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5August 2026
시일야방성대곡 표지

시일야방성대곡

장지연 · 한국어

장지연(1864~1921, 호 위암(韋庵))이 1905년 11월 20일 황성신문 2101호에 발표한 사설. 1905년 11월 17일 을사조약 다섯 조항이 강제로 체결된 사흘 뒤, 황성신문 주필이 그 한 사실을 한 사설로 박아낸 한국 신문 사설의 효시. 「개돼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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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ra 서평

장지연(1864~1921, 호 위암(韋庵))이 1905년 11월 20일 황성신문 2101호에 발표한 사설. 1905년 11월 17일 을사조약 다섯 조항이 강제로 체결된 사흘 뒤, 황성신문 주필이 그 한 사실을 한 사설로 박아낸 한국 신문 사설의 효시. 「개돼지보다 못한」 한 격분 호명으로 외부대신 박제순을 직접 거명하고, 「사천 년 강토」와 「오백 년 종묘사직」과 「이천만 생령」 세 한자 호명으로 한국의 결정적 손실을 응축한 자리. 결구에서 「아아 원통하며 아아 분하도다」 한 「아아」 anaphora와 「동포여! 동포여!」 한 두 번 호명으로 한국 인민에게 직접 호소합니다. 사설이 인쇄되자마자 일제 통감부가 황성신문을 정간시키고 장지연을 구속했으며, 사설은 곧바로 식민지 시기 한국 언론의 「양심의 한 호흡」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저자

장지연

장지연(張志淵, 호 위암 韋庵, 1864~1921). 경북 상주 출생. 《황성신문》 주필로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사설 「시일야방성대곡」을 실어 신문이 정간되고 자신은 투옥되었다. 대한자강회와 대한협회에서 계몽운동을 이끌었고 잔다르크를 소재로 한 전기소설 「애국부인전」(1907)을 썼다. 만년에 《경남일보》에 몸담던 시기의 글이 뒷날 논란이 되어 2011년 서훈이 취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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