(西陲)에 의거하여 점차 그 큼을 이룬 사람이라. “중용의 방책”이란 상지(上智)나 영략(英略)이 없는 자의 방책임을 말함이라. ○위로는 천지(天地)의 상(象)이 있고, 다음으로는 제왕(帝王)의 다스림이 있고, 가운데에는 오패(五覇)의 권(権)이 있고, 아래로는 전국(戦国)의 일이 있다. 그 득실을 보면, 고금의 일이 대략 갖추어져 있다.
바둑의 도(道)는, 판에 도(道)가 펼쳐지고 돌이 깔리니, 천지의 상(象)이 있음이라. 다음으로 비워 미리 두는 바가 옛 제왕의 다스림과 같고, 뒤로는 서로 큰 뜻과 큰 책략이 있는 것이 오패의 권세라 일컬을 만하며, 마침내 공격하고 싸우는 것이 전국시대의 일과 같다. 까닭에 그 득실의 모양을 보면, 고금의 정상(情状)이 대략 갖추어져 있다고 말함이라.
삼(三) 위기부 (囲棊賦) 후한 마융
○대략 위기(囲棊)를 살피건대, 병(兵)을 쓰는 데 본받았다.
마융은 박학하고 능문(能文)한 큰 선비이니, 노식(盧植)과 정현(鄭玄)이 모두 그 문도라. ○석 자(三尺)의 판이 전투의 마당이 된다. 사졸(士卒)을 늘어 모으고 양 적(両敵)이 서로 마주한다.
석 자의 판은 지금에 견주면 크게 지나치다. 또한 다만 대개를 일컬을 따름이니 깊이 의아해할 것은 못 된다. ○겁 많은 자는 공이 없고, 탐하는 자는 먼저 망한다.
겁 많은 자는 다만 지킬 뿐이니, 지키면 곧 부족하다. 탐하는 자는 반드시 어두우니, 어두우면 곧 화(禍)를 부른다. 두 구절이 진실로 갈리지 않는 금언(金言)이라. ○먼저 사도(四道)에 자리잡고, 모를 지키고 가에 의지하여, 가를 따라 줄을 가로막아, 가고 옴이 서로 바라본다.
“사도”는 사방(四方)이라 일컬음과 같다. 바둑판은 사분하는 형세가 있어, 흑백 각자가 먼저 사도에 자리잡음을 말함이라. “모를 지키고 가에 의지함”은 앞에 나왔다. “가를 따른다” 함은 글자 그대로요, “줄을 가로막는다” 함은 적의 줄을 가로막음이라. “가고 옴이 서로 바라본다” 함은, 적과 우리가 가고 와서 서로 마주하여 같은 형세를 취하고, 돌과 돌이 서로 바라보는 듯한 모양이 있음을 말함이라. 서로 다가서는 것이 아니라 서로 바라봄이라. “가고 옴이 서로 바라본다”는 한 구절 네 글자에 무한한 정취가 있음이라. ○떨어진 마목(馬目), 잇닿은 안행(雁行)이라. 사이를 두고 두니, 가운데를 노닐며 머무른다.
“이(離)”와 “연(連)” 두 구절은 돌의 펼치고 늘어선 모양을 말함이라. “도간치(度間置)”는 돌이 서로 닿지 않고도 서로 도움을 일컫고, “배회중앙(徘徊中央)”은 돌이 다만 자복(雌伏)할 뿐 아니라 도리어 웅비(雄飛)하려 함을 말함이라. 두 구절이 묘한 운치가 있음이라. ○죽은 졸병을 거두어 가지되, 서로 맞이하게 하지 말라. 마땅히 먹어야 하는데도 먹지 아니하면, 도리어 그 재앙을 받는다.
마땅히 먹어야 할 것을 먹지 아니하면, 적의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려 한다. 하늘이 주는 바를 취하지 아니하면 도리어 그 재앙을 받는다는, 옛말을 한 번 굴려 쓴 것이라. ○뒤섞이고 어지러이 얽히어, 서로 더욱 건너 넘는다.
“잡란(雑乱)”은 깃발이 어지러이 적과 우리가 한창 싸움이라. “교착(交錯)”은 적이 도리어 우리의 뒤를 치고, 우리가 도리어 적의 뒤로 나가는 것 같은 일을 말함이라. “도월(度越)”은 강을 건너고 참호를 빼앗아, 함성을 지르며 꾸짖어 싸움이라. “교상(交相)” 두 글자에 매우 힘이 있어, 분전(奮戦)하고 역투(力闘)하는 모양이 보이는 듯함을 깨닫겠다. ○지키는 규(規)가 굳지 못하면, 당돌(唐突)히 들이치는 바가 된다.
진영은 엄밀하여, 마땅히 주아부(周亜父)의 세류(細柳)와 같아야 할지라. 그렇지 아니하면 적의 맹장이 기습 돌파하는 바가 되리라. ○깊이 들어가 땅을 탐하면, 사졸을 죽여 잃는다.
멀리 달려 깊이 들어가면, 한번 양식이 다하고 변(変)이 생길 때, 사졸을 많이 잃음을 일컬음이라. ○미친 듯 다투며 서로 구하면, 앞과 뒤가 함께 가라앉는다.
싸움의 위기는 많다. 그 가운데서도 우리의 한 지군(支軍)을 구하려 할 때 위기가 가장 많다. 구하기를 잘하면 이기고, 잘 구하지 못하면 어지럽다. 미친 듯 다투며 서로 구하면, 앞 군사와 뒤 군사가 서로 함께 뒤집혀 가라앉는다. 장군은 깊은 모책과 묘한 계책이 없어서는 안 되는 자리라. ○공(功)을 헤아려 서로 거두고, 때로써 일찍 끝낸다.
“공을 헤아림”은 싸움이 마땅히 끝나야 함을 헤아림이라. “서로 거둠”은 그 끝남을 좋게 함이라. “때로써”란 그 마땅히 그러해야 할 때를 가리킴이라. “일찍 끝냄”은 지혜로운 자가 능히 함이라. 어두운 자는 끝낼 곳을 알지 못하니, 이로써 그 끝남이 저쪽이 끝낸 곳이 되어 겨우 끝나매, 가히 슬퍼할 만한 일이라. ○일이 머무르면 변(変)이 생기니, 돌을 거두기를 빠르게 하기를 바란다.
일이 늦어지고 머무르면 변이 뜻밖에 생기니, 까닭에 의심스러운 바가 있는 것은 빨리 거두기를 요(要)함이라. ○진영이 혹 막히고 모자라더라도, 거짓으로 하여금 나오게 하지 말라.
계략과 진영이 막히고 모자라 곤핍하더라도, 비열한 간사한 일을 하지 말라 함이라. 바둑이 비록 작은 도(道)이나, 군자가 이를 즐길진대, 저절로 마땅히 군자의 태도가 있어야 할 것이며, 소인의 마음 씀에서 나오지 말아야 할 것이라. ○깊이 생각하고 멀리 헤아리면, 승리를 가히 기약할 만하다.
“심념원려(深念遠慮)” 네 글자, 한 편을 거두어 매듭짓고, “승리를 가히 기약할 만하다”고 말하니, 결속함이 높고 밝음을 얻었다. 이 한 편은 위기(囲棊)의 부(賦)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가장 묘한 글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