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화 · 한국어
임화(林和, 1908~1953)의 1929년 카프(KAPF) 정점 시. 「조선지광」 1929년 2월호 발표. 한국 최초 단편 서사시(短篇敍事詩)이자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시 운동 정점에 박힌 라인. 누이동생이 옥에 갇힌 「우리 오빠」에게 부치는 한 통의 편지…
Pagera 서평
임화(林和, 1908~1953)의 1929년 카프(KAPF) 정점 시. 「조선지광」 1929년 2월호 발표. 한국 최초 단편 서사시(短篇敍事詩)이자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시 운동 정점에 박힌 라인. 누이동생이 옥에 갇힌 「우리 오빠」에게 부치는 한 통의 편지 형식으로, 깨어진 거북무늬 화로와 화젓가락 비유로 형제 남매 두 동무의 슬픔과 동지애를 한 자리에 박은 정수. 「피오닐(피오네르)」 「제사기」 「봉투」 「만국지도」 등 1929년 식민지 노동·국제주의 외래어 어휘 보존. 결구 「화로는 깨어져도 火[화]젓갈은 깃대처럼 남지 않았어요」로 절망과 결의가 동시에 박힌 한국 카프 시 결구 정수.
저자
임화
임화(林和, 본명 임인식 林仁植, 1908~1953). 서울 출생. 1929년 「우리 오빠와 화로」로 이야기 형식을 빌린 이른바 단편서사시를 선보였고, 1932년부터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서기장을 맡아 1930년대 비평의 중심에 섰다. 시집 『현해탄』(1938)과 『찬가』(1947), 평론집 『문학의 논리』(1940)를 남겼다. 광복 후 월북했으나 1953년 간첩 혐의로 기소되어 처형되었다.
임화 · 한국어
임화(林和, 1908~1953)의 1929년 카프(KAPF) 정점 시. 「조선지광」 1929년 2월호 발표. 한국 최초 단편 서사시(短篇敍事詩)이자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시 운동 정점에 박힌 라인. 누이동생이 옥에 갇힌 「우리 오빠」에게 부치는 한 통의 편지…
전문
원문 (한국어)
사랑하는 우리 오빠 어저께 그만 그렇게 위하시던 오빠의 거북무늬 질화로가 깨어졌어요
언제나 오빠가 우리들의 「피오닐」 조그만 기수라 부르는 永男[영남]이가
지구에 해가 비친 하루의 모―든 시간을 담배의 독기 속에다
어린 몸을 잠그고 사온 그 거북무늬 화로가 깨어졌어요
그리하여 지금은 火[화]젓가락만이 불쌍한 永男[영남]이하구 저하구처럼
똑 우리 사랑하는 오빠를 잃은 남매와 같이 외롭게 벽에 가 나란히 걸렸어요
오빠……
저는요 저는요 잘 알았어요
왜―그날 오빠가 우리 두 동생을 떠나 그리로 들어가신 그날 밤에
연거푸 말은 卷煙[궐련]을 세 개씩이나 피우시고 계셨는지
저는요 잘 알았어요 오빠
언제나 철없는 제가 오빠가 공장에서 돌아와서 고단한 저녁을 잡수실 때 오빠 몸에서 신문지 냄새가 난다고 하면
오빠는 파란 얼굴에 피곤한 웃음을 웃으시며
……네 몸에선 누에 똥내가 나지 않니 ― 하시던 세상에 위대하고 용감한 우리 오빠가 왜 그날만
말 한마디 없이 담배 연기로 방 속을 메워버리시는 우리 우리 용감한 오빠의 마음을 저는 잘 알았어요
천정을 향하여 기어올라가던 외줄기 담배 연기 속에서 ― 오빠의 강철 가슴 속에 백힌 위대한 결정과 성스러운 각오를 저는 분명히 보았어요
그리하여 제가 永男[영남]이의 버선 하나도 채 못 기웠을 동안에
