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2May 2026

절정

이육사

PAGERA

절정

이육사 · 한국어

이육사(李陸史, 본명 이원록 李源祿, 1904~1944)가 1940년 1월 《문장(文章)》 13호에 발표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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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ra 서평

이육사(李陸史, 본명 이원록 李源祿, 1904~1944)가 1940년 1월 《문장(文章)》 13호에 발표한 시. 4연 8행의 짧은 시지만 한국 모더니즘 저항시의 정점으로 평가된다.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오다」 첫 연이 식민지 강요로 북방까지 떠밀려간 시인 자신의 자리를,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둘째 연이 더 이상 갈 수 없는 절벽의 극한을 그리고,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 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셋째 연이 무릎 꿇을 자리조차 없는 절망의 호명을 거쳐, 결구 「이러매 눈감아 생각해볼밖에 /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보다」가 한국 시 모더니즘의 정수가 된다. 「강철로 된 무지개」는 강철의 차가운 직선과 무지개의 부드러운 곡선이 한 자리에서 만나는 한 모순 형용(oxymoron), 식민지 극한 상황을 바라보는 시인의 역설 미학이 한 한국어 시 가장 압축된 한 자리에 응축된 한 절정의 결구다. 1944년 1월 베이징 일본 영사관 감옥에서 옥사하기 4년 전 *문장* 13호에 발표된 본 시는 이육사의 「광야」(1945 사후), 「청포도」(1939)와 함께 cap-3 정수를 이룬다.

저자

이육사

이육사(李陸史, 본명 이원록 李源祿, 1904~1944, 경북 안동 출생). 한국의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퇴계 이황의 14대손으로 한학 가풍에서 자랐으며, 1925년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해 평생 17번 일경에 체포·구금되었다. 1927년 대구 형무소 수인번호 264호에서 「이육사(二六四 → 陸史)」 필명이 비롯됐다. 1932년 베이징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졸업했고, 1935년 《신조선》에 「황혼」을 발표하며 본격 시작 활동에 들어갔다. 대표작으로 「청포도」(1939) 「절정」(1940) 「교목」(1940) 「광야」(1945 사후) 「꽃」(1945 사후) 등이 있다. 1943년 베이징에 잠입했다가 1944년 1월 16일 베이징 일본 영사관 감옥에서 옥사했다. 향년 39세. 사후 동생 이원조(李源朝, 1909~1955)가 1945년 12월 《자유신문》에 「광야」 「꽃」을 발표했고 1946년 시집 『육사시집』(서울출판사)을 정리·간행했다. 이육사 시는 식민지 극한 상황에서도 차가운 절제와 압축으로 미래의 회복을 응시한 한국 저항시의 정점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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