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7 — October 2026

태평천하

채만식

PAGERA

태평천하

채만식 · 한국어

서울 계동의 대지주 윤직원 영감은 화적에게 아버지를 잃은 뒤로 재산을 지키고 가문을 빛내는 데 매달려 왔고, 일제 치하를 「태평천하」라 부르며 흡족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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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ra 서평

서울 계동의 대지주 윤직원 영감은 화적에게 아버지를 잃은 뒤로 재산을 지키고 가문을 빛내는 데 매달려 왔고, 일제 치하를 「태평천하」라 부르며 흡족해한다. 판소리 사설을 닮은 능청스러운 경어체 서술이 명창대회에서 돌아온 어느 가을날 저녁부터 이튿날 낮까지 윤씨 집안 사람들의 탐욕과 타락을 차례로 비추고, 끝내 경찰서장으로 키우려던 손자가 사상 관계로 붙잡혔다는 전보가 날아든다. 1938년 1월부터 9월까지 『조광』에 「천하태평춘」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했고, 1948년 단행본을 내며 지금 제목으로 바꾼 장편이다.

작품 길잡이

서울 계동의 만석꾼 윤직원 영감이 명창대회를 보고 돌아온 가을 저녁부터 이튿날까지, 그와 아들·손자·증손자가 저마다 보내는 하루 남짓을 그린 장편이다. 서술자는 이야기꾼처럼 독자에게 말을 건네며 윤직원의 인색한 살림과 집안 내력을 늘어놓는다.

연재
1938년 1월~9월, 『조광』(9회). 연재 때 제목은 「천하태평춘」
단행본
1940년 『삼인장편전집』에 실렸고, 1948년 동지사 단행본에서 「태평천하」로 제목이 바뀌었다
갈래
장편소설. 할아버지에서 손자까지 여러 세대를 다룬 가족사 소설이자 풍자소설
시점
3인칭. 이야기꾼 같은 서술자가 「~입니다」 하는 경어체로 독자에게 말을 건네며 여러 인물의 속을 넘나든다
배경
정축년(1937년) 가을의 경성. 계동 윤직원 집, 부민관, 진고개(본정). 회상 장면은 구한말 윤직원의 시골 고향
구성
15장. 하루 남짓한 시간 위에 윤직원 집안의 내력을 담은 회상이 끼어든다(4장은 거의 전부 회상)

시대 배경

중일전쟁이 번져 가던 1930년대 후반의 경성이 무대다. 윤직원은 구한말 화적에게 아버지를 잃는 난리를 겪은 지주로, 소작료와 돈놀이로 살림을 불리며 제 재산을 지켜 주는 지금 세상을 태평한 시절로 여긴다. 작가는 판소리 광대처럼 경어체로 이야기를 풀며 이 인물을 비꼰다. 1930년대 지주 집안의 위선과 이기심을 풍자하고 판소리계 소설의 서술 방식을 이어받았다는 평가를 받으며, 한 집안의 여러 세대로 시대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염상섭의 『삼대』와 함께 거론된다.

등장인물

  • 윤직원 영감 · 본명은 윤두섭, 젊어서 별명은 윤두꺼비. 일흔두 살로, 해마다 벼 만 석을 소작료로 받고 수형(어음) 할인으로 돈을 불린다. 인력거 삯 몇 전을 두고 실랑이를 벌일 만큼 인색하고, 명창대회와 남도 소리를 무척 좋아한다.
  • 윤주사(창식) · 윤직원의 아들, 마흔여섯 살. 남과 다투는 법이 없는 순한 성품이지만 살림은 돌보지 않고, 동대문 밖과 관철동에 첩을 두고 지낸다. 남의 빚보증을 섰다가 몇 번이나 큰돈을 물어 주게 되자, 아버지 윤직원이 그에게 준금치산 선고를 받게 했다. 아내 고씨와는 금실이 끊긴 지 오래다.
  • 종수 · 윤직원의 맏손자, 스물아홉 살. 입학시험에 거듭 떨어진 뒤 술과 여자에 빠졌다. 할아버지가 군수로 만들려고 고향 군청의 고원 자리에 앉혀 두었다.
  • 종학 · 윤직원의 둘째 손자. 동경의 사립대학 법과에 다니며, 할아버지가 장차 경찰서장이 되리라고 가장 믿는 손자다. 아내 조씨와 이혼하겠다고 편지로 집안 어른들을 조른다.
  • 경손 · 종수의 아들, 열다섯 살 중학생. 집안 어른들을 속으로 우습게 여기며, 할아버지뻘인 동갑내기 태식(윤직원의 서자)과 자주 다툰다.
  • 춘심 · 열다섯 살 동기(어린 기생). 언니 운심이도 명창대회에 나간다고 자랑한 것을 듣고 윤직원이 반겨 그를 데리고 부민관에 간다. 윤직원의 사랑에 드나들며 말동무가 된다.

