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
이육사 · 한국어
광명을 배반한 동굴과 무너진 성채 위를 홀로 떠도는 박쥐를 어둠의 왕자, 고독한 유령, 영원한 보헤미안의 넋이라 부르는 시. 쥐도 대붕도 떠나 버린 검은 세기에 종족과 홰를 잃고 갈 곳조차 없는 박쥐의 처지를 그린다. 편복(蝙蝠)은 박쥐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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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ra 서평
광명을 배반한 동굴과 무너진 성채 위를 홀로 떠도는 박쥐를 어둠의 왕자, 고독한 유령, 영원한 보헤미안의 넋이라 부르는 시. 쥐도 대붕도 떠나 버린 검은 세기에 종족과 홰를 잃고 갈 곳조차 없는 박쥐의 처지를 그린다. 편복(蝙蝠)은 박쥐를 뜻한다.
저자
이육사
이육사(李陸史, 본명 이원록 李源祿, 1904~1944, 경북 안동 출생). 한국의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퇴계 이황의 14대손으로 한학 가풍에서 자랐으며, 1925년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해 평생 17번 일경에 체포·구금되었다. 1927년 대구 형무소 수인번호 264호에서 「이육사(二六四 → 陸史)」 필명이 비롯됐다. 1932년 베이징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졸업했고, 1935년 《신조선》에 「황혼」을 발표하며 본격 시작 활동에 들어갔다. 대표작으로 「청포도」(1939) 「절정」(1940) 「교목」(1940) 「광야」(1945 사후) 「꽃」(1945 사후) 등이 있다. 1943년 베이징에 잠입했다가 1944년 1월 16일 베이징 일본 영사관 감옥에서 옥사했다. 향년 39세. 사후 동생 이원조(李源朝, 1909~1955)가 1945년 12월 《자유신문》에 「광야」 「꽃」을 발표했고 1946년 시집 『육사시집』(서울출판사)을 정리·간행했다. 이육사 시는 식민지 극한 상황에서도 차가운 절제와 압축으로 미래의 회복을 응시한 한국 저항시의 정점으로 평가된다.
이육사 · 한국어
광명을 배반한 동굴과 무너진 성채 위를 홀로 떠도는 박쥐를 어둠의 왕자, 고독한 유령, 영원한 보헤미안의 넋이라 부르는 시. 쥐도 대붕도 떠나 버린 검은 세기에 종족과 홰를 잃고 갈 곳조차 없는 박쥐의 처지를 그린다. 편복(蝙蝠)은 박쥐를 뜻한다.
전문
원문 (한국어)
광명(光明)을 배반(背反)한 아득한 동굴(洞窟)에서
다 썩은 들보라 무너진 성채(城砦) 위 너 홀로 돌아다니는
가엾은 박쥐여! 어둠에 왕자(王者)여!
쥐는 너를 버리고 부자집 고(庫)간으로 도망했고
대붕(大鵬)도 북해(北海)로 날아간 지 이미 오래거늘
검은 세기(世紀)에 상장(喪裝)이 갈갈이 찢어질 긴 동안
비둘기같은 사랑을 한 번도 속삭여 보지도 못한
가엾은 박쥐여! 고독(孤獨)한 유령(幽靈)이여!
앵무와 함께 종알대어 보지도 못하고
딱짜구리처럼 고목(古木)을 쪼아 울리도 못 하거니
만호보다 노란 눈깔은 유전(遺傳)을 원망한들 무엇하랴
서러운 주교(呪交)일사 못 외일 고민(苦悶)의 이빨을 갈며
종족(種族)과 홰를 잃어도 갈 곳조차 없는
가엾은 박쥐여! 영원(永遠)한 「보헤미안」의 넋이여!
제 정열(情熱)에 못 이겨 타서 죽는 불사조(不死鳥)는 아닐망정
공산(空山) 잠긴 달에 울어 새는 두견(杜鵑)새 흘리는 피는
그래도 사람의 심금(心琴)을 흔들어 눈물을 짜내지 않는가!
날카로운 발톱이 암사슴의 연한 간(肝)을 노려도봤을
너의 머―ㄴ 조선(祖先)의 영화(榮華)롭던 한시절 역사(歷史)도
이제는「아이누」의 가계(家系)와도 같이 서러워라!
가엾은 박쥐여! 멸망(滅亡)하는 겨레여!
운명(運命)의 제단(祭壇)에 가늘게 타는 향(香)불마자 꺼젓거든
그많은 새즘승에 빌붓칠 애교(愛嬌)라도 가젓단말가?
상금조(相琴鳥)처럼 고흔 뺨을 채롱에 팔지도 못하는 너는
한토막 꿈조차 못꾸고 다시 동굴(洞窟)로 도라가거니
가엽슨 빡쥐여! 검은 화석(化石)의 요정(妖精)이여!
Pagera 서평
광명을 배반한 동굴과 무너진 성채 위를 홀로 떠도는 박쥐를 어둠의 왕자, 고독한 유령, 영원한 보헤미안의 넋이라 부르는 시. 쥐도 대붕도 떠나 버린 검은 세기에 종족과 홰를 잃고 갈 곳조차 없는 박쥐의 처지를 그린다. 편복(蝙蝠)은 박쥐를 뜻한다.
저자
이육사(李陸史, 본명 이원록 李源祿, 1904~1944, 경북 안동 출생). 한국의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퇴계 이황의 14대손으로 한학 가풍에서 자랐으며, 1925년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해 평생 17번 일경에 체포·구금되었다. 1927년 대구 형무소 수인번호 264호에서 「이육사(二六四 → 陸史)」 필명이 비롯됐다. 1932년 베이징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졸업했고, 1935년 《신조선》에 「황혼」을 발표하며 본격 시작 활동에 들어갔다. 대표작으로 「청포도」(1939) 「절정」(1940) 「교목」(1940) 「광야」(1945 사후) 「꽃」(1945 사후) 등이 있다. 1943년 베이징에 잠입했다가 1944년 1월 16일 베이징 일본 영사관 감옥에서 옥사했다. 향년 39세. 사후 동생 이원조(李源朝, 1909~1955)가 1945년 12월 《자유신문》에 「광야」 「꽃」을 발표했고 1946년 시집 『육사시집』(서울출판사)을 정리·간행했다. 이육사 시는 식민지 극한 상황에서도 차가운 절제와 압축으로 미래의 회복을 응시한 한국 저항시의 정점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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