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가이드 · 2026-05-04 · 읽는 시간 ~ 9분
가지이 모토지로, 4편으로 만나는 「레몬」의 작가
31세 요절 작가의 단편 4편. 마루젠 서점에 레몬을 두고 떠나는 「레몬」부터 도시 신경의 풍경까지, Pagera 한국어 번역으로 다이쇼 감각의 정점.
Pagera Editorial
가지이 모토지로(梶井基次郎, 1901~1932). 31세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난 이 작가가 남긴 단편은 스무 편이 채 안 됩니다. 하지만 그 안에 도시의 신경, 계절의 감각, 욕망의 형태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레몬」 한 편으로 주로 알려졌지만, Pagera에 출판된 4편을 나란히 읽으면 이 작가의 진짜 윤곽이 드러납니다. 짧지만 폭발적인 산문시, 다이쇼 감각의 정점을 찍은 작가.
왜 지금 가지이인가
1990~2000년대 일본문학 붐 시기, 한국 독자에게 「레몬」은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단편이었습니다. 마루젠 서점의 화집 더미 위에 노란 레몬 하나를 올려두고 "폭발할지도 모른다"고 상상하며 홀연히 사라지는 화자. 그 간결하고도 기묘한 쾌감은 읽은 사람을 쉽게 놓아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레몬」 한 편만 아는 것과 4편을 읽는 것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습니다. 가지이 모토지로는 도시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감각을 매우 개인적인 신경의 차원에서 포착한 작가입니다. 그의 글에는 큰 사건이 없습니다. 한 사람이 레몬 한 개를 사는 일, 고양이 귀를 쓰다듬는 일, 골목 풍경을 바라보는 일. 그런데도 읽고 나면 무언가 촉촉하게 남습니다. 그게 가지이 문학의 정체입니다.
가지이가 활동한 다이쇼 말기에서 쇼와 초기는 일본 모더니즘 문학이 활기를 띠던 시기입니다. 당시 도쿄와 오사카는 전차와 카페와 백화점이 뒤섞인 도시로 급격히 재편되고 있었습니다. 그 한복판에서 가지이는 도시의 자극을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을 자기 신경의 언어로 다시 썼습니다. 짧은 작가 생애, 짧은 작품들. 하지만 그 밀도는 지금 읽어도 퇴색되지 않습니다.
대표작 3선
레몬 (檸檬)
신경증을 앓는 화자가 교토 마루젠 서점을 배회합니다. 평소 좋아하던 화집도, 장정이 아름다운 책들도 오늘따라 무겁고 진합니다. 그런 그가 과일 가게에서 레몬 한 개를 삽니다. 노랗고 차갑고 향기로운 이 과일 하나로 기분이 처음으로 가벼워집니다. 마루젠 화집 더미 위에 레몬을 올려두고 서점을 나서면서 화자는 속으로 말합니다. "혹시 폭발하면 어쩌지." 가지이 문학 전체를 한 장면으로 압축하면 바로 이 대목입니다. 도시의 권태와 신경증, 그리고 그것을 깨뜨리려는 작고 은밀한 욕망. 3,000자 남짓이지만 읽고 나면 훨씬 긴 무언가를 읽은 것 같은 느낌이 남습니다.
어떤 마음의 풍경 (ある心の風景)
한 청년이 황량한 도시 거리를 바라봅니다. 낡은 건물, 정체된 골목, 움직임 없는 사람들. 묘사가 쌓이면서 풍경은 점점 화자의 내면과 겹쳐 들어갑니다. 도시가 그의 무기력을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고독의 밀도가 더 진합니다. 가지이의 단편들 중 가장 산문시에 가깝습니다. 「레몬」보다 조용하지만, 읽고 나면 더 오래 따라옵니다.
애무 (愛撫)
고양이 귀를 쓰다듬는 기묘한 상상으로 시작합니다. 일상적인 장면에서 출발하지만, 이내 인간 내면에 숨어 있는 은밀한 욕망과 잔혹성으로 미끄러져 들어갑니다. 아주 짧은 단편이지만 가지이 특유의 섬세하고 불편한 감각이 가장 날카롭게 드러납니다. 「레몬」이 도시와 욕망의 이야기라면, 「애무」는 몸과 욕망의 이야기입니다. 두 편을 짝 지어 읽으면 이 작가의 감각적 범위가 또렷해집니다.
읽는 순서 추천
입문이라면 — 「레몬」부터 시작하십시오. 분량이 짧고, 가지이 문학의 핵심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읽고 나면 이 작가가 왜 100년 가까이 읽히는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레몬」 이후 — 「애무」로 넘어가면 가지이가 감각을 얼마나 날카롭게 벼리는지 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은 「어떤 마음의 풍경」. 도시 풍경과 내면이 겹쳐드는 방식이 가장 산문시에 가깝습니다.
가지이를 깊이 읽고 싶다면 — 「『청공』에 관한 이야기」로 마무리하십시오. 동인지 「청공(青空)」에 대한 회상 수필로, 가지이가 자기 작업의 맥락을 직접 쓴 드문 텍스트입니다. 소설보다 훨씬 산문적이고, 작가의 일상이 자연스럽게 배어 나옵니다. 앞의 세 편을 읽고 나면 이 수필이 조금 다르게 읽힙니다.
가지이를 읽는다는 것
가지이 모토지로의 글은 읽기 쉽습니다. 문장이 짧고, 사건이 간단하며, 어려운 단어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읽은 뒤에 무언가 남습니다. 레몬의 차가운 감촉, 고양이 귀의 기묘한 촉감, 황량한 도시 골목의 정체된 공기. 가지이의 단편은 읽는 동안보다 읽고 난 뒤에 더 크게 작동합니다.
31세라는 나이에 생을 마친 작가가 이 정도의 밀도를 남겼다는 사실은, 매번 읽을 때마다 새삼스럽게 느껴집니다. 4편으로 만나보십시오.
Pagera에서 바로 읽기
가지이 모토지로의 4편 모두 Pagera에서 한국어로 읽을 수 있습니다. 별도 설치나 로그인 없이 브라우저에서 바로 읽기가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