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of 1

Chapter 1

이가·이세 길

지카마쓰 슈코(近松秋江)

내게는 또다시 여행을 공상하며 방 안 여행을 하는 계절이 돌아왔다. 도쿄의 가을 풍경은 황량하기만 하여 눈에 잡히는 것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데이코쿠 극장(帝國劇場)이며 가부키, 그리고 분텐(文展) 따위에 그다지 마음이 끌리는 것도 아니니, 여행이로다, 여행이로다. 바쇼(芭蕉)도

시름 깊은 나를 더욱 외로이 만들어 다오, 뻐꾸기여, 라 했고, 또

길손이라 내 이름 불릴 것이라, 첫 시우(初時雨), 라고도 했거니와, 길에 떠돌면서 때때로 사무치는 인생의 쓸쓸함, 애잔함, 또 뜻하지 않게 솟아오르는 흥취를 맛보는 일만큼 내게 위안이 되는 것은 없다. 도쿄는 내게 너무도 자극이 강하고 너무도 떠들썩하여, 마음은 늘 겉면만 어루만지고 있는 듯하다. 도쿄에 있으면 글 쓰는 일조차 그저 메마른 사무처럼 되어 버려, 길 위에 있을 때처럼 자연의 정취가 솟아나지 않는다. 내 혼백은 지금, 늦가을과 초겨울 밤마다 도쿄의 보금자리를 헤매어 나와, 멀리 구름 끝의 하늘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나는 부현별(府縣別) 지도를 곁에 두고 있다. 그리고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 머리맡에 펼쳐 보는 것이다. 애잔한 여행 공상은 늘 내 꿈을 편안하게 해 준다. 후지(富士) 정상에 첫눈이 보이는 무렵이 되면, 과연 여름엔 정겹던 동북의 산하조차 내겐 떠올리는 일마저 못 견디게 싫어진다. 남해와 서해의 변방 땅은 아직 발을 깊이 들여놓은 일이 많지 않거니와, 스마(須磨)와 아카시(明石)조차 머나먼 땅처럼 여기던 옛 교토 덴조비토(殿上人)의 그러한 심정이 내게도 유전되어 있는 듯하여, 석탄 굴뚝 연기 자욱한 규슈 땅은 내게는 너무나 먼 지방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지세와 풍토는 이세·야마토·오미의 경계에 있다. 그 언저리의 지도를 들여다보며 나는 자유로이 여행을 공상하는 것이다. 이번 여행은 적어도 두어 달가량은 떠돌 작정으로, 그 채비를 갖추고 미련 한 점 없는 도쿄의 하늘에 잠시의 작별을 마음속으로 고하면서, 밤 아홉 시 급행 열차로 중앙역(中央 스테이션)을 출발한다. 이때 정거장 큰 복도에 울려 퍼지는 길손들의 게다(下駄) 발소리도 내 귀에는 천악(天樂)처럼 둘도 없는 음률이 되어 들리는 것이다. 그러고는 폭신한 쿠션에 일단 몸을 묻고서, 오늘 밤 한밤을 함께 이곳에서 지새울 같은 차량 길손들의 알지 못할 용모와 풍채, 나아가 한 걸음 상상을 깊이하여 그들의 직업과 운명 따위에 대해 헤아려 보는 일도 또한 한 가지 흥취이다. 이때 내 주의력의 작동과 상상의 거침없는 흐름은, 도저히 가부키좌나 데이코쿠 극장에 앉아 죽은 연극을 보고 있을 비가 아니다.

이윽고 야간 열차는, 잠들었다 깼다 하는 사이에 이튿날 아침 여섯 시 조금 지난 무렵 무사히 나고야에 닿는다. 나는 어젯밤 도쿄를 떠날 때 이가의 우에노(伊賀の上野)까지 가는 차표를 사 두었으므로, 거기서 간사이선 미나토마치(湊町)행 두 번째 열차가 떠나기를 기다리는 두 시간 남짓 동안 가벼운 아침을 들거나, 전차를 이용하여 잠깐 나고야 거리 한 모퉁이를 엿보아 둘 것이다. 사실 여러 해의 숙원인 세키가하라, 옛 후와의 관(不破關)이 있던 언저리의 적막한 들과 산, 시골 마을의 가을 풍경도 걸어 보고 싶지만, 그것은 지금은 미루어 두고 예정대로, 이윽고 미나토마치 행에 올라 오전 여덟 시 이십삼 분 출발로 이세 길을 향해 여행을 이어 간다.

