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2May 2026

장르 딥다이브 · 2026-04-23 · 읽는 시간 ~ 12

SF·판타지의 원류: 메리 셸리부터 H.G. 웰스까지

현대 SF와 판타지의 수많은 장치는 19세기 소설에서 이미 만들어졌습니다. 프랑켄슈타인에서 시간여행, 화성 이야기, 드라큘라까지, 장르의 뿌리를 추적하는 입문 가이드.

Pagera Editorial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SF·판타지의 거의 모든 장치는 19세기에 이미 만들어졌습니다. 인공 생명체, 시간여행, 우주 전쟁, 불멸의 흡혈귀, 정체성 분열. 이 글은 장르의 뿌리를 한 세기 전 퍼블릭 도메인 소설로 되짚어 가는 입문 가이드입니다. 모두 Pagera에 한국어 번역이 올라와 있거나, 한국어 번역 요청 큐에서 다음 후보인 작품들입니다.

왜 지금 이 책들을 읽어야 하나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현대 SF·판타지의 어법과 관습이 어디에서 왔는지 이해하면 지금 읽는 작품이 훨씬 깊게 보입니다. 블레이드 러너를 이해하려면 프랑켄슈타인을, 인터스텔라를 이해하려면 타임머신을, 진격의 거인을 이해하려면 우주 전쟁을 거쳐 가면 도움됩니다. 둘째, 이 책들은 짧습니다. 대부분 200쪽 안팎이라 주말 한 번에 끝납니다.

핵심 라인업

연도 작품 저자 장르 기여
1818프랑켄슈타인메리 셸리인공 생명·창조주 윤리
1870해저 2만리쥘 베른기술 중심 모험 SF
1886지킬과 하이드R. L. 스티븐슨정체성 분열·심리 공포
1895타임머신H. G. 웰스시간여행 장치의 원형
1897드라큘라브램 스토커현대 뱀파이어 신화
1898우주 전쟁H. G. 웰스외계 침공 서사
187380일간의 세계 일주쥘 베른기술 낙관주의 모험
1884평면의 나라에드윈 애벗차원·수학 SF

1. 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 1818)

19살 여성이 1816년 여름 스위스의 한 별장에서 착상해 쓴 소설. 실험실에서 조립되어 깨어난 피조물이 창조주에게 책임을 묻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AI 시대의 윤리 논의를 이보다 먼저 꺼낸 책은 없습니다. "내가 만든 것은 내가 책임지는가." 200년이 지나도 이 질문은 낡지 않습니다.

현대 SF에 준 것: 창조주-피조물 관계, 인공 생명의 주체성, 고립된 지식인의 오만. 블레이드 러너, 엑스 마키나,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까지 이어지는 계보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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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해저 2만리 (쥘 베른, 1870)

네모 선장의 잠수함 노틸러스호를 따라 세계 바다를 여행하는 이야기. 베른의 '기술에 대한 낙관'이 가장 잘 드러나는 책. 실제 잠수함 기술이 등장하기 수십 년 전에 설계도 수준의 묘사를 해냅니다. '하드 SF'의 원형.

3. 지킬과 하이드 (R. L. 스티븐슨, 1886)

SF로 분류하기엔 초자연이 섞여 있고, 판타지로 보기엔 실험실이 나옵니다. 정확히는 '심리 공포'의 시작점. 한 인간 안의 두 자아라는 은유를 100년 넘게 팝컬처가 우려먹는 이유는 이 책이 그 틀을 너무 완벽하게 만들어 놓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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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타임머신 (H. G. 웰스, 1895)

'시간여행'을 소설 장치로 처음 제대로 쓴 책. 주인공은 80만 년 후의 지구로 가서 두 종족으로 분화한 인류를 만납니다. 계급 격차가 생물학적 분화로 귀결된다는 은유는 빅토리아 말 영국 사회 비판. 지금 읽어도 예언처럼 들리는 대목이 많습니다.

현대 SF에 준 것: 시간여행이라는 장치 자체. 그리고 '미래를 보러 간 현재'라는 구조를 이만큼 간결하게 쓴 책은 여전히 드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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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드라큘라 (브램 스토커, 1897)

뱀파이어라는 존재는 동유럽 민속에 있었지만, 현대적 이미지(귀족, 성, 박쥐, 햇빛에 타는 약점)는 거의 전부 이 한 권에서 나왔습니다. 서간체와 일기·신문 기사가 교차하는 독특한 구성. 길이는 좀 있지만 긴장감이 끝까지 유지됩니다.

현대 판타지에 준 것: 오늘날 뱀파이어 장르 전체. 앤 라이스, 스테파니 마이어, 게임 블러드본까지 모두 이 책의 파생.

6. 우주 전쟁 (H. G. 웰스, 1898)

화성인이 영국을 침공하는 이야기. 외계인의 모습, 열광선 무기, 지구인의 무력함, 세균에 의한 반전 결말. 오늘날의 외계 침공 서사(인디펜던스 데이, 9월의 전쟁) 전체가 이 한 권의 변주입니다.

7. 80일간의 세계 일주 (쥘 베른, 1873)

베른의 가장 대중적인 모험담. SF라기보다 '기술 낙관주의 모험소설'에 가깝지만, 당시의 교통·통신 기술을 정확히 파악하고 짠 플롯이라 SF 장르에 미친 영향이 큽니다. 주인공 포그의 정확성 강박이 의외로 코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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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평면의 나라 (에드윈 애벗, 1884)

2차원 세계에만 사는 사각형이 3차원을 발견하는 풍자 소설. '차원'이라는 수학 개념을 문학으로 설명한 최초의 작품. 물리학·정보이론 교양서 이전에 이 책이 있었습니다. 130쪽밖에 안 되니 꼭 읽어볼 가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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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흐름이 왜 중요한가

현대 SF·판타지를 읽다 보면 '어디서 본 것 같은' 장치들을 계속 마주칩니다. 그 원형을 알면 두 가지 이득이 있습니다. 첫째, 작품의 깊이가 다르게 보입니다. 듄이 왜 '사막의 메시아'를 다루는지, 반지의 제왕의 '운명의 반지'가 어떤 전통을 잇는지 맥락이 잡힙니다. 둘째, 퇴고가 대단한 장르임을 실감합니다. 19세기 작가들은 지금 편의대로 쓰는 장치 하나하나를 처음으로 세공했습니다.

읽는 순서 제안

  1. 1주차: 지킬과 하이드 (120쪽) → 가볍게 시작
  2. 2주차: 타임머신 (140쪽) → SF의 전형을 체감
  3. 3주차: 프랑켄슈타인 (300쪽) → 장르의 뿌리
  4. 4주차: 80일간의 세계 일주 → 리프레시
  5. 5주차: 드라큘라 (400쪽) → 긴 호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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