낱말 풀이

장자
1장
이름난 큰 부자를 대접해 부르는 말. (長者. 본문에도 〔富者〕라고 덧붙여 놓았다.)
직원
1장
향교의 맨 윗자리를 맡은 직책. 일제강점기에는 향교와 경학원에 이 직책을 두었다. (直員. 오늘날의 '직원(職員)'과 다른 말이다. '윤직원'은 그가 향교 직원 자리를 얻으면서 붙은 호칭으로, 그 자리는 3년 지내고 내놓았다(c4-p188~c4-p201).)
관
1장
예전 무게 단위. 한 관은 3.75kg이다. (貫. 함께 나오는 몸메는 1관의 1000분의 1인 일본 무게 단위 몬메(匁)를 이르는 말로 보인다. 이십팔 관 육백 몸메는 107kg쯤 된다.)
탕건
1장
갓을 쓸 때 그 밑에 받쳐 쓰던 관모. 말총으로 짰고, 집 안에서는 이것만 쓰기도 했다. (宕巾)
염낭
1장
끈을 당겨 아가리를 오므리는 작은 주머니. 허리에 찬다. (두루주머니라고도 한다. 윤직원은 여기서 인력거 삯을 꺼낸다.)
부민관
1장
일제강점기에 경성부가 세운 공회당. 이 작품에서는 명창대회가 열린다. (府民館. 그 건물은 지금 서울시의회 의사당으로 쓰인다.)
권번
2장
일제강점기 기생들의 조합. 기생에게 소리와 춤을 가르치고, 요릿집에 나가는 일을 관리하고 화대를 받아 주었다. (券番)
동기
2장
머리를 얹기 전의 어린 기생. (童妓. 춘심은 열다섯 살 동기다.)
화적
4장
무리를 지어 다니며 남의 재물을 털던 도적떼. (火賊. 윤직원의 아버지 윤용규가 화적의 손에 죽는다(c4-p149).)
사음
4장
지주를 대신해 소작지와 소작인을 관리하던 사람. 마름. (舍音)
향교
4장
고려·조선 시대에 지방마다 둔 관립 학교. 공자 등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는 문묘가 딸려 있다. (鄕校. 본문 c4-p186~c4-p189에도 풀이가 있다.)
준금치산
5장
재산을 낭비하는 사람 등이 재산을 마음대로 관리하거나 처분하지 못하게 법원이 제한하던 일. '한정 치산'의 옛 용어다. (準禁治産. 윤직원은 빚보증으로 돈을 날리는 아들에게 이 선고를 받게 한다.)
수형
5장
어음을 예전에 이르던 말. (手形. 본문의 수형장수(c5-p142)는 어음을 이자를 떼고 사들이는 돈놀이를 하는 사람이다.)
구문
7장
흥정을 붙여 주고 그 대가로 받는 돈. 구전. (口文. 올챙이는 윤직원의 돈놀이를 중개하고 구문을 받는다.)
호외
8장
큰일이 있을 때 임시로 찍어 돌리는 신문. (號外. 여기서는 중일전쟁 소식을 알린다.)
아라사
8장
러시아를 한자로 옮겨 부르던 말. (俄羅斯)
집달리
9장
법원의 명령으로 압류 같은 강제 집행을 맡던 관리. 오늘날의 집행관. (執達吏. 같은 문단의 가차압은 오늘날 말로 가압류다.)
도조
10장
남의 논밭을 빌려 부친 값으로 해마다 내는 곡식. 소작료. (賭租. 도지라고도 한다(c14-p051).)
동변
14장
약으로 쓰던 어린 사내아이의 오줌. (童便. 본문에도 풀이가 있다.)
농지령
14장
1934년 조선총독부가 소작 쟁의를 가라앉히려고 만든 법령. 소작권 보호를 내걸었지만 지주에게 유리했다. (朝鮮農地令. 같은 문단의 소작조정령은 1932년에 만든 소작 쟁의 조정 법령이다.)

