坂口安吾 · 일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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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일본어)
島原の乱雑記 坂口安吾 一 三万七千人 島原の乱で三万七千の農民が死んだ。三万四千は戦死し、生き残つた三千名の女と子供が、落城の翌日から三日間にわたつて斬首された。みんな喜んで死んだ。喜んで死ぬとは異様であるが、討伐の上使、松平伊豆守の息子、甲斐守輝綱(当時十八歳)の日記に、さう書いてあるのである。「剰至童女之輩喜死蒙斬罪是非平生人心之所致所以浸々彼宗門也」と。 三千人の女子供がひそんでゐたといふ空濠は、今も尚、当時のまゝ残つてゐる。丁度、原城趾の中央あたり、本丸と二の丸のあひだ、百五十坪ぐらゐの穴で、深さは二丈余。今、空濠の底いちめん、麦がみのつてゐた。又、本丸や二の丸には、ぢやが芋と麦が。 原城趾は、往昔の原形を殆どくづしてゐない。有明の海を背に、海に吃立した百尺の丘、前面右方に温泉岳を望んでゐる。三万七千人戦死の時、このあたりの数里四方は住民が全滅した。布津、堂崎、有馬、有家、口之津、加津佐、串山の諸村は全滅。深江、安徳、小浜、中木場、三会等々は村民の半数が一揆に加担して死んだ。だから、落城後、三万七千の屍体をとりかたづける人足もなく、まして、あとを耕す一人の村民の姿もなかつた。
坂口安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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