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지연 · 한국어
장지연(1864~1921, 호 위암(韋庵))이 1905년 11월 20일 황성신문 2101호에 발표한 사설. 1905년 11월 17일 을사조약 다섯 조항이 강제로 체결된 사흘 뒤, 황성신문 주필이 그 한 사실을 한 사설로 박아낸 한국 신문 사설의 효시. 「개돼지보다…
번역은 아직 없습니다. 아래 번역 요청으로 일정을 앞당길 수 있어요.
Pagera 서평
장지연(1864~1921, 호 위암(韋庵))이 1905년 11월 20일 황성신문 2101호에 발표한 사설. 1905년 11월 17일 을사조약 다섯 조항이 강제로 체결된 사흘 뒤, 황성신문 주필이 그 한 사실을 한 사설로 박아낸 한국 신문 사설의 효시. 「개돼지보다 못한」 한 격분 호명으로 외부대신 박제순을 직접 거명하고, 「사천 년 강토」와 「오백 년 종묘사직」과 「이천만 생령」 세 한자 호명으로 한국의 결정적 손실을 응축한 자리. 결구에서 「아아 원통하며 아아 분하도다」 한 「아아」 anaphora와 「동포여! 동포여!」 한 두 번 호명으로 한국 인민에게 직접 호소합니다. 사설이 인쇄되자마자 일제 통감부가 황성신문을 정간시키고 장지연을 구속했으며, 사설은 곧바로 식민지 시기 한국 언론의 「양심의 한 호흡」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저자
장지연
장지연(張志淵, 호 위암 韋庵, 1864~1921). 경북 상주 출생. 《황성신문》 주필로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사설 「시일야방성대곡」을 실어 신문이 정간되고 자신은 투옥되었다. 대한자강회와 대한협회에서 계몽운동을 이끌었고 잔다르크를 소재로 한 전기소설 「애국부인전」(1907)을 썼다. 만년에 《경남일보》에 몸담던 시기의 글이 뒷날 논란이 되어 2011년 서훈이 취소되었다.
장지연 · 한국어
장지연(1864~1921, 호 위암(韋庵))이 1905년 11월 20일 황성신문 2101호에 발표한 사설. 1905년 11월 17일 을사조약 다섯 조항이 강제로 체결된 사흘 뒤, 황성신문 주필이 그 한 사실을 한 사설로 박아낸 한국 신문 사설의 효시. 「개돼지보다…
첫 문단 미리보기
원문 (한국어)
지난날 이토 후작이 한국에 오자 우둔한 우리 인민은 서로 논하여 말하기를 "후작은 평소 동양 3국의 정족과 안녕을 주선하겠다 자처하던 사람이다. 이번에 내한하였으니 분명 우리 나라의 독립을 공고하게 뿌리내리게 할 방법을 알려주리라" 하여 항구에서 서울에 이르기까지 관리와 시민 모두가 환영함을 감추지 못했는데, 천하의 일 가운데 예측하기 어려운 것 많도다. 천만 꿈에도 못한 다섯 조항이 어찌하여 제출되었는가? 이 조약은 비단 우리 한국만이 아니라 동양 삼국이 분열하는 조짐을 낳을 것이니, 이토 후작의 본래 뜻은 어디에 있을꼬. 그렇다고는 하지만, 우리대황제 폐하의 신성한 뜻이 강경하여 거절함을 저어하지 않았는데, 그 조약이 성립하지 않음은 이토 후작 자신도 잘 알고 있었을 바라고 생각한다. 허나 아아, 그 개돼지보다 못한 소위 우리 정부의 신하들은 영리를 추구하고 거짓 위협에 겁을 먹어 머뭇대거나 떨며 나라를 파는 적이 됨을 달갑게 여겨 사천 년 강토와 오백 년 종묘사직을 타인에게 들어다 바치고, 이천만 생령이 타인의 노예가 되게 하였으니. 그들 개돼지보다 못한 외무대신 박제순 및 각 대신은 깊게 문책할 것도 없거니와, 명색이 참정대신이라는 자는 정부의 수반이
Pagera 서평
장지연(1864~1921, 호 위암(韋庵))이 1905년 11월 20일 황성신문 2101호에 발표한 사설. 1905년 11월 17일 을사조약 다섯 조항이 강제로 체결된 사흘 뒤, 황성신문 주필이 그 한 사실을 한 사설로 박아낸 한국 신문 사설의 효시. 「개돼지보다 못한」 한 격분 호명으로 외부대신 박제순을 직접 거명하고, 「사천 년 강토」와 「오백 년 종묘사직」과 「이천만 생령」 세 한자 호명으로 한국의 결정적 손실을 응축한 자리. 결구에서 「아아 원통하며 아아 분하도다」 한 「아아」 anaphora와 「동포여! 동포여!」 한 두 번 호명으로 한국 인민에게 직접 호소합니다. 사설이 인쇄되자마자 일제 통감부가 황성신문을 정간시키고 장지연을 구속했으며, 사설은 곧바로 식민지 시기 한국 언론의 「양심의 한 호흡」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저자
장지연(張志淵, 호 위암 韋庵, 1864~1921). 경북 상주 출생. 《황성신문》 주필로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사설 「시일야방성대곡」을 실어 신문이 정간되고 자신은 투옥되었다. 대한자강회와 대한협회에서 계몽운동을 이끌었고 잔다르크를 소재로 한 전기소설 「애국부인전」(1907)을 썼다. 만년에 《경남일보》에 몸담던 시기의 글이 뒷날 논란이 되어 2011년 서훈이 취소되었다.

번역 현황
대기로그인 후 번역을 요청하실 수 있습니다.
이 저자의 다른 작품
자주 묻는 질문
네, 완전히 무료입니다. 이 책은 저작권이 만료된 퍼블릭 도메인 도서라 회원가입·결제 없이 바로 읽을 수 있습니다. Pagera는 광고 수익으로 운영됩니다.
독서·어학에 도움이 되는 상품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무료 이용 안내
회원가입 없이도 바로 읽기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열람과 기능은 회원 가입 후 이용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