생각해 볼 거리

  1. 윤직원은 아버지가 화적에게 죽던 밤 "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c4-p158)라고 외쳤고, 마지막 장에서는 "이 태평천하에!"(c15-p057)라고 부르짖는다. 두 외침 사이에 윤직원에게 세상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그가 말하는 '태평천하'는 누구에게 태평한 세상인가(c8-p131, c15-p053)?
  2. 서술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입니다」 하는 경어체로 이야기하며, "그러나 시삐 여기진 마시오."(c1-p018)처럼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건넨다. 판소리 광대를 닮은 이 말투는 독자가 윤직원을 바라보는 거리를 어떻게 만드는가? 같은 이야기를 「~했다」체로 썼다면 무엇이 달라질까?
  3. 윤직원은 가문을 빛내려고 족보를 꾸미고, 향교 직원 자리를 얻고, 양반 집안과 혼인을 맺고, 손자들을 군수와 경찰서장으로 키우려 한다(c4-p179~c4-p211). 그가 돈으로 사려 한 것은 무엇이었나? 맏손자 종수가 할아버지의 돈을 쓰는 방식(c12-p004~c12-p022)과 견주어 보자.
  4. 같은 날 밤, 윤직원은 춘심이와 반지 흥정을 하고, 증손자 경손은 춘심이를 몰래 불러내며, 종수는 뚜쟁이 집에서 아버지의 첩 옥화와 마주치고, 윤주사는 마작판에서 전보를 받는다(c10-p255~c10-p298, c11-p264~c11-p276, c12-p235~c12-p242, c13-p031~c13-p068). 작가가 이 장면들을 나란히 놓은 까닭은 무엇일까? 서술자가 "모두들 태평합니다."(c6-p099)라고 할 때 이 말은 어떻게 들리는가?
  5. 마지막 장 제목 「망진자(亡秦者)는 호야(胡也)니라」는 오랑캐(호)를 막으려 만리장성을 쌓았지만 진나라를 망친 것은 아들 호해였다는 이야기에서 왔다(c15-p042). 윤직원이 쌓아 온 '만리장성'(c14-p071)은 무엇이고, 그것을 무너뜨리는 '호'는 누구인가? 서술자는 왜 진시황이 그것을 보지 못하고 죽은 것을 "오히려 행복"이라 했을까?

참고한 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천하태평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채만식」 · 위키문헌 「태평천하」(본문 저본)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낱말 풀이) · 국립국어원 우리말샘(낱말 풀이) · デジタル大辞泉 「匁」(몸메 풀이) · 2026-10-12 작성

저자

채만식

채만식(蔡萬植, 1902~1950). 호는 백릉(白菱)·채옹(采翁). 지금의 군산시 임피면에서 태어났다. 와세다대학 부속 고등학원을 중퇴하고 동아일보·개벽사·조선일보 기자로 일했다. 1924년 『조선문단』에 단편 「세 길로」를 발표하며 등단했고, 「레디메이드 인생」(1934)·「치숙」(1938) 같은 풍자 단편과 장편 「탁류」(1937~1938)·「태평천하」(1938)로 식민지 조선의 세태를 그렸다. 1940년대에 친일 작품을 쓴 일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었고, 해방 뒤 「민족의 죄인」(1948)에서 그 일을 돌아보았다. 1950년 6월 11일 이리에서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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