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가이드 · 2026-05-04 · 읽는 시간 ~ 8분
사이토 모키치, 잉어 한 편으로 만나는 만요풍 단가의 정관
일본 근대 만요풍 단가 거장이자 정신과 의사. 1946년 모가미 강 회상 한국어 번역으로 만나는 아라라기파의 절제된 시정.
Pagera Editorial
사이토 모키치(斎藤茂吉, 1882~1953)라는 이름은 한국 독자에게 낯섭니다. 하지만 일본 근대 문학에서 이 이름을 빠뜨리면 단가(短歌)의 20세기가 설명되지 않습니다.
시인이자 의사, 마사오카 시키의 손자 제자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가 「사생(寫生)」이라는 새로운 관찰의 언어를 단가에 심었습니다. 그 제자 이토 사치오(伊藤左千夫)가 단가 결사 아라라기(アララギ)를 창설하고 시키의 정신을 계승했습니다. 이토 사치오 사후, 아라라기파를 실질적으로 이끈 사람이 사이토 모키치입니다. 단가집 「적광(赤光)」(1913)은 오늘날도 일본 근대 단가의 정전으로 꼽힙니다.
직업은 정신과 의사였습니다. 도쿄 나가마치(長町) 병원에서 진료하며 단가를 썼고, 독일 유학까지 마친 전문 의학자였습니다. 차남이 소설가 기타 모리오(北杜夫)입니다. 시인 아버지와 소설가 아들, 이 집안에서 두 세대 일본 문학이 함께 흘렀습니다.
만요풍(万葉風)이라는 말은 7~8세기 「만요슈(万葉集)」의 소박하고 직접적인 언어 감각을 현대 단가에 되살린다는 뜻입니다. 꾸밈 없이, 관찰한 것을 그대로, 감정을 한 박 두고 바라보는 태도. 사이토 모키치의 산문에도 그 감각이 고스란히 흘러들어 있습니다.
「잉어」 깊이 읽기
Pagera에 출판된 한국어 번역 「잉어 (鯉)」는 1946년, 쇼와 21년에 쓰인 수필입니다. 배경은 야마가타 현 오이시다(大石田). 도쿄 대공습 이후 사이토 모키치가 피난 생활을 했던 모가미 강 유역입니다.
글은 잉어 행상에서 시작합니다. 어부 친구 이카리 야스조가 모가미 강에서 잡은 잉어를 가져옵니다. 진짜 잉어와 비잉어, 크기에 따른 척관법(尺·貫) 수치, 이송 방법, 조리까지 — 박학한 풍토 기술이 담담한 어조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읽다 보면 이상한 감각이 찾아옵니다. 잉어에 대한 사실들이 쌓이고 쌓이면서 어느 순간 그 수면이 고요해지는 느낌. 격정이 없고, 비탄도 없습니다. 전후 혼란의 1946년이라는 시대가 배경인데, 글은 강과 물고기만 바라봅니다. 그것이 이 수필의 핵심입니다.
결구에 와카 한 수가 놓입니다.
모가미 강에 사는 잉어를
늘 생각하노라니
모습마저
어느덧
고요해지누나
「고요해지누나(しづかになりぬ)」. 잉어의 모습을 오래 생각하다 보니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도 함께 잠잠해졌다는 뜻입니다. 산문 전체가 이 한 구(句)를 향해 흘러갑니다. 한국어 번역은 척관법 수치(서른 몬메, 약 113그램)까지 음역과 환산을 함께 실어, 원문의 박학 풍토를 그대로 옮겼습니다.
만요풍 단가와 정관(靜観)의 미학
「~누나」라는 영탄 어미는 한국 시조의 「~로다」「~구나」와 닮아 있습니다. 감탄의 문법이 비슷하고, 자연을 오래 바라보다 감정이 사물과 합일되는 순간을 포착한다는 점도 겹칩니다. 정관(靜観)이라는 태도 — 소란스럽지 않게, 사물 곁에 서서, 그것이 움직이기를 기다리는 것. 만요풍 단가는 이 태도를 5·7·5·7·7 서른한 글자에 압축합니다.
사이토 모키치의 산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전후의 피폐한 현실 속에서도 글은 강과 물고기에 집중합니다. 그 집중이 정치적 회피가 아니라 미학적 선택임을 결구 와카가 증명합니다. 잉어를 생각하다 마음이 고요해지는 것 — 시인은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다음 번역과 읽기 시작
사이토 모키치의 산문·수필은 45종 이상이 Pagera 번역 후보 목록에 있습니다. 잉어를 쓴 시기와 같은 오이시다 시절 작품들, 아라라기파 동료들과의 교류 회상, 자연 응시 단상들이 후속 번역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특정 작품 번역을 먼저 보고 싶다면 번역 신청 페이지에서 요청할 수 있습니다. 「잉어」 한 편으로 시작해서 — 만요풍 단가의 물결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따라가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