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
이육사 · 한국어
십이성좌의 숱한 별 대신 꼭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고 거듭 청하는 시. 한 개의 별을 가지는 것은 새로운 지구 하나를 갖는 것이라며, 군수 야업의 젊은 동무들과 사막의 행상대, 화전에서 돌을 줍는 백성들에게 함께 부를 노래를 권한다. 1936년 12월 『풍림』에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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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ra 서평
십이성좌의 숱한 별 대신 꼭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고 거듭 청하는 시. 한 개의 별을 가지는 것은 새로운 지구 하나를 갖는 것이라며, 군수 야업의 젊은 동무들과 사막의 행상대, 화전에서 돌을 줍는 백성들에게 함께 부를 노래를 권한다. 1936년 12월 『풍림』에 발표했다.
저자
이육사
이육사(李陸史, 본명 이원록 李源祿, 1904~1944, 경북 안동 출생). 한국의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퇴계 이황의 14대손으로 한학 가풍에서 자랐으며, 1925년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해 평생 17번 일경에 체포·구금되었다. 1927년 대구 형무소 수인번호 264호에서 「이육사(二六四 → 陸史)」 필명이 비롯됐다. 1932년 베이징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졸업했고, 1935년 《신조선》에 「황혼」을 발표하며 본격 시작 활동에 들어갔다. 대표작으로 「청포도」(1939) 「절정」(1940) 「교목」(1940) 「광야」(1945 사후) 「꽃」(1945 사후) 등이 있다. 1943년 베이징에 잠입했다가 1944년 1월 16일 베이징 일본 영사관 감옥에서 옥사했다. 향년 39세. 사후 동생 이원조(李源朝, 1909~1955)가 1945년 12월 《자유신문》에 「광야」 「꽃」을 발표했고 1946년 시집 『육사시집』(서울출판사)을 정리·간행했다. 이육사 시는 식민지 극한 상황에서도 차가운 절제와 압축으로 미래의 회복을 응시한 한국 저항시의 정점으로 평가된다.
이육사 · 한국어
십이성좌의 숱한 별 대신 꼭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고 거듭 청하는 시. 한 개의 별을 가지는 것은 새로운 지구 하나를 갖는 것이라며, 군수 야업의 젊은 동무들과 사막의 행상대, 화전에서 돌을 줍는 백성들에게 함께 부를 노래를 권한다. 1936년 12월 『풍림』에 발표했다.
전문
원문 (한국어)
한개의 별을 노래하자 꼭 한 개의 별을
십이성좌(十二星座) 그 숱한 별을 어찌나 노래하겠니
꼭 한 개의 별! 아침 날 때 보고 저녁 들 때도 보는 별
우리들과 아-주 친(親)하고 그 중 빛나는 별을 노래하자
아름다운 미래(未來)를 꾸며 볼 동방(東方)의 큰 별을 가지자
한 개의 별을 가지는 건 한 개의 지구(地球)를 갖는 것
아롱진 설움밖에 잃을 것도 없는 낡은 이 땅에서
한 개의 새로운 지구(地球)를 차지할 오는 날의 기쁜 노래를
목안에 핏대를 올려가며 마음껏 불러 보자
처녀의 눈동자를 느끼며 돌아가는 군수야업(軍需夜業)의 젊은 동무들
푸른 샘을 그리는 고달픈 사막(沙漠)의 행상대(行商隊)도 마음을 축여라
화전(火田)에 돌을 줍는 백성(百姓)들도 옥야천리(沃野里)를 차지하자
다 같이 제멋에 알맞는 풍양(豊穰)한 지구(地球)의 주재자(主宰者)로
임자 없는 한 개의 별을 가질 노래를 부르자
한 개의 별 한 개의 지구(地球) 단단히 다져진 그 땅 위에
모든 생산(生産)의 씨를 우리의 손으로 휘뿌려 보자
앵속(罌粟)처럼 찬란한 열매를 거두는 찬연(餐宴)엔
예의에 끄림없는 반취(半醉)의 노래라도 불러 보자
염리한 사람들을 다스리는 신(神)이란 항상 거룩합시니
새 별을 찾아가는 이민들의 그 틈엔 안 끼여 갈 테니
새로운 지구(地球)엔 단죄(罪) 없는 노래를 진주(眞珠)처럼 흩이자
한개의 별을 노래하자. 다만 한 개의 별일망정
한 개 또 한 개의 십이성좌(十二星座) 모든 별을 노래하자
Pagera 서평
십이성좌의 숱한 별 대신 꼭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고 거듭 청하는 시. 한 개의 별을 가지는 것은 새로운 지구 하나를 갖는 것이라며, 군수 야업의 젊은 동무들과 사막의 행상대, 화전에서 돌을 줍는 백성들에게 함께 부를 노래를 권한다. 1936년 12월 『풍림』에 발표했다.
저자
이육사(李陸史, 본명 이원록 李源祿, 1904~1944, 경북 안동 출생). 한국의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퇴계 이황의 14대손으로 한학 가풍에서 자랐으며, 1925년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해 평생 17번 일경에 체포·구금되었다. 1927년 대구 형무소 수인번호 264호에서 「이육사(二六四 → 陸史)」 필명이 비롯됐다. 1932년 베이징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졸업했고, 1935년 《신조선》에 「황혼」을 발표하며 본격 시작 활동에 들어갔다. 대표작으로 「청포도」(1939) 「절정」(1940) 「교목」(1940) 「광야」(1945 사후) 「꽃」(1945 사후) 등이 있다. 1943년 베이징에 잠입했다가 1944년 1월 16일 베이징 일본 영사관 감옥에서 옥사했다. 향년 39세. 사후 동생 이원조(李源朝, 1909~1955)가 1945년 12월 《자유신문》에 「광야」 「꽃」을 발표했고 1946년 시집 『육사시집』(서울출판사)을 정리·간행했다. 이육사 시는 식민지 극한 상황에서도 차가운 절제와 압축으로 미래의 회복을 응시한 한국 저항시의 정점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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