구와나(桑名)와 욧카이치(四日市)는 어젯밤 남은 잠 속에 어느새 지나쳐 버리고, 차도는 점점 사방의 산이 무리 지은 사이를 헤치고 올라가는데, 겨울이 가까운 하늘빛은 종잡을 수 없고, 스즈카(鈴鹿)는 구름에 가려 거짓말 같은 시우(時雨)가 후두둑 창을 두드려 왔다. 갈 곳 없는 풍운이라, 앞을 다투어 달리는 여행도 아니니, 이런 날에야말로 폐역(廢驛)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기고 싶다 싶어, 「마치요(待夜)의 고무로부시(小室節)」 속 세키노 고만(小萬)으로 이름 높은 세키(關) 역에서 기차를 버린다. 아직 열 시 반을 갓 지났을 뿐이라 이르다.

오늘 밤은 이곳에서 하룻밤 묵어 보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명장 가노 모토노부(狩野元信)가 아무리 솜씨 좋게 그려도 그림은 도무지 절로 자라난 삼나무의 아름다움에 견줄 바가 못 된다며 깊은 탄식을 토하고 붓을 들어 던져 버렸다고 전해지는 후데스테(筆捨) 골짜기도 멀지 않다. 더욱이 이 언저리의 삼나무는 자연을 보는 눈이 보통 사람을 훨씬 넘어섰던 그 감식안을 감동시킨 것도 무리가 아닐 만큼 아름답다. 그래서 정거장의 인력거꾼과 흥정을 하면서, 이름난 지조존(地藏尊)은 돌아오는 길로 미루고, 우선 후데스테 산(筆捨山)으로 향한다. 시우 정도로 그칠 만한 가벼운 비라면, 그대로 무시무시한 옛 전기담이 전해지는 사카시타(坂下)에서 옛 스즈카 고개를 넘어 고슈(江州)로 들어가, 「사카는 번쩍번쩍 빛나고 스즈카는 흐리네, 그 사이 쓰치야마엔 비가 내리네」라는 향곡(鄕曲)의 정취를 홀로 길손의 몸에 사무치게 새기면서 쓰치야마(土山)까지 가, 그날 저녁은 결국 누추한 객점에서 밤을 지새우고, 이튿날은 다시 삼 리(약 12킬로미터) 길을 미나쿠치(水口)까지 가, 기부카와(貴生川)를 거쳐 기차에 의지하여 쓰게(柘植)로 빠져, 그대로 우에노로 나가든가, 혹은 쓰치야마에서 어제 길을 다시 세키로 되돌아오든가, 그것은 그때의 마음 가는 대로 맡기고, 다시 나고야와 미나토마치를 잇는 선로에 의지하여 왼편 차창에 우뚝 솟은 료센지 산(靈山寺山), 나가노(長野) 고개의 비단 자수 같은 단풍을 멀리서 보내고 다시 맞으면서, 이윽고 이가의 옛 경계에 들어서면, 봄이라면 노랗고 흰 유채꽃 향기 그윽한 우에노 분지가 멀리 펼쳐지고, 추수 끝난 들의 끝, 낙엽이 시우처럼 흩날리는 산자락에 술해(戌亥, 북서)쪽으로 흰 벽 도조(土藏)를 둔 농가가 겨울을 기다리는 듯한 모습으로 고요히 서 있는 것을 본다. 사나구(佐奈具) 한 역참을 거쳐 이윽고 우에노에 닿는다. 이곳은 바쇼 옹의 고향 무덤(故郷塚), 「이가고에(伊賀越)」의 복수극으로 이름 높은 가기야의 쓰지(鍵屋ノ辻) 등 마음에 새겨 둘 곳이 많으니, 나는 여기서 한 밤 두 밤을 지새우며 옹의 자취를 그리워하면서 하이진(俳人) 아닌 속인의 속된 마음을 씻고,

「오늘 밤 누구와, 요시노의 달도 십육 리(약 63킬로미터)」라고 옹도 말씀하셨듯이, 일찍이 임시 거처의 바람으로 삼아 온 요시노(吉野)도 그리 멀지 않으니, 거기서 야마토 가도(大和街道)를 따라 나바리(名張)로 향한다. 군데군데 인력거에서 내려 인력거꾼을 위로하고, 길을 골라 한 걸음씩 디뎌 걸으며, 남화(南畫)에 그리고 싶은 가을 산들의 단풍을 흩날리는 바람에 길 옷을 펄럭이면서, 그 언저리 계곡과 산의 풍광은 나로 하여금 쉬이 떠나기 어렵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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