문지방을 때리는 쇳소리 마루를 밟는 거칠은 구둣소리와 함께 ― 가버리지 않으셨어요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우리 위대한 오빠는 불쌍한 저의 남매의 근심을 담배연기에 싸두고 가지 않으셨어요
오빠 ― 그래서 저도 永男[영남]이도
오빠와 또 가장 위대한 용감한 오빠 친구들의 이야기가 세상을 뒤집을 때
저는 製糸機[제사기]를 떠나서 백 장에 일전짜리 封筒[봉통]에 손톱을 부러뜨리고
永男[영남]이도 담배 냄새 구렁을 내쫓겨 封筒[봉통] 꽁무니를 뭅니다
지금 ― 만국지도 같은 누더기 밑에서 코를 고을고 있습니다
오빠 ― 그러나 염려는 마세요
저는 용감한 이 나라 청년인 우리 오빠와 핏줄을 같이 한 계집애이고
永男[영남]이도 오빠도 늘 칭찬하던 쇠 같은 거북무늬 화로를 사온 오빠의 동생이 아니예요
그러고 참 오빠 아까 그 젊은 나머지 오빠의 친구들이 왔다갔습니다
눈물나는 우리 오빠 동무의 소식을 전해주고 갔어요
사랑스런 용감한 청년들이었습니다
세상에 가장 위대한 청년들이었습니다
화로는 깨어져도 火[화]젓갈은 깃대처럼 남지 않았어요
우리 오빠는 가셨어도 귀여운 「피오닐」 永男[영남]이가 있고
그리고 모―든 어린 「피오닐」의 따듯한 누이 품 제 가슴이 아직도 더웁습니다
그리고 오빠……
저뿐이 사랑하는 오빠를 잃고 永男[영남]이뿐이 굳세인 형님을 보낸 것이겠습니까
슳지도 않고 외롭지도 않습니다
세상에 고마운 청년 오빠의 무수한 위대한 친구가 있고 오빠와 형님을 잃은 수없는 계집아이와 동생
저희들의 귀한 동무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다음 일은 지금 섭섭한 분한 사건을 안고 있는 우리 동무 손에서 싸워질 것입니다
오빠 오늘 밤을 새워 이만 장을 붙이면 사흘 뒤엔 새 솜옷이 오빠의 떨리는 몸에 입혀질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의 누이동생과 아우는 건강히 오늘 날마다를 싸움에서 보냅니다
永男[영남]이는 여태 잡니다 밤이 늦었어요
― 누이동생
Pagera 서평
임화(林和, 1908~1953)의 1929년 카프(KAPF) 정점 시. 「조선지광」 1929년 2월호 발표. 한국 최초 단편 서사시(短篇敍事詩)이자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시 운동 정점에 박힌 라인. 누이동생이 옥에 갇힌 「우리 오빠」에게 부치는 한 통의 편지 형식으로, 깨어진 거북무늬 화로와 화젓가락 비유로 형제 남매 두 동무의 슬픔과 동지애를 한 자리에 박은 정수. 「피오닐(피오네르)」 「제사기」 「봉투」 「만국지도」 등 1929년 식민지 노동·국제주의 외래어 어휘 보존. 결구 「화로는 깨어져도 火[화]젓갈은 깃대처럼 남지 않았어요」로 절망과 결의가 동시에 박힌 한국 카프 시 결구 정수.
저자
임화(林和, 본명 임인식 林仁植, 1908~1953). 서울 출생. 1929년 「우리 오빠와 화로」로 이야기 형식을 빌린 이른바 단편서사시를 선보였고, 1932년부터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서기장을 맡아 1930년대 비평의 중심에 섰다. 시집 『현해탄』(1938)과 『찬가』(1947), 평론집 『문학의 논리』(1940)를 남겼다. 광복 후 월북했으나 1953년 간첩 혐의로 기소되어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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