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2May 2026

작가 가이드 · 2026-05-04 · 읽는 시간 ~ 10

사카구치 안고, 5편으로 만나는 무뢰파의 다른 얼굴

타락론 너머의 사카구치 안고. 수다 경쟁·에고이즘 소론·고단 선생까지, Pagera 한국어 번역 5편으로 만나는 전후 일본 무뢰파의 직설과 해방감.

Pagera Editorial

사카구치 안고(坂口安吾, 1906-1955). 한국 독자에게는 「타락론(堕落論)」의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1945년 패전 직후 "타락하라, 인간은 타락해야 한다"고 외친 그 선언이 워낙 강렬해서, 안고 하면 그 한 편이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안고는 무뢰파(無頼派) 최고의 다작가이기도 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오다 사쿠노스케와 함께 전후 일본 문학의 가장 날선 목소리를 냈고, 그 목소리는 장편·단편·수필·평론 가릴 것 없이 일관된 직설로 흘렀습니다.

Pagera에는 현재 안고의 한국어 번역 5편이 출판되어 있습니다. 각각 회상 수필·좌담 에피소드·인물 스케치·평론·우화풍 단편으로, 「타락론」 한 편으로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 안고의 다른 얼굴들입니다.

5편 한눈에 보기

#제목성격핵심 톤
1수다 경쟁좌담 회상자조 너스레 + 동료 애정
2에고이즘 소론평론평어 단정 + 직설 풍자
3오이 히로스케라는 사내인물 회상가족 화법 + 회상 시정
4고단 선생수필·작법론강설가 격식체 + 자조
5이슬의 답우화풍 단편절제된 시정 + 허무

대표작 3선

수다 경쟁 — 인간 소통의 허무를 웃음으로 넘기다

안고가 우노 코지(宇野浩二)를 처음 만나는 날의 에피소드를 담은 좌담 회상 수필입니다. 우노 코지는 동시대 작가로 「노는 사람」 「꿈 이야기」로 알려진, 수다로 유명한 인물이었습니다. 만남을 앞두고 안고는 "저 사람이 오면 끝없이 떠들 것이다"라고 단단히 각오를 다집니다. 그런데 실제 만남에서 일어나는 일은 안고가 예상한 것과 전혀 다릅니다.

이 글에서 안고 특유의 자조 너스레가 가장 잘 보입니다. 타인을 관찰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비웃는 이중 시선. "허무를 직시하되 무겁게 쓰지 않는다"는 무뢰파의 문체 골격이 짧은 좌담 회상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처음 안고를 읽는 독자에게 가장 먼저 권하는 글입니다.

에고이즘 소론 — 세간 입장을 인용한 뒤 다음 문장에서 폭로

안고 평론의 핵심 수법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짧은 글입니다. 자기중심주의를 주제로 삼았지만, 실제로 이 글이 하는 일은 "에고이즘을 비판하는 척하는 사람들의 에고이즘"을 해부하는 것입니다. 논증은 단순합니다. 세간의 입장을 먼저 인용해 "과연 그러하다"고 인정하는 척한 뒤, 다음 문장에서 그 전제를 조용히 뒤집습니다.

「타락론」을 처음 읽었을 때의 그 직설적 충격이 어디서 오는지, 이 글을 읽으면 구조가 보입니다. 안고의 풍자는 고함치지 않습니다. 평어체로 단정하고, 그 단정이 독자를 천천히 불편하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오이 히로스케라는 사내 — 가족 화법으로 그린 인물 스케치

안고가 실제로 알고 지낸 인물 오이 히로스케를 회상하는 단편입니다. 이 글에서 눈에 띄는 것은 가족 간 대화 처리 방식입니다. 안고의 다른 글들이 대개 1인칭 직설이라면, 이 글에서는 가족 구성원들의 말투가 각자 살아 있습니다. 회상의 온도가 낮지 않고, 인물에 대한 애정이 직설 속에 담겨 있습니다.

무뢰파 하면 냉소·허무가 먼저 떠오르는데, 이 글은 안고 안에 있는 다정한 결을 보여줍니다. 「수다 경쟁」과 함께 "사람을 보는 안고"를 확인할 수 있는 글입니다.

읽는 순서 추천

입문: 안고를 처음 만나는 독자라면

수다 경쟁부터 시작하세요. 분량이 짧고, 안고의 자조 너스레가 가장 부드럽게 드러납니다. 웃으면서 읽다 보면 안고 특유의 시선이 무엇인지 감이 옵니다. 이슬의 답으로 이어가면, 같은 작가의 시정(詩情)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화풍 단편으로 허무를 다루되 무겁지 않습니다. 고단 선생에서는 강설가 모드의 안고를 만납니다. 「~이올시다」 격식체와 자조가 교차하는 독특한 리듬입니다.

깊이: 안고의 사상을 따라가고 싶은 독자라면

에고이즘 소론에서 「타락론」과 같은 풍자 골격을 확인하세요. 짧은 평론이지만 안고의 직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구조가 보입니다. 오이 히로스케라는 사내로 마무리하면, 냉소 뒤에 있는 안고의 다정한 결을 발견합니다.

5편이 보여주는 무뢰파의 결

무뢰파(無頼派)라는 이름에는 "규범을 따르지 않는 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안고·다자이·오다 세 사람은 전쟁과 패전이라는 극단적 상황 속에서 기존 일본 문학의 도덕적 건전함과 미문(美文) 취향을 정면으로 거부했습니다. 그런데 그 거부가 허무로만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 이 5편에서 보입니다. 수다를 웃음으로 관찰하고, 에고이즘을 에고이즘으로 해부하고, 한 사람의 삶을 다정하게 회상하는 것 — 이것이 안고의 다른 얼굴입니다.

「타락론」 한 편은 선언입니다. 5편을 읽으면 그 선언을 실제로 살아간 사람의 